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무협작가중 최고였다고 생각하는 작가가 진산입니다. 과거형인 이유는 이제 무협소설은 쓰지 않기 때문에.
예전부터 진산의 소설은 무협으로 포장되어 있긴 했지만 그 안에 내용물은 통상적인 무협과는 좀 달랐습니다.
그렇다고 무협과 거리가 멀었냐면은 그것은 아닙니다만, 분명히 느낌은 달랐지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진산이 민해연이라는 또 다른 필명으로 로맨스를 냈던 것이나 최근에는 로맨틱 판타지를 쓰게된 것도 어쩌면 애초에 정해진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진산의 초기작 중 하나인 '정과 검'은 그런 진산의 성향이 가장 잘 담겨있는 무협이랄까요.
제목처럼 정과 검은 정(情)과 검(劍)의 이야기입니다. 검이야 무협에서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소재지만 정(情)은 그렇지 않지요.
물론 김용의 신조협려처럼 정을 부각시키는 작품은 간혹 있습니다만, 그게 곧 주제가 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정을 내세우더라도 반드시 협(俠)이 나오는게 무협이지요. 신조협려의 양과와 소용녀 사이의 정 만큼이나 그들의 협이 비중있게 다루어졌듯이요.
그러나 정과 검은 철저하게 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복수 같은 전형적인 무협의 테마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건 그냥 단순히 이야기를 위한 소재 중 하나이구요.
정과 검에서는 검(劍) 역시 정과 관련된 소재로 등장합니다.
자유를 속박하는 정을 끊기 위한 소재로써 등장하는 게 바로 검입니다. 그러나 또 새로운 정을 만드는 매개체로 역할하는게 검이지요. 검을 통해 정을 끊은 무정검(無情劍) 이결이 어찌어찌해서 얻게 된 제자 설서영과 검을 통해 정을 얻고 검을 통해 복수를 하려던 설서영은 마찬가지로 검을 통해 정을 얻게 되는게 이 소설의 주요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이런 신선한 소재를 바탕으로 재밌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뭐랄까 진산의 작품치고는 좀 엉성한 부분도 있고 억지스러운 부분도 보이고 마지막이 다가오면서 집중력이 흐트러진듯한 내용전개가 흠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 그리고 전반적인 이야기 전개가 모두 훌륭합니다. 3권에서 깔끔하게 끝나는 분량도 적절했고(물론 진산의 작품은 항상 너무 깔끔한 분량으로 마무리되다보니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언제나 그렇지만 진산의 문장력은 이 소설에서도 수준급이구요. 내용과 무관하게 문장력만으로도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우리나라의 장르 문학 작가는 진산을 비롯하여 정말 몇 명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로써 무협작가 시절의 진산의 작품은 색마열전을 제외하면 모두다 읽었습니다. 아직 진산이 무협을 그만둔 이후의 작품들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예전 진산의 무협들을 읽다보면 정말로 무협계를 떠난게 안타깝네요. 이 정도 작가 찾아보기가 정말 쉽지 않은데.
첫댓글 이거 츚현. 대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