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1부 7
그 이튿날, 리외는 당치도 않은 주장이라는 말을 들어가면서도 고집한 덕분으로 현청에 보건위원회를 소집할 수 있었다.
“시민들이 불안해하는 건 사실이죠.” 리샤르가 시인했다. “게다가 모든 것이 공론공담 때문에 과장되고 있어요. 지사가 나더러, ‘웬만하면 빨리 서두릅시다. 그러나 말이 안 나가게 해야지요’라고 하더군요. 어쨌든 지사는 속으로는 시민들이 공연히 법석을 떠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죠.”
베르나르 리외는 현청으로 가려고 카스텔을 자기 차에 태웠다.
“아시오?” 그가 리외에게 말했다. “현청 관내에는 혈청이 하나도 없답니다.”
“압니다. 의약품 저장소에 전화를 해보았어요. 소장은 대경실색을 하더군요. 파리에서 가져오도록 해야겠어요.”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미 전보는 쳤는데요.” 리외가 대답했다.
지사는 친절했으나 신경질적이었다.
“시작합시다, 여러분.” 그가 말했다. “사태를 요약해서 말씀드릴까요?”
리샤르는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의사들은 이미 사태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조치를 취할지 알아내는 게 문제였다.
“문제는,” 카스텔 노인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페스트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일입니다.”
두세 명의 의사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딴 사람들은 주저하는 듯이 보였다. 지사는 이 말을 듣더니 펄쩍 뛰면서 반사적으로 문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마치 그 어처구니없는 말이 복도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라도 할 태세로 문단속을 확인하려는 듯이 말이다. 리샤르가 자기 생각으로는 흥분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 문제는 사타구니에 병발증이 있는 열병이며, 가설이라는 것은 과학에서나 생활에서나 항상 위험하다는 것이 요지였다. 카스텔 노인은 누런 콧수염을 말없이 빨고 있다가 그 맑은 눈을 리외에게로 돌렸다. 그러고는 호의에 가득 찬 눈길을 참석한 사람들에게 돌려 자기는 그것이 페스트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물론 공공연하게 인정이 되는 마당에는 무자비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단언했다. 그는 자기 동료들이 꽁무니를 빼는 것도 사실은 그런 점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안심하돌고 페스트가 아니라고 인정하고도 싶었다. 지사는 흥분해서 어쨌든 그것은 좋은 연구 방법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중요한 것은,” 하고 카스텔이 말했다. “연구 방법이 좋으냐 나쁘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방법이 우리에게 무엇을 생각케 하느냐입니다.”
리외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의견을 물었다.
“장티푸스 같은 열병이지만, 멍울과 구토증이 동반됩니다. 저는 멍울 수술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병리 검사를 요청할 수 있었는데, 거기에 대해 연구소에서는 확실한 페스트균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좀 더 정확한 결과를 말씀드리면, 그래도 그 균의 어떤 특수한 변화들이 과거의 기록과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리샤르는 그것이 주저의 여지를 허용하다고 강조하고, 적어도 며칠 전부터 시작한 일련의 분석 시험의 통계 결과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다.
“어떤 세균이,”하고 잠시 잠잠하던 끝에 리외가 말했다. “사흘 동안에 비장을 네 배나 크게 하고 장간막의 림프샘으로 오렌지만 한 크기와 죽처럼 끈적끈적한 액체 상태로 만들었다면, 더는 주저할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전염의 중심은 점점 더 확대되고 있습니다. 병세가 전염되는 속도로 보아 만약 저지하지 못한다면 2개월 이내에 온 도시의 생명 반 이상이 위태롭습니다.그러므로 여러분이 그것을 페스트라고 부르건 전염성 열병이라고 부르건,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절반을 죽음에서 구하는 일입니다.”
리샤르는 무엇이고 어두운 면으로만 보아서는 안 되며, 게다가 자기 환자들의 가족이 아직 무사한 것을 보면 전염성도 확실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딴 사람들은 죽었는걸요”라고 리외는 지적을 했다. “그리고 물론 전염성이 절대적은 아니지요. 그렇지 않으면 환자의 끝없는 수학적 증가로 인구가 놀랄 정도 감소될 겁니다. 자꾸 더 어두운 면을 보자는 것이 아니라, 예방 조치를 취하자는 것이지요.”
그래도 리샤르는 그 병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병 자체가 종식되지 않는 한 법률에 규정된 엄중한 예방 조치를 취해야만 하는데, 그러자면 문제가 바로 페스트라는 것을 공공연하게 인정해야 하지만 그 점에 대한 확실성이 절대적이 아닌 이상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이 사태에 대한 결론을 내리려 했다.
“문제는,” 리외가 고집했다. “법률에 규정된 조치의 중대성이 아니라, 이 도시 인구의 반이 죽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 조치가 필요하냐 아니냐를 알자는 것입니다. 이 밖의 일은 행정적인 문제인데, 마침 현행 제도에는 그런 문제를 조절하기 위해 지사라는 직책을 두고 있습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지사가 말했다. “그러나 우선 여러분이 그것은 페스트라는 전염병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해주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시인하지 않더라도,” 리외가 말했다. “역시 그것은 시민의 반수를 죽일 위험성이 있습니다.”
리샤르는 신경절적으로 말을 가로챘다.
“사실 이 친구는 페스트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아까 한 병발 증상의 설명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요.”
리외는 병발 증상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본 대로를 말했던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자기가 본 것은 멍울과 반점과 헛소리를 하게 하는 고열과 48시간 이내의 임종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리샤르 씨는 이 전염병이 엄중한 조치 없이도 종식되리라고 주장한 데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말인가? 하고 따졌다.
리샤르는 주저하다가 리외를 보고 말했다.
“솔직하게 당신 생각을 말해주시오. 당신은 그것이 페스트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소?”
“잘못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병명 같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 문제입니다.”
“선생의 생각은 결국,” 지사가 말했다. “비록 이 질병이 페스트가 아니더라도 페스트가 발생했을 때 취하는 예방 조치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로군요?”
“꼭 어떤 의견을 말하라고 하시면, 사실 제 의견은 그렇습니다.”
의사들은 서로 상의를 했다. 마침내 리샤르가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병이 마치 페스트인 것처럼 행동을 하는 책임을 져야 됩니다.”
이 표현은 열렬한 동의를 얻었다.
“이것도 역시 당신의 의견이죠, 리외 씨?”하고 리샤르가 물었다.
“표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라고 리외는 말했다. “다만 우리는 시민 절반의 생명이 위태롭지 않은 듯이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만은 말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멀지 않아서 그렇게 될 테니까요.”
모두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가운데 리외는 물러 나왔다. 잠시 후, 튀김 기름 냄새와 오줌 냄새가 나는 변두리 동네에서 사타구니가 피투성이인 채로 죽을 듯이 소리치는 한 여인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