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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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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사진---^^ 스크랩 동백 숲길 트레킹의 명소, 지심도(`13.8.4)
가을하늘 추천 0 조회 151 13.09.09 06:4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여행지 : 지심도(只心島)

 

소재지 : 경상남도 거제시 일운면 옥림리

여행일 : ’13. 8. 4()

함께한 사람들 : 영진투어(소나무산악회)

 

특징 : 오늘은 제주 여행의 넷째 날로 여행이 끝을 맺는 날이다. 삼천포에 이른 새벽에 도착하여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거제도의 명품(名品) 관광지 중의 하나인 지심도에 들렀다. 지심도는 지세포에서 동쪽으로 6떨어진 해상에 있으며, 면적은 0.356, 해안선길이는 3.7, 최고점(最高點)97m이다. 조선시대 현종 때 주민 15세대가 이주하여 살기 시작하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군()의 요새(要塞)로서 일본군 1개 중대가 광복 직전까지 주둔하였다. 현재는 약 10여 가구, 2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지심도는 자그마한 섬이기 때문에 한 바퀴 돌아보는데 어른 걸음이면 한 시간도 채 안 걸린다. 그러나 섬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자꾸만 잡아챈다. 가는 곳마다 끊임없이 멋진 풍경을 내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산책(散策)하듯 섬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관람 순서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선착장에서 해안절벽, 포진지, 일주도로, 동백터널, 해안전망대 순이 바람직하다. 동선(動線)에 맞게 섬을 편안히 둘러볼 수 있는 코스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일제 때는 멀리서 보면 작은 보리알이 바다에 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보리섬, 일인들은 무기시마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심도(只心島)란 이름은 섬 모양이 마음 심()자를 닮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심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장승포항()으로 와야 한다. 지심도로 들어가는 배가 장승포항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1시간에 1대꼴(휴일 기준)로 다니는 유람선(遊覽船)은 장승포 선착장(船着場)을 떠난 지 불과 20여분이면 지심도 선착장에 도착하게 된다. 장승포선착장에서는 보이지도 않던 지심도였는데, 지심도선착장에 내려 바라본 거제도는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그만큼 거제도가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심도 트레킹은 섬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선착장을 벗어나 제법 가파른 길을 오른다. 선착장과 마을을 이어주는 유일한 길로서, 지심도에서는 유일하게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이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길을 오르다보면 첫 번째 방향을 꺾는 지점에 전망대(展望臺) 하나가 보인다.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바다 건너에 있는 거제도 외에는 별다른 볼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산비탈을 길게 가로지르듯 하며 난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면 곧 울창한 동백숲속으로 들어서게 된다. 팔뚝만한 굵기의 것부터 허벅지만한 것까지 수많은 동백나무가 바다와 하늘을 가리고 있다. 여러 번 눈을 슴벅이며 어둠에 적응한 뒤에야 그 숲 그늘 안의 풍경이 눈에 들 정도다. 그 풍경 속에 동백과 어우러진 민가(民家)가 나타난다. 민가라고 해도 우리가 흔히 보아오던 그런 민가는 아니다. 이곳 지심도의 주민들은 대부분 민박(民泊)집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여염집이라기보다는 음식점 분위기에 가까운 것이다. 이곳이 해안절벽과 일주도로(포진지)의 갈림길(이정표 : 마끝(해안절벽) 0.2Km/ 포진지 0.45Km/ 선착장 0.35Km)이다. 이곳에서는 오른편에 있는 해안절벽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동선(動線)이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갈림길에서 오른편 150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심도 자가발전소(이정표 : 해안절벽 0.2Km)에서 시멘트 길은 끝이 난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서 오솔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해안절벽(海岸絶壁)을 관광코스로 개발한지는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바닥에 깔아 놓은 야자수로 만든 망()이 아직까지도 새것인 보면 말이다. 100m 조금 넘게 내려서면 시야(視野)가 트이면서 바다가 내다보인다. 해안절벽에 이른 것이다.

 

 

 

 

 

해안절벽은 말 그대로 절벽(絶壁)이다. 가파른 절벽에 투박하게 솟은 바위와 그 사이로 부딪히는 파도가 나름대로 돋보이지만, 며칠 전에 들렀던 상족암 등 다른 이름난 관광지의 해안(海岸)보다는 한참이나 격이 뒤떨어진다. 그러나 동백나무 일색인 동백섬에서 만나게 되는 소나무들은 의외로 신선하다. 오랜 세월 해풍(海風)과 맞서 온 늙은 소나무군락이 먹먹한 감동을 주는 것이다. 섬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이곳은 '마끝'이라고도 불리며 KBS 주말 예능프로그램인 '12'에 방영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해안절벽에서 아까 지나왔던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포진지(砲陣地)로 향한다. 이곳 삼거리 부근이 지심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인 모양이다. 제법 많은 수의 민가가 보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민가의 가옥(家屋)들은 하나 같이 처마가 낮은 목조건물(木造建物)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낯선 풍경에 화들짝 놀라게 된다. 지심도에는 차량(車輛)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길가에 차가 세워져 있는 것이다. 비록 바퀴 세 개에 차량 번호판까지 없는 귀염둥이 차였지만 버젓한 차()였다. 이 조그만 섬에서 무엇 때문에 차량이 필요했는지는 끝내 풀지 못한 의문이었다.

 

 

 

 

 

마을을 지나고 나면 국방과학연구소앞에서 사거리(이정표 : 포진지 0.15Km/ 해안선전망대 1.3Km/ 선착장 0.75Km)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오른편은 국방과학연구소, 왼편은 해안선전망대로 가는 길이다. 포진지로 가려면 맞은편에 보이는 흙길로 들어서야 한다. 그런데 이 조그마한 섬에 무슨 이유로 포진지가 구축되었을까? 사거리에서 포진지는 금방이다. 지심도는 아름다운 풍광(風光)만큼이나 아픈 역사(歷史)를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제(日帝) 강점기 말(强占期 末), 태평양전쟁에 혈안이 된 일본군이 해안방어(海岸防禦)를 위해 섬 곳곳에 군사시설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덩그렁 남아 있던 탄약저장고는 현재 지심도 역사교육관(歷史敎育館)’으로 쓰고 있다. 어두컴컴한 탄약고에 들어가자 저절로 불이 켜진다. 벽면에는 지심도의 역사에서부터 생활상과 포진지가 언제 설치되었는지 등에 대해 자세히 적혀 있다. 지심도의 아픈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놓은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다른 나라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찾는 이들에게 경각심(警覺心)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 앞 사거리로 되돌아와 해안선전망대로 향한다. 300조금 못되게 걸으면 하늘이 활짝 열리면서 넓은 초지(草地)가 모습을 드러낸다. ‘활주로(滑走路)’라 불리는 곳이다(이정표 : 망루 1.2Km/ 포진지 0.4Km). 일본군이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만든 간이비행장(簡易飛行場)인 것이다. 일본군이 이곳 지심도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가가 실감나는 순간이다. 이곳은 지심도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덕분에 이곳에서는 남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 주민들은 이곳에다 흔들의자와 망원경을 갖춘 예쁜 전망대(展望臺)를 조성해 놓았다.

 

 

 

 

활주로 구간을 지나자 동백나무가 만들어 놓은 숲의 터널로 들어선다. 이 구간이 지심도 트레킹의 백미(白眉)이다. 동백터널로 들어서면 더 이상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바다도 보이지 않는다. 빽빽하게 들어선 동백나무는 햇빛 한 점 스며드는 것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어렵게 나뭇잎 사이를 뚫고 스며든 빛의 조각들이 동백잎들과 함께 어우러지며 장관을 연출한다. 또 하나 이 구간이 좋은 점이 있다. 여태 걸어왔던 길들 모두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동백길이었지만, 대부분 포장이 되어 있어 걷는 맛이 덜했다. 그러나 동백터널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길은 비포장 흙길. 터덜터덜 걸을 때마다 먼지가 날린다. 설렁설렁 걸으며 지심도의 매력을 오롯이 가져갈 수 있는 길인 것이다

. 지심도는 예로부터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섬이라 불렸다. 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울창한 동백나무 숲이다. 섬 전역(全域)에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소나무 등 37종에 이르는 수목(樹木)과 식물들이 자란다고 하지만, 눈에 띄는 것은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닐 것이다. 하긴 지심도는 동백나무 숲이 전체 면적의 607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동백섬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릴 정도로 동백나무 천지인 것이다. 동백나무는 12월 초순부터 4월 하순까지 꽃을 피운다. 3월쯤에 찾아온다면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을 구경할 수가 있을 것이다. 거기다가 3월쯤이면 바닥에 시체처럼 누워있는 낙화(落花)들을 보는 재미도 한몫을 한다. 동백꽃은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도 곱지만, 바닥에 떨어진 후에도 처연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동백숲을 벗어나면 갈림길(이정표 : 해안선전망대 0.3Km/ 선착장 1.75Km/ 선착장(우회길) 1.15Km, 육박나무군락지 0.6Km)이 나온다. 왼편으로 난 길이 선착장으로 가는 우회로이기 때문에 해안선전망대를 둘러보고 난 후, 선착장으로 돌아나갈 때에는 이 길을 이용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갈림길에서 조금만 더 걸으면 오른편 산비탈을 파서 만든 콘크리트 구조물(構造物) 하나가 보인다. 일제 때 서치라이트(search-light)보관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콘크리트 구조물과 산비탈 사이에는 어두운 통로가 나있다. 들어가 보라는 듯 화살표 표시가 되어 있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다. 조금만 뚱뚱해도 결코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비좁기 때문이다. 날씬한 아가씨들 몇 명이 들어갔다 나오면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마치 자랑이라도 하려는 것 같이 경쾌하다.

 

 

 

갈림길에서 300m쯤 더 가면 오른편에 나무로 만들어진 데크(난간)가 나타난다. 바로 해안선전망대이다. 이곳에서 바라본 지심도 남쪽 절벽(絶壁)이 절경이다. 활처럼 휘어져 바다로 튀어나온 해벽(海璧)은 투구마냥 빼곡한 해송(海松)을 머리 위에 뒤집어쓰고 있다. 해안전망대에서는 지심도의 해식애(海蝕崖 : 해식과 풍화작용에 의해 해안에 생긴 낭떠러지)를 뚜렷이 관찰할 수 있다. 파도와 조류에 의해 깎인 절벽이 위태롭다. 곳곳에 해식(海蝕)동굴을 만들기도 했다.

 

 

 

망루로 가는 길에는 깃대 하나를 볼 수 있다. 일본군이 일장기(日章旗)를 게양했던 받침대라고 한다. 또 하나의 아픔의 현장이다.

 

 

 

해안선전망대에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나무계단이 나오고, 짧은 나무계단을 밟고 내려서면 망루에 이르게 된다. 아마 한자음으로는 望樓(망루)’라고 쓸 것 같은데, 누각(樓閣)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전망(展望) 좋은 누각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지 않았나 싶다. 망루는 까마득한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조망(眺望)은 일품이다. 망루에 서면 망망대해(茫茫大海)가 일망무제(一望無題)로 펼쳐진다. 넘실거리는 파도에 몸을 내맡기고 있는 어선(漁船)들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심도의 민가(民家)들 모두가 능선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동쪽이 큰 바다인데다 섬이 워낙 작다 보니, 능선의 동쪽은 태풍(颱風)이라도 불 경우에는 배겨날 수가 없을 것이 불을 보듯이 뻔하기 때문이다. 망루에서 길은 끝이 난다. 길의 끝에서 만난 바다는 광활하기만 하다. 과연 그 바다는 여행자의 아쉬움을 아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시리도록 푸르기만 할 따름이다.

 

 

 

 

 

해안전망대를 돌아보고 선착장으로 돌아갈 때에는 이미 지나온 동백숲을 거치지 말고 갈림길에서 선착장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게 낫다. 이 길에서는 아름다운 동백숲은 물론 멋스러운 대숲과 이제는 아담한 카페로 단장한 일본군 전등소장의 사택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도 역시 동백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숲을 빠져나오자 시야(視野)가 확 트인다. 전망 좋은 장소에는 집 한 채가 조용히 앉아있다. 그런데 그 집의 외양(外樣)이 어쩐지 낯설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는 보기 힘든 건물형태인 것이다. 옛날 초등학교에 다닐 때 보았던 학교의 관사(官舍)를 닮은 것을 보면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에 지어진 건물이 아닐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군 전등소 소장 사택이었던 건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은 지 70년이 훨씬 더 넘었을 텐데, 어떻게 저리 관리를 잘 하였을까. 건물 마당에 파라솔(parasol)를 펴 놓고 커피와 음료를 팔고 있기에 잠깐 쉬었다가기로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건물의 외양만큼이나 낯선 친절을 보았다. 마침 식수(食水)가 떨어졌기에 500페트병(PET)에 물을 채워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추호도 망설임 없이 병을 받아 간다. 그리고 그녀는 채워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물을 가득 채워왔다. 그녀가 가지고 온 망고 스무디(smoothie)’도 무척 시원하면서도 감미로웠다. ‘먹는 행복이라는 말이 떠오를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그녀의 고운 마음이 가득 담겨있었기 때문이리라. 참고로 전등소는 일본군 기지에 전력(電力)을 공급하고, 적함(敵艦)을 찾는 탐조등을 관리하던 부서였다고 한다.

 

 

 

 

전등소장 사택을 나서면 동백나무 숲과 왕대밭이 번갈아가며 나온다. 왕대밭은 비록 면적은 넓지 않지만 대나무들은 제법 굵고 실하다. 해풍(海風)이 쉴 새 없이 불어대며 댓잎을 때리자, 서로 부대끼며 노래를 한다. 그리고 이곳의 동백나무 숲 역시 울창하다. 동백나무는 50년을 묵어도 그 굵기가 손목 두 개 합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의 동백나무는 사람 몸통만 한 것들까지도 보인다. 그렇다면 수백 년은 묵었지 않을까 싶다. 길을 가다보면 몽돌해수욕장 내려가는 길 외에도 해안(海岸) 쪽으로 내려가는 길 하나가 더 보인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선착장으로 향한다. 입구에 낚시꾼들 외에는 들어오지 말라는 안내판이 보이기 때문이다. 반반한 돌로 바닥을 깐 길을 따라 얼마간 더 걸으면 트레킹을 시작할 때 만났던 삼거리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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