(시작 기도)
주님,
따뜻한 봄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코로나로 좋은 계절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차드의 뜨거운 날에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생각하며
안일하고 게으른 생각을 회개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본문 주해)
25~26절 : 예수님께서 ‘화 있을진저!’ 라고 저주하시는 일곱 번의 말씀 중에 다섯 번째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정결규례를 철저하게 지키려고 음식을 먹기 전에 손도 씻고, 그릇도 깨끗하게 씻었다. 이렇게 거룩한 표시를 내는 자들이지만 그 속에는 과부의 재산을 삼키는 등 돈을 좋아하였다. 그들은 겉으로는 종교적인 거룩함을 지키는 것처럼 보여도 속에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겉과 속이 다를 수밖에 없다. 겉과 속이 같은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시다.
27~28절 : ‘화 있을진저!’의 여섯 번째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유대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자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으니 과연 예수님은 미움을 받을 만하였다.
예수님께서 그같이 말씀하신 것은 사람들에게 옳게 보이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앞에서 사신 분으로서 겉과 속이 같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무덤에 회칠을 한 것은 그곳이 무덤임을 두드러지게 나타내어 유대인들이 접촉을 하지 못하게 함으로 예루살렘 성전에 나아가는 일에 지장이 없게 하려고 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삼대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야 하는데 무덤과 같은 곳에 접촉하여 부정을 입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무덤 속에 죽은 자의 뼈와 더러운 것이 가득하듯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속에도 온갖 더럽고 부정한 것이 가득한 것이 겉만 회칠한 무덤의 모양이라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의롭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위선과 불법이 가득한 모습이다.
29~36절 : 일곱 번째 저주의 말씀에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할 정도로 열심히 율법을 지키며, 자신들은 선지자를 죽인 조상과는 다르다고 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하신다.
유대인들에게 뱀이라고 하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뱀이 생각나는 것이 당연하며, 이러한 뱀의 일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하신 것은 너희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뱀의 후손들이라는 말씀이다. 이런 말씀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당연히 격분시키는 말씀이다.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는 말씀은 ‘너희가 너희의 조상들처럼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를 죽이는 일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 분량을 채우는 일은 결국 예수님을 죽이는 일이요, 또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들(사도와 제자들)을 죽이는 일이다.
이들의 조상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들을 죽였으니 그 최초의 사람이 아벨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받아주시는 아벨을 가인이 죽인 것을 가리킨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죽이는 일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계속되어 사가랴(스가랴)까지 죽인 것을 말한다.
스가랴가 죽은 것을 마지막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유대인들의 성경 분류에 의하면 역대기가 제일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사 다시 여호와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경고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니라 이에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그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 그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죽였더라”(대하24:19~21)
37~39절 : 38절은 성전의 무너짐을 말한다. 그것은 예루살렘의 무너짐이며 예루살렘의 무너짐이란 이스라엘 전체의 무너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보시면서 탄식하시는 것이다.
어미닭이 병아리를 모으려는 것 같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선지자를 그렇게 보내셨지만 이스라엘은 돌아오기는커녕 오히려 핍박하고 죽였다. 그 결과 나라가 망했고, 이제 겨우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아직도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제 너의 집이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어지는 24장의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의 멸망으로 연결이 된다.
예수님의 이런 말씀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분노를 일으키게 되어 결국 예수님을 죽이게 된다.
39절 말씀은 예수님이 떠나신다는 말씀이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영원히 함께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떠나신다는 말씀이나 보지 못한다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면 언제 보게 되는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할 할 때까지이다. 이 때는 재림 때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지금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믿지 않고 마지막 그 날에 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너희의 심판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나의 묵상)
나는 겉과 속이 다르다.
겉은 깨끗한 척 하여도 속은 더러운 이기심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또 늘 하나님 앞에서 행하리라 결심하지만, 곧잘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위선적인 존재이다.
복음의 빛이 비추어지지 않았을 때는 탐욕과 이기심은 정당한 것이라 생각했다. 또 사람 앞에 잘 보이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니, 그것을 굳이 나쁘다고 말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왜냐 하면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아가기 때문이요, 그렇게 열심히 사는 자들이 오히려 칭찬받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믿는 하나님은 그러한 나의 삶을 응원하시고 도움을 주시는 분으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복음에 눈을 뜨게 되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느낌표 천 개 만 개로 다가온 복음은 나를 매일 말씀의 자리로 인도했다.
이렇게 복음을 알고, 주님을 조금씩 더 알게 됨으로 내가 달라진 점은 겉과 속이 일치되고, 늘 하나님 앞에 행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겉과 속이 다른 존재요, 사람 앞에 잘 보이려고 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점이다.
언제나 자신감과 가능성으로 들떠 있었던 내가 ‘쭈그리’가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불행한 쭈그리가 아니라, 행복한 쭈그리가 된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를 보았기 때문이다.
겉과 속이 다른 내가 어떻게 안까지 깨끗하게 하며, 자아숭배로 똘똘 뭉친 그 죄악의 본성을 무엇으로 제거할 수 있겠는가?
주님의 십자가 외에는 나를 깨끗하게 할 것은 없고, 하나님 앞으로 달려가게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주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신앙생활이 바로 예수님을 또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때 예수님께서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라고 하시는 것이 너무 심한 말 같기도 하고, 또 거룩한 예수님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께는 관심이 없고, 자기의 유익만을 챙기는 자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의 질책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 질책은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율법을 잘 지킨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 못지않게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생각한 내가 뱀으로, 독사의 새끼로 언제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런데 너무도 감사한 것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계속 십자가에 못 박는 자로 남지 않고,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조상의 분량을 채우던 유대인들을 따라 나도 그 분량을 채우는 자로 남지 않게 하시고, 날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의 십자가를 똑똑히 보며 십자가에 연합되어 살아가게 성령께서 인도해 주신다.
그리하여 주님 재림하시는 그 날에 말씀으로 인하여, 십자가의 삶으로 인하여 기쁨으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을 기대한다.
(묵상 기도)
주님,
십자가로 겉과 속이 함께 깨끗하게 되게 하시고
십자가로 위선과 불법을 이기게 하옵소서.
다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 조상의 죄의 분량을 채우는 자 되지 않게 하시고
그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옵소서.
오직 성령님만을 의지합니다.
저를 주관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