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감 때문에 하는 공부는 아이에게 여러모로 해롭다. 우선 학교생활을 즐길 활력과 열정을 잃어버린다. 그보다 더 가슴 아픈 건 자기 자신에게 좋은 일을 찾기보다는 남을 기쁘게 하는 데에만 골몰하게 된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렇게 조용하고 순종적인 아이들은 다들 모범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사들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칙센트미하이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이들은 12세 때부터 일과 놀이를 구분하기 시작하며, 공부는 놀이가 아닌 일로 인식한다고 한다. 일은 자발적이라기보다는 강제적 성향이 강하다. 억지로라도 해야 한다는 강제성 때문에 아이들은 공부에 몰입하지 못한다.
강제적으로 공부를 하는 수동적 몰입의 경우 위기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반복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수동적 몰입의 경우 스트레스와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에 위기 상황이 아니라면 아이는 스트레스와 고통을 회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즉 수동적 몰입은 지속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몰입을 거부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실패경험
문제가 되는 것은 아이의 생각과 느낌,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과다하게 많은 것을 가르치려 할 때 생겨나는 아이의 실패 경험이다. 아이가 반복되는 실패 경험으로 인해 자신감을 상실하면서 아이는 점점 배우는 것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배움 자체에 흥미를 잃게 되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어린 시절 배우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는 성장하면서 점점 학습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고 가능한 한 무엇이든 배우지 않으려는 학습 기피 현상을 나타내게 된다. 자신의 능력이 못 미치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게 되거나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 때 비난하거나 벌을 줄 경우 어떤 일을 하려 할 때마다 두려움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예측하면서 실패를 더 자주 경험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거기에다 ‘넌 왜 항상 그 모양이니?’“넌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해?‘”누구 닮아서 머리가 그렇게 나쁘니?’등의 이런 꾸중을 듣게 되면 자신감과 자존감까지 상실하게 된다. 아이는 점차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스스로를 못난 사람으로 생각한다.
시상하부는 신체의 많은 자율반응을 조절하는데, 체내의 기관들로부터 정보를 받고 명령을 내린다. 시상하부는 체내 환경을 장악하여 식욕, 갈증, 에너지 대사, 수면, 각성, 체온, 심박동, 혈압을 조절한다. 뿐만 아니라 호르몬 대사와 감정도 조절한다. 요컨대 시상하부는 신체의 균형을 유지시키며, 화학적, 전기적 신호를 통해 뇌하수체를 조절하는데 이 뇌하수체가 바로 신체의 스트레스 반응을 주재한다.
도파민은 신체가 미지의 것에 대한 스트레스 반응을 다시 누그러뜨리게 한다. 도파민이 아드레날린에 대항하여 승리하고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긴다고 할 수 있다.
스트레스와 감정은 관련이 많다. 최대의 스트레스 상황 중의 하나인 슬픔과 두려움은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한다. 반면 기쁨은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따라서 스트레스 관리 능력은 감정을 처리하는 뇌의 발달과 깊은 연관이 있다. 감정을 처리하고 스트레스 반응을 조절하는 뇌의 발달에는 유전자와 환경이 함께 작용한다. 뇌과학자들은 오랫동안 뇌 깊숙한 곳의 하위뇌는 유전적 프로그램에 따라서만 발달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독일의 뇌과학자 자비네 브라운(Sabine Braun)는 부모의 관심과 보살핌 같은 환경적 영향들이 편도체와 시상하부의 뇌발달에 지속적으로 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림. 스트레스의 뇌
간섭 받는 아이는 의욕이 떨어진다
1996년 크레이그 페리스(Craig Faris)는 가정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의 뇌구조가 스트레스와 분노에 민감하게 구조화된다는 주장을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부모가 아이에게 하는 폭력적 행동과 말은 최면과 비슷한 효과가 있으며, 예언을 뛰어넘는 주술적 암시 같은 각인 효과가 있다.
어린 아이는 감수성이 민감하면서도 부모의 힘과 권위를 인정하기 때문에 사소한 것에도 각인된다.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은 이후 현실 체험의 범위와 방향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사춘기 이전에 부모에게 어떤 말을 들었는지는 사춘기 이후부터 노년기까지 계속해서 다소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매순간 간섭받는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한다. 의욕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나온 결과 또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누구를 돕겠다는 생각은 꿈도 꿀 수 없다.
아이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먼저 익힌다. 예를 들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아이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아이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고생하지 않기 위해 등 온갖 이유를 갖다 붙여도 그냥 잔소리로 들릴 뿐이다. 그 잔소리 때문에 부모와 자녀 간에 갈등이 생기고 아이의 의욕마저 사라지게 된다. 결국 부모의 잔소리와 아이의 저항이라는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사랑과 함께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가 또 하나 있다. 모든 아이의 가장 첫 번째 스승이자 위대한 롤모델이 바로 부모라는 것이다. 뇌과학자인 라마찬드란(Ramachandran)은 모든 인류의 뉴런은 거리와 상관없이 연결된다고 말한다. 그 연결이 영장류에게 남아 있는 증거가 바로 최근 밝혀진 거울뉴런이다. 아이는 이 거울뉴런을 통하여 부모를 흉내낸다. 이 과정에서의 핵심은 자존감이다. 부모가 삶에 대한 자존감과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약하면 자연히 직업만족도는 낮아지고 스트레스는 많아진다. 작업이 환경 미화원이든, 의사든, 교수든, 택시기사든 상관없다. 승객을 목적지로 정중히 모시고, 약자를 우선하여 태우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택시기사의 자녀는 학업 성취도나 직업 성취도가 높으며, 부모가 원하거나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의대에 간 의사가 피를 보는 수술을 거북해하거나, 환자를 귀찮아 한다면 그 의사의 자녀는 학업성취도나 직업 성공도가 낮다.
고리들은 자존감을 높이는 최고의 방법은 일단 현재에서 감사할 꺼리를 가급적 더 많이 찾아보는 것이라고 했다. 굶어죽지 않아서, 이러한 책을 볼 눈이 있어서 감사한 것이다. 오프라 윈프리가 감사 일기 때문에 시궁창에서 벗어나 성공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잔소리로 자신을 괴롭히는 부모가 있는 아이더라도 그 잔소리가 단지 공부에 유리한 아드레날린과 아세틸콜린의 배출장치라고 생각한다면 짜증도 짧게만 내고 바로 책을 보면 그 짜증과 말다툼이 공부에 도움이 된다. 자신과 세상을 바꾸는 가장 위대한 태도는 무엇이든 잘 받아서 어떻게든 좋게 쓰는 ’감사‘이다. 현재 상황에서 감사할 꺼리를 찾아야만 자기 자존감을 키울 싹을 발견할 수 있다.
스트레스가 뇌에 미치는 영향
크리스티안 미레스쿠(Christian Mirescu)는 컴퓨터 게임 등으로 느끼는 지속적 스트레스가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갈 때 만들어지는 뉴런의 형성을 방해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장기적 스트레스로 코르티솔이 많아지면 학습과 창의적 활동에서 왜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멍청한 무기력증에 빠지는지와 왜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감각의 통합을 이룰 시기에 시각적 자극만 너무 받으면 다른 감각 회로의 발달이 위축된다.
위험이 닥치면 순식간에 뇌는 세 가지 호르몬을 방출하여 ‘투쟁 혹은 도피’ 반응을 유발한다. 첫 번째 호르몬은 시상하부에서 분비하는 코르티코트로핀 분비 호르몬이다. 이는 순간적인 에너지를 생성하는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유도한다. 두 번째 호르몬은 부신수질에서 분비하는 아드레날린이다. 이는 심박수를 증가시켜 근육으로 가는 혈류량을 증가시키고, 도망갈 수 있도록 몸을 준비한다. 세 번째 호르몬은 부신피질에서 분비하는 코르티솔인데 혈당을 올려 몸의 좀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게 하고 통증에 대한 민감성을 낮추며 염증반응을 줄여주고 면역 기능을 높여준다.
스트레스는 우리 뇌를 긴장시켜 감정적으로 과도하게 예민해진다. 사고의 폭이 좁아져 융통성 없이 하나의 생각으로 자신을 몰아가 문제해결력을 떨어뜨린다. 신체적으로는 힘이 없고 질병에 취약해지고 정서적으로 무력감과 우울을 느끼며 매사에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게 된다. 이런 태도는 결국 스스로를 관계로부터 소외시킨다. 심하게 소외감을 느끼면서도 타인과의 관계를 단절시킨다.
스트레스는 감정의 뇌를 소진시키고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회복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 공급이 필요하다. 그런데 스트레스가 회복되지 않고 1-3년을 지속하면 불안해진다. 지속적인 교감신경계의 과부화와 사소한 자극에도 큰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다가 마침내 정신적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 희망 없는 상태, 즉 우울한 상태로 빠지게 된다. 이를 SAD(Stress-Anxiety-Depression)커브‘라고 한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아이는 적극적인 스트레스 해소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운동, 호흡법, 명상 등 무엇이든 자신을 회복시키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 아이에겐 누구나 회복력이 있다. 아이가 이 커브에 빠져 있다고 생각된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 탈출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성적인 스트레스 상황에서 기억력은 저하되지만, 생존을 위협했던 감정적인 기억들은 언제든 신속히 떠올릴 수 있게 저장되어 부정적인 아이를 만들기도 한다.
포르투갈의 신경과학자 누노 소사(Nuno Sosa)는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의해 문제해결 중추인 전두엽이 마비되고, 자동적이고 습관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감각운동 중추인 줄무늬체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림. 스트레스에 대한 몸의 반응
탄성회복력과 부모의 기대수준
탄성회복력 이 높은 아이들을 살펴보면, 성공 가능성을 믿어주는 어른뿐만 아니라 높은 기대 수준을 제시하는 어른들이 있었다. 자녀에 대한 기대수준이 지나치게 낮거나 지나치게 높은 것은 아이한테 좋지 않다.
언제나 더 잘할 것을 요구하는 부모가 있다. 모두 100점을 맞아야 하고, 1등을 해야 하고, 좋은 친구를 사귀고 가장 좋은 대학에 갈 것을 강요하는 부모들 말이다. 지나치게 높은 기대수준을 끊임없이 요구하면 스트레스 때문에 탄성회복력이 오히려 소진된다. 결코 스트레스에 강해지지 않는다. 더구나 부정적인 아이는 시험에서 나쁜 점수를 받았을 때, “내가 너무 멍청해서 시험을 망쳤어.”라고 자신을 비난하고, “나는 제대로 하는 게 한 가지도 없어”라고 일반화하며, “결코 시험을 잘 볼 수 없을꺼야”라고 영구화한다.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 부모는 다음과 같은 지침을 준수하여야 한다.
첫째, 일상에서 분명한 틀과 명확한 기대 수준을 제공하자.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트레스는 증가한다.
둘째, 자녀가 갖는 걱정에 대해 대화하자.
절대로 혼자서 걱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부모가 아이와 의사소통을 활발히 하여야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셋째, 자신감 을 고취하자.
어떤 상황이던 해결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예를 들면, “두렵구나. 그럼 그럴 수 있어. 하지만 넌 꼭 해낼 수 있을 거야.” 자녀와 함께 하되 해결책을 스스로 생각해내도록 격려한다. “어떻게 하면 덜 무서울까?”
넷째, 유머 를 적당히 사용하자.
아이의 걱정을 절대로 비웃지 말고 아이를 웃게 만든다. 웃으면 쾌락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은 증가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은 감소한다.
다섯째, 스트레스 상황에서 심호흡을 하자.
산소 공급이 증가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감소한다.
김영훈(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