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3
#요한계시록 #Revelation 12:11-12
이 땅의 성도들에 대한 마귀의 분노는 과거에는 물리적 육체적 환난과 핍박이 주를 이뤘으나 오늘날에는 개인주의에 기반한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지나친 감성주의와 비교의식과 자괴감 등의 은근한 방식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공격하고 있다. 남녀 평등을 빌미로 남자가 여자를 지켜주거나 배려해주지 않는 것, 남편이 가족부양의 책임을 전적으로 지지 않고 아내에게 일부라도 부담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아내가 임신과 출산을 거부하거나 자녀양육을 전담한다고 독박육아라고 폄하하는 것, 남편보다 돈을 많이 번다고 남편을 존중하지 않는 것, 남녀가 결혼 전 성관계나 임신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돈이 많이 된다고 주말 주일 알바만 찾는 것, 목사후보생이 목회를 내조할 수 있는 아내를 찾지 않고 일반적인 기독교인 여성을 아내로 찾는 것, 신앙과 상관없는 배우자를 찾는 것, 불법적으로 정부에 반기를 들고 선동하는 거짓 목사에게 미혹되는 것, 정치 이념에 치우쳐 의로운 국가 지도자를 악인이라 비방하는 것, 팀플을 이유로 주일 예배를 빠지는 것, 생계를 이유로 주일과 십일조를 지키지 않는 것, 양심을 찌르고 귀에 거슬리는 설교를 거부하는 것, 세속적인 방식으로 교회를 운영해 나가는 것 등이 오늘날 교회와 신자들이 마귀의 분노의 공격을 당하는 것들이다.
#20210523
#신명기 #Deuteronomy 18:1-8
이 땅의 교회에서 목사는 교인들에 대해 레위인과도 같으므로 레위인에 대한 여호와의 언약과 규례를 본받아 교인들이 누리는 것들보다 더 절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서 비록 교인들보다 재산이 적고 교인들의 헌금에 의존하더라도 자기들의 적은 소유에 불만을 품어서는 안되고 감사함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재정이나 사례비가 지나치게 부족해서 목회사역에 지장을 준다고 하더라도 이를 충당하기 위해서 별도의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그만큼 목회사역을 소홀하게 하는 것이고 결국에는 그 경제활동의 비중이 커질 수 밖에 없으므로 목회와 경제활동을 병행해서는 안되고 둘 중 하나만을 선택헤야만 한다. 과거에는 목사를 특별히 우러르는 경햐이 있어서 목사가 생계에는 그렇게 걱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목회에만 전념하기 위해서 아내를 두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합당하였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담임목사를 제외하고는 다른 목사들에게는 충분한 사례비를 주지 않는데다가 여자들 심지어 목사의 아내들조차도 과거와는 달리 살림과 육아를 전담하는 것을 꺼려하고 세속의 남편들처럼 충분한 경제력은 물론이고 살림과 육아도 분담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목사인 남편이 예전만큼 목회에 전념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과거와는 달리 목사가 되려면 아내와 자녀들은 도리어 걸림돌이 되어가기 때문에 차라리 독신으로 목회하는 것이 더 용이할 수 있다.
신자들은 교회의 목사들이 신자들의 헌금에서 사례비를 받고 풍족하지 않게 생활한다고 해서 낮춰봐서는 안되며 목사들이 비록 육적으로는 초라해 보일지라도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맡은 사자로서 우리보다 더욱 신령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음을 알고 그들에게 맡겨진 복음의 권세에 순복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목사들이 통상적으로는 신자들보다 부유하거나 풍족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육적인 필요를 여러모로 챙겨주는 것은 분명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인정받을 선행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한다 해서 냉수 한그릇이라도 대접하면 반드시 하늘의 상급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만약에 어떤 목사가 불의하게 교회 재정을 오남용 하거나 횡령하게 되면 교회에 특별한 애정을 가진 신자들 중에는 그런 교회에 실망하여 자기의 헌금이 그런 식으로 버려지는 것이 싫어서 헌금을 중단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 심령의 밑바닥에 내가 드리는 헌금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것이라는 의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 것이다. 때문에 목사의 불의함 때문에 마음이 매우 불편하더라도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제물을 바쳤던 백성이나 예수님 당시 성전의 연보궤에 봉헌하였던 유대인들을 본받아 마땅히 드려야 할 헌금을 해야 한다.
교회는 담임목사를 제외한 부목사들을 마치 세속의 회사들처럼 부하직원이나 허드렛일 하는 임시직 일꾼처럼 대해서는 안되고 부목사들도 마땅히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맡은 귀한 직분자로 여기며 교회에 맞아 들일 때는 마치 양자를 입양하듯이 신중하게 들이고 들였다면 자녀처럼 그들을 양육하고 교육하고 훈련시켜서 그들이 스스로 자기의 목회를 위해 독립할 때까지 책임지고 양성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목사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매우 귀중한 인적 자산이기 때문에 부목사들을 함부로 하대하고 수시로 갈아치우는 교회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인적 자산을 과소비 하면서도 정작 복음의 열매는 맺지 못하여 그리스도의 도끼로 잘려나갈 죽은 교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므로 세상 사람들보다 더욱 레위인들처럼 신령하게 구별되어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다. 세상 사람들은 이방 족속들처럼 이 땅의 부귀영화를 더 많이 누리기 위해 살아가더라도 성도들은 저들만큼 누리려고 해서는 안된다. 역사적으로 인류의 문명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 의해 발전되어 왔으며 성도들은 저들이 이룩한 문명의 유익의 부스러기를 얻어먹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성도가 이 땅의 것으로 세상 사람들과 겨루려 하다가는 백이면 백 전부 지게 될 수 밖에 없으며 그럼에도 저들을 이기려 하다가는 스스로 불법과 불의에 내어주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 땅에서 형통하여 선한 영향력을 끼치려 하기보다는 소금이 음식에 녹아져야 비로소 맛을 내고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공기에 섞여 상쾌함을 주듯이 겉모습으로는 우리의 존재가 그렇게 눈에 띄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세상에 녹아들고 스며들어 구별된 삶으로 복음을 따라 선을 행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세상에 감동과 유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국가 지도자나 정부나 정치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섣불리 반성경적이라 낙인을 찍고 교회의 이름을 내걸고 세력을 결집해서 비방과 저주를 일삼는 것이야말로 반성경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형제를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는 것은 이방인들도 할 수 있는 것이듯이, 내가 좋아하는 지도자나 정부나 정치인을 사랑하고 반대편을 미워하는 것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하는 것이므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성도가 세상 사람들과 거룩하게 차별화 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이 왕 같은 제사장의 모습을 보이려면 내가 싫어하는 국가 지도자나 정부나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국정을 잘 펼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20190523 #보수주의
보수주의 기독교라 함은, 기독교 신앙이 변질되지 않도록 잘 보존하여 전수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신앙고백과 교리들을 준수함으로써 교회의 기반을 흔들리지 않게 단단히 다지며, 성경의 새로운 해석을 추구하기 보다는 보편적인 해석을 추구하고 조심스럽게 성경을 탐구하는 것이 진정한 기독교 보수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런데 한국의 소위 우파 기독교회들이 주장하는 자칭 보수주의는 이런 기독교적인 의미보다는 정치/경제 체제에 더욱 큰 의미를 두는 것 같다. 즉, 그들의 우파 또는 보수는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기독교 진리에 부합하는 체제라고 정의하고 이를 제외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등의 다른 체제를 비진리 체제로 정의한 듯 하다. 그래서 우파 기독교회들의 슬로건은 대체로 자유 민주주의 수호인 경우가 많다.하지만 이런 현상을 참된 보수주의 기독교라고 볼 수 있을까? 이런 현상은 정치와 종교, 경제와 종교를 연합시키는 불합리한 관점이 아닌가? 도리어 진정한 보수주의 기독교라면, 기독교 신앙이 참되게 보존될 수만 있다면 국가 체제는 왕정이건 군주제건 공화정이건 사회주의건 민주주의건 무방한 것으로 보는 것 아닐까?우파 교회가 주장하는대로 자유 민주주의 체제는 과연 성경적인가? 역사적으로 본다면 자유 민주주의 체제야말로 기독교가 그렇게 경계하는 인본주의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헬레니즘 사상의 대표적 산물 아닌가? 그렇다면 우파 교회가 주장하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는 기독교가 그렇게 경계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성향을 띠는 체제 아닌가? 성경에서는 왕이 없이 각자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던 사샤시대가 바로 자유 민주주의 체제와 유사하지 않은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수결로 금송아지도 만들고 다수결로 모세와 아론을 죽이려 했으며, 다수결로 가나안 땅에 대해 악평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내가 알기로는 칼빈 선생이 왕정이나 군주제가 가장 성경적인 국가 통치 체제라고 했다는데, 적어도 개혁주의적으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싶다.그래서 나는 한국의 우파 교회들이 우파, 보수라는 개념을 일단 제대로 정립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