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고봉밥'을 아시나요?
“엄마가 어렸을 때에는 먹을 게 너무 없어서 매일 김치만 먹었었어,
그러니 반찬투정 하지 말고 그냥 먹어”
어린 시절, 소시지 반찬이 먹고 싶은 생각에 부모님에게 반찬투정을 하면 이런 소리 한 두 번쯤은 듣기 마련입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항상 새로운, 맛있는 음식을 찾고 있는데요.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이런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에서야 세계 각국의 음식을 우리나라에서도 먹을 수 있고, 배가 고프면 전화 한 통화만으로도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우리 부모님들의 어린시절에는 전혀 달랐는데요. 그렇다면 여기서! 예전의 대한민국 밥상이 궁금해 지지 않으세요?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 전의 대한민국으로~ 고고~~
살기 위해 먹던 시대
1900년대 초반 대한민국은 개화기를 맞이합니다. 개화기 당시 농민이나 노동자들은 밥, 국, 김치로 한끼를 해결했다고 해요. 당시는 홍수와 가뭄 등 자연재해로 인해 농작물 수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식량확보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시기였는데요. 인구의 80%를 차지했던 농민은 풀, 감자, 나무열매 등으로 근근이 끼니를 해결해야 했어요.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기도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1895년 동경의학잡지에 실린 한인 상식(常食) 조사표에는 조선 중류 서민층의 7일간 식사를 관찰한 결과 1일 2식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우리는 가끔 매일 먹는 흰 쌀밥이 지겨워 다른 것을 찾을 때가 있잖아요? 하지만 이때는 흉년과 조세부담 등으로 흰 쌀밥을 잔칫날에나 볼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보리, 팥 등을 섞은 잡곡밥을 먹었죠,
<조선시대 밥상 - 이미지 출처: >
어마어마한 크기의 밥그릇이 보이시나요? 이때는 한끼에 480~640g 정도의 밥을 섭취했다고 해요. 대부분의 서민들이 하루 2끼 식사를 한다고 했을 때 하루 밥 섭취량은 960~1280g, 현대 한국인이 하루 동안 먹는 쌀 222.62g의 4.3~7.6배에 이르는 엄청난 양이에요. 영국의 여성 지리학자 이사벨라 비숍은 ‘한국과 이웃나라들’에서 “어릴 적부터 체득한 인생의 목적은 가능한 한 많이 먹는 것이어서 매일 1.8kg의 밥을 먹는 것도 위에 큰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라며 조선인들의 식습관을 전했죠. 하지만 반찬은 주로 김치 한 가지였습니다. 당시 조선을 방문했던 미국인 선교사 제이컵 로버트 무스는 “조선의 식단에는 많은 종류의 채소가 폭넓게 오르지만 그 중에서도 무와 배추가 인상적이다. 서양에서처럼 채소를 익혀먹지 않고 날로 먹거나 절여 먹는다”고 말했습니다. 고기나 생선 등은 거의 섭취하지 못했고 제사나 명절에만 소고기국을 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혹시 ‘고봉밥’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그릇 위로 수북이 밥이 쌓인 것을 일컫습니다. ‘조포석기(朝飽夕飢)’, ‘아침에 배가 터지도록 다 먹어버리고 저녁에 굶는다’는 뜻인데요. 이 고봉밥은 당시 폭식(暴食)과 대식(大食)문화를 잘 보여주는 것이에요. 요즘이야 제때 밥을 챙겨먹는다지만 이때는 지금 먹으면 언제 또 먹을지 모르던 시기였죠.
사실 고봉밥의 유래는 예전 양반집에서 밥그릇 위로 수북이 밥을 쌓아 양반이 그릇 위까지만 밥을 먹고, 남은 밥은 그 집의 하인들이 서열대로 돌아가면서 먹었던 것에서 전해진 말인데요. 식민지, 전쟁 등 국가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쌀, 보리가 귀하던 시절 사람들이 얼마나 이에 집착했었는지 잘 알게 해주는 모습이에요.
1910년은 ‘밥상의 암흑기’라고 불립니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며 농민들은 토지를 빼앗기고 소작농으로 전락해 버렸죠. 1914년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며 곡물 수탈은 한층 심해지고, 서민들은 극심한 영양 불량에 시달려야 했어요. 이화여대 교수인 고(故)방신영씨가 1952년 펴낸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에는 당시 중하위 계층을 위한 권장 식단표가 나오는데요. 동물성 단백질 반찬은 일주일에 한번 생선조림을 먹는 것이 유일했고, 하루 두 끼는 밥, 나머지 한 끼는 국수, 수제비, 고구마 등으로 해결했다고 기록되어 있죠. 이마저도 식량이 부족하면 거스르는 것이 다반사였다고 합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블로그 >
1960년 산업화가 일어나기 이전까지 우리나라에는 ‘보릿고개’가 있었습니다. 이는 매년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던 농촌의 빈곤상을 일컫는 말이에요. 옥수수와 보리가 수확되기 이전까지 부족한 식량난으로 인해 사람들은 풀 뿌리와 나무껍질을 캐먹으며 근근이 버텨왔죠. 또는 여물지 않은 보리이삭을 태워 가루로 만든 뒤, 초근목피(草根木皮, 풀 뿌리와 나무껍질)를 넣어 죽을 쑤어 먹었다고 해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쌀밥이 이 시기 서민들에게는 먹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는데요. 요즘은 보통 어르신을 보면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하잖아요. 하지만 그때는 “진지는 잡수셨습니까?”라는 인사가 훨씬 많았다고 해요. 잘 먹지 못했던 시절의 상황이 잘 드러난 모습이었죠.
먹기 위해 살던 시대
1960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먹기 위해 사는 시대가 도래합니다. 정부의 혼분식 장려운동으로 1인당 연간 밀가루 소비량이 1965년 13.8.kg에서 1969년 28.8kg으로 2배 이상 증가하고, 1963년에는 국내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삼양라면’이 생산됩니다.
<1963년 삼양라면 ? 이미지 출처: >
라면으로 끼니를 대신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식량난은 많이 해소되었지만 아직도 영양 면에서는 미흡한 시기였어요. 1962년 우리나라에 영양권장량이 처음으로 제시되며 국민들에게 충분한 영양섭취를 권장했습니다. 표준 영양권장량은 하루 에너지 2900kcal, 단백질 70g이었지만 평균 하루 공급 열량은 1923kcal, 단백질 53.2g으로 기준치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죠.
1972년 개발된 통일벼 등 다수확 품종의 보급으로 쌀밥 소비가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의 밥상에는 본격적으로 쌀밥이 오르기 시작하고, 양보다 질을 추구하게 되죠. 곡류 위주의 식단에서 벗어나 동물성 식품, 우유, 과일 등의 소비가 급증합니다. 1975년 1인당 연간 공급량이 119.8kg이었던 쌀은 1979년 136kg으로 역대 한국인들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 중 최고점을 찍고 2009년 81.3kg으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죠. 그에 비해 육류는 1975년 9.3kg에서 2009년 43.3kg으로 4.7배 늘었고, 우유는 4.4kg에서 53.3.kg, 과일은 14kg에서 47.7kg으로 섭취량이 증가하고 있어요.
'건강'을 먹는 시대
<이미지 출처: 파이낸셜 뉴스 >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대한민국의 밥상에는 본격적인 서구화가 이루어집니다. 다양한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생기며 사람들은 잦은 외식을 하게 되고 밥과 김치가 주식이었던 우리 밥상에 서구의 음식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게 되죠. 오늘날의 밥상에는 보통 3~4가지의 반찬이 오릅니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으면서 우리들의 밥상에는 다양한 식재료를 골고루 맛볼 수 있게 되었는데요. 2010년 3840가구를 대상으로 국민건강영양조사를 한 결과 주 5~6회 외식을 하는 사람이 26.6%였고, 하루 1회 이상 외식하는 사람들의 비율도 25.3%인 것으로 나타났어요. 대가족 문화가 점차 핵가족화되고, 최근에는 혼자 사는 사람들도 늘어나면서 몇몇 사람들은 집에서 먹는 것보다 밖에서 식사를 하는 횟수가 더 많을 때도 있죠.
식당 역시도 영양과 맛을 생각하게 되었고, 점차 대한민국 외식산업에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게 되었는데요. 그 후 사람들은 ‘살기 위해 먹던 시대’를 지나 ‘건강을 먹는 시대’로 돌입합니다. 모든 식당에는 해당 음식의 칼로리와 영양성분이 적혀있고 사람들은 원하는 음식을 선택하게 되요. 살기 위해서 부족한 식량을 갈구하던 시대는 너무 먼 옛날의 모습이 되어버렸죠.
요즘 아이들이 웬만한 반찬에는 투정을 부리는 모습도, 그런 모습을 보는 어른들이 혀를 차는 모습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풍경이에요. 하지만 아직도 세계 곳곳에는 식량난에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농민들의 피와 땀으로 수확한 식품, 먹을 게 없어 굶는 세계 기아들을 생각해서라도 더 이상 무분별한 음식 낭비가 있어서는 안되겠죠? 1900년대부터 현재까지 바라본 대한민국의 밥상 변천사, 더 이상 ‘음식 좀 남기는 게 어때’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계신 것은 아니죠? 건강을 챙기는 것도 좋지만 함부로 음식을 낭비하는 일은 더는 없어야 하겠습니다!
첫댓글 어릴적 보릿고개시절이 생각나요..요즘은 넘 먹을게 많아서 탈~~
허나 풍요속에 빈곤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