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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기적'.,제부도 가는 길.
화성시 서신면 송교리 해안 서쪽 2km.,제부도.
대부도· 선감도· 탄도· 불도 등 섬이 북쪽에 있다.
섬 중앙에 62m 구릉이 있고
나머지 지역은 대부분 평지로
서쪽과 북쪽에는 농경지가 분포.
'제부도' 형태는 전체적으로 삼각형을 이루며,
남서쪽 해안 끝부분은 제비 꼬리처럼 뻗어 있다.
해안선 드나듦이 단조로우며, 간석지가 넓게 발달.
썰물 때 서신면 송교리 제방이 드러나,
이곳을 통해 제부도 행 버스가 왕래한다.
한서 차가 크며, 눈이 많은.,대부도.
주민 대부분은 농업과 어업을 겸한다.
쌀· 보리· 콩· 고구마· 땅콩· 마늘 생산지.
연근해에서는 장어·
농어· 숭어 등이 잡히고,
굴· 김 등의 양식이 활발하다.
대부도 취락은 동쪽 해안가 도로 변에 분포.
섬의 서쪽에 있는 제부도해수욕장은 여름 피서지.
면적 0.98㎢, 해안선 12km, 인구 668, 가구 339(2006).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제부리.,제부도.
화성시는 광주산맥과 차령산맥 사이에 위치.
동북쪽으로 비교적 산세가 깊은 산지를 형성하고,
중앙은 구릉지대, 서쪽 평야지대는 서해와 접하고 있다.
서해안으로 남양 반도와 조암 반도가 돌출되어 있고,
화성시 중심부 황구지천과 발안천을 따라 비옥한 평야.
북쪽으로 군자만, 남쪽으로 남양만을 낀.,리아스식 해안.
'모세의 기적'
바닷물이 열리는.,
제부도(濟扶島) 가는 길.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 탈출 과정에서
'모세가 홍해를 갈랐다.'는., 모세의 기적.
자연현상이라고 보는 성서고고학자들도 있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40년간 사막을 여행, 하나님의 십계명을 받았다고 한다.
'구약성서 출애굽기'에 의하면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모세는
'한반도 고인돌민족 지도자'와 유사.
제4빙하기 후 갑자기 찾아온 지구온난화.
지구를 뒤덮었던 빙하가 녹아내리기 시작.
해수면은 하루가 다르게 솟아오르며, 대홍수.
빙하가 녹아 차가워진 바다물이 한류.
적도의 난류와 뒤섞이며 비구름 형성.
몇달간 계속된 장마비에 저지대 침수.
'노아의 대홍수'도 이 무렵..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삶터.
동아시아 불교권 저지대는 모두 침수.
저지대에 살던 민족들은 고지대로 이동.
바다물은 저지대를 쉴사이 없이 삼켜갔다.
제4빙하기가 끝날 무렵 인류가 겪은 재앙.
대홍수로 인해 해수면이 급격하게 올라가자
오직 살기 위해서 높은 곳을 향해 민족 대이동.
바다가 열리면, 뭍을 향해 걷고
바다가 닫히면, 높은 곳에서 쉬면서
오직 살기 위해 뭍을 향해 민족대이동.
일부는 썰물에 바다를 탈출하다가
밀물에 갇혀 헤일 수도 없이 죽었으리라.
섬에 갇혀 오도가도 못한 무리도 있었으리라.
그들이 갇힌 섬이 바닷물 속에 잠겨
수중 고혼이 된 무리들도 많았으리라.
망망한 서해바다에 수많은 섬들과 암초.
얼마나 많은 '저지대민족'이
민족대이동 도중에 숨졌을까?
마침내 뭍에 도달하여
그들이 남긴 흔적.,고인돌.
'저지대민족' 지도자의 무덤.
하여, 예나 지금이나 신성하게 여기는., 일출.
저지대 민족에게 탈출 방향을 제시한.,희망봉.
높은 곳으로 가야만 살 수 있으리라는 믿음 뿐.
당시, 저지대민족에게 높은 산은 신앙의 대상.
하여, 천왕봉 일대, 순천 고창은 고인돌 군락지
저지대에서 무사히 탈출한 민족이 남겨놓은 흔적.
결국, 그들을 대홍수부터 살려낸 지리산 천왕봉.
그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푯대이자 성지인 희망봉.
지긋지긋한 장마비를 멈추게 해주었던 동쪽의 태양.
하여, 예나 지금이나
신성하게 여기는. 일출.
BC 6000년 전
'태양신'의 변심을
목격한 민족들의 신앙.
그들 또는 그 후손들의
유물 유적 흔적이.,패총.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고정리 우음도.
1994년 시화방조제 건설로 인해 육지화.
그전까지는 주민100여명이 살던.,작은 섬.
제부도에서 가까운., 패총유적지.
갯벌의 어패류는
고인돌 민족에게는
생존을 위한 필수 양식.
오늘날, 고인돌 분포 흔적은
저지대민족 이동경로를 대변한다.
한반도 고인돌 숫자는 전세계의 2/3.
아시아와 유럽, 북아프리카에 6만기
숫자 상으로 한반도에 4만기가 있다.
유럽과 아프리카는 BC 5,000년 ~ BC 4,000년,
동아시아는 BC 2,500년 ~ BC 수백년 전후로 추정.
기원전 진나라 대홍수 때는
하룻밤을 자고 나면, 30 ~ 40리
육지가 물속으로 잠겼다는 기록.
진시황 때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
BC 221년 ~ BC 206년.,기록.
제부도는 매일 1∼3m 깊이 바닷물이
빠져나가면서 드넓은 갯벌이 드러난다.
썰물때 바닷물이 열리는.,제부도 가는 길.
사마천이 쓴 사기 기록이 실감나는 곳.
남한에서 바닷물이 열리는
'모세의 기적' 명소는 여러 군데.
'밀물과 썰물' 간만의 차가 빚은 현상.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 앞바다.
전남 여천군
화정면 사도.
충남 보령군 웅천면 관당리
'무창포 해수욕장'., 앞바다.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운산리 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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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송교리에서
제부도로 들어가는., 2.3km구간 물길.
하루에 두번 썰물 때 어김없이 갈라진다.
밀물이 밀고., 썰물이 썰어.,
장구한 세월 동안 빚어낸 풍경.
모진 풍파에 깍이고 패인 흔적들.
만여년 전 대부도 부근은 바다가 아니었다.
서해(황해) 일대는 물이 비워진 거대한 대륙.
중국과 한반도,일본 열도는 모두 하나로 연결.
나무가 우거져 있었고 야생동물들이 살던 곳.
빙하기 해수면은 지금보다 130m나 낮은 곳에 위치.
1만년전 지구 온난화가 시작되며, 빙하가 녹기 시작.
빙하가 녹은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갔다.
'서해는 빙하가 흘러내리면서 패인 흔적일까?'
제부도해수욕장 최남단 끝.,매바위.
매가 많이 살아서 "매바위"라 부른다.
태고(太古)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곳.
보통 오후 5시 쯤이면 들이닥치는 밀물.
'매바위'의 환상적인 자태는.,제부도 상징.
'1박2일' 연인들이 즐겨 찾는.,일몰의 명소.
우리나라에서 가장 잦은 '모세의 기적' 명소.
서해바다 썰물에 물길이 드러나기 시작해서
밀물로 다시 덮일 때까지 6시간 열리는 바닷길.
물때 시각은 날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물때를 맞춰 가는 것이 좋다.
'대부도 물때 시간표' 인터넷 확인 可.
물때를 놓치게 되면,
곤란한 경우도 생긴다.
제부도는 물길이 열릴때 들어갔다가
6시간 내에 구경하고 나오지 않는다면
'1박2일' 일정을 고려해야 할 경우도 발생.
그 덕분에
천혜의 자연환경이
그대로 잘 보존된 곳이다.
수도권 지역에 있으면서도
태고의 숨결이 물씬 느껴지는 곳.
제부도 다운 섬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
제부도는 머지않은 장래에
가장 바람직한 관광자원으로
급부상할 무한 잠재력을 품은 곳.
아직까지는 무분별하게
난개발이 되지 않아.,다행.
가까운 일본은 도서지역 곳곳마다
전통음식점, 고유풍습, 지명 유래 등
수백년이 지나도 대를 이어 계승되므로
그 전통적인 해양문화 자체가 곧 관광자원.
2014년 4월 '아베' 총리 & '오바마'
일본의 초밥 집에서 미일 정상회담.
본받을만한 외교정책으로 여겨진다.
'후쿠오마 핵 오염을 일식시킬 의도였을까?'
'미일(美日)혈맹 우호관계'를 과시하려한걸까?'
'아니면. 일본 해양정책 활성화를 위한 의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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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300년전 간판을 그대로.,
음식점 규모, 메뉴, 역시 그대로.,
맛, 요리 비법 등이 대대로 기술축적.
그러한 초밥집, 우동집, 오뎅집이 많다.
300년 목조간판에는
썩지 않게 하기 위해서
수없이 덧칠을 한 흔적들.
"간판을 왜 안바꾸나?"
"음식점 간판과 가업을
조상 대대로 물려받았듯
자손에게 대물림 하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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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 전통풍습 고유문화가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미래까지도
그대로 살아 숨쉬는 곳으로 개발되면
도서 주민이 도시인보다 잘 먹고 잘 사는
해양정책의 롤 모델이 될 잠재력이 높은 곳.
우리나라도 국제정상회의 개최를 할때
'제부도 조개구이 회담' 방식은 어떨까?
우리나라 패총 선사시대의 유서깊은 식단.
'태평양 어류 70~80%의 산란장' 서해.
그 중심에 있는 제부도 갯벌을 바라보며
'6자 회담' 평화를 위한 회담장소로도 적합.
제부도 갯벌은 세계평화를 위한
국제적인 관광 명소로서 부각될듯.
바람직한 외교정책 해양정책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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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 갯벌은 약 20년 전까지만 해도
제부도 주민들이 허벅지까지 빠져가며
제부도에서 뭍으로 건너다니던 갯벌 물길.
1980년대 말, 시멘트 포장도로가 놓인 이후
이제는 자동차도 다닐 수 있는.,'물 속의 찻길.'
수심 1~3m 깊이 바닷물이 썰물때 빠져나가면
개펄을 가르는 너비 6.5m 포장도로가 드러나는데
이 길 양쪽으로 폭이 500m가 넘는 개펄이 펼쳐진다.
제부도 갯벌의 염생식물 군락은
갈대군락, 갯질경군락, 칠면초군락,
지채군락, 천일사초군락 등이 분포한다.
제부도에서 식물 분포는 갯벌지역 7종류,
사구지역에서 61종류, 탑재산에서 136종류,
당제산에서 119종류, 동미산에서 100종류,
해변도로를 따라 분포하는 나지대에서 120종류.
제부도 갯벌에서 서식하는 해양무척추동물.
조간대 상부에 총알고둥, 중부에는 고랑따개비
그리고, 조간대 하부에는 굴이 우점하고 있다.
암반으로 이루어진 조간대에는
긴발가락참집게와 배말류가 우점.
이밖에도 민챙이, 풀게, 두드럭총알고둥,
지중해담치, 갯고둥이 제부도 갯벌에 서식.
제부도 식물은 모두 305종류,
귀화식물 34종, 목본식물 76종,
일년생초본 84종, 다년생초본 145종.
왼쪽은 진흙밭이고
오른쪽은 모래 자갈밭.
제부도 물길을 건너면 작은 섬답지 않게 볼거리가 많다.
매들의 보금자리 매바위 & 해안선 길이가 2.5km정도 쯤
조개껍질이 섞인 모래밭으로 이루어진 해수욕장 등이 있다.
인위적인 흔적을 찾기 드문.,태고의 자연환경.
'태고의 자연환경' 그 자체가 곧 미래의 관광자원.
빌딩숲 수도권 시민들에게는 막힌 속이 뚫리는 청량제.
제부도는 송교리 해안 서쪽으로 1.8㎞ 지점에 있다.
동경 126°37′, 북위 37°09′에 위치하며, 면적 0.972㎢,
해안선길이 5.3㎞, 주민은 668명(341세대 : 2008년 현재).
썰물 때는 맛조개나 낙지를 잡을 수 있고,
수도권 지역이라 늘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조선시대 제부도는 국영말목장이었던 곳.
한양에서 인접한 도서지역 대부분 소말목장.
맹수도 없고 울타리가 없어도 되는.,최적 여건.
'육지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섬'
뜻 지명으로.,저비섬 또는 접비섬.
조선 중기 송교리와 제부도를 연결하는 갯벌 고랑을
어린아이는 업고, 노인은 부축해서 건넌다는 의미에서
‘제약부경(濟弱扶傾)’이라는 말이 구전으로 전해오는 섬.
제약부경 ‘제’자와 ‘부’자를 따와
‘제부리(濟扶里)’로 개칭되었단다.
옛날 옛적에 나라가 어지러워
국왕이 중국으로 이동하던 도중
제부도 선착장에 배타러 들렸다가
한 여인으로부터 샘물을 받아 마시고
그 물맛에 감탄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지금도 제부도는 육지에서 떨어져 있는 섬.
하지만, 물 속에 잠긴 도로가 썰물 때 열린다.
대부도는 지하수 물맛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제부도는 남북으로 2.3㎞ 동서 1㎞.
섬 북서부는 67m 탑재산을 중심으로
북동 방향의 능선이 형성되어 있으며
섬 남동부는 62m의 당산을 중심으로
북동 방향의 능선이 형성되어 있다.
섬의 북동방향으로 발달된 2개의 산세를 중심으로
중앙에 계곡형 넓은 충적층, 동쪽 해안을 따라 충적층.
제부도 서쪽 해안은 탑재산 따라 해식애가 발달되어 있다.
충적층 지역을 따라 사빈이 발달되어 있는데
사빈이 발달된 약 1㎞ 구간은 제부도해수욕장.
제부도 식물은 모두 305종류로, 귀화식물은 34종,
목본식물 76종, 일년생초본 84종, 다년생초본 145종.
제부도 갯벌의 염생식물 군락은 갈대군락, 갯질경군락,
칠면초군락, 지채군락, 천일사초군락 등이 분포하고 있다.
제부도 식물 분포는 갯벌지역 7종류,
사구지역에서 61종류, 탑재산 136종류,
당제산에서 119종류, 동미산에서 100종류,
해변도로 따라 분포하는 나지대에서 120종류.
해양무척추동물은 조간대 상부에는 총알고둥,
중부에는 고랑따개비 그리고 하부에는 굴이 우점.
암반 조간대에는 긴발가락참집게와 배말류가 우점.
그외, 민챙이, 풀게, 두드럭총알고둥,
지중해담치, 갯고둥이 서식하고 있다.
지질은 대부분 운모편암이고
일부 규암이 협재되어 있는데,
북동 방향의 방향성을 나타낸다.
운모편암과 규암이 분포하는 지역은
탑재산, 당산, 등 북동 방향 구릉성 산지.
충적층 분포지역은 낮고 저평한 지역을 형성.
제부도 바다갈라짐 현상은 썰물때
주위보다 높은 해저지형이 수면 위로
노출되면서 갈라지는듯 보이는 자연현상.
서해 해안에서 조차가 크고
해저지형이 복잡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자연현상.
제부도 바다갈라짐 현상은
썰물 때 바닷물이 빠져나가며
갯벌을 가르는 포장길이 드러나
주말에는 차량출입 인파가 붐빈다.
조개줍기, 갯벌체험 등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교육기관으로는 섬의 남동쪽에
서신초교제부분교 1개교가 있다.
'제부도'가 자랑할만한 보물은 드넓은 갯벌이다.
제부도가 품은 무한 잠재력의 원동력이 될.,갯벌.
서해바다는 옛부터 태평양에 사는 어류의 산란장.
서해 해안이 품은 갯벌이
곧, 태평양 어류의 산란장.
갯벌.
우리나라 서해안과 남해안은 해안선이 복잡하다.
수많은 강과 하천이 있어 여러 형태 갯벌이 존재.
그에 따라 갯벌에 사는 생물도 풍부하고 다양하다.
특히, 서해안은 조차가 크고 해안선이 복잡하여
파랑 영향이 적고, 하천 토사가 많아 갯벌이 발달.
한강 임진강, 예성강 등이 유입되는 경기만이 가장 탁월.
한강 하구 일대는
조석 간만의 차가
최고 9m 이상 크고
드넓은 갯벌들이 있다.
강화도· 웅진군· 영종도·
대부도 주변에 넓은 갯벌들.
갯벌이란 조류로 운반되어 온 미세한 흙들이
파도가 잔잔한 해안에 오랫동안 쌓여 생긴 지형.
갯벌은 주로 조류에 의해 운반되는 퇴적물이
파도가 약한 해안에 쌓여 이루어진 퇴적 지형.
밀물과 썰물에 의해 만들어지는 조류 차이.,조차.
갯벌은 조차가 크고 육지 쪽으로 깊이 들어간
만이나 섬으로 가로막힌 해안에서 잘 발달한다.
갯벌은 모래 비율이 대개 20~30% 이내로 낮고,
펄의 성분이 70~80% 정도로 많은 갯벌을 말한다.
모래 갯벌은 모래가 대개 70% 이상인 갯벌을 말한다.
혼성 갯벌은 모래와 펄이 비슷하게 섞인 갯벌.
갯벌은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경계 지대에 형성.
생물의 종류가 특이하고 영양염류와 에너지가 풍부.
해양 생태계 먹이사슬이
갯벌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연안 해양계 생물은 66%가
갯벌 생태계와 직접적인 연관.
대부분의 어류 및 무척추동물이
산란장· 생육 장소로 갯벌을 이용.
90%가 직접·간접으로 의존하는 셈.
많은 종류의 물새와 일반 조류들도 먹이와
휴식, 산란과 번식 장소로 갯벌을 이용한다.
서해안의 경기만과 천수만 일대의 갯벌은
철새 서식지인 동시에 자연 학습장이 된다.
갯벌은 토사를 고정시켜 항구 수로 기능을 보호한다.
갯벌의 토사 고정 능력은 지반 상승을 일으키기 때문에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에 대한 효율적인 대비책.
갯벌은 육지의 토사 유출을 막아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파제 역활을 한다.
오랜세월 갯벌이 빚어낸 바닷가 모래사장.
최근 외국에서는 수산 자원과 환경 보존
그리고 기타 문화적 가치 등을 고려하여
갯벌의 경제적 가치를 계산한 결과를 보면
갯벌의 경제적 가치는 농경지에 비해 100배,
외해역에 비해 거의 40배 가치가 된다고 한다.
안산 대부도의 가장 특징적인 해안지형은 갯벌.
대부도 북쪽은 군자만 일대는 드넓은 갯벌이 있고,
남쪽으로도 화성시 제부도 지역에 갯벌이 넓게 형성.
대부도의 평균조차는 5.7m이며,
최대조차는 8m, 소조차는 3.5m.
평균해면은
8월에 가장 높고
1월에 가장 낮아서
그 차이는 약 40㎝ 정도.
대부도 지역은 조류 이외에도 해류가 흐르는데,
난류가 북상하는 4~8월에는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연안류가 약하지만, 9~3월 겨울에는 연안류가 강해진다.
수온은 지리적 조건과 계절,
대기온도의 영향에 따라 변화.
대부도 표층 수온은 겨울에는 4℃ 이하,
외해는 6℃, 여름은 23~26℃로 높아진다.
평균 염분도도 표층에서는 32.2~32.6%로서
저층수의 32.4~32.6%보다 변화가 약간 크다.
경기만에 포함된 대부도 갯벌들은
한강, 예성강, 임진강에서 공급되어
분산 퇴적된 것이며 일부 지역에서는
파랑에 의해 실트나 모래가 제거되고
조립질 퇴적물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시화방조제 건설로
대부도 북동부의 시화갯벌은
육화되어 원래 갯벌 기능을 상실.
갯벌에는 조수가 흐르는 갯골이 형성되어 있는데,
대부도 주변의 갯골은 방조제 건설로 군자만과
제부도 사이의 마산수로가 막히면서 조류가
선재도와 영흥도 사이의 영흥수로로 집중,
과거보다 조류의 힘이 강해져서
갯벌 퇴적환경이 변하고 있다.
대부도 갯벌은 해양에서 육지 쪽으로
사질 갯벌, 혼성 갯벌, 점토질 형태로 분포.
대부분이 사질 갯벌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도 남단 고래뿌리~말부흥에 이르는 지역에는
사질 갯벌과 점토질 갯벌 사이에 분포하는 혼성 갯벌.
사질 갯벌은 해안선 사빈 및 갯골에 발달.
외해로 갈수록 사질 갯벌이 발달되어 있다.
주로 강한 에너지
환경 하 조건에서 발달.
갯골에서는 조류 에너지가,
조간대에서는 파랑 에너지가
강하게 작용하는 환경이다.
퇴적물은 극세립사로 이뤄졌고,
모래 함량은 40~70% 정도이며
평균입도는 3~4ø이다.
갯벌의 퇴적층 두께는 대략 10m 이하로서 얇은 편.
곳에 따라 기반암이 노출되어 소규모 파식대가 노출.
일부 연안침식방지 시설 부근에서는
파랑에 의해 실트나 점토가 제거되고
조립질 퇴적물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갯골이 조밀하게 발달되어 있다.
퇴적물은 모래·자갈 등의 조립 물질이 대부분이며,
퇴적물 공급원은 연안의 침식물질과 해저 퇴적물질.
이들 퇴적물은 기반암 위의 육성풍화물 위에 퇴적.
주변 산지에서 운반된 주빙하성 퇴적물도 다수 포함.
고위간석지 배후에는
소금기가 많은 땅에서
자라는 식물인 염생 식물이
성장하는 염생 습지가 발달한다.
대부도 김양식장.
염생 습지엔 소규모 갯골이 많이 분포.
염생 습지에서부터 발원하는 소갯골은
고위간석지, 조간대, 저위간석지로 연속.
하여, 대규모 갯골로 발달되는 경우도 많다.
염생 습지의 퇴적층은 지면이 높아서
대조(大潮 : 한사리) 만조 시에만 침수.
일찍이 간척 대상이 되어 대부분 사라졌다.
그러나 대부남동의 대남초등학교 전면의
소규모 만입부를 중심으로 한 고위간석지에는
갈대 군락과 칠면초 등 염생 식생이 정착하고 있어
염생 습지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
대부도 갯벌을 체험하는 ‘갯벌 체험’은
탄도와 선감도, 종현동 유어장(어촌계)에서
운영하는 '체험 학습장'에서 누구나 즐길 수 있다.
갯벌 체험은 갯벌 생태를 배우는
‘전문가와 함께 하는 갯벌 교육’,
소라, 낙지에 대해 배우는 ‘어장 체험’ 등.
다양한 갯벌 체험이
어린이나 어른 모두에게
유익하고 즐거운 체험의 장.
화성시.
............화성시에 속한 섬들..........
감투섬 개미섬 고도섬 구리섬 국화도
굴통뿌리 내방도 닭섬 덜거머리 도리도
딴섬 매박섬 (토끼섬) 방도 소도리도 안고렴섬
어섬 와석포 외농도 우음도 위검은여 위새리
응도 입파도 작은딱섬 제부도 지도 (도지섬)
큰까치섬 큰딱섬 큰매바위 한염섬 형도
.....................................................
그중 육속화 된 섬들은
개미섬 구리섬 닭섬 어섬
우음도 작은딱섬 큰딱섬 한영섬
.......................화성시(華成市)...................
조선 정조 때 '화규삼축(華封三祝)' 고사를 인용.
"선왕 능침 '화산(化山)'의 '化(화)'자와 '華(화)'자는
뜻과 음이 통하여 화성으로 한다."고 하며 "효를 통해
덕을 펼치는 도시"라는 뜻으로 지은 지명이 화성(華成).
화성이
배출한
인물들.
조용필 - 가수
차범근 - 前 축구선수, 축구감독
홍수아 - 배우
전지윤 - 가수
최윤희 - 군인
김대의 - 축구선수
박승희 - 스케이팅선수
서신애 - 배우
안치환 - 가수
엄용수 - 코미디언
이원복 - 정치인
최영근 - 정치인
경기도 서남단 해안가에 위치한.,화성시.
동쪽은 용인시, 서쪽은 황해, 남쪽은 평택시· 오산시,
북쪽은 바다를 거쳐 안산시·시흥시·군포시·수원시와 인접.
화성 발안천(發安川)이 아오천·두곡천에 합류.
이것이 서남진하여 남양호에 흘러들어 가면서
남양호 주변에는 넓은 해안평야를 만들고 있다.
동쪽은 진위천이 정남향으로 흘러 아산호로 유입.
해안선은 비교적 복잡하고 해안에는
남양(楠楊)·조암(朝巖) 등의 반도와
남양·분향(汾鄕) 등의 만이 발달.
연해에는 제부도를 비롯하여 여러 섬들이 있다.
조석간만의 차가 심하고 바다는 멀리까지 얕아
항구가 발달하지 못하고 송산·마도·우정·장안면에는
해안 간석지가 넓게 발달하고 있는데, 대부분., 염전.
연평균 기온은 10.9°C,
1월 평균기온 -5.1°C,
8월 평균기온 25.6°C,
한서(寒曙) 차가 30°C.
첫 서리는 10월 하순 경에,
마지막 서리는 다음해 4월 초.
수원시 서둔동 여기산 일대와
팔탄면· 양감면· 동탄면· 서신면· 마도면
돌칼· 철촉· 토기 등 '신석기~철기'시대 유물들.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군내에 현재까지도
26군데에 산신제의 유습들.
삼한시대 마한의 원양국(爰襄國)과 상외국(桑外國)이
남양부와 쌍부현(남양반도와 우정면·장안면 일대)를 찾이.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점유하고 있던 5세기 말엽부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때까지는 고구려의 매홀(買忽).
757년(경덕왕 16) 9주를 두고 군·현으로 고칠 때 수성군.
남양은 고구려 당성군(唐城郡) 지역
신라 경덕왕이 당은군(唐恩郡)이라 개칭.
신라 흥덕왕 때 없애고 진(鎭)을 설치하였다.
고려 태조가 후백제 공략을 위해 남정(南征)할 때
김칠(金七)·최승규(崔承珪) 등 200여인이 귀순하였다.
그 덕으로 934년(태조 17)에 수주(水州)로 승격되었으며,
995년(성종 14) 도단련사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 없앴다.
이때 고을의 명칭은 한남(漢南) 또는 수성(隋城)이라 불리웠다.
1018년(현종 9) 지수주사(知水州事)를 둠과 동시에
정송(貞松)·용성(龍城)·광덕(廣德)·쌍부 등 현을 영속.
1271년(원종 12) 몽골병이 대부도에 침입하였을 때,
섬주민들이 몽골병을 죽이고 부사 안열(安悅)이 평정.
그 공으로 수원도호부 승격 후, 수원의 지명은 그대로다.
1362년(공민왕 11) 홍적(紅賊)이 침입하였을 때
고을사람들이 도와 적이 세력을 떨치게 했다 하여
부에서 군으로 다시 강등되었다가., 다시 부로 승격.
남양은 고려 초기에 옛 명칭인 당은군이 되었다가
1018년(현종 9) 수주군, 그뒤 인주군에 속하게 된다.
1172년(명종 2)에는 감무를 두었고
1290년(충렬왕 16) 원나라 관리 홍다구(洪茶丘)
내향(內鄕)이라 하여 지익주사(知益州事)로 승격되었다.
뒤에 강녕도호부(江寧都護府)가 되었으나
1310년(충선왕 2) 모든 목(牧)을 없앨 때
남양부로 강등되어 조선 초기까지 유지.
1394년(태조 3) 한양천도로
양광도에서 이듬해 경기도 편입.
1413년(태종 13) 도호부가 되었다.
1456년(세조 2)에 판관을 두어 진으로 하면서
경사(京師) 수호를 하는 보(輔)의 한곳이 된다.
1526년(중종 21) 고을에서 부모를 죽인 사건 발생.
군으로 강등되면서 진을 혁파하였고, 그뒤 인천에 속.
1535년 다시 복구되었다.
남양은 1413년(태종 13).,도호부.
1644년(인조 22) 현, 1653년(효종 4) 도호부.
1661년(현종 2)에 주인을 죽인 하인이 있어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74년 도호부로 복구.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으로 군
다음해에 경기도관찰부의 소재지가 되었다.
1910년 경술국치 후 서울로 이전되었다. 『
수원군읍지』에 따르면
1899년 당시의 호수는 1만 2579호,
인구는 4만 9708인이고, 40개 면에 449개 리.
1931년에는 수원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남양은 1895년에 수원군과 함께 인천의 속군.
다음해 경기의 4등군이 되었고,
1914년 영흥면· 대부면이 부평군에 편입되고
나머지는 수원군에 병합되며 남양군은 없어졌다.
1919년 3·1운동 당시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이 치열.
일본군에 의한 제암리교회 참변사건은 처참했던 사건.
근대 인물로는 제암리교회에서 순사한 안종후 등 23인,
독립운동가 문상익(文相翊)· 김교철(金敎喆)· 홍원식 등.
홍난파(洪蘭坡)와 문학가 홍사용(洪思容)도 이곳 출신이다.
1949년 수원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나머지는 수원군에서 화성군으로 개칭.
1960년 1월 1일 오산면이 읍으로., 승격.
1963년 1월 1일 일왕면이
시흥군과 수원시로 분할 편입.
태장면의 3개 리와 안룡면의 5개 리가
수원시로 편입되는 한편, 태장면의 5개 리와
안룡면의 6개 리를 병합하여 태안면을 신설하였다.
1970년 6월 10일 수원시의 군청사를 오산시로 이전.
1983년 2월 15일반월면의 2개 리가 시흥군 의왕면에,
비봉면 상기리가 봉담면에 편입되었다.
1985년 10월 1일 태안면이 읍으로 승격.
1987년 1월 1일 서신면 심곡리가 송산면,
동탄면 금곡리가 오산읍에 편입되는 등
군내·외 많은 행정구역 조정이 있었다.
1989년 1월 1일 오산읍이 시로 승격, 분리.
1994년 12월 26일 태안읍 영통리 일원, 신리·망포리 일부,
반월면 당수리·입북리가 수원시로 편입되고,
반월면의 건곤리·사사리·팔곡리가 안산시로,
둔대리·속달리·도마교리·대야미리가
군포시로 각각 분할 편입되었다.
1995년 4월 20일 태안읍 신리·망포리.,수원시 편입.
1998년 4월 1일에는 봉담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2001년 3월 21일에는 화성군이 시로 승격되었으며,
남양면이 시에 속하게 되면서 면이 폐지되었다.
2003년 6월에 우정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2006년 1월 1일태안읍이 4개 행정동으로 분리
2007년 1월 29일 향남면이 향남읍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 1397년(태조 6) 남양동에 창건된 남양향교.
1667년(현종 8) 남양현감이 서신면 상안리.,안곡서원.
고종 때 철폐되었다가 1976년에 건물이 복원되었다.
이밖에 매송면 천천리에 송시열을 모셨던., 매곡서원.
팔탄면 창곡리에 1871년 건립된 금산사가 지역교육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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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가 속해 있는 화성시에는
옛부터 전해오는 전설, 설화가 많다.
봉림산 봉혈(鳳穴)전설,·북양리 충절비 전설.
나주정씨 효자비 전설 등 지명과 충효에 얽힌 설화.
시의 북양동에 있는 봉림산에는 봉혈이라는 굴이 있는데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태종이 이곳을 지나다가 이 굴에 사는
봉황을 보기 위해 솔잎을 따다 불지르고 굴에 연기를 피워 넣었다.
그러자 연기 가득한 굴 속에서 무엇인가가 튀어나왔는데,
그 때 굴 안을 쳐다보던 청태종의 왼쪽 눈을 치고 사라졌다.
하여, 청태종은 봉황은 보지 못하고 한쪽 눈만 멀게 되었단다.
같은 북양리 마을 충절비에
흥선대원군과 한 노인에 얽힌
충절비에 관한 유래가 전해온다.
구한 말, 흥선대원군이 청나라에 압송당할 때
송산면 마산포로 향하는 도중에 의관을 정제한
어떤 노인이 대원군 일행의 앞을 가로 막으며 통곡.
“만백성을 두고 홀로 떠나시면
이 나라는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대원군도 눈물을 흘리며 훗날을 기약하고 이별.
그뒤 환국한 흥선대원군이 그 노인을 찾았으나,
이미 사후라 그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충절비.
신남동 나주정씨 효자비에는
100년전 효자 이야기가 전한다.
어머니가 몸져눕자 수십리 산길을 걸어다니며
읍내 있는 의원에게 약을 지어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그의 효성에 감동한 호랑이.
그 효자를 등에 태워 읍내까지 데려다 주곤 했단다.
그외, 지네들이 독을 품어 왜구들을 물리친.,지네산전설.
마고할미가 육지에서 돌을 날라 쌓았다는.,형도(衡島) 탑전설.
중을 잡아넣고야 제방을 완성했다는 송산면 용포리 용수동 제방전설.
시주승을 학대하다가 벌을 받아 못이 되었다는 정남면 귀래리.,방아못전설.
제부도가 속한 화성시 전설을 종합해 보면
병자호란때 청태종이 조선을 오간 길목이고
흥선대원군이 청나라에 불모로 잡혀간 길이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가
속전을 물고 귀국한 3만5천여 환향녀 일부가
배 타고 귀국한 길목도 화성시(남양만) 아닐까?
'고려 말~조선'시대
왜구의 침략과 수탈이
극성을 부린 서해 해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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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어디나 바닷물갈림 해안 지역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수많은 전설의 고향.
그에 못지 않게 노동요, 민요, 무속도 성행.
화성시에 구비전승되는 민요는
노동요· 의식요· 여요· 신앙성요 등.
그 중 모심기소리와 논매기소리가 주종.
'논매기소리'로는.,얼카덩어리. 면생이. 몬돌이. 선소리.
'신앙성요'는 목살경. 고사반. 여요인. 자장가. 등이 있다.
그 중에도 대표적인 것은 「면생이」
4, 5명이 한 조가 되어 교대로 부르는데,
이 노래는 가락이 아주 길고 높게 뻗으며
가사는 없고 후렴구 가락이 매우 구성지다.
“응∼아∼/ 오우∼우/ 에에∼/ 오오∼/아∼아∼에∼
/ 에에∼에∼(선창//응아∼아(교대 후창)/ 우∼∼
/ 에에∼에 우∼우/ 오오∼/ 아∼아∼에∼/ 에에∼에∼”
'얼카덩어리'를 일부 소개하면
“얼카덩어리/ 얼카덩어리(후렴)
/ 우여차데기/(후렴 생략)
/ 저건너 갈미봉에
/ 비가 가무랗게/ 몰려온다
/ 우장을/ 허리에 둘러/ 김―매러/ 갈 것인가
/ 가는구나/ 가는구나/ 떨쳐버리고/ 내가 간다.”.
'얼카덩어리' 후렴은 김매는 시늉을 나타낸 그 가락이,
선창자가 노래하면, 다른 사람들이 "얼카덩어리" 추임새.
'자장가' 일부를 소개하면
“일가간에 화목동이/ 부모에는 효자동이
/ 나라에는 충신동이/ 우리애기 잘도잔다
/하늘나라 신선동이/ 잘도 자는구나.”이다.
'범벅타령'도 월별로 떡타령 하다가 끝에 가서
“섣달에는 흰떡범벅/ 이도령 잡수실 맵쌀범벅/
김도령 잡수실 찹쌀범벅.” 해학성의 뛰어난 노래.
'목살경'은 악귀를 겁주어 쫓는 경.
무격신앙의 일단을 잘 표현한 걸작.
'고사반'은 일종의 염불소리로
가내의 평안과 부귀공명을 기원.
화성시 대표적 민속놀이는 배연신굿.
이 굿은 황해도 해안지방이나 도서지방에서
고깃배 무사고와 풍어를 빌기 위해 행하던 대동굿.
바다에 나가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아
매년 봄 출어기 선주들이 주축이 되어 거행.
신청올림· 당산맞이· 부정풀이· 초부정.
초잠홍· 영정물림· 소당제석· 먼산장군거리·
대감놀이굿·그물올림(영산할아범과 할멈굿)·
쑹기주는굿· 다리발용신굿· 강변놀이굿 등 12거리.
굿을 하는 배에 임경업 장군기· 산신님기·
서낭당님기를 앞세우고 30∼40명이 굿놀이.
처음 출어를 할 때나
만선이 되어 귀항할 때에도
남녀노소가 한군데 모여 굿놀이.
이밖에도 두레놀이 및 연날리기·
널뛰기·윷놀이 등의 세시(歲時) 놀이.
동제로는 유래가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남면 발산리의 발이산 산신제가 유명하다.
이 산신제는 매년 음력 10월 1일 자정에 발이산
중턱에 있는 소나무숲으로 둘러진 당집에서 거행.
제물로는 소 한마리를 통째로 바치고
조라술을 올리는데 제물의 진설과
제의절차가 엄격하다.
제관은 상제관·축관·집행관 등 모두 5명을
제사날 7일 전에 선출하며 이들은 그때까지
목욕재계하고 산신제 전까지 근신하여야 한다.
이 산신제는 음식을 차려 먹거나
농악을 울리는 일이 없이 엄숙히 진행.
제가 행하여지는 동안에는 누구를 막론하고
동네 출입을 금지하며 부정한 일이 없도록 규제.
이밖에도 정남면에 9군데,
팔탄면에 1군데, 양감면에 6군데,
동탄면에 7군데, 서신면에 1군데,
우정읍에 1군데, 송산면에 1군데,
향남읍 1군데 등에서 산신제·당제·정제
제의 방법은 발이산 산신제와 대동소이.
서해안.,배연신굿 & 대동굿.
2014년 4월 2일 제부도 갯벌에 버려진.,페 어망.
김양식장 말목 로프 등 사용 후에 방치한.,현장들.
같은 날, 제부도 남쪽 김양식장 그물밭에 걸린 배가
안개 속에서 조심스럽게 항로를 바꿔 필사적으로 탈출.
2005년 8월19일 바닷길이 열리는.,화섬
김양식장 부러진 말목들이 잔해처럼 널린 곳.
물빠진 갯벌에 떼지어 앉았다가 하늘로 나는 갈매기.
2005년 5월16일. 18:56 서해안 제부도 인근에서
레저용 보트 침몰로 일가족 7명이 안타까운 죽음.
뱃길로 20분밖에 걸리지 않는 바닷길 휴일 나들이.
이번 사고로 숨진 구자훈(39)씨의 여동생 자영(28)씨는
조카 지현(3)양을 등에 업은 채 무려 17시간이나 버티다가
16일 오전 9시쯤 시신으로 발견되어 주위를 안타깝게 한 사고.
구씨 일가족은 화성시 입파도에서 당일치기 야유회.
귀갓길에 오른 15일 오후 4시. 일행 14명 중 8명이 먼저
구씨 소유 1t급 FRP보트로 대부도 전곡항을 향해 떠났다.
당일 오전 9시쯤 이미 한 차례 전곡항에서 입파도까지
같은 배를 타고온 데다 바람이나 파도도 잔잔했기 때문에
구씨 가족은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하루동안 나들이 마무리.
운항한지 얼마 안되어 빠른 속력으로 달리던 보트가
갑자기 뒤집어지며 8명 전원이 배에서 튕겨져 나왔다.
모두 구명조끼를 착용했지만 서서히 버틸 힘을 잃어갔다.
구씨의 여동생 자희(30)씨는 김양식장 부표를 붙잡고
상반신을 물 밖으로 내놓은채 버티다가 조난 14시간 만인
16일 오전 6시20분 해경 경비정에 구조되었고 같은 시각에
'구씨의 아내' 이란주(32)씨와 '구씨의 매제' 김심환(33)씨는
시신으로 발견, 오전 7시25분 구씨와 딸 본정(5)양이 시체로 인양.
입파도에 남아 보트가 되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나머지 가족 6명은 보트가 돌아오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다가 가족들이 시신으로 인양된 소식을 접하고 오열.
구씨 동생 자윤(35)씨는 “1시간이면
입파도에서 전곡항에 갔다가 돌아올 시간.
배들이 많아 입항이 늦어지는가보다 생각했다,”
“곧 신고하려 했으나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았다”
사고를 당한 가족들은 모두 구명조끼를 착용했으나
10시간이 넘도록 바다에 표류하여 사인은.,저체온증.
사고지점 남서 1.2마일 해상에서
예인한 보트를 조사한 결과, 보트 뒤쪽
스크루가 김양식장 로프에 걸려 침몰한 것.
전곡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