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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12월02일(토요일) 해남 두륜산 산행일정
회비 57,000원 11월3일 결제, 25번 좌석 예약
산 : 해남 두륜산
[두륜산(頭輪山)은 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산이다. 가련봉(703m), 두륜봉(630m), 고계봉(638m), 노승봉(능허대 685m), 도솔봉(672m), 혈망봉(379m), 향로봉(469m), 연화봉(613m)의 8개 봉우리가 능선을 이루고 있다. 대흥산·대둔산이라고도 부른다.
난대성 상록활엽수와 온대성 낙엽 활엽수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식물분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1979년 12월 26일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정상 부근의 북미륵암에 국보 제308호 (2005년 9월 28일 지정)인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또한 북미륵암에는 보물 301호인 대흥사 북미륵암삼층석탑이 세워져 있는데,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산행코스: [ 오소재 약수터-오심재-노승봉-두륜산 가련봉 정상-만일재-두륜봉-진불암-북미륵암-일지암-대흥사-대흥사 주차장(경내버스주차장)-대흥사 매표소-두륜산도립공원 전기차 충전소 ] (약 10km)
일시 : 2023년 12월 02일(토요일)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4시간20분 소요)
06:50~11:30 “좋은사람들” 버스로 서울 양재역 12번 출구 전방 국립외교원 앞에서 출발하여 전남 해남군 북일면 흥촌리 산117-4 번지에 있는 오소재 약수터로 이동 (381km) [4시간40분 소요]
11:30~12:10 전남 해남군 북일면 흥촌리 산117-4 번지에 있는 오소재 약수터에서 산행 출발하여 오심재로 이동
12:20~12:40 노승봉(685m) 정상으로 이동
13:40~14:00 휴식
13:20~13:40 두륜산의 최고봉인 가련봉(703m) 정상으로 이동
[가련봉 정상을 기준으로 북쪽에는 양촌 저수지가, 북동쪽에는 주작산과 덕룡산이, 동쪽에는 강진만과 그 뒤로 장흥 천관산이, 동남쪽에는 완도군의 고금도가, 남쪽에는 완도와 해남의 달마산이, 남서쪽에는 두륜봉과 그 뒤로 대둔산이, 서쪽에는 천년고찰 대흥사와 그 뒤로 멀리 진도가, 서북쪽에는 멀리 신안군이 위치한다.]
13:40~14:00 사진촬영
12:40~13:00 만일재로 이동
13:00~13:20 두륜봉(630m) 정상으로 이동
13:40~14:00 휴식
13:40~14:00 진불암(眞佛庵)으로 이동
[진불암(眞佛庵)은 표충사를 옆으로 계곡을 따라 약 1km 가량 올라가는 두륜산 중턱에 자리잡은 대흥사의 암자이다.
진불암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수 백년 된 은행나무가 암자의 역사를 묵묵히 말해 주며 정교하게 쌓아올린 돌탑 하나가 찾는 이의 눈길을 끈다. 진불암은 정확한 창건 연대를 알지 못한다.
진불암과 고진불암
「대둔사지」에는 1630년(인조8)에 수월극현(水月克玄)대사와 덕호(德浩)가 함께 중건했다는 기록이 있어 이보다 훨씬 이전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693년(숙종19)에 이홍록(李弘錄)이 덕탄(德坦)과 함께 중건했고, 1750년(영조26)에는 북미륵암을 중수한 바 있는 온곡대사(溫谷大師)와 함께 우일(宇一)장로가 진불암을 중수했다. 또한 채미대사(採薇 大師)의 글에는 영곡(靈谷) 영파(影波).만화(萬化).운담(雲潭).아암(兒庵) 등의 승려가 이 암자에 거쳐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진불암은 조선중기 이후 여러 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현재 진불암은 응진당, 향적당, 요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응진당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안에는 불상으로 석가 부처님과 28나한상, 문관상이 있다.
그리고 1987년 봉안된 범종과, 1972년의 진불암 중수 불사 당시의 시주자 이름이 적힌 현판도 있다. 불화로는 삼세후불탱화를 비롯해서 칠성탱화.신중탱화.산신탱화가 있다. 이들 탱화는 낭월 고재석스님이 그렸다.
진불암에서 북암으로 넘어가는 삼거리에 토굴이 있는데, 진불암의 옛주인 청화스님의 수도처이다.
진불암은 대흥사의 암자중 신도들이 많은 탓인지, 크고 작은 옹기들이 장독대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한편 「대둔사지」에는 고진불암과 16나한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고진불암은 현재의 진불암 근처에 있다. 옛날 기록에 말하기를 강진의 백도방(白道坊)에 서씨라는 어부가 있었는데 하루는 바다 한 가운데서 고기를 잡다가 서쪽 나라의 배를 만났다고 한다. 배 안에는 16대 아라한상이 실려 있어 '그것을 두륜산방(頭輪山房)에 봉안하고 편액을 진불(眞佛)이라 한다' 했다. 진불은 곧 응진(應眞)으로서 나한을 뜻하는 것이다. 그 후에 정사(精舍)를 산방(山房) 곁에 건립하여 이름을 진불이라 했으며, 또 달리 고진불(古眞佛)이라 했다. 1740년에 위일장로(位 一長老)가 중건했으며, 또 1791년에 정능선로(定能禪老)가 중건했으니 전후 다섯번을 중건했다'.
고진불암은 진불암 바로 위에 있는 암자로, 지붕은 슬레트로 지어진 건물이다. 이 암자는 스님들의 수도처로 사용되고 있다.]
13:40~14:00 북미륵암(北彌勒庵)으로 이동
[북미륵암(北彌勒庵)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의 본사인 대흥사의 산내 암자.
대흥사 북미륵암은 만일암의 북쪽에 있기 때문에 북미륵암이라고 불리는 산내 암자이다. 1970년경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동삼층석탑에서 3점의 고려시대 금동불상이 수습되어 현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2004년 마애불을 보호하는 전각인 용화전을 해체 공사하였다.
북미륵암 창건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대둔사지(大芚寺誌)』에 의하면 “건륭갑술에 온곡영탁(溫谷永鐸) 대사가 북암을 중수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북미륵암은 1754년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일한 기록에 따르면 13세기 진정국사 천책이 남송 순우연간[1241~1252]에 북미륵암에 주석하였고, 천책의 발우가 18세기 후반까지 북미륵암에 전승되었다고 되어 있다. 18~19세기에는 연담유일(蓮潭有一), 벽담행인(碧潭幸仁), 아암혜장(兒庵惠藏) 같은 고승들이 북미륵암에서 강학(講學)을 열었다.
용화전, 요사채 등의 건물과 2기의 3층 석찹이 있다. 용화전은 마래여래좌상을 봉안하기 위한 건물로 1985년 4월에 중수하였다. 1995년 4월에 중수한 요사채는 스님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ㄴ’자의 건물이다. 그 밖에 신중탱화, 산신탱화와 1987년에 조성한 동종 및 위패가 있다.
대흥사 북미륵암에는 문화재로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국보 제308호, 2005년 09월 28일 지정],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삼층석탑[보물 제301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동삼층석탑[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45호, 2004년 2월 13일 지정]이 있다.]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海南 大興寺 北彌勒庵 磨崖如來坐像)
종목 국보 제308호 (2005년 9월 28일 지정)
시대 고려 시대
소유 대흥사
주소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산8-1 북미륵암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海南 大興寺 北彌勒庵 磨崖如來坐像)은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 북미륵암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이다.
바위면에 고부조(高浮彫)되어 있는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은 공양천인상이 함께 표현된 독특한 도상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여래좌상으로 규모가 크고 조각수법도 양감이 있고 유려하여 한국의 마애불상 중에서는 그 예가 매우 드물고 뛰어난 상으로 평가된다.
본존불의 육계(肉髻)가 뚜렷한 머리는 언뜻 머리칼이 없는 민머리(素髮)처럼 보이나 나발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이목구비의 표현이 단정한 얼굴은 살이 찌고 둥글넓적하여 원만한 상이다. 그러나 눈 꼬리가 약간 위로 치켜 올라가고 입을 굳게 다물어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귀는 큼직하니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았으며, 유난히도 굵고 짧아진 목에는 두 가닥의 선으로 삼도(三道)를 나타내었다.
손(手印)과 발은 항마촉지인에 오른 발을 왼 무릎 위로 올린 길상좌(吉祥坐)를 하였는데, 손가락과 발가락을 가냘픈 듯 섬세하고 가지런히 묘사하여 사실성이 엿보임과 더불어 곱상한 느낌을 준다. 법의(法衣)는 양어깨를 다 덮은 통견의(通肩衣)로 그 주름은 거의 등간격으로 선각화(線刻化) 하여 사실성이 뒤떨어지고, 무릎 사이로 흘러내린 옷자락은 마치 키를 드리운 것처럼 늘어지는 등 도식적(圖式的)인 면이 강하다. 이는 통일신라 말기로부터 고려시대로 이행해 가는 변화과정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대좌(臺座)는 11엽의 앙련(仰蓮)과 12엽의 복련(覆蓮)이 마주하여 잇대어진 연화대좌로 두툼하게 조각되어 살집 있는 불신(佛身)과 더불어 부피감이 두드러져 보이며, 다른 예에서와는 달리 자방이 높게 솟아올라 있어 특징적이다. 머리 광배(頭光)와 몸 광배(身光)는 세 가닥의 선을 두른 3중원(三重圓)으로 아무런 꾸밈도 없이 테두리 상단에만 불꽃무늬(火焰紋)가 장식되어 있으며, 그 바깥쪽에는 위·아래로 대칭되게 4구의 천인상을 배치하였다.
둔중한 체구로 다소 경직되어 보이는 본존불과 달리 경주 석굴암 내부 감실(龕室)의 보살상을 연상케도 하는 4구의 천인상은 날렵한 모습으로 부드러움과 함께 세련미가 엿보인다. 천인상들의 조각표현은 이 당시의 거의 유일한 예이자 우수한 조형미를 반영하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14:00~14:30 일지암(一枝菴)으로 이동
[일지암(一枝菴)
일지암터는 40여년 전에 응송스님과 낭월스님이 그 터를 확인하여 그곳에 건물을 중건하였다고 한다. 터가 있는 곳은 샘에서 물이 흘러나와 늘 질척거렸다고 한다. 물이 나오고 양지 바른 곳이라서 이곳에는 산돼지나 노루가 다니는 길목이었고, 그래서 숯꾼이나 초군들이 짐승 덫을 설치하던 곳이라고 한다.
초의선사는 이곳에서 유명한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을 펴냈고, 선다일여의 가풍을 드날리며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와 같은 석학, 예인들과 교류하며 쇠퇴해 가는 차문화의 중흥을 도모해 일지암은 한국 차의 성지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곳에는 옛 정취가 그대로 살아 숨쉬는 차나무가 심어져 있고 선다를 음미했던 다정(茶亭)이 있으며, 집 뒤의 바위틈에서 솟는 물이 나무 대롱에 연결된 돌물확에 담겨져 흐른다. 이 다천(茶泉)과 돌물확, 차를 끓이던 다조(茶俎,돌부), 그리고 위아래의 연못과 좌선석(坐禪石) 등은 옛 모습대로 복원된 것이다.
'일지암' 편액이 붙어 있는 정자는 1980년 한국다인회 회원들이 다도의 중흥조 초의가 기거했던 일지암을 기념하기 위해 복원하여 놓은 것이다. 이 초정(草亭)은 가운데에 방 한 칸을 두고 사면에 툇마루를 두른 4평 규모의 띠집이다. 그리고 일지암 본당은 윗연못에 평석을 쌓아올린 4개의 돌기둥이 누마루를 받치게 하여 독특한 운치를 자아내게 한다.
윗 연못에서 잉어가 한가로이 노니는 등 누마루에서 구름 낀 산경을 멀리 내려다보는 다회(茶會)와 선유(仙遊)는 자연과 우주의 섭리를 음미하게 할 만하다. 그래서 초의의 시(詩)·선(禪)·다(茶)의 경지가 한데 어우러진 차문화의 산실이 됐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초정과 연못 사이에 축조된 석축에는 '다감(茶龕)'이라 새겨진 평평한 면이 끼여 있고 그 앞에는 이보다 넓은 판석이 하나 놓여 있는데, 이 돌 평상을 차를 마시며 선을 하던 좌선석으로 보기도 한다.
초의선사는 대둔사의 13대 종사로 일찍이 이곳에 기거하며 다도를 중흥시킨다. 그는 「동다송」이라는 우리 나라 최초의 다서를 저술하고 차를 재배하여 널리 펴는 등 다도의 이론적인 면이나 실제적인 면을 크게 정리하고 닦음으로써 다도의 중흥조로 추앙받고 있다.
당시 대흥사(대둔사) 가까이는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유명한 다인(茶人)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초의와 차를 통하여 더욱 두텁게 교유하였다. 다산은 이곳과 가까운 강진에서 18년간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대흥사(대둔사)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 추사 또한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된 까닭에 대둔사와의 관계를 맺게 되고 초의와도 남다른 친교를 가졌다. 이런 까닭으로 19세기초 대둔사를 중심으로 한 우리의 다도는 다시 한번 중흥을 이루게 된다. 이 때문에 대흥사(대둔사) 일지암은 우리 나라 다도의 요람으로 불리고 있으며, 매년 음력 8월1일 초의의 열반일을 기해 추모행사인 초의제를 거행하고 있다.]
14:30~15:00 대흥사로 이동
[천년고찰 대흥사(大興寺)는 우리 국토의 최남단에 위치한 두륜산(頭崙山)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한 사찰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22교구의 본사이다.
현재 해남, 목포, 영암, 무안, 신안, 진도, 완도, 강진, 광주 등 9개 시군의 말사를 관할하며, 서·남해 지역 사찰을 주도하고 있다.
두륜산을 대둔산(大芚山)이라 부르기도 했기 때문에 원래 사찰명은 대둔사(大芚寺)였으나, 근대 초기에 대흥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일찍이 서산대사가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三災不入之處)으로 만년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萬年不毁之地)”이라 하여 그의 의발(衣鉢)을 이곳에 보관한 도량이다. 이후 대흥사는 한국불교의 종통이 이어지는 곳(宗統所歸之處)으로 근대 승보사찰의 종가집으로 한국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도량으로 변모하였다.
즉 제1대종사 풍담(風潭)의심스님으로부터 초의(草衣)의순스님에 이르기까지 13분의 대종사(大宗師)가 배출되었으며, 만화(萬化)스님으로부터 범해(梵海)스님에 이르기까지 13분의 대강사(大講師)가 이곳에서 배출되었다.
그리고 13 대종사 가운데 한 분인 초의선사로 인해 대흥사는 우리나라 차문화(茶文化)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넓은 산간분지에 위치한 대흥사는 향로봉, 고계봉, 노승봉, 가련봉, 도솔봉, 혈망봉, 연화봉의 8개 봉우리로 들러 싸여 있으며, 크게 남원과 북원 그리고 별원(표충사, 대광명전, 성보박물관)의 3구역으로 나뉘어져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북원에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침계루, 백설당, 대향각, 청운당, 선열당 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남원에는 천불전을 중심으로 용화당, 봉향각, 가허루, 세심당, 적묵당, 정진당, 만월당, 심검당 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남원 뒤쪽으로 멀리 떨어져서 서산대사의 사당인 표충사 구역과 동국선원내에 대광명전 구역이 있다.]
15:00~15:10 대흥사 관람
15:10~15:50 매표소를 지나서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146-14 번지에 있는 두륜산도립공원 전기차 충전소로 이동하여 산행 완료
15:50~16:00 휴식
16:00~20:30 “좋은사람들” 버스로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146-14 번지에 있는 두륜산도립공원 전기차 충전소를 출발하여 서울 양재역으로 이동 (388km) [4시간30분 소요]
두륜산 산행지도
대흥사 지도
북미륵암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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