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깊은 집
― 「추성부도秋聲賦圖」* 속을 거닐다
윤정구
단원이 죽기 전에 그렸다는 추성부도에 달이 떴다
(무성해진 것들을 숙살肅殺하러 온 가을바람 소리다 구양수歐陽修가 동자를 불러 누가 왔는가 기척을 살피게 하니 별과 달은 밝고 맑은데 소리는 적막한 나무들 속에서 난다 한다 슬프다 가을 나무여 어찌 죽음의 엄혹함을 견디려는가…*)
구양수가 본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나,
예순한 살 단원이
700년 전 구양수의 쓸쓸한 마음을 그린 추성부도에서
찌륵찌르르륵 풀벌레 소리가
졸고 있는 동자의 달빛마당에 가득 차 출렁거리는 사이
다시 300년이 흘러갔다
죽은 세상을 오가는 귀신들에게도 1,000번의 가을이 눈 깜짝할 새에 흘러간다
엄혹한 것은 가을바람뿐이 아니다.
숙살을 되풀이하여 견디며 나무는 자라서 숲을 이루고
그 아픈 순간을 환히 비추기 위하여 다시 만삭의 보름달은 떠오른다
* 송(宋)나라의 구양수(歐陽修)가 가을을 읊은 한시 「추성부」를 읽은 단원이 그대로 그림으로 옮겼다. 단원이 죽던 해 마지막 겨울이었다.
윤정구
1994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한 뼘이라는 적멸』 외, 시선집 『봄 여름 가을 겨울, 일편단심』, 산문집 『한국 현대 시인을 찾아서』. <시천지> <현대향가시회>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