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편지 105신]‘문방사우文房四友’내 생애 최고의 선물?
자네의 내공을 흉내라도 내고 싶은 못난 친구가 자랑스런 친구에게.
전화로 이미 말했지만, 엊그제 내 입꼬리가 올라갈 정도로
좋은 선물을 큰아들 부부로부터 받았네.
자네가 늘 끼고 사는 ‘문방사우文房四友’가 그걸일세.
붓, 벼루, 먹, 종이. 왕년에 선비들의 생활필수품.
내 평생 이런 호사豪奢를 누릴 때가 다 있었나 싶더군.
오랫동안 진짜 갖고 싶었으나,
내 돈으로는 살 엄두를 못냈던 물건들.
명색이 내 생일이라고 아주 비싼 최신 시계를 사겠다기에
말리면서 대안代案으로 문방사우를 제안했지.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흉내라도 낼 만한 게 10만원대이던데,
아들이 인사동 필방에서 30만원대 상품을 골라 택배로 보냈네.
허나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네.
그게 어찌 완상玩賞만 할 일인가.
형수와 같이 귀향하여 재밌게 사는 것도 자네가 부러운 점이나,
가장 부러운 것은 자네의 붓글씨 20년 내공이라네.
최근에는 대한민국서도대전(국전)에 입선도 했다지.
얼마나 감축할 일인가.
나는 필체筆體가 좋다는 말을 친구들로부터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붓글씨를 한번도 배워본 적이 없네.
단지 한자와 한문을 좋아하기에,
순전히 붓펜으로만 수 십년 동안 내 마음대로 수도 없이 써본 것뿐이라네.
붓 잡는 방법조차 몰라 붓펜 잡듯이 쓰는 게 무슨 글씨겠는가.
더구나 오랜 습習으로 굳어질 대로 굳어져
아무리 고명한 선생님을 만나 배워도 고쳐질 것같지 않다는 걱정이 앞선다네.
정년퇴직을 하면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서예書藝와 판소리 배우기였는데, 3년이 흘러도 엄두를 못냈었네.
하여, 자네에게 어제 아침에 조만간 우리집에 와
붓잡는 방법이라도 알려달라는 SOS를 보냈잖는가.
예전의 습관을 깡그리 버리고 피나는 연습을 하면
어느 정도는 가능할까?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건만.
자네가 2년 전 한여름 땡볕에 땀을 뻘뻘 흘리며
우리집 상량上樑을 3시간여 동안 써줄 때도
고마우면서도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네.
어느 날은 또 도연명陶淵明의 ‘귀원전거歸園田居’ 1首를 써 보내주었지.
제까닥 표구를 하여 사랑방에 걸어놓으니 볼만하고 많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네.
고교시절 한문선생님도 그 사진을 보더니 “아주 준수한 글씨”라고 칭찬을 했었지.
입춘이 되면 써주는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다경’의 입춘방立春榜은 또 어떤가.
최근에 석전 황욱 선생의 노년 악필握筆 수십 점을 같이 관람하는 행운도 있었지만,
추사 김정희는 말할 것도 없고, 창암 이삼만, 이광사, 강암 송석용, 일중 김충현,
김응현, 검여 유희강 등의 존성대명은 오랫동안 나의 흠모의 대상이었다네.
언감생심, 서예가가 되겠자는 것은 아니지만,
내 이름 석 자라도, 더 나아가 내가 좋아하는 한문 글귀나 문장
(예를 들면 도연명의 귀거래사나 소동파의 적벽부, 제갈양의 출사표 등)을
붓으로 제대로 써보고 싶다는 나의 간절한 마음이 욕심일까?
큰아들 말처럼, 아버지가 노년에 고상한 취미를 갖고 즐기시겠다는데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냐며
더구나 처음으로 선물 상품商品을 지정하며 사달라는데 무슨 돈을 아끼겠냐고 했듯,
나는 <고상高尙한 취미趣味>를 갖고 싶네.
이름만 쓰고 말지라도 말이네. 하하.
어제 아침 거실에 문방사우를 늘어놓고,
멋드러진 한지韓紙를 문진文鎭으로 누르고,
벼루에 먹을 간 후 진한 먹물로 글씨를 흉내낸 본 것이
<希望/우리의 사랑/최윤슬/행복이어라!>였네.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과 늙은 아버지는 제대로 처음 본 내 글씨를 보고
“잘 쓰시네” “잘 쓰는구나” 칭찬을 했지만,
붓 잡는 법도 모르는 내가 얼마나 면구스러웠겠는가.
그러니 수고롭지만 수일내 방문하여
일단은 붓잡는 법이라도 알려주시게.
시키면 시키는대로 시간나는 대로 죽어라도 해볼 생각이니
어디에서부터 공부를 해야 하는지 가르침을 주시게.
죽을 때까지 ‘영자永字 팔법八法’만 연습하라해도 할 생각이네.
빨리 눈 내리는 겨울이 왔으면 좋겠네.
사랑방에서 헛기침하며 옛날의 선비 흉내라도 내보는게
나의 버킷리스트이기도 할 것이니. 하하.
요즘 며칠 말 그래도 염천지하炎天之夏이네.
건강히 지내길 빌며 이만 줄이네.
7월 31일 새벽
먹물에 한없이 취하고 싶은 친구가 쓰네
첫댓글 나도 하고싶은것 중의 하나인데
실천을 못하고 공원 입장료 면제받는
나이가 돼버렸으니 ㆍ
글씨쓰는 흉내를 내봐도 손이 떨려서
붓이 마음데로 안움직이니
붓과 책은 손에서 놓으면 안된다는 말이
딱맞는 말인데 아직도 마음은 가득한데
어느 계기가 돼서 나도 우리나라 대한민국부터 붓글씨를 써볼 기회가 오려는지
아침부터 부러움 가득함을 표현합니다.
부럽다
친구가
부러워
버젼업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입꼬리가 올라가는구료.
1막 끝인줄 알았는데, 2막에도 웃고픈 고생계속되는구나, 피나는 수련!
그 덕에 국선도 입선, 또한 아마튜어 명패대신 초짜 프로농부.
피와 땀은 결코 속이지 못한다.
고상한 취미!
내 취미는 저바닥 또는 저 세계라고 소위 3류라고도 볼 수 있는 당구.
우와 장난 아니다, 완전 멘탈게임이다. 그래도 품위는 지켜야지..
좋은 글 덕분에, 이 아침이 가벼워지는구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