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고전
2023년 11월 29일
17세 이은현
논어 2편과 친해 진지 벌써 2주일이나 지났다. 나는 지금 또다른 친구와 친해져야 했다. 논어 3편의 ‘팔일’라는 이름의 친구다. 팔일 또한 위정편처럼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들어 있었기에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반복해서 읽을수록 안보이던 단어들이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팔일편을 간단히 한묶음으로 정리해 보겠다. 팔일에 대한 이야기(1장),예에 대하여(3,4,8,9,15,26장), 제사에 대해서(2,6,10,11,12장), 음악애 대해서(23, 25장)등을 다루고 있었다.
이렇게 전체를 보고나서 제일 에세이 주제로 다루고 싶었던 부분은 16장이였다. 16장에서는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질문들을 다루고 있었다. 나는 중과 절차에대해서 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16장에서 그에 대한 답을 해주는 것 같았다. 16장에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활쏘기를 할 때 과녁의 가죽을 꿰뚫는데 주력하지 않는 것은 힘씀이 다 다르기 때문이니 이것이 옛날의 도리이다.”
해석에서는 ‘활쏘기에서 중요한 것은 힘자랑이 아니라 집중과 절차를 통한 수양이라는 것이다.’라고 해석해 주고 있다.
당시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 시대에서는 힘자랑으로 하는 것이 유행 인 듯 했다. 하지만 공자는 ‘활쏘기는 집중과 절차를 통한’ 수행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것이 예날의 도리라고도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었다.
공자는 ‘그때 당시에 유행 문화가 아닌, 옛날에 도리, 원레 맞는 방법을 다시 가져와서 그대로 했으면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든다.
옛날의 도리이지만 그것을 가지고 와서 실천한다면 내가 원하는 방향과 적당한 힘으로 활을 쏠 수 있듯이 나의 삶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고전 읽기 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옛날의 도리를 고전이라 해보겠다. 집중과 절차를 통한 수양은 고전인 논어 읽기라고 해보겠다.
춘추 전국 시대 때 활쏠 때 유행하는 것은 힘 자랑이였다. 현대를 살아가는 나의 시대에 흐름은 ‘빨리 빨리’ 인 것 같다. 차도를 달려도 지하철에서 내려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빨리 빨리가 거의 작용되는 것 같았다. 빨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마음, 신호등이 바뀌었는데도 가지 않는 차가 있으면 경적을 울리는 등 빠른게 행동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나 또한 그랬다. 그리고 그 습관이 책 읽은 때도 적용된 것 같았다.
고전이든 다른 책이든 나는 이어지는 부분을 못기다리고(다음편에서 계속이라는 문장) 시리즈의 맨 마지막을 가지고 있다면 그 결말을 본 다음 주요 내용을 살펴보곤 했었다. (시온이가 쓴 에세이에서 말했듯이) 그렇게 하다 보면 채하여서 내것으로 소화도 못된채 기억은 저멀리 도망가고.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나에게 나 스스로 처방전을 내려봤는데 그것은 ‘집중과 절차를 통한 수양을 생각해 보세요.’ 었다.
그렇다. 나에게는 이것이 꼭 필요했다.
논어는 다른 고전 보다는 내용이 적다. 그래서 정독해보아도 빨리 읽히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 묶음으로 보아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여전히 어려웠다. 그래서 중간중간 휴식 시간도 가지며 다시 읽고 하니 내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나 단어가 더 눈에 잘띄었다. 그렇게 휴식을 한 다음 내눈에 들어온 문장이 16장 문장 이었다.
이 쉬는 시간은 마치 활을 쏘았는데 잘 안되어서 스트레스 받을 때 코치님이 오셔서 조금 쉬자고 말씀해 주시고 같이 주변에있는 공원 산책을 잠시 하며 머리를 식히는 것이랑 비슷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 예시를 들었던 것처럼 또다른 예시를 들어보려 한다. C.S루이스의 책 나니아 연대기 7권(마지막 전투, 나니아 시리즈의 마지막 권임.)에서 등장 인물 소개 할 때 아슬란의 소개 내용이 이번 에에이와 관련된 것 같아서 가져와 봤다. 그내용은 다음과 같다. ‘(앞내용 생략) 나니아가 멸망하는 것을 굳이 막지 않는다. 그가 아이들에게 그리고 나니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계가 따로있기 때문이다.’라는 아슬란 소개 내용이었다.
아슬란이 나니아의 멸망을 막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속도를 내서읽는 방법의 세계’가 멸망(그 생각이 살아지는 것) 하는 것을 막지 않으셨다. 아슬란이 아이들과 나니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계가 따로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나에게 또다른 고전 읽기 방법(정독으로 읽기)의 세계를 보여주고시고 싶으셨던 것 같다.
처음에 나는 (정독모임을 시작하기 전) 고전은 지루하다 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논어처럼 ‘하나님’이라는 말이 안 들어간 책을 별로 읽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었다. 그런 나에게 하나님께서 소개해주신 공동채가 ‘고전읽기 정독 모임’ 이었다.
집중과 절차를 통한 수양이 옛 도리이며 그것이 원레 활쏘기 방법이고 그것이 활쏘기를 향상시켜 주듯이 정독 모임이라는 공동체를 통해 고전의 소중함은 엣날부터 지켜져 왔으며 그것이 원레 고전의 가치임을 발견하는 시간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