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1. 기본 문자4.2. 다중 문자 및 확장 문자4.3. 성조 부호가 붙은 글자들까지 포함한 전체 목록
5. 컴퓨터 입력6. 유니코드7. 유니코드 이전의 문자 코드: VISCII
쯔꾸옥응으(Chữ Quốc Ngữ / 字國語)는 베트남어를 표기하기 위해 고안된, 로마자와 다이어크리틱을 이용한 문자체계.
원래 베트남어를 표기하기 위한 문자로는 쯔놈(字喃)이 있었으나 표의 문자 특성상 이는 사용하기에 불편했다. 16세기 포르투갈 왕국에서 온 가톨릭 예수회 선교사들은 선교를 위해 후배 선교사들에게 베트남어를 가르치면서 라틴 문자로 대강 표기하여 가르치곤 했는데, 프랑스 출신 후배 알렉상드르 드 로드가 그간의 표기 관행을 집대성하고 체계화하여 쯔꾸옥응으를 오늘날의 틀로 정비했다. 이로 인해 쯔꾸옥응으는 nh, ch, gi, x 등의 음가에서 중세 포르투갈어와의 유사성이 엿보인다. 쯔꾸옥응으가 고안된 이후에도 베트남에서는 일단 고유문자인 쯔놈을 사용했으나, 프랑스 식민지배 시절 1885년 청프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는 베트남에서 프랑스어 공용화를 원활하게 추진하는 수단으로 쯔꾸옥응으를 보급했다.
쯔꾸옥응으 명칭의 한자 자국어(字國語)는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처럼 수식언이 피수식언 앞에 놓이는 언어의 문법대로 바꾸면 國語字(국어자)가 된다. 베트남어의 특성상 꾸밈받는 말인 피수식언(字, 자)이 꾸밈말인 수식언(國語) 앞에 오기 때문이다. 이는 나라 이름인 '베트남(越南, 월남)'도 마찬가지로, 꾸밈받는 말이 뒤로 가는 한국어식으로 맞추면 남녘의 월나라라는 '남월(南越, 남베트:남비엣)'이 된다. 실제로 베트남/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남월'을 거꾸로 '월남'이라고 쓴 것이 현 국호의 기원이다.
쯔꾸옥응으의 원류는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수회가 마카오를 거쳐 인근 국가로 가톨릭을 전파하던 시절, 프란시스쿠 드 피나(Francisco de Pina, 포르투갈인), 알렉상드르 드 로드(Alexandre de Rhodes, 프랑스인)가 신약 성경을 베트남어로 번역하기 시작한다. 남프랑스의 교황령이었던 아비뇽 출신으로서 평생 프랑스어보다는 포르투갈어와 이탈리아어를 많이 쓰며 살았던 인물이고 고향은 남프랑스의 지방어인 프로방스어권이었던 데다 포르투갈 왕국을 통해 선교활동을 벌인 인물이라 프랑스인이라 규정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면이 있다. 그러나 파리외방전교회의 실질적인 설립자였고 그의 행적과 업적은 훗날 여러 가지 의미로 프랑스의 베트남에 대한 영향을 크게 키웠기 때문에 그냥 프랑스인으로 여겨진다.
당시의 베트남어는 한자와 쯔놈으로 표기했지만 읽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했다. 한 사제의 말에 의하면 베트남 남부의 2만 명 중 한자의 존재를 아는 베트남인은 100명 정도에 불과했고 그 100명 중 한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주변 캄보디아와 참파, 라오스, 태국은 물론이고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미얀마 또한 자체적인 표음 문자가 있었다..필리핀과 인도네시아의 경우에는 식민 지배기를 거치면서 라틴 문자로 대부분 교체되었고, 각 지역별로 쓰이던 표음 문자들(자바 문자, 발리 문자, 바이바이인 문자 등)들은 학교에서 배우기는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장식용이나 학술 용도 같이 제한적인 용도로 쓰는 정도가 아니면 쓰이지 않는다.
반면 베트남은 자체적인 표음 문자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글을 통한 전도가 힘든 것은 당연지사였다. 결국 선교사들은 베트남어-포르투갈어-라틴어 사전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후 레 왕조 시절 알렉상드르 드 로드 신부가 추방당하여 로마로 돌아간 후 베트남 복귀를 위해 왕실과 교회의 높으신 분들을 상대로 온갖 영업을 뛰는 과정에서 서양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알렉상드르 드 로드 신부는 추방 이후 다시는 베트남어 대화의 기회를 얻지 못했음에도 여생을 베트남 선교, 베트남어 연구와 라틴 문자 표기법 체계화에 헌신한다. 비록 말년을 페르시아에서 보내야 했지만 그의 뜻을 이어받은 신설 파리외방전교회 프랑스인 선교사들이 시암에 파견되어 신학교를 세우고 동남아 선교를 이어가며 그 불씨를 지키게 된다.
알렉상드르 드 로드 신부는 유럽에서 베트남 선교사업 재건을 도모했지만, 교황청에서 예수회에게 아르메니아 선교를 명하는 바람에 예수회 수사들과 함께 아르메니아 상인들이 많은 페르시아 도시 이스파한으로 파견되었다. 교황청과 예수회와 포르투갈 군주들에게 열심히 베트남 선교 재개를 요청했지만 거절 당하자 그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맘에 안 들어하던 루이 14세에게 선교사업을 요청했지만, 당시 프랑스의 실권자인 쥘 마자랭 추기경 역시 내정을 돌보느라 해외 선교사업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고 단지 따로 프랑스인 사제들을 설득하여 공부시키는 데에 그쳤다. 그러다 교황청과 예수회로부터 아르메니아 선교 지시가 떨어지는 바람에 까라면 까 순명의 의무에 얽매여 있는 수도사제 신분으로서 다시 낯선 땅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선종했다. 그러다가 마자랭까지 세상을 떠난 후 절대왕정다운 권력을 잡은 루이 14세가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해외 선교 사업에 큰 돈을 지원하면서 파리외방전교회는 다시금 태국을 거점으로 베트남 등 주변국에서 선교를 이어가게 된다.
그리고, 훗날 응우옌 왕조가 호이안을 개방하면서 서구와 교역하고 유럽, 특히 프랑스의 파리외방전교회 가톨릭 선교사들이 베트남 남부에 들어오게 된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시기에는 프랑스 정부가 기초 교육을 실시하게 된다. 프랑스는 베트남 간행물인 자딩바오를 출간하고 이 신문을 라틴 문자로 발행하였다. 여기서 사용된 문자를 "꾸옥응으(國語)"라 명명했고 쯔꾸옥응으라는 명칭이 유래된다. 베트남어 라틴 문자를 쯔꾸옥응으라 부르는데 이는 쯔(글자) 꾸옥(나라) 응으(언어) 곧 "나라말의 글"이라는 의미이다.
자딩바오의 편집장이던 쯔엉 빈 키는 베트남인들에게 라틴 문자로 글쓰기를 독려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라틴 문자의 보급을 독려했는데, 누구라도 3개월이면 쓸 수 있는 쉬운 문자이고 베트남어에 적합하다는 본인의 신념 때문이었다. 20세기에는 프랑스에 의해서 베트남 북부까지 정착되었고 기초 교육에 사용된다.
이후 1·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을 겪고 난 뒤 북부 발음인 하노이 방언을 기준으로 표준 베트남어 발음이 정착된다. 베트남어의 쯔꾸옥응으는 원래 16-17세기의 베트남어 남북 방언을 적당히 절충하여 중립적으로 철자법을 정한 것인데 수 세기 후의 북부 발음이 표준화되면서 발음과 철자의 괴리가 커졌다. 예를 들면 d, gi의 발음은 /z/인데 원래는 각각 /j/와 /z/였다.
게다가 식민 초기에는 서양 열강에서 들어온 문자라 해서 민족주의자들은 이 문자의 사용에 부정적이었으나, 그렇다고 통일성도 없고 지역별로 편차 역시 컸던 한자와 쯔놈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애매했다. 이러한 문제 의식은 프랑스 치하 응우옌 왕조에서 1910년 실시했던 과거시험[1] 문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대 과거시험 수험서에는 이 문제에 대한 모범답안이 올라와 있는데, '통일된 베트남어 관화'를 만들자는 내용이다. 이는 베트남 전쟁을 거쳐 베트남이 통일되고 나서야 비로소 실현된다.
어차피 쯔놈도 베트남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신들과 치고받고 싸우던 옛 종주국이자 이웃 나라인 중국의 글자인 한자가 기원이라 피장파장이었다. 결국 쯔꾸옥응으가 쯔놈보다 사용하기 편하고 문맹 퇴치에 유리하다는 점이 인정되어 민족주의자들도 점차 사용을 권장하게 된다.
덕분에 베트남어에서 외국 고유 명사는 로마자 표기 그대로 들여오는 편리함이 생겼다. 다만 쯔꾸옥응으의 표기법에 따른 소리와 외국 고유 명사 로마자 표기의 소리가 다르므로 쯔꾸옥응으의 쓰임새로 약간 바뀌게 된다.
그래서 한국인, 일본인의 한자 이름은 20세기 이전에 태어난 사람을 빼곤 베트남어식이 아니라 현지 표기 그대로 가져온다. 이는 한국에서 중국의 신해혁명 이전 인물들을 한국 한자음으로 부르고 이후 인물들을 중국어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쓰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반면에 중국인 이름은 베트남식으로 쓴다.
예를 들어 홍길동의 경우는 20세기 전(쯔놈을 쓰던 시절)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Hồng Cát Đồng"(홍깟동)이라고 한다. 반면 프로게이머 임요환이나 축구 감독 박항서는 20세기 뒤(쯔꾸옥응으 도입 뒤)의 인물이므로 "Lâm Dao Hoán"(럼자오호안럼ᅀᅶ환)이나 Phác Hằng Tự(팍항뜨)라고 하지 않고 "Lim Yo-hwan"이나 "Park Hang-seo"처럼 본인들이 사용하는 로마자 표기 그대로 쓴다. 실제 베트남어 위키백과에서 Phác Hằng Tự를 검색하면 Park Hang-seo로 리다이렉트된다.
일본인은 20세기 이전의 인물도 헵번식 로마자 표기법으로 표기한다. 그러나 중국인 이름은 대체로 베트남식으로 쓰고 읽는다. 예를 들어,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의 이름을 베트남어로 표기할 땐 중국어 로마자 표기인 "Xi Jinping"으로 쓰지 않고 "Tập Cận Bình(떱껀빈)"으로 적는다. 자세한 것은 한자문화권 고유명사 표기 참고.
띄어쓰기가 있지만 대부분의 언어들과는 달리 단어별로 띄어 쓰는 게 아니라 음절별로 띄어 쓴다.
트팝(Thư Pháp, '서법')이라는 전통 서예에서도 사용되며, 붓글씨로 로마자를 적는 등의 모습이 기묘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현대 베트남에서는 한문이나 한자, 쯔놈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매우 드물며, 쓸 수 있는 사람은 더욱 희귀하다. 베트남 전쟁 시기만 해도 노인들은 한자를 익힌 사람이 꽤 있어서 현지에서 한국군과 필담으로 소통하곤 했다. 현재는 한자의 수요마저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생긴 새로운 풍습이다. 새로운 글자가 외국에서 들어왔다지만 이미 150년이나 지난 일인 데다 한국에서도 조선 후기에 들어온 감자나 고구마 역시 한식의 일부라고 인정해 주는 것을 생각한다면 라틴 문자일지라도 전통 문자처럼 취급받는 것도 그렇게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 기원이 포르투갈 선교사들의 표기에 있기 때문에 포르투갈어의 로마자 발음과 비슷하다 보니 다른 아시아 언어의 로마자 철자법과는 차이가 매우 크며 직관성도 떨어진다. 예를 들어 /k/ 발음을 내는 c나 q가 쓰이고, g가 i나 e 앞에서 /z/로 바뀌며, /f/ 발음을 f 그대로 적지 않고 ph로 적는다.
하노이 방언 발음을 기준으로 서술하며, 분홍색 칸의 문자는 외래어 표기시에만 사용되는 문자이다. 노란색 칸의 문자는 외부 외래어 표기다.
| 라틴 문자 (대문자/소문자) | 명칭 | 발음 |
| A a | 아 (a) | /a/ |
| Ă ă | 아 (á) | /ă/ |
| Â â | 어 (ớ) | /ɤ/ |
| B b | 베 (bê) | /ɓ/ |
| C c | 쎄 (xê) | /k/ |
| D d | 제 (dê) | /z/ |
| Đ đ | 데 (đê) | /ɗ/ |
| E e | 애 (e) | /ɛ/ |
| Ê ê | 에 (ê) | /e/ |
| F f | 엡 (ép) | /f/ |
| G g | 저 (giê) | /ɣ/, /z/ |
| H h | 핫 (hát) | /h/ |
| I i | 이 (i ngắn) | /i/ |
| J j | 지 (gi) | /z/ |
| K k | 까 (ca) | /k/ |
| L l | 러 (el-lờ) | /l/ |
| M m | 머 (em-mờ) | /m/ |
| N n | 너 (en-nờ) | /n/ |
| O o | 오 (o) | /ɔ/ |
| Ô ô | 오 (ô) | /o/ |
| Ơ ơ | 어 (ơ) | /ʌ̆/ |
| P p | 뻬 (pê) | /p/ |
| Q q | 꾸이 (cu/quy) | /k/ |
| R r | 러 (e-rờ) | /z/ |
| S s | 앳 (ét-sì) | /s/ |
| T t | 떼 (tê) | /t/ |
| U u | 우 (u) | /u/ |
| Ư ư | 으 (ư) | /ɨ/ |
| V v | 베 (vê) | /v/ |
| W w | 베 둡 (vê đúp) | /w/ |
| X x | 잇씨 (ích-xì) | /s/ |
| Y y | 이 자이 (i dài) | /i/ |
| Z z | 젯 (giét) | /z/ |
4.3. 성조 부호가 붙은 글자들까지 포함한 전체 목록[편집]
F/f, J/j, W/w, Z/z도 포함해서 모두 93글자이며, 대문자와 소문자를 다른 글자로 본다면 186글자이다.
로마자에 기반한 쯔꾸옥응으를 쓰므로 QWERTY 레이아웃에 기반한 키보드를 쓴다. 타자기 시절에는 프랑스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AZERTY에 기반한 키보드를 사용했으나 컴퓨터 보급에 맞춰 QWERTY로 갈아탔다. 성조 부호는 숫자 키 일부분에 할당되어 있으며, 유럽 언어들처럼 오른쪽 Alt 키를 Alt Gr이라고 하여 이걸 누르고 숫자 키를 눌러 입력하게 된다. 하지만 이게 귀찮다. 쯔꾸옥응으의 다이어크리틱은 다른 문자 체계에 비해 매우 많이 나오고 그 종류도 매우 방대하다. 때문에 많은 베트남 사람들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한어병음이나 가나를 입력하고 IME를 통해 한자로 변환하듯이 그냥 로마자로 죽 적은 다음 IME의 도움을 받아 성조 기호를 붙인다.
유니코드에서 쯔꾸옥응으 문자들은 다음 코드 포인트들에 배당돼 있다. (연한 갈색 배경(■, 다크 모드에서는 황토색)은 쯔꾸옥응으와 상관없는 문자가 배당된 코드 포인트를 나타낸다.)
| U+ | 0 | 1 | 2 | 3 | 4 | 5 | 6 | 7 | 8 | 9 | A | B | C | D | E | F |
| 002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003 | 0 | 1 | 2 | 3 | 4 | 5 | 6 | 7 | 8 | 9 | : | ; | < | = | > | ? |
| 004 | @ | A | B | C | D | E | F | G | H | I | J | K | L | M | N | O |
| 005 | P | Q | R | S | T | U | V | W | X | Y | Z | [ | \ | ] | ^ | _ |
| 006 | ` | a | b | c | d | e | f | g | h | i | j | k | l | m | n | o |
| 007 | p | q | r | s | t | u | v | w | x | y | z | { | | | } | ~ | |
| 00C | À | Á | Â | Ã | È | É | Ê | Ì | Í | |||||||
| 00D | Ò | Ó | Ô | Õ | Ù | Ú | Ý | |||||||||
| 00E | à | á | â | ã | è | é | ê | ì | í | |||||||
| 00F | ò | ó | ô | õ | ù | ú | ý | |||||||||
| 010 | Ă | ă | ||||||||||||||
| 011 | Đ | đ | ||||||||||||||
| 012 | Ĩ | ĩ | ||||||||||||||
| 016 | Ũ | ũ | ||||||||||||||
| 01A | Ơ | ơ | Ư | |||||||||||||
| 01B | ư | |||||||||||||||
| 1EA | Ạ | ạ | Ả | ả | Ấ | ấ | Ầ | ầ | Ẩ | ẩ | Ẫ | ẫ | Ậ | ậ | Ắ | ắ |
| 1EB | Ằ | ằ | Ẳ | ẳ | Ẵ | ẵ | Ặ | ặ | Ẹ | ẹ | Ẻ | ẻ | Ẽ | ẽ | Ế | ế |
| 1EC | Ề | ề | Ể | ể | Ễ | ễ | Ệ | ệ | Ỉ | ỉ | Ị | ị | Ọ | ọ | Ỏ | ỏ |
| 1ED | Ố | ố | Ồ | ồ | Ổ | ổ | Ỗ | ỗ | Ộ | ộ | Ớ | ớ | Ờ | ờ | Ở | ở |
| 1EE | Ỡ | ỡ | Ợ | ợ | Ụ | ụ | Ủ | ủ | Ứ | ứ | Ừ | ừ | Ử | ử | Ữ | ữ |
| 1EF | Ự | ự | Ỳ | ỳ | Ỵ | ỵ | Ỷ | ỷ | Ỹ | ỹ |
유니코드 이전에 베트남어 표기용으로 VISCII라는 확장 아스키 코드가 있었는데, 구조가 조금 특이하다. 위에서 보았듯이 쯔꾸옥응으는 글자 위아래에 다이어크리틱을 붙이는데, 베트남어를 온전히 표기하기 위해서는 아스키에 추가로 134글자가 더 필요하다. 그래서 베트남어용 확장 아스키 코드를 만들 때 128(0x80)~255(0xFF) 영역은 모두 베트남어에서 쓰이는 글자들로 채우고, 아스키에서 사용 빈도가 낮을 만한 제어 문자 6개(STX, ENQ, ACK, DC4, EM, RS)를 베트남어에서 사용 빈도가 낮은 대문자들(Ẳ, Ẵ, Ẫ, Ỷ, Ỹ, Ỵ)로 바꿔서 134글자를 모두 집어넣었다. 다만 128(0x80)~255(0xFF) 영역을 모두 베트남어 글자들로만 채우다 보니, 기호 등 다른 문자들이 들어갈 자리가 사라져 버렸다.
구체적으로는 이런 구조이다.
| 0x | 0 | 1 | 2 | 3 | 4 | 5 | 6 | 7 | 8 | 9 | A | B | C | D | E | F |
| 0 | NUL | SOH | Ẳ | ETX | EOT | Ẵ | Ẫ | BEL | BS | HT | LF | VT | FF | CR | SO | SI |
| 1 | DLE | DC1 | DC2 | DC3 | Ỷ | NAK | SYN | ETB | CAN | Ỹ | SUB | ESC | FS | GS | Ỵ | US |
| 2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3 | 0 | 1 | 2 | 3 | 4 | 5 | 6 | 7 | 8 | 9 | : | ; | < | = | > | ? |
| 4 | @ | A | B | C | D | E | F | G | H | I | J | K | L | M | N | O |
| 5 | P | Q | R | S | T | U | V | W | X | Y | Z | [ | \ | ] | ^ | _ |
| 6 | ` | a | b | c | d | e | f | g | h | i | j | k | l | m | n | o |
| 7 | p | q | r | s | t | u | v | w | x | y | z | { | | | } | ~ | DEL |
| 8 | Ạ | Ắ | Ằ | Ặ | Ấ | Ầ | Ẩ | Ậ | Ẽ | Ẹ | Ế | Ề | Ể | Ễ | Ệ | Ố |
| 9 | Ồ | Ổ | Ỗ | Ộ | Ợ | Ớ | Ờ | Ở | Ị | Ỏ | Ọ | Ỉ | Ủ | Ũ | Ụ | Ỳ |
| A | Õ | ắ | ằ | ặ | ấ | ầ | ẩ | ậ | ẽ | ẹ | ế | ề | ể | ễ | ệ | ố |
| B | ồ | ổ | ỗ | Ỡ | Ơ | ộ | ờ | ở | ị | Ự | Ứ | Ừ | Ử | ơ | ớ | Ư |
| C | À | Á | Â | Ã | Ả | Ă | ẳ | ẵ | È | É | Ê | Ẻ | Ì | Í | Ĩ | ỳ |
| D | Đ | ứ | Ò | Ó | Ô | ạ | ỷ | ừ | ử | Ù | Ú | ỹ | ỵ | Ý | ỡ | ư |
| E | à | á | â | ã | ả | ă | ữ | ẫ | è | é | ê | ẻ | ì | í | ĩ | ỉ |
| F | đ | ự | ò | ó | ô | õ | ỏ | ọ | ụ | ù | ú | ũ | ủ | ý | ợ | Ữ |
[1] 베트남은 무려 1919년까지 과거 제도가 존재했다.[2] 표의 문자인 한자에 익숙해진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음만 나타내는 표음 문자의 사용법은 마치 '東(동, /tuŋ/ 평성)'의 음가를 설명하기 위해 '德(덕, /tək/ 입성)'의 /t/ 성모와 '紅(홍, /ɣuŋ/ 평성)'의 /uŋ/ 운모 및 평성 성조를 합쳐서 설명하는 반절법(反切法)의 일종으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같은 표음 문자인 한글도 '반절'이라고 불린 역사가 있으며 한글 반절표 역시 비슷한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4.1. 기본 문자4.2. 다중 문자 및 확장 문자4.3. 성조 부호가 붙은 글자들까지 포함한 전체 목록
5. 컴퓨터 입력6. 유니코드7. 유니코드 이전의 문자 코드: VISCII
쯔꾸옥응으(Chữ Quốc Ngữ / 字國語)는 베트남어를 표기하기 위해 고안된, 로마자와 다이어크리틱을 이용한 문자체계.
원래 베트남어를 표기하기 위한 문자로는 쯔놈(字喃)이 있었으나 표의 문자 특성상 이는 사용하기에 불편했다. 16세기 포르투갈 왕국에서 온 가톨릭 예수회 선교사들은 선교를 위해 후배 선교사들에게 베트남어를 가르치면서 라틴 문자로 대강 표기하여 가르치곤 했는데, 프랑스 출신 후배 알렉상드르 드 로드가 그간의 표기 관행을 집대성하고 체계화하여 쯔꾸옥응으를 오늘날의 틀로 정비했다. 이로 인해 쯔꾸옥응으는 nh, ch, gi, x 등의 음가에서 중세 포르투갈어와의 유사성이 엿보인다. 쯔꾸옥응으가 고안된 이후에도 베트남에서는 일단 고유문자인 쯔놈을 사용했으나, 프랑스 식민지배 시절 1885년 청프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는 베트남에서 프랑스어 공용화를 원활하게 추진하는 수단으로 쯔꾸옥응으를 보급했다.
쯔꾸옥응으 명칭의 한자 자국어(字國語)는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처럼 수식언이 피수식언 앞에 놓이는 언어의 문법대로 바꾸면 國語字(국어자)가 된다. 베트남어의 특성상 꾸밈받는 말인 피수식언(字, 자)이 꾸밈말인 수식언(國語) 앞에 오기 때문이다. 이는 나라 이름인 '베트남(越南, 월남)'도 마찬가지로, 꾸밈받는 말이 뒤로 가는 한국어식으로 맞추면 남녘의 월나라라는 '남월(南越, 남베트:남비엣)'이 된다. 실제로 베트남/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남월'을 거꾸로 '월남'이라고 쓴 것이 현 국호의 기원이다.
쯔꾸옥응으의 원류는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수회가 마카오를 거쳐 인근 국가로 가톨릭을 전파하던 시절, 프란시스쿠 드 피나(Francisco de Pina, 포르투갈인), 알렉상드르 드 로드(Alexandre de Rhodes, 프랑스인)가 신약 성경을 베트남어로 번역하기 시작한다. 남프랑스의 교황령이었던 아비뇽 출신으로서 평생 프랑스어보다는 포르투갈어와 이탈리아어를 많이 쓰며 살았던 인물이고 고향은 남프랑스의 지방어인 프로방스어권이었던 데다 포르투갈 왕국을 통해 선교활동을 벌인 인물이라 프랑스인이라 규정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면이 있다. 그러나 파리외방전교회의 실질적인 설립자였고 그의 행적과 업적은 훗날 여러 가지 의미로 프랑스의 베트남에 대한 영향을 크게 키웠기 때문에 그냥 프랑스인으로 여겨진다.
당시의 베트남어는 한자와 쯔놈으로 표기했지만 읽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했다. 한 사제의 말에 의하면 베트남 남부의 2만 명 중 한자의 존재를 아는 베트남인은 100명 정도에 불과했고 그 100명 중 한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주변 캄보디아와 참파, 라오스, 태국은 물론이고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미얀마 또한 자체적인 표음 문자가 있었다..필리핀과 인도네시아의 경우에는 식민 지배기를 거치면서 라틴 문자로 대부분 교체되었고, 각 지역별로 쓰이던 표음 문자들(자바 문자, 발리 문자, 바이바이인 문자 등)들은 학교에서 배우기는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장식용이나 학술 용도 같이 제한적인 용도로 쓰는 정도가 아니면 쓰이지 않는다.
반면 베트남은 자체적인 표음 문자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글을 통한 전도가 힘든 것은 당연지사였다. 결국 선교사들은 베트남어-포르투갈어-라틴어 사전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후 레 왕조 시절 알렉상드르 드 로드 신부가 추방당하여 로마로 돌아간 후 베트남 복귀를 위해 왕실과 교회의 높으신 분들을 상대로 온갖 영업을 뛰는 과정에서 서양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알렉상드르 드 로드 신부는 추방 이후 다시는 베트남어 대화의 기회를 얻지 못했음에도 여생을 베트남 선교, 베트남어 연구와 라틴 문자 표기법 체계화에 헌신한다. 비록 말년을 페르시아에서 보내야 했지만 그의 뜻을 이어받은 신설 파리외방전교회 프랑스인 선교사들이 시암에 파견되어 신학교를 세우고 동남아 선교를 이어가며 그 불씨를 지키게 된다.
알렉상드르 드 로드 신부는 유럽에서 베트남 선교사업 재건을 도모했지만, 교황청에서 예수회에게 아르메니아 선교를 명하는 바람에 예수회 수사들과 함께 아르메니아 상인들이 많은 페르시아 도시 이스파한으로 파견되었다. 교황청과 예수회와 포르투갈 군주들에게 열심히 베트남 선교 재개를 요청했지만 거절 당하자 그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맘에 안 들어하던 루이 14세에게 선교사업을 요청했지만, 당시 프랑스의 실권자인 쥘 마자랭 추기경 역시 내정을 돌보느라 해외 선교사업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고 단지 따로 프랑스인 사제들을 설득하여 공부시키는 데에 그쳤다. 그러다 교황청과 예수회로부터 아르메니아 선교 지시가 떨어지는 바람에 까라면 까 순명의 의무에 얽매여 있는 수도사제 신분으로서 다시 낯선 땅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선종했다. 그러다가 마자랭까지 세상을 떠난 후 절대왕정다운 권력을 잡은 루이 14세가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해외 선교 사업에 큰 돈을 지원하면서 파리외방전교회는 다시금 태국을 거점으로 베트남 등 주변국에서 선교를 이어가게 된다.
그리고, 훗날 응우옌 왕조가 호이안을 개방하면서 서구와 교역하고 유럽, 특히 프랑스의 파리외방전교회 가톨릭 선교사들이 베트남 남부에 들어오게 된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시기에는 프랑스 정부가 기초 교육을 실시하게 된다. 프랑스는 베트남 간행물인 자딩바오를 출간하고 이 신문을 라틴 문자로 발행하였다. 여기서 사용된 문자를 "꾸옥응으(國語)"라 명명했고 쯔꾸옥응으라는 명칭이 유래된다. 베트남어 라틴 문자를 쯔꾸옥응으라 부르는데 이는 쯔(글자) 꾸옥(나라) 응으(언어) 곧 "나라말의 글"이라는 의미이다.
자딩바오의 편집장이던 쯔엉 빈 키는 베트남인들에게 라틴 문자로 글쓰기를 독려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라틴 문자의 보급을 독려했는데, 누구라도 3개월이면 쓸 수 있는 쉬운 문자이고 베트남어에 적합하다는 본인의 신념 때문이었다. 20세기에는 프랑스에 의해서 베트남 북부까지 정착되었고 기초 교육에 사용된다.
이후 1·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을 겪고 난 뒤 북부 발음인 하노이 방언을 기준으로 표준 베트남어 발음이 정착된다. 베트남어의 쯔꾸옥응으는 원래 16-17세기의 베트남어 남북 방언을 적당히 절충하여 중립적으로 철자법을 정한 것인데 수 세기 후의 북부 발음이 표준화되면서 발음과 철자의 괴리가 커졌다. 예를 들면 d, gi의 발음은 /z/인데 원래는 각각 /j/와 /z/였다.
게다가 식민 초기에는 서양 열강에서 들어온 문자라 해서 민족주의자들은 이 문자의 사용에 부정적이었으나, 그렇다고 통일성도 없고 지역별로 편차 역시 컸던 한자와 쯔놈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애매했다. 이러한 문제 의식은 프랑스 치하 응우옌 왕조에서 1910년 실시했던 과거시험[1] 문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대 과거시험 수험서에는 이 문제에 대한 모범답안이 올라와 있는데, '통일된 베트남어 관화'를 만들자는 내용이다. 이는 베트남 전쟁을 거쳐 베트남이 통일되고 나서야 비로소 실현된다.
어차피 쯔놈도 베트남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신들과 치고받고 싸우던 옛 종주국이자 이웃 나라인 중국의 글자인 한자가 기원이라 피장파장이었다. 결국 쯔꾸옥응으가 쯔놈보다 사용하기 편하고 문맹 퇴치에 유리하다는 점이 인정되어 민족주의자들도 점차 사용을 권장하게 된다.
덕분에 베트남어에서 외국 고유 명사는 로마자 표기 그대로 들여오는 편리함이 생겼다. 다만 쯔꾸옥응으의 표기법에 따른 소리와 외국 고유 명사 로마자 표기의 소리가 다르므로 쯔꾸옥응으의 쓰임새로 약간 바뀌게 된다.
그래서 한국인, 일본인의 한자 이름은 20세기 이전에 태어난 사람을 빼곤 베트남어식이 아니라 현지 표기 그대로 가져온다. 이는 한국에서 중국의 신해혁명 이전 인물들을 한국 한자음으로 부르고 이후 인물들을 중국어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쓰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반면에 중국인 이름은 베트남식으로 쓴다.
예를 들어 홍길동의 경우는 20세기 전(쯔놈을 쓰던 시절)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Hồng Cát Đồng"(홍깟동)이라고 한다. 반면 프로게이머 임요환이나 축구 감독 박항서는 20세기 뒤(쯔꾸옥응으 도입 뒤)의 인물이므로 "Lâm Dao Hoán"(럼자오호안럼ᅀᅶ환)이나 Phác Hằng Tự(팍항뜨)라고 하지 않고 "Lim Yo-hwan"이나 "Park Hang-seo"처럼 본인들이 사용하는 로마자 표기 그대로 쓴다. 실제 베트남어 위키백과에서 Phác Hằng Tự를 검색하면 Park Hang-seo로 리다이렉트된다.
일본인은 20세기 이전의 인물도 헵번식 로마자 표기법으로 표기한다. 그러나 중국인 이름은 대체로 베트남식으로 쓰고 읽는다. 예를 들어,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의 이름을 베트남어로 표기할 땐 중국어 로마자 표기인 "Xi Jinping"으로 쓰지 않고 "Tập Cận Bình(떱껀빈)"으로 적는다. 자세한 것은 한자문화권 고유명사 표기 참고.
띄어쓰기가 있지만 대부분의 언어들과는 달리 단어별로 띄어 쓰는 게 아니라 음절별로 띄어 쓴다.
트팝(Thư Pháp, '서법')이라는 전통 서예에서도 사용되며, 붓글씨로 로마자를 적는 등의 모습이 기묘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현대 베트남에서는 한문이나 한자, 쯔놈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매우 드물며, 쓸 수 있는 사람은 더욱 희귀하다. 베트남 전쟁 시기만 해도 노인들은 한자를 익힌 사람이 꽤 있어서 현지에서 한국군과 필담으로 소통하곤 했다. 현재는 한자의 수요마저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생긴 새로운 풍습이다. 새로운 글자가 외국에서 들어왔다지만 이미 150년이나 지난 일인 데다 한국에서도 조선 후기에 들어온 감자나 고구마 역시 한식의 일부라고 인정해 주는 것을 생각한다면 라틴 문자일지라도 전통 문자처럼 취급받는 것도 그렇게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 기원이 포르투갈 선교사들의 표기에 있기 때문에 포르투갈어의 로마자 발음과 비슷하다 보니 다른 아시아 언어의 로마자 철자법과는 차이가 매우 크며 직관성도 떨어진다. 예를 들어 /k/ 발음을 내는 c나 q가 쓰이고, g가 i나 e 앞에서 /z/로 바뀌며, /f/ 발음을 f 그대로 적지 않고 ph로 적는다.
하노이 방언 발음을 기준으로 서술하며, 분홍색 칸의 문자는 외래어 표기시에만 사용되는 문자이다. 노란색 칸의 문자는 외부 외래어 표기다.
| 라틴 문자 (대문자/소문자) | 명칭 | 발음 |
| A a | 아 (a) | /a/ |
| Ă ă | 아 (á) | /ă/ |
| Â â | 어 (ớ) | /ɤ/ |
| B b | 베 (bê) | /ɓ/ |
| C c | 쎄 (xê) | /k/ |
| D d | 제 (dê) | /z/ |
| Đ đ | 데 (đê) | /ɗ/ |
| E e | 애 (e) | /ɛ/ |
| Ê ê | 에 (ê) | /e/ |
| F f | 엡 (ép) | /f/ |
| G g | 저 (giê) | /ɣ/, /z/ |
| H h | 핫 (hát) | /h/ |
| I i | 이 (i ngắn) | /i/ |
| J j | 지 (gi) | /z/ |
| K k | 까 (ca) | /k/ |
| L l | 러 (el-lờ) | /l/ |
| M m | 머 (em-mờ) | /m/ |
| N n | 너 (en-nờ) | /n/ |
| O o | 오 (o) | /ɔ/ |
| Ô ô | 오 (ô) | /o/ |
| Ơ ơ | 어 (ơ) | /ʌ̆/ |
| P p | 뻬 (pê) | /p/ |
| Q q | 꾸이 (cu/quy) | /k/ |
| R r | 러 (e-rờ) | /z/ |
| S s | 앳 (ét-sì) | /s/ |
| T t | 떼 (tê) | /t/ |
| U u | 우 (u) | /u/ |
| Ư ư | 으 (ư) | /ɨ/ |
| V v | 베 (vê) | /v/ |
| W w | 베 둡 (vê đúp) | /w/ |
| X x | 잇씨 (ích-xì) | /s/ |
| Y y | 이 자이 (i dài) | /i/ |
| Z z | 젯 (giét) | /z/ |
4.3. 성조 부호가 붙은 글자들까지 포함한 전체 목록[편집]
F/f, J/j, W/w, Z/z도 포함해서 모두 93글자이며, 대문자와 소문자를 다른 글자로 본다면 186글자이다.
로마자에 기반한 쯔꾸옥응으를 쓰므로 QWERTY 레이아웃에 기반한 키보드를 쓴다. 타자기 시절에는 프랑스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AZERTY에 기반한 키보드를 사용했으나 컴퓨터 보급에 맞춰 QWERTY로 갈아탔다. 성조 부호는 숫자 키 일부분에 할당되어 있으며, 유럽 언어들처럼 오른쪽 Alt 키를 Alt Gr이라고 하여 이걸 누르고 숫자 키를 눌러 입력하게 된다. 하지만 이게 귀찮다. 쯔꾸옥응으의 다이어크리틱은 다른 문자 체계에 비해 매우 많이 나오고 그 종류도 매우 방대하다. 때문에 많은 베트남 사람들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한어병음이나 가나를 입력하고 IME를 통해 한자로 변환하듯이 그냥 로마자로 죽 적은 다음 IME의 도움을 받아 성조 기호를 붙인다.
유니코드에서 쯔꾸옥응으 문자들은 다음 코드 포인트들에 배당돼 있다. (연한 갈색 배경(■, 다크 모드에서는 황토색)은 쯔꾸옥응으와 상관없는 문자가 배당된 코드 포인트를 나타낸다.)
| U+ | 0 | 1 | 2 | 3 | 4 | 5 | 6 | 7 | 8 | 9 | A | B | C | D | E | F |
| 002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003 | 0 | 1 | 2 | 3 | 4 | 5 | 6 | 7 | 8 | 9 | : | ; | < | = | > | ? |
| 004 | @ | A | B | C | D | E | F | G | H | I | J | K | L | M | N | O |
| 005 | P | Q | R | S | T | U | V | W | X | Y | Z | [ | \ | ] | ^ | _ |
| 006 | ` | a | b | c | d | e | f | g | h | i | j | k | l | m | n | o |
| 007 | p | q | r | s | t | u | v | w | x | y | z | { | | | } | ~ | |
| 00C | À | Á | Â | Ã | È | É | Ê | Ì | Í | |||||||
| 00D | Ò | Ó | Ô | Õ | Ù | Ú | Ý | |||||||||
| 00E | à | á | â | ã | è | é | ê | ì | í | |||||||
| 00F | ò | ó | ô | õ | ù | ú | ý | |||||||||
| 010 | Ă | ă | ||||||||||||||
| 011 | Đ | đ | ||||||||||||||
| 012 | Ĩ | ĩ | ||||||||||||||
| 016 | Ũ | ũ | ||||||||||||||
| 01A | Ơ | ơ | Ư | |||||||||||||
| 01B | ư | |||||||||||||||
| 1EA | Ạ | ạ | Ả | ả | Ấ | ấ | Ầ | ầ | Ẩ | ẩ | Ẫ | ẫ | Ậ | ậ | Ắ | ắ |
| 1EB | Ằ | ằ | Ẳ | ẳ | Ẵ | ẵ | Ặ | ặ | Ẹ | ẹ | Ẻ | ẻ | Ẽ | ẽ | Ế | ế |
| 1EC | Ề | ề | Ể | ể | Ễ | ễ | Ệ | ệ | Ỉ | ỉ | Ị | ị | Ọ | ọ | Ỏ | ỏ |
| 1ED | Ố | ố | Ồ | ồ | Ổ | ổ | Ỗ | ỗ | Ộ | ộ | Ớ | ớ | Ờ | ờ | Ở | ở |
| 1EE | Ỡ | ỡ | Ợ | ợ | Ụ | ụ | Ủ | ủ | Ứ | ứ | Ừ | ừ | Ử | ử | Ữ | ữ |
| 1EF | Ự | ự | Ỳ | ỳ | Ỵ | ỵ | Ỷ | ỷ | Ỹ | ỹ |
유니코드 이전에 베트남어 표기용으로 VISCII라는 확장 아스키 코드가 있었는데, 구조가 조금 특이하다. 위에서 보았듯이 쯔꾸옥응으는 글자 위아래에 다이어크리틱을 붙이는데, 베트남어를 온전히 표기하기 위해서는 아스키에 추가로 134글자가 더 필요하다. 그래서 베트남어용 확장 아스키 코드를 만들 때 128(0x80)~255(0xFF) 영역은 모두 베트남어에서 쓰이는 글자들로 채우고, 아스키에서 사용 빈도가 낮을 만한 제어 문자 6개(STX, ENQ, ACK, DC4, EM, RS)를 베트남어에서 사용 빈도가 낮은 대문자들(Ẳ, Ẵ, Ẫ, Ỷ, Ỹ, Ỵ)로 바꿔서 134글자를 모두 집어넣었다. 다만 128(0x80)~255(0xFF) 영역을 모두 베트남어 글자들로만 채우다 보니, 기호 등 다른 문자들이 들어갈 자리가 사라져 버렸다.
구체적으로는 이런 구조이다.
| 0x | 0 | 1 | 2 | 3 | 4 | 5 | 6 | 7 | 8 | 9 | A | B | C | D | E | F |
| 0 | NUL | SOH | Ẳ | ETX | EOT | Ẵ | Ẫ | BEL | BS | HT | LF | VT | FF | CR | SO | SI |
| 1 | DLE | DC1 | DC2 | DC3 | Ỷ | NAK | SYN | ETB | CAN | Ỹ | SUB | ESC | FS | GS | Ỵ | US |
| 2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3 | 0 | 1 | 2 | 3 | 4 | 5 | 6 | 7 | 8 | 9 | : | ; | < | = | > | ? |
| 4 | @ | A | B | C | D | E | F | G | H | I | J | K | L | M | N | O |
| 5 | P | Q | R | S | T | U | V | W | X | Y | Z | [ | \ | ] | ^ | _ |
| 6 | ` | a | b | c | d | e | f | g | h | i | j | k | l | m | n | o |
| 7 | p | q | r | s | t | u | v | w | x | y | z | { | | | } | ~ | DEL |
| 8 | Ạ | Ắ | Ằ | Ặ | Ấ | Ầ | Ẩ | Ậ | Ẽ | Ẹ | Ế | Ề | Ể | Ễ | Ệ | Ố |
| 9 | Ồ | Ổ | Ỗ | Ộ | Ợ | Ớ | Ờ | Ở | Ị | Ỏ | Ọ | Ỉ | Ủ | Ũ | Ụ | Ỳ |
| A | Õ | ắ | ằ | ặ | ấ | ầ | ẩ | ậ | ẽ | ẹ | ế | ề | ể | ễ | ệ | ố |
| B | ồ | ổ | ỗ | Ỡ | Ơ | ộ | ờ | ở | ị | Ự | Ứ | Ừ | Ử | ơ | ớ | Ư |
| C | À | Á | Â | Ã | Ả | Ă | ẳ | ẵ | È | É | Ê | Ẻ | Ì | Í | Ĩ | ỳ |
| D | Đ | ứ | Ò | Ó | Ô | ạ | ỷ | ừ | ử | Ù | Ú | ỹ | ỵ | Ý | ỡ | ư |
| E | à | á | â | ã | ả | ă | ữ | ẫ | è | é | ê | ẻ | ì | í | ĩ | ỉ |
| F | đ | ự | ò | ó | ô | õ | ỏ | ọ | ụ | ù | ú | ũ | ủ | ý | ợ | Ữ |
[1] 베트남은 무려 1919년까지 과거 제도가 존재했다.[2] 표의 문자인 한자에 익숙해진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음만 나타내는 표음 문자의 사용법은 마치 '東(동, /tuŋ/ 평성)'의 음가를 설명하기 위해 '德(덕, /tək/ 입성)'의 /t/ 성모와 '紅(홍, /ɣuŋ/ 평성)'의 /uŋ/ 운모 및 평성 성조를 합쳐서 설명하는 반절법(反切法)의 일종으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같은 표음 문자인 한글도 '반절'이라고 불린 역사가 있으며 한글 반절표 역시 비슷한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4.1. 기본 문자4.2. 다중 문자 및 확장 문자4.3. 성조 부호가 붙은 글자들까지 포함한 전체 목록
5. 컴퓨터 입력6. 유니코드7. 유니코드 이전의 문자 코드: VISCII
쯔꾸옥응으(Chữ Quốc Ngữ / 字國語)는 베트남어를 표기하기 위해 고안된, 로마자와 다이어크리틱을 이용한 문자체계.
원래 베트남어를 표기하기 위한 문자로는 쯔놈(字喃)이 있었으나 표의 문자 특성상 이는 사용하기에 불편했다. 16세기 포르투갈 왕국에서 온 가톨릭 예수회 선교사들은 선교를 위해 후배 선교사들에게 베트남어를 가르치면서 라틴 문자로 대강 표기하여 가르치곤 했는데, 프랑스 출신 후배 알렉상드르 드 로드가 그간의 표기 관행을 집대성하고 체계화하여 쯔꾸옥응으를 오늘날의 틀로 정비했다. 이로 인해 쯔꾸옥응으는 nh, ch, gi, x 등의 음가에서 중세 포르투갈어와의 유사성이 엿보인다. 쯔꾸옥응으가 고안된 이후에도 베트남에서는 일단 고유문자인 쯔놈을 사용했으나, 프랑스 식민지배 시절 1885년 청프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는 베트남에서 프랑스어 공용화를 원활하게 추진하는 수단으로 쯔꾸옥응으를 보급했다.
쯔꾸옥응으 명칭의 한자 자국어(字國語)는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처럼 수식언이 피수식언 앞에 놓이는 언어의 문법대로 바꾸면 國語字(국어자)가 된다. 베트남어의 특성상 꾸밈받는 말인 피수식언(字, 자)이 꾸밈말인 수식언(國語) 앞에 오기 때문이다. 이는 나라 이름인 '베트남(越南, 월남)'도 마찬가지로, 꾸밈받는 말이 뒤로 가는 한국어식으로 맞추면 남녘의 월나라라는 '남월(南越, 남베트:남비엣)'이 된다. 실제로 베트남/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남월'을 거꾸로 '월남'이라고 쓴 것이 현 국호의 기원이다.
쯔꾸옥응으의 원류는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수회가 마카오를 거쳐 인근 국가로 가톨릭을 전파하던 시절, 프란시스쿠 드 피나(Francisco de Pina, 포르투갈인), 알렉상드르 드 로드(Alexandre de Rhodes, 프랑스인)가 신약 성경을 베트남어로 번역하기 시작한다. 남프랑스의 교황령이었던 아비뇽 출신으로서 평생 프랑스어보다는 포르투갈어와 이탈리아어를 많이 쓰며 살았던 인물이고 고향은 남프랑스의 지방어인 프로방스어권이었던 데다 포르투갈 왕국을 통해 선교활동을 벌인 인물이라 프랑스인이라 규정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면이 있다. 그러나 파리외방전교회의 실질적인 설립자였고 그의 행적과 업적은 훗날 여러 가지 의미로 프랑스의 베트남에 대한 영향을 크게 키웠기 때문에 그냥 프랑스인으로 여겨진다.
당시의 베트남어는 한자와 쯔놈으로 표기했지만 읽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했다. 한 사제의 말에 의하면 베트남 남부의 2만 명 중 한자의 존재를 아는 베트남인은 100명 정도에 불과했고 그 100명 중 한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주변 캄보디아와 참파, 라오스, 태국은 물론이고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미얀마 또한 자체적인 표음 문자가 있었다..필리핀과 인도네시아의 경우에는 식민 지배기를 거치면서 라틴 문자로 대부분 교체되었고, 각 지역별로 쓰이던 표음 문자들(자바 문자, 발리 문자, 바이바이인 문자 등)들은 학교에서 배우기는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장식용이나 학술 용도 같이 제한적인 용도로 쓰는 정도가 아니면 쓰이지 않는다.
반면 베트남은 자체적인 표음 문자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글을 통한 전도가 힘든 것은 당연지사였다. 결국 선교사들은 베트남어-포르투갈어-라틴어 사전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후 레 왕조 시절 알렉상드르 드 로드 신부가 추방당하여 로마로 돌아간 후 베트남 복귀를 위해 왕실과 교회의 높으신 분들을 상대로 온갖 영업을 뛰는 과정에서 서양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알렉상드르 드 로드 신부는 추방 이후 다시는 베트남어 대화의 기회를 얻지 못했음에도 여생을 베트남 선교, 베트남어 연구와 라틴 문자 표기법 체계화에 헌신한다. 비록 말년을 페르시아에서 보내야 했지만 그의 뜻을 이어받은 신설 파리외방전교회 프랑스인 선교사들이 시암에 파견되어 신학교를 세우고 동남아 선교를 이어가며 그 불씨를 지키게 된다.
알렉상드르 드 로드 신부는 유럽에서 베트남 선교사업 재건을 도모했지만, 교황청에서 예수회에게 아르메니아 선교를 명하는 바람에 예수회 수사들과 함께 아르메니아 상인들이 많은 페르시아 도시 이스파한으로 파견되었다. 교황청과 예수회와 포르투갈 군주들에게 열심히 베트남 선교 재개를 요청했지만 거절 당하자 그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맘에 안 들어하던 루이 14세에게 선교사업을 요청했지만, 당시 프랑스의 실권자인 쥘 마자랭 추기경 역시 내정을 돌보느라 해외 선교사업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고 단지 따로 프랑스인 사제들을 설득하여 공부시키는 데에 그쳤다. 그러다 교황청과 예수회로부터 아르메니아 선교 지시가 떨어지는 바람에 까라면 까 순명의 의무에 얽매여 있는 수도사제 신분으로서 다시 낯선 땅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선종했다. 그러다가 마자랭까지 세상을 떠난 후 절대왕정다운 권력을 잡은 루이 14세가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해외 선교 사업에 큰 돈을 지원하면서 파리외방전교회는 다시금 태국을 거점으로 베트남 등 주변국에서 선교를 이어가게 된다.
그리고, 훗날 응우옌 왕조가 호이안을 개방하면서 서구와 교역하고 유럽, 특히 프랑스의 파리외방전교회 가톨릭 선교사들이 베트남 남부에 들어오게 된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시기에는 프랑스 정부가 기초 교육을 실시하게 된다. 프랑스는 베트남 간행물인 자딩바오를 출간하고 이 신문을 라틴 문자로 발행하였다. 여기서 사용된 문자를 "꾸옥응으(國語)"라 명명했고 쯔꾸옥응으라는 명칭이 유래된다. 베트남어 라틴 문자를 쯔꾸옥응으라 부르는데 이는 쯔(글자) 꾸옥(나라) 응으(언어) 곧 "나라말의 글"이라는 의미이다.
자딩바오의 편집장이던 쯔엉 빈 키는 베트남인들에게 라틴 문자로 글쓰기를 독려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라틴 문자의 보급을 독려했는데, 누구라도 3개월이면 쓸 수 있는 쉬운 문자이고 베트남어에 적합하다는 본인의 신념 때문이었다. 20세기에는 프랑스에 의해서 베트남 북부까지 정착되었고 기초 교육에 사용된다.
이후 1·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을 겪고 난 뒤 북부 발음인 하노이 방언을 기준으로 표준 베트남어 발음이 정착된다. 베트남어의 쯔꾸옥응으는 원래 16-17세기의 베트남어 남북 방언을 적당히 절충하여 중립적으로 철자법을 정한 것인데 수 세기 후의 북부 발음이 표준화되면서 발음과 철자의 괴리가 커졌다. 예를 들면 d, gi의 발음은 /z/인데 원래는 각각 /j/와 /z/였다.
게다가 식민 초기에는 서양 열강에서 들어온 문자라 해서 민족주의자들은 이 문자의 사용에 부정적이었으나, 그렇다고 통일성도 없고 지역별로 편차 역시 컸던 한자와 쯔놈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애매했다. 이러한 문제 의식은 프랑스 치하 응우옌 왕조에서 1910년 실시했던 과거시험[1] 문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대 과거시험 수험서에는 이 문제에 대한 모범답안이 올라와 있는데, '통일된 베트남어 관화'를 만들자는 내용이다. 이는 베트남 전쟁을 거쳐 베트남이 통일되고 나서야 비로소 실현된다.
어차피 쯔놈도 베트남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신들과 치고받고 싸우던 옛 종주국이자 이웃 나라인 중국의 글자인 한자가 기원이라 피장파장이었다. 결국 쯔꾸옥응으가 쯔놈보다 사용하기 편하고 문맹 퇴치에 유리하다는 점이 인정되어 민족주의자들도 점차 사용을 권장하게 된다.
덕분에 베트남어에서 외국 고유 명사는 로마자 표기 그대로 들여오는 편리함이 생겼다. 다만 쯔꾸옥응으의 표기법에 따른 소리와 외국 고유 명사 로마자 표기의 소리가 다르므로 쯔꾸옥응으의 쓰임새로 약간 바뀌게 된다.
그래서 한국인, 일본인의 한자 이름은 20세기 이전에 태어난 사람을 빼곤 베트남어식이 아니라 현지 표기 그대로 가져온다. 이는 한국에서 중국의 신해혁명 이전 인물들을 한국 한자음으로 부르고 이후 인물들을 중국어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쓰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반면에 중국인 이름은 베트남식으로 쓴다.
예를 들어 홍길동의 경우는 20세기 전(쯔놈을 쓰던 시절)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Hồng Cát Đồng"(홍깟동)이라고 한다. 반면 프로게이머 임요환이나 축구 감독 박항서는 20세기 뒤(쯔꾸옥응으 도입 뒤)의 인물이므로 "Lâm Dao Hoán"(럼자오호안럼ᅀᅶ환)이나 Phác Hằng Tự(팍항뜨)라고 하지 않고 "Lim Yo-hwan"이나 "Park Hang-seo"처럼 본인들이 사용하는 로마자 표기 그대로 쓴다. 실제 베트남어 위키백과에서 Phác Hằng Tự를 검색하면 Park Hang-seo로 리다이렉트된다.
일본인은 20세기 이전의 인물도 헵번식 로마자 표기법으로 표기한다. 그러나 중국인 이름은 대체로 베트남식으로 쓰고 읽는다. 예를 들어,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의 이름을 베트남어로 표기할 땐 중국어 로마자 표기인 "Xi Jinping"으로 쓰지 않고 "Tập Cận Bình(떱껀빈)"으로 적는다. 자세한 것은 한자문화권 고유명사 표기 참고.
띄어쓰기가 있지만 대부분의 언어들과는 달리 단어별로 띄어 쓰는 게 아니라 음절별로 띄어 쓴다.
트팝(Thư Pháp, '서법')이라는 전통 서예에서도 사용되며, 붓글씨로 로마자를 적는 등의 모습이 기묘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현대 베트남에서는 한문이나 한자, 쯔놈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매우 드물며, 쓸 수 있는 사람은 더욱 희귀하다. 베트남 전쟁 시기만 해도 노인들은 한자를 익힌 사람이 꽤 있어서 현지에서 한국군과 필담으로 소통하곤 했다. 현재는 한자의 수요마저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생긴 새로운 풍습이다. 새로운 글자가 외국에서 들어왔다지만 이미 150년이나 지난 일인 데다 한국에서도 조선 후기에 들어온 감자나 고구마 역시 한식의 일부라고 인정해 주는 것을 생각한다면 라틴 문자일지라도 전통 문자처럼 취급받는 것도 그렇게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 기원이 포르투갈 선교사들의 표기에 있기 때문에 포르투갈어의 로마자 발음과 비슷하다 보니 다른 아시아 언어의 로마자 철자법과는 차이가 매우 크며 직관성도 떨어진다. 예를 들어 /k/ 발음을 내는 c나 q가 쓰이고, g가 i나 e 앞에서 /z/로 바뀌며, /f/ 발음을 f 그대로 적지 않고 ph로 적는다.
하노이 방언 발음을 기준으로 서술하며, 분홍색 칸의 문자는 외래어 표기시에만 사용되는 문자이다. 노란색 칸의 문자는 외부 외래어 표기다.
| 라틴 문자 (대문자/소문자) | 명칭 | 발음 |
| A a | 아 (a) | /a/ |
| Ă ă | 아 (á) | /ă/ |
| Â â | 어 (ớ) | /ɤ/ |
| B b | 베 (bê) | /ɓ/ |
| C c | 쎄 (xê) | /k/ |
| D d | 제 (dê) | /z/ |
| Đ đ | 데 (đê) | /ɗ/ |
| E e | 애 (e) | /ɛ/ |
| Ê ê | 에 (ê) | /e/ |
| F f | 엡 (ép) | /f/ |
| G g | 저 (giê) | /ɣ/, /z/ |
| H h | 핫 (hát) | /h/ |
| I i | 이 (i ngắn) | /i/ |
| J j | 지 (gi) | /z/ |
| K k | 까 (ca) | /k/ |
| L l | 러 (el-lờ) | /l/ |
| M m | 머 (em-mờ) | /m/ |
| N n | 너 (en-nờ) | /n/ |
| O o | 오 (o) | /ɔ/ |
| Ô ô | 오 (ô) | /o/ |
| Ơ ơ | 어 (ơ) | /ʌ̆/ |
| P p | 뻬 (pê) | /p/ |
| Q q | 꾸이 (cu/quy) | /k/ |
| R r | 러 (e-rờ) | /z/ |
| S s | 앳 (ét-sì) | /s/ |
| T t | 떼 (tê) | /t/ |
| U u | 우 (u) | /u/ |
| Ư ư | 으 (ư) | /ɨ/ |
| V v | 베 (vê) | /v/ |
| W w | 베 둡 (vê đúp) | /w/ |
| X x | 잇씨 (ích-xì) | /s/ |
| Y y | 이 자이 (i dài) | /i/ |
| Z z | 젯 (giét) | /z/ |
4.3. 성조 부호가 붙은 글자들까지 포함한 전체 목록[편집]
F/f, J/j, W/w, Z/z도 포함해서 모두 93글자이며, 대문자와 소문자를 다른 글자로 본다면 186글자이다.
로마자에 기반한 쯔꾸옥응으를 쓰므로 QWERTY 레이아웃에 기반한 키보드를 쓴다. 타자기 시절에는 프랑스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AZERTY에 기반한 키보드를 사용했으나 컴퓨터 보급에 맞춰 QWERTY로 갈아탔다. 성조 부호는 숫자 키 일부분에 할당되어 있으며, 유럽 언어들처럼 오른쪽 Alt 키를 Alt Gr이라고 하여 이걸 누르고 숫자 키를 눌러 입력하게 된다. 하지만 이게 귀찮다. 쯔꾸옥응으의 다이어크리틱은 다른 문자 체계에 비해 매우 많이 나오고 그 종류도 매우 방대하다. 때문에 많은 베트남 사람들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한어병음이나 가나를 입력하고 IME를 통해 한자로 변환하듯이 그냥 로마자로 죽 적은 다음 IME의 도움을 받아 성조 기호를 붙인다.
유니코드에서 쯔꾸옥응으 문자들은 다음 코드 포인트들에 배당돼 있다. (연한 갈색 배경(■, 다크 모드에서는 황토색)은 쯔꾸옥응으와 상관없는 문자가 배당된 코드 포인트를 나타낸다.)
유니코드 이전에 베트남어 표기용으로 VISCII라는 확장 아스키 코드가 있었는데, 구조가 조금 특이하다. 위에서 보았듯이 쯔꾸옥응으는 글자 위아래에 다이어크리틱을 붙이는데, 베트남어를 온전히 표기하기 위해서는 아스키에 추가로 134글자가 더 필요하다. 그래서 베트남어용 확장 아스키 코드를 만들 때 128(0x80)~255(0xFF) 영역은 모두 베트남어에서 쓰이는 글자들로 채우고, 아스키에서 사용 빈도가 낮을 만한 제어 문자 6개(STX, ENQ, ACK, DC4, EM, RS)를 베트남어에서 사용 빈도가 낮은 대문자들(Ẳ, Ẵ, Ẫ, Ỷ, Ỹ, Ỵ)로 바꿔서 134글자를 모두 집어넣었다. 다만 128(0x80)~255(0xFF) 영역을 모두 베트남어 글자들로만 채우다 보니, 기호 등 다른 문자들이 들어갈 자리가 사라져 버렸다.
구체적으로는 이런 구조이다.
[1] 베트남은 무려 1919년까지 과거 제도가 존재했다.[2] 표의 문자인 한자에 익숙해진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음만 나타내는 표음 문자의 사용법은 마치 '東(동, /tuŋ/ 평성)'의 음가를 설명하기 위해 '德(덕, /tək/ 입성)'의 /t/ 성모와 '紅(홍, /ɣuŋ/ 평성)'의 /uŋ/ 운모 및 평성 성조를 합쳐서 설명하는 반절법(反切法)의 일종으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같은 표음 문자인 한글도 '반절'이라고 불린 역사가 있으며 한글 반절표 역시 비슷한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