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
그 옛날 유명한 연예인 부부가 헤어지면서 사랑하기 때문에이별한다는 말이 생뚱맞게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에 아름다운 이별을 고한 사람이 있다. 파울루 벤투 축구 감독은 사여 년 동안 한국 축구를 이끈 사령탑이었다. 그는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르는 쾌거를 이룬 명장이었다. 대한축구협회는 더 동행하자고 붙들었지만, 아름다운 이별을 선택하고 고국 포르투갈로 떠났다.
그는 공항을 떠나면서 강인한 얼굴에 눈물을 보이며 “대한민국은 항상 삶의 일부일 것이다.”라고 했다. 선수들을 훈련 시킬 때는 항상 엄하게 다스렸지만, 따뜻한 아버지라며 ‘벤버지’라는 별명까지 지어 불렀다고 한다. ‘무위불기’(無爲不起)라는 말은 벤투 감독에게 합당한 것 같다. 그는 처음에 온갖 구설수에 휘몰렸지만, 뚝심을 보이며 견뎠기에 16강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의 이별은 영영 잊히지 않을 것이며 정말 아름다웠다.
사람은 누구를 사랑하는 것으로 인해 한층 더 그를 미워하는 마음이 가까이 간다. 애초부터 그를 사랑하지 않았으면 미워하지도 않았고 이별도 없었으리라. 삶과 죽음이 그러하듯 사랑과 이별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하지 않을까 싶다. 부부간에 티격태격함도 사랑이고 이별의 아픔도 사랑이 낳은 것이리라.
하늘의 신은 우주 만물을 먼저 창조하시고, 그 만물을 다스릴 협조자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神과 맺은 약속을 어기고 죄(원죄)를 지었다. 그러나 벌을 내리지 않으시고 구원(원복음, 창세 3,15)을 약속하셨다. 그 구원의 약속이 당신이 직접 육화 강생하시어 인간의 죄를 속량하셨다. 그 모든 것이 사랑의 결과이다.
우리의 삶은 영원에 비해 찰나의 지상 순례이다. 그 삶은 神을 좇아 닮아가며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神은 사랑 그 자체이니까 말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께서는 <사람이 사랑이 되다>라는 저서를 남기셨다. 사랑이신 神의 본성으로 닮아가는 과정이 인생이라는 말씀이다.
사람이 지상 순례를 마치고 죽음으로써 그 영혼이 하늘나라로 간다. 죽음은 지상에서 천상으로 옮겨가는 통과의례이다. 그런데 어찌 슬퍼만 하랴. 오히려 기쁜 일이 아닐까 싶다. 다만 그 슬픔은 서로 이별의 아픔과 함께했던 추억의 여운(餘韻)이 남아 있을 뿐이다.
장례 문화가 바뀌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장례 예식에서 죽은 영혼을 위해 미사를 드린다. 이때 집전 사제는 옛날에는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색 제의를 입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쁨을 상징하는 흰색 제의로 바뀌었다. 이는 죽음으로써 영원한 삶으로 부활하니까 기쁨이며, 훗날 다시 그곳에서 만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별은 만남을 전제(前提)하고 있기에 아쉽기는 하지만 아픔만은 아니다. 만남의 인연이라는 희망이 있기에 떠나가고 떠나보낸다. ‘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이별도 없었으리라. 고국으로 돌아가는 벤투의 모습을 보면서 ‘아름다운 이별’로 기억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