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일베 5.18 망동, 원인제공은 누가?
오주르디 2013.05.21 09:08
5.18 민주화항쟁이 수난을 겪고 있다. 5.18정신과 근간을 훼손하려는 극우세력의 책동 때문이다. 5월 들어 5.18의 정신과 역사성을 모독하고 희생된 영령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역사를 비틀어 보겠다는 저들의 책동
종편과 ‘일간베스트’(일베) 등이 5.18 망동의 주무대다. 이곳에서 자행된 게 가장 심각하고 조직적이다. 종편은 방송보도에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양식조차 무시한 채 5.18에 ‘종북 프레임’을 적용했다. 방송 전파를 통해 공공연하게 5.18은 북한의 개입된 폭동이라고 떠들었다.
<TV조선>은 “전남도청을 점령한 것은 북한 게릴라다” “5.18 자체가 김정일이 김일성에게 바치는 선물이었다”라는 황당한 얘기를 여과없이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다. 수백명의 북한군 특수부대가 광주에 들어와 광주시민을 선동해 유혈사태가 벌어진 것이라는 황당무개한 주장을 했다.
말을 맞춘 듯 <채널A>도 가세했다. 5.18 당시 광주에 남파됐다는 북한군 출신 탈북자를 인터뷰했다고 밝혔다. 남파된 북한군의 일부에 속해 동료 50명과 함께 황해도를 출발해 서해안에 도착했다고 주장한 이 남자는 “광주 폭동 때 참가했던 조장, 부조장은 (북한으로 돌아가) 군단 사령관도 되고 그랬다”고 말했다. <채널A>는 이 남자의 뒷모습만 잠시 화면에 내보냈을 뿐이다. 정작 방송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극우진형의 인사가 대신 출연했다.
‘사실’을 보도하지 않고 ‘소설’을 쓴 종편
황당하다. 엄청난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기사를 탈북자 단 한 사람의 말에 의지해 그것이 팩트인 양 보도할 수 있단 말인가. 종편의 주장이 황당한 ‘소설’에 불과하다는 증거는 부지기수다. 그 가운데 한 가지만 얘기해 보자.
광주 항쟁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목격한 이가 있다. 광주 시민군과 외신 인터뷰 통역을 맡았던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장이 바로 그다. 보수인사인데도 그의 증언은 종편의 주장과 정반대다. “광주 시민이 북한의 지시를 받고 협조했다는 건 광주시민을 모독하고 한 번 더 죽이는 것”이라며 오히려 “(시민군) 내부에서 수상한 사람을 잡아 맞서고 있던 군인들에게 백기를 들고 나가 넘겨주고 왔다”고 반박했다.
인 소장의 주장이 사실임을 뒷받침해주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1980년 5월 25일 광주시내에 배포된 ‘광주 민주시민 여러분께’라는 제목의 전단이다. 이 전단은 광주 항쟁의 목적을 ‘후손들에게 떳떳한 민주사회를 안겨 주도록 하자’는 데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김일성은 순수한 광주의거를 오판 말라” 는 등 북한의 경고망동을 경계하는 문구도 들어 있다.
'일베'의 5.18 망동, 고인이 된 전 대통령 모욕까지
‘일베’의 5.18 망동과 희생 영령들에 대한 모독은 도를 넘는다. 옛 전남도청 앞 상무관에 모셨던 희생 영령들의 관이 즐비한 광경을 홈쇼핑 장사로, 관을 택배 물건에 비유해 “홍어 포장 완료” “택배 장사 잘 된다”고 비아냥댔다. 입에 담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5.18 왜곡과 훼손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고 김대중 대통령을 모욕하는 사진이 ‘일베’에 게재돼 유포되는 일도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의 얼굴을 코알라 혹은 돼지처럼 보이는 동물의 모습과 합성한 뒤 모욕성 글과 함께 사이트 게시판에 올린 것이다. ‘일베 김대중 미친00 인증’이라는 글에는 “광주는 총기를 들고 있어난 하나의 폭동이야 그러니까 계엄군이기 때문에 계엄군이 진압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5.18 33주년 기념식이 열렸던 지난 18일 광주 DJ센터의 한 시설물 앞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일에 맞춘 망동도 잇따랐다. 홈플러스 대구 칠곡점 외주업체에 근무하는 직원이 노 전 대통령을 치킨희화화한 합성사진을 만들어 자신이 근무하는 영업점에 설치된 고객 시연용 스마트TV에 게시하고, 사진을 ‘일베’에 게시해 확산시켰다.
노 전 대통령의 얼굴에 합성시킨 치킨전문업체 로고는 트위터상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래오래’는 트위터에 “일베충(일베에서 활동하는 누리꾼을 비꼬는 말)을 튀겨달라는 주문이 자꾸 들어오는데 또래오래는 깨끗한 기름으로 100% 국내산 신선한 냉장닭만을 튀기며 벌레는 보이는 대로 박멸하는 위생적인 치킨입니닭”이라는 글들 올리기도 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꼬는 사진은 구미 홈플러스 가전 코너의 고객 시연용 컴퓨터 바탕화면에도 등장했다. 모두 ‘일베’ 회원의 소행인 것으로 밝혀졌다.
5.18단체와 야당 ‘강력 대처’ 선언...정부는 못 본 척
야당과 5.18단체들이 정면 대응하겠다고 나섰다.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광주시와 5.18기념재단은 5.18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시키고 폄훼하는 게시물과 사례를 수집해 분석한 뒤 게시자와 책임자들을 형사 고발하고 민사상의 책임도 물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강운태 광주시장은 “금주 말까지 자진해서 (5.18 왜곡·폄훼 게시물) 삭제하지 않은면 사법적 대응을 하겠다”며 경고했다. 광주시는 5.18기념재단, 5월단체, 시민사회단체, 민변 등과 ‘5.18역사왜곡대책위’를 구성해 법적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민주당도 5.18 훼손과 관련해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사법적, 정치적, 행정적인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5.18기념재단 측은 “종편 등이 노골적으로 왜곡보도하는 상황을 방관하는 정부도 책임이 있다”며 “정부의 태도를 지켜보고 6월부터 본격적인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베'에 게재돼 확산된 고 노무현 대통령 희화화 사진>
법조계에서는 광주시와 5.18단체, 유가족 등이 법적 대응을 할 경우 명예훼손, 유언비어 유포, 정보통신망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언론에 대한 규제와 통제를 잘 하는 정부다. 그런 정부가 5.18의 역사성을 뒤집는 야만적인 발언과 망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가재는 게 편이라서 그런가. 하지만 이번 사태는 정치적 문제도, 진보와 보수 등 이념의 문제도 아니다. 역사적 진실과 사자의 명예가 달린 문제다. 종편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방송통신위원회도 굳게 입을 닫고 있다.
‘일베’의 망동은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였다면 이미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적시는 물론 증오범죄로 처벌 받았을 것이다. 정부가 5.18 훼손 망동에 이토록 미온적인 이유가 뭘까. 못 본 척 고개를 돌리고 있는 정부의 태도에 의문부호를 찍지 않을 수 없다.
5.18 훼손, 원인제공자는 누굴까?
‘5.18 훼손’의 원인제공자는 누굴까. 다름 아닌 정부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며 5.18정신이 함축돼 있는 ‘5.18의 상징’을 도려내려 했다. 30년간 불러온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도록 막지 않았는가. 이를 기화로 5.18을 훼손하려는 극우세력의 움직임이 본격화 된 것이다.
5.18과 관련된 정부부처는 보훈처다. 민주화 운동을 기리고 보훈해야 할 책임이 있는 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거부 등 5.18을 말살하는 데 앞장서 왔다. 정권과 코드를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화운동을 죄다 ‘종북활동’으로 규정한 장본인이 박승춘 보훈처장이다. 이런 내용을 DVD에 담아 교육용으로 배포하기도 했다.
박 처장에게는 전두환 경호실장 안현태가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있다. 20~30대 젊은 층의 보수우경화를 위한 이념교육에 앞장서며 ‘안보장사’에 매진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런 ‘공’에 대한 대가일까. MB정부와 박근혜 정부 등 두 정권의 대를 잇는 신임을 얻어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5.18 훼손 망동’의 원인제공자로 정부를 지목할 수 있는 정황은 한 둘이 아니다. 가장 확고한 증거 중 하나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거부일 것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나. 5.18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이 모양이니 종편과 ‘일베’가 날뛰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