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타임 4시간짜리 대작이자 1954년부터 1993년까지 국내에서만 5차례 개봉되기도 했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 영화에서 스칼렛 오하라로 열연한 비비안 리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은막의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영국의 무명 배우에 가까웠던 그녀는 하마터면 우리가 기억하는 스칼렛 오하라가 되지 못할 뻔했다.
그녀는 동명소설을 읽고 스칼렛 오하라에 반한 뒤 주변 사람들에게 책을 선물할 정도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푹 빠져 있었다.
소설이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을 접한 그녀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 필름과 프로필 사진을 제작자에게 보냈다.
하지만 제작자로부터 그녀가 누군지 모른다는 대답만 들었다.
그러던 중 제작사는 여주인공을 결정하지 못한 채 남자 주인공인 레트 버틀러와 쵤영을 시작했다.
한 번 거절당한 비비안 리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촬영 현장을 찾아가 소설 속의 스칼렛 오하라가 현실에 나타난 것처럼 뽐냈다.
그로부터 열흘 뒤 그녀는 카메라 테스트를 받게 되었고
그동안 소설을 읽으며 연습한 스칼렛의 모습을 최선을 다해 보여 줬다.
하지만 그녀는 제작자로부터 영화 출연이 아닌 크리스마스 파티 초대를 받았을 뿐이었다.
캐스팅에 실패했다고 생각한 그녀는 실망했지만 기꺼이 파티에 참석했고
여전히 스칼렛 오하라처럼 천진난만하고 매력적인 웃음으로 파티를 즐겼다.
제작자는 그 미소 띤 얼굴을 보고서야 그녀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여주인공 스칼렛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비비안 리를 전격 캐스팅했다.
거절과 실패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동경하고 그리던 스칼렛이 되기 위해 도전했던 그녀의 당당함이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그녀를 만든 것이다.
"아버지를 지게에 업고 금강산을 유람한 아들"
(온몸 피멍에도 "아버지 마음껏 구경 기뻐")
아흔을 넘긴 아버지를 지게에 태워
금강산 유람을 다녀온 아들
혼자서 오르기도 힘들다는 금강산을 아버지를 모시고,
그것도 지게에 태워 관광을 다녀온 이군익(42)씨
이 씨는 아버지를 지게에 모시고 금강산을 오르는
사진이 한 언론사의 독자투고란에
실리면서 인터넷상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둔
평범한 가장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이씨를 인천에서 23일 만났다.
"금강산 가믄, 1만2000봉에
8만여남으개 암자가 있다던디…."
지난 봄, 아버지 이선주(92) 씨가 독립기념관
나들이 길에 언뜻 금강산 얘기를 꺼내셨다.
한 해 전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내신 아버지가
적적해하실까 싶어 한창 산으로 들로
모시고 다니던 때다
"중학교 다닐적에
집에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지요
충남 서산 빈농에서 자랐습니다.
7남매의 막내인 저까지 대학 공부를
시키시느라고 평생 허리 한 번
못 피신 아버지 십니다
듣자마자 마음속으로 '예 아버지,
금강산 아니라 그 할아버지라도
모시고 가겠습니다' 다짐했지요."
6월 아버님 생신에 즈음해 금강산 여행을
보내드리자고 형제들과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가 산에 오르시는 건 불가능한 일,
산 길이니 휠체어도 무용지물일 터였다
"어떻게하면 아버지께서 금강산 절경을 마음껏
눈에 담으실 수 있을까, 며칠 밤을 고민했습니다.
아버지를 등에 업고 가면 될 것 같은데,
기력이 쇠진하시니 아들을 단단히
붙드시지 못할 일이걱정이고…
그런데 번뜩 산에서 나무하던 생각이 나는겁니다."
불현듯 어릴적 지게지고 산에 올라
나무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 지게에 아버지 의자를 만들면 되겠구나
나무 지게는 무게 때문에 여행 내내 지기 어려울 듯했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가볍고 강한 알루미늄 지게
그 때부터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지게를 만들기 위해
설계도를 그려 지게를 만들어 줄 기술자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모두들 '못 만든다'며 손사래를 치거나
터무니없는 공임을 요구했다.
집과 직장이 있는 인천을 비롯해
서울 곳곳을 뒤져가며
한 달여 동안 임자를 찾아다녔지만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지게'를 만들어주겠다는
기술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수일을 헤맨끝에 지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등산용 지게에 특수용접을 해
금강산 유람을 위한 '아버지 전용 지게'가 탄생했다
지게 지느라 온 몸 피멍…
"아버지 좋아하시니 기쁘기만해."
"북측 안내원이 지게를 보고
정색을 하며 뭐냐고 묻는겁니다
아버님 모실 지게라고 했더니 연세를 묻더군요
아흔 둘에 아들 등에 업혀 금강산 가신다고 했더니
호탕하게 웃으면서 그럽디다.
'하하하 통과하시라요!'"
지게와 그 위에 앉으신 아버지 덕분에 여행 내내
이씨 일행은 단연 스타였다.
초여름 날씨에 혼자 걷기도 험한 산 길을
아버지와 한 몸이 되어 오르는 이 씨를 보며,
연배 높은 관광객들은 이 씨 일행을 만날 때마다
다가와 어깨를 두드려주며 격려했다.
젊은이들은 차마 다가오지 못하고
이 씨가 아버지를 업고
한 발 한 발 떼는 모습에 시선을 모았다
함께 금강산에 오른 큰 누나 이춘익(62)씨와
형 이관익(55)씨도 흐르는 땀을 닦아주며
막내 동생의효행에 힘을 보탰다.
그렇게 아버지를 업고 천선대로 귀면암으로,
구룡폭포로….이 씨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들에게 짐이 될까 한사코 업히기를
거부하시던 아버지도
"저기가면 뭐가 있다냐?"
"아이고, 저게 그림이여 경치여." 질문에
감탄사를 연발하시며 어느덧 금강산 구경에 흠뻑 취하셨다.
지게 무게는 줄잡아 15kg이상.
아버지가 올라앉으시면 60kg이 넘는다
이씨는
"산행이 이어지면서 무게를
이기지 못한 어깨와 팔이
뻗뻗하게 굳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어린애 모양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고 말했다.
"금강산 온천에 갔더니 동행한 우리 형님이
깜짝 놀라시는 겁니다
지게 지는 동안 실핏줄이 터졌는지 상반신
전체가 거의 피멍이더라구요.
형님이 울컥하시는데, 제가 웃자고 했습니다.
아흔 넘으신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금강산
구경을 마음껏 하셨는데, 얼마나 좋냐구요."
이 씨 집 마당 한 켠의 작은 정자에서 가슴 따뜻한
금강산 유람기를 듣는 동안 말귀 어두운
그의 노부는 묵직한 감동이 담긴 아들의
얘길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사이사이 불혹을 넘긴
아들을 두고
"우리 막내가 일곱 놈 중에
제일 이뻐. 제일구엽고 아버지라면 아주….
충남 서산서 평생 농사만 지어먹은
내가 아, 남한 땅 안 밟어본 디가 없고
금강산까지 구경했으니 갈 데도 없는겨 인제."라며 효심 깊은 아들 자랑에 입이 말랐다.
이 모습을 이 씨의 아내 이연희(39)씨도
시종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시아버지를 어릴적 여읜 친정아버지로 여긴다는,
시어머니 임종전까지 성심으로 병수발을 했다던
이 씨의 착한 아내 뒤에선 여덟살 손녀 수연이가
"할아버지! 그만하고 인제 같이 놀아요!"를
외치며 바짓자락을 잡아 끌었다.
우리는 얼마나 감동을 주기위해
작은 고민이라도 해봤었는지..
사랑은 느끼며 잊지않고 감동으로
갚아야 함을..
너무나 感動的인 사연이기에 올려봅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요...
"서브 서브 서브프라임의 비밀 "
작년 봄에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사태가 처음 시작될 때만 해도
그 파장이 이렇게 클 줄 짐작한 사람은 드물었다.
신용등급이 양호한 사람들에 대한 대출을 프라임(우량),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대출을 서브프라임(비우량) 대출이라고 한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자 부동산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샀던 사람들 중 신용이 취약한 계층에서
빚을 갚지 못하는 일이 점차 늘어났다.
서브프라임 대출의 부실화다.
여기서부터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작금의 금융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월가에 포진한 금융공학의 귀재들은 서브프라임 대출을 기초자산으로 해서
몇 번의 자산유동화 과정을 통해 엄청나게 복잡한 파생상품들을 만들어냈고,
고수익을 좇아 이런 파생상품들에 많은 투자를 한 금융기관들이
서브프라임 대출이 부실화되자 큰 손실을 입고 파산 위기에 몰렸다.
월가를 대표하는 대형 투자은행들을 포함해서 많은 금융기관들이 파산 위기에 몰리고,
금융시장 전체의 붕괴를 우려한 미국 정부가 구제금융에 나서고,
이러면서 미국식 금융자본주의가 이제 망한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나오게 되었다.
위기의 씨앗은 눈앞의 고수익에 눈이 어두워진 금융기관들이 신용이 취약한 계층에게
높은 이자에 마구 돈을 빌려준 것이었다.
그런데 신용이 취약한 정도가 아니라 생전 돈을 만져보지도 못한 사람,
직업도 없는 사람,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만 골라서 대출을 해주는 금융기관이 있다.
이런 일을 처음 시작한 곳이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Grameen Bank)이다.
놀라운 것은 그라민은행의 가난한 고객들은 대출금을 너무나 잘 갚는다는 사실이다.
대출회수율이 98%에 이른다.
2006년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는
“우리 고객들은 서브 서브 서브프라임이다.
그래도 우리에게 서브프라임 위기는 없다”고 말한다.
그라민은행과 같은 마이크로크레디트은행 수천 개가 세계 곳곳에서 지독하게 가난한 사람들이
열심히 돈을 갚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대출과 그라민은행의 서브 서브 서브프라임 대출의 차이는 뭘까?
그라민은행은 사람을 살리려고 사람에게 다가가는 은행이다.
미국의 은행은 이윤극대화를 위한 은행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기보다는 기계적인 공식에 입각해서 신용등급의 숫자로 취급한다.
자기를 살려주려고 한 은행에 대해 아무리 가난해도 최선을 다해 돈을 갚으려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고,
자기를 숫자 취급하는 은행에 대해 조금만 사정이 어려우면
돈을 안 갚아버리는 것도 이해가 가는 노릇이다.
사실 미국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에 주력해 온 비영리기관들은
지금 95%정도의 대출회수율을 보이고 있다.
금융의 기본은 신용이다.
신용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
믿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기업을 살리고,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것이 금융의 본질이다.
금융공학은 이를 좀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에 불과하다.
고수익은 고위험을 수반한다는 진리는 아무리 복잡한 파생상품을 만들어내도 변하지 않는다.
금융공학의 기법으로 나쁜 일(자산부실화)이 일어날 확률을 줄일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다.
확률이 줄어든 만큼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의 피해는 더 커지기 때문에 결국 위험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사람에 대한 믿음과 이를 기초로 한 관계야말로 사람을 변화시켜서 위험자체를 줄여준다.
금융선진화도 좋지만 ‘돈 놓고 돈 먹기’식 금융이 아닌
사람을 살리고 산업을 살리는 금융을 생각할 때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
성장속도:
여자는 17세에 이미 다 성장한다.
남자는 37세에도 오락과 만화에 빠져 허우적댄다.
화장실:
남자가 필요한건 6가지 - 칫솔, 치약, 면도기, 면도크림, 비누, 수건
여자가 필요한건 437가지 - 남자가 모르는 그밖의 것들
장보기:
여자는 미리 필요한 물품의 리스트를 적는다.
그리고 요목조목 따지고 산다.
남자는 냉장고에 더이상 먹을 것이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쇼핑을 한다.
좋아 보이는것은 닥치는대로 산다.
신발:
여자는 편한 샌달등을 비닐봉지에 넣고 출근한다.
회사에서 구두를 벗고 샌달을 신는다.
그리고 결국 샌달도 벗는다.
남자는 아무거나 신는다.
그리고 하루종일 벗지 않는다.
외출:
남자가 외출할 준비가 되었다고 하면, 실재로 나갈 준비가 된 것이다.
여자가 준비가 되었다고 하면,
실재로 씻기, 화장하기, 옷고르기 등을 제외한 나머지가 끝났다는 것이다.
고양이:
여자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남자도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자가 안볼때는 고양이를 발로 찬다.
아이 키우기:
여자는 어린이에 대해 다 안다.
언제 치과를 가야하고,
언제 학교연극에 출연하며 친구들의 이름들이 무엇이고,
장차 꿈과 좋아하는것등도 파악해 놓고 있다.
남자는 집에서 돌아다니는 조그만 인간들의 존재에 대해 가끔 느낄때도 있다.
옷갈아입기:
여자는 회사갈 때, 쇼핑할 때, 꽃물줄 때,
쓰레기 버릴 때, 전화받을 때, 책읽을 때,
편지함 보러갈 때 등등 옷을 갈아입고 나간다.
남자는 결혼식, 장례식때 갈아입는다.(가끔 출근할 때도 갈아입는다)
빨래:
여자는 이틀에 한번씩 세탁기를 돌린다.
남자는 속옷의 화학성분이 바뀌기 전까지 입고 또 입고,
거꾸로 입고, 뒤집어 입고, 또 거꾸로 입고, 덜 더러운 걸로 갈아입고,
구멍나면 두개 입고 해서 더이상 입을 것이 없을때
비로소 동네 세탁소로 향한다.
가는길에 몸매 괜찮은 여자 없나 두리번 거리며...
추억:
결혼후에 여자는 결혼식날의 추억에 빠진다.
남자는 총각시절의 그리움에 빠진다.
이름:
여자 셋이 친구사이이고 이름이 소영, 희진, 영자이면
서로 "소영", "희진", "영자"라고 불러준다.
남자 셋이 친구사이이고 이름이 길수, 정남, 영철이면
서로 "닭대가리", "X같은새끼", "변태"라고 불러준다.
계산:
남자끼리 식사를 하고 나면 서로 지갑을 꺼낸다.
여자끼리 식사를 하고 나면 서로 계산기부터 꺼낸다.
거울:
남자는 우연히 거울앞을 지나치면 자신의 모습을 본다.
여자는 반사되는 모든 물건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려한다. (거울, 숫가락, 창문, 대머리...)
통화:
남자는 중요한 약속이나 안부를 묻기 위해 가끔 전화를 사용한다.
여자는 하루종일 같이 지낸 친구사이에도 자기전에 3시간 이상 통화한다.
방향:
여자는 방향을 모를때 주유소에서 물어본다.
남자는 방향을 모를때 끝까지 헤매다가
기름이 떨어져서 주유소에 들르게 되면 물어본다.
장난감:
여자 아이는 장난감 갖고 노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11~12살정도가 되면 흥미를 잃는다.
남자는 죽을 때까지 장난감 갖고 노는걸 좋아한다.
커갈수록 장난감은 비싸지고, 바보스럽고, 실용성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미니TV, 카폰, 쥬스가는 기계, 그래픽 이퀼라이저,
병따는 로봇, 게임기, 밧데리가 들어있는 깜빡거리거나 소리나는 모든 기기
식물키우기:
여자가 매일 화분에 물주고 햇빛을 쬐여주면 아름다운 꽃이 핀다.
남자가 매일 화분에 물주고 햇빛을 쬐여주면 죽는다.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시간:
여자가 5분만이라고 했을 때는 농구경기의 마직막 5분과 같은 것이다.
타임아웃,선전,리플레이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대화:
남자는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논쟁거리부터 찾는다.
"그영화 영 꽝이던데?", "그녀석 깡패 아냐?", "미아리보다 천호동이 더 싸다니까"
여자는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공감대부터 찾는다.
침묵~~ "어제 그 음식점 잘하지?", "응" 침묵~~ "날씨 덥더라", "응" 침묵~~
친구:
여자들끼리 저녁을 함께 하며 수다를 떨면
사전에 나오는 모든 단어가 동원된다.
남자들끼리 저녁을 함께 하며 얘기를 할때는
20개정도의 낱말이면 족하다.
"소금좀 줘", "맥주 더 마실래?" 등등
소변:
남자는 화장실을 생리학적인 목적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여자는 화장실을 사회적인 목적으로도 사용한다.
남자는 화장실에서 서로 얘기를 하지 않는다.
아니 서로 쳐다보지도 않는다.
여자는 오래된 친구처럼 이얘기 저얘기 한다.
그리고, 남자는 절대로 식사중인 옆의 친구에게
"민수야, 화장실 같이 안갈래?" 라고 하지 않는다.
"의심과 미움을-버리라"
우리 마음이 의심과 악의로
가득 찼을 때는 남들이 우리를
달갑지 않게 여긴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런 부정적인 느낌은
우리의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쳐 불행을 가져올 때가 많지요-
이 생의 삶을 보더라도
우리가 이타적일수록 더 행복해지는 반면에
악의와 미움에 의해 행동할수록 더 불행해집니다.
어느 날 좋은 사람이 다가와
아무리 큰 사랑으로 문을 두드려도
내 마음이 닫혀 있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상대방보다 자기 마음을
여는 것이 먼저이며 마음의 문을 굳게
잠그는 가장 큰 병이 의심과 미움입니다.
사람 사이에 빚어지는
불화의 씨앗이 그 안에 있습니다.
만병의 원인이고 자기 불행의 시작이기도 하지요-
의심과 미움을 버리시고
늘 행복하십시요..
"시처럼 살고 싶다"
나는 시를 모른다.
그러나, 늘 가슴속에서 시를 원했다.
모닷불과 시.
시는 나에게 시를 모른다고 또 말했다.
각자가 안고 있는 시들이, 그 마음들이 어찌나 깊고 아득한지 나에게 네가 아는 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시를 말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나는 시를 지을 줄 모른다.
내가 자란 골세양바드레 대자연은 시 그 자체였다.
3가구, 어른 7명,아이 셋. 방학이면 아이 넷.
나의 어린 시절은 사람보다 이름 모를 꽃과 나무와 풀, 잠자리와 개구리,
가재, 휘헝청 밝은 달빛과 대화를 더 많이 했었다.
나의 기쁨과 속상함을 함께 한 것들도 대자연이 었다.
나에게 잠자리 채는 꽃과 잎이 무성한 싸리나무였고 같이 놀아 주고 변화하는걸 보여주었던 그 많은 올챙이,
잠자리, 나비등 수많은 곤충들은 도시에선 자연체험으로 만나고 있었고
내가 학교를 가기 위해 산을 하나 넘는 것은 등산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나는 시를 논할 수 있을 만큼 문학적이지 못하다.
울 그이가 말한 것처럼 현대시인들의 계보도 모르고 문학적 가치가 담긴 시를
한 소절씩이라도 읊조리지도 못한다.
시인이란 무엇인가. 문학적 가치를 담아야만 시인인가.
내가 느끼고 말하는 것도 시가 될 수 있나.
난 자연 속으로 가면 가슴이 벅차다.
풀잎을 따지 않고 나무를 흔들어 보지 않고 그냥 지나치면 나무들이 슬퍼하는 것 같다.
손바닥이 근질근질하다.
잎을 만지고 가지를 어르고 싶다.
청량산 갈림길에서 사과를 반쪽 잘라 먹으면서도 난 시를 읊조릴 수 있었다.
가슴속에 벅찬 기운들을 토해내고 싶었다.
그러나 부끄럽다.
쑥스럽다. 이것도 시인가 싶다.
아직 내가 사람도 나무 같다고 풀잎 같다고 믿지 못함 때문인가.
그냥 그랬었던 것과 인식함은 참으로 큰 차이가 있는 듯하다.
이제서야 그냥 그랬던 것을 인식한다.
내가 시를 원하고 한 줄 한 줄 독백처럼 음미함은 그때의 나무과 꽃들과 하던 대화를 계속함이었다.
난 늘 그냥 그랬었다.
늘 그랬었다.
그게 나였다.
눈물이 난다.
왜 눈물이 나는가.
나는 운다.
눈물을 닦는다.
나는 왜 우는가.
이젠 시인이고 싶다.
시인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아닌 그냥 그랬던 것처럼 늘 그러고 싶다.
난 다만 그 산속의 풀꽃이었을 뿐이다.
단지 그 풀꽃이고 싶다
-윤춘화-
첫댓글 고맙게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