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대구 시가지의 확장
PUSWI
2017. 8. 26.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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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현대에 이르기까지 과거 대구의 모습을 그린 지도를 모아 시기별로 대구의 시가지가 어떻게 확장하는지를 정리해 보았다. 국토지리정보원 구지도 통판 서비스에서는 전국지도를 10년 단위로 끊어 서비스하고 있는데, 살펴보니 이어붙인 지도끼리도 시기차가 나는 것이 있어 통판지도 자체가 해당 시기의 적확한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기엔 곤란하다. 하지만 대략적인 시가지의 확장 과정을 이해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1910년대 후반 (인구 5만명) : 舊읍성지구를 중심으로 서쪽으로 달성동, 남쪽으로 계산동, 동쪽으로 공평동, 북쪽으로 태평로 일대 정도가 대구의 초기 시역을 형성하였다. '대구분지'로 불리는 대구의 지형은 마치 산으로 둘러 쌓인 넓은 평야지대인 것처럼 인식되지만, 그것은 개발된 이후의 시각적 느낌이 그런 것이고1 사실은 분지내에서도 서쪽과 동쪽으로는 야트막한 구릉지대가 펼쳐지기 때문에 시가지도 남쪽 신천 범람원의 평야쪽으로 먼저 확장하게 된다.
1950년대 후반 (인구 60만명) : 초기 시역을 중심으로 주위의 대신동·남산동·동인동 일대로 시가지가 확장한다. 현재의 중구지역이 완전히 시가지화 된 모습이다.
1960년대 후반 (인구 90만명) : 초기 시역의 남동쪽으로 신천의 서쪽 변경인 이천동·봉덕동 방면이 시가지화되고, 북쪽으로도 칠성동·고성동 방면으로도 시가지가 확장하였다. 서쪽 시가지는 비산동의 구릉지대에 막혀 확장이 잠시 멈춘 상태다.
1970년대 중반 (인구 130만명) : 시역이 급격하게 팽창하기 시작한다. 경부고속도로 개통(1970년), 3공단 준공(1968년)이 완료된 이후의 모습이며2 남쪽으로 대명동 일대가 택지로 개발되었고, 신천을 넘어 동쪽으로 북구 대현동·신천동, 수성구 서변지역(수성동·중동·상동)으로 시역이 확장하였다. 서쪽과 북쪽으로도 각각 비산동·노원동·침산동 일대로 시가지가 확장한 것이 보인다.
1980년대 후반 (인구 210만명) : 3차 순환도로 바깥으로 시역이 확장한다. 구마고속도로 개통(1977년), 검단공단 준공(1975년), 서대구공단 준공(1979년), 비산염색단지 준공(1981년), 성서1차공단 준공(1988년)이 완료된 이후의 모습이다. 서쪽으로 평리동·이현동, 서남쪽으로 성당동·내당동·죽전동·송현동, 북쪽으로 산격동, 신천의 동쪽으로 효목동·만촌동·두산동·범어동까지 시가지가 확장되었고, 도심의 배후지역인 성서·월배·칠곡·안심지구도 서서히 개발되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1990년대 초반 (인구 230만명) : 중앙고속도로 개통(1994년), 신천대로 개통(1994년), 성서2차공단 준공(1992년)이 완료된 이후의 모습이다. 성서·월배·칠곡·범물·안심·시지지구와 같은 도심 배후지역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집중적으로 개발된다. 시역은 여전히 확장하고 있지만, 이때부터 대구는 인구유입이 거의 없는 긴 정체기(좋게 말해 안정기)에 들어간다.
2000년대 후반 (인구 245만명) : 대구-부산 고속도로 개통 (2006년), 성서3차공단 준공(2000년), 성서4차공단 준공(2006년)이 완료된 이후의 모습이다. 성서의 용산동·이곡동·신당동, 칠곡의 팔거천 동쪽으로 구암동·동천동, 월배의 진천동·대곡동 방면이 대규모 택지로 개발되었으며, 동쪽으로도 안심·시지지구를 중심으로 대규모 택지가 들어섰다. 배후지의 배후지라고 할 수 있는 다사·화원·봉무동 일대로도 시가지가 확장한 것이 보인다.
2015년 (인구 250만명) : 앞산터널 개통(2013년), 성서5차공단 준공(2012년)이 완료된 이후의 모습이지만, 불로·봉무동지구가 택지로 개발된 것 외에 2000년대와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대구 도심지에 가까운 왠만한 지역은 거의 다 개발이 완료된 상태기 때문에 앞으로 대구가 시역을 확장한다면 달성군 방면이 될 것이다.
'10~'50년대 : 근대도시 형성기
'60~'80년대 : 고속성장기
'90년대~현재 : 안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