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거이 묘 입구.
용문석굴 그리고 향산사를 둘러보고 나오면 백거이 묘가 있다. 용문석굴 들어올때 받은 티켓 한장으로 모두 프리패스다.
하남성 ,낙양에 가시면 한번 기회를 만들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강추
오늘은 문학기행입니다.
백거이(772~846), 자는 낙천(樂天),
백거이묘 안내판...
오늘은 백거이의 출생부터 장한가 까지,,,,
좀 지루 할지는 모르지만 취향이 있으신분은 하나하나 음미를 하시기를....
중국 3대 시성이라하면,,, 이태백, 두보, 백거이(낙천) 있다.
2015년 악양의 동정호를 방문했을때 "두보묘" 를 찾아갈려했지만 악양에서도 버스를 타고 4시간 정도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포기 한적이 있다.
오늘 백거이 묘는 방문을 했고 이태백 묘는 어디에 있는지 기회가 된다면 찾아가서 막걸리 한잔을 나누며 오런이야기 저런이야기
우야튼.....
백거이(白居易)는 당나라 중기의 위대한 시인일 뿐만 아니라 중국 고대문학사 전반에서도 일류에 속하는 대시인이다.
백거이의 자는 낙천(樂天)이고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이다. 바로 백거이 묘가 향산에 있기 때문일것이다.
하남성 정주 신정(新鄭)의 한 관료 사족(士族)의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대여섯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아홉 살 때는 이미 음운이 복잡한 율시(律詩)를 쓸 줄 알았다.
열여섯 살 때 과거시험을 치르러 처음 장안에 왔는데 당시 소주 태수 위응물(韋應物)이 그를 대시인 고황(顧況)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백거이는 자기가 쓴 시 「부득고원초송별(賦得高原草送別)」을 보였다.
무성한 초원의 풀들은
해마다 자라고 시드는데
들불도 다 태우지 못하고
봄바람 불어오면 다시 자라나네.
초원의 풀은 오래된 길을 덮고
황폐한 오래된 성과 잇대어 있는데
오늘도 떠나는 길손이 있어
우거진 풀처럼 이별의 슬픔이 가득하네.
이 시를 본 고황은 아주 훌륭한 시라고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그때부터 백거이는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백거이는 스무 살 때 안휘성 숙현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 침식을 잊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고는 스물여덟 살 때부터 10년 동안 자력으로 세 번이나 과거에 합격했다.
백거이는 40여 년 동안 벼슬을 했다. 지방 관리로도 있었고 조정에 올라와 내직을 하기도 했다. 그 사이에 사직한 적도 있고 좌천되어 내려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정직하고 청렴한 그는 추악한 세력 앞에서 허리를 굽히지 않고 떳떳하게 살았다.
백거이 묘 올라가는 길에서 비단잉어들....
백거이가 섬서 주지현 현위(縣尉)로 있을 때 진홍(陳鴻), 왕질부(王質夫)와 함께 선유사(仙遊寺)를 유람하면서 현종과 양귀비의 일을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백거이는 감개가 깊었다.
그래서 벗들은 현종과 양귀비에 관한 시를 쓰라고 백거이를 격려했다. 그렇게 해서 쓴 시가 바로 「장한가(長恨歌)」이다.
이 시는 현종의 방탕한 생활을 ‘짧은 봄밤을 한탄하며 중천에 해가 떠서야 일어나니 황제는 이로부터 조회를 보지 않았네.’라고 비난했으며 현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교태를 부린 양귀비를 ‘후궁의 미인은 삼천이 넘었지만 삼천의 총애를 그녀 혼자 받았네.’라고 풍자하고 있다.
백거이의 시 「장한가(長恨歌)」의 한 구절인 ‘7월 7일 장생전, 야밤 누구도 잠들어 말이 없는데’의 시의도이다.
백거이는 관리였지만 백성들의 병고에 유달리 관심이 많았다.
그의 시 「신풍절비옹(新豊折臂翁)」은 두보의 명시 「병거행」과 내용이 비슷하다.
이 시는 여든여덟인 노인이 젊었을 때 인명을 살상하는 전쟁에 참가하지 않으려고 깊은 밤 남몰래 자신의 팔을 큰 돌로 내리쳐 잘라버린 비참한 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매탄옹(賣炭翁)」 역시 사회의 저변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백성들을 깊이 동정하면서 탐관오리들을 질타하고 있다.
807년, 백거이는 한림학사가 되고 3년 후에는 좌습유가 되었다.
그러나 황제에게 여러 번 직언으로 간한 일과 당시의 관리들을 풍자하는 시들을 쓴 일로 인하여 조정 권신들의 미움과 악독한 공격을 받게 되었다.
어리석은 헌종은 간신들의 참소만 듣고 백거이를 강주(강서 구강) 사마로 좌천시켰다.
이에 백거이는 ‘평생의 소망을 이루지 못한’ 울분을 안고 불후의 명작인 시 「비파행(琵琶行)」을 써냈다.
이 시는 한 유랑 가녀(歌女)의 한 많은 인생 행로에 대한 자술과 처량하고 구슬픈 곡조를 통해
‘우리는 다 같이 하늘가를 떠도는 사람들이거늘 초면인들 그게 무슨 상관이랴.’ 하는 개탄을 표현하고 있다.
백거이 묘. 묘 둘레는 20-30여 미터 정도 되고 높이는 3-4미터정도가 된다.
관리는 그런대로 잘되었지만 신기하게도 묘 에 큰나무들이 자라도록 내버려 두었다. 잡초도 깍지 않고.... 무슨 연유가 있는지????
진시황묘도 그렇고 관우묘도 그렇고 그냥 그대로 두었다는 특징이 있다.
후에 백거이는 조정의 내직으로 불려 올라갔으나 지난날의 벗들 모두가 권세 다툼만을 일삼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장안은 자기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외직으로 옮겨 달라는 상주서를 올리고 윤허를 받아 지방 관리로 도로 내려갔다.
만년에 이르러 어두운 나라 정치와 조정 관리들 간의 정치 싸움에 혐오를 느낀 그는 벼슬을 버리고 낙양으로 은거했다.
동자를 데리고 조용하고 아늑한 향산사(香山寺)로 가서 승려들과 함께 시를 지었으며 호를 ‘향산거사’라 하면서 청빈한 생활을 했다. 그 후 백거이는 자신의 모든 정열을 시 창작에 기울였다.
일생 동안 그는 2천8백여 수의 시를 창작했으며, 후세 사람들은 그의 인품과 문학적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대한민국 백씨 전국 종친회 기념탑.
어떤 자료에서 보니 한국 그리고 일본에 있는 백씨들은 거의 모두다 백거이 후손들이라고 한다.
백거이 의 "장한가"(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이야기) 전문 (상당히 길어서 인내심을 가지고 음미를 해야 될듯합니다)
2014년 서안 방문시 중국 여행팀에 낑겨서 돌아볼때 화청궁(현종과 양귀비가 놀았다는곳)에 들렀는데 입장료(대략 300위엔정도)가 비싸서 30여명중 2명만 관람하고 나머지는 장한가(뮤지컬)가 끝날때까지 밖에서 기다린 경험이 있다.
"시안" "화청궁" 앞 공원에 있는 현종과 양귀비의 "놀고 있네" 조형물.
양귀비는 원래는 현종의 며느리였다. 다시 말하면 시아버지 하고 며느리 사이다, 요즘 애들 말로" 놀고 있네"다.
그런데 윤리적인 그런것들은 묻혀버리고 "양귀비" 하면 미인의 대명사가 되었으니... 아이러니 하다.
*** 양귀비.... 예쁜가요???? 예쁘면 다 용서한다고 하던데 용서 할만큼 되나요?"***
장한가(너무 길어서 다 읽어볼려면 인내심이 많이 필요합니다)
漢皇重色思傾國 한 황제 사랑 그리워함에 나라는 기울어가네
御宇多年求不得 오랜 세월 세상을 살펴도 구할 수 없구려.
楊家有女初長成 양씨 가문에 갓 장성한 딸이 있었으나
養在深閨人未識 깊숙한 규방에서 자라니 누구도 알지 못하나
天生麗質難自棄 타고난 아름다움 그대로 묻힐 리 없어
一朝選在君王側 하루아침 뽑혀 군왕 곁에 있도다.
回眸一笑百媚生 눈웃음 한 번에 모든 애교가 나오니
六宮粉黛無顔色 육궁에 단장한 미녀들의 안색을 가렸다오.
春寒賜浴華淸池 봄 추위에 화청지에서 목욕함을 허락하여
溫泉水滑洗凝脂 매끄러운 온천물에 기름진 때를 씻으니
대한민국 백씨 종친회 참배자 일동
侍兒扶起嬌無力 시녀들 부축하여 일어나니 아름다움에 당할 힘이 없도다.
始是新承恩澤時 그 때부터 황제 사랑 받기 시작하였네
雲鬢花顔金步搖 구름같은 귀밑머리, 꽃 같은 얼굴, 흔들거리는 금장식
芙蓉帳暖度春宵 부용휘장 안은 따뜻하여 봄 깊은 밤을 헤아리니
春宵苦短日高起 짧은 밤을 한탄하며 해 높아서 일어나니
從此君王不早朝 이를 좇는 군왕은 이른 조회를 보지 않았고
承歡侍宴無閑暇 총애로 연회에 매이니 한가할 틈 없어
春從春游夜專夜 봄을 좇는 춘정을 즐겨 온밤을 지새우니
後宮佳麗三千人 빼어난 후궁에 미녀 삼천 있었지만
三千寵愛在一身 삼천의 총애가 그녀에 있으니
金屋粧成嬌侍夜 금 같은 방 단장하고 교태로 밤 시중들어
玉樓宴罷醉和春 옥루 잔치 끝나면 춘정을 이루니
姉妹弟兄皆列士 자매와 형제 모두가 열사라.
可憐光彩生門戶 예쁘게 여기 가문에 광채가 나니
싱가폴(新加坡)백씨 종친회 기념탑, 일본 백씨 종친회 탑도 있었지만 촬영은 못했다.
遂令天下父母心 이로 하여금 세상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
不重生男重生女 아들보다 딸 낳기를 중히 여기도다.
驪宮高處入靑雲 화청궁 높이 솟아 구름속에 들어 있고
仙樂風飄處處聞 신선의 풍악은 바람 타고 어디서나 들려오네
緩歌慢舞凝絲竹 느린 노래 오만한 춤이 비단결과 피리에 맺히니
盡日君王看不足 군왕은 종일 넋 잃고 보아도 부족하도다.
漁陽瞽鼓動地來 돌연 어양 쪽 땅을 울리는 악관의 북소리 들려오니
驚破霓裳羽衣曲 예상우의곡에 깜짝 놀라도다.
九重城闕煙塵生 구중궁궐에 연기 먼지 솟아오르고
千乘萬騎西南行 수천수만 관군들은 서남으로 가고
翠華搖搖行復止 천자의 기 흔들리며 가다가 서곤 하며
西出都門百餘里 도성문 서쪽 백여리 마외역에는
六軍不發無奈何 육군을 보내지 못해 어찌 할 수 없어
宛轉蛾眉馬前死 미인의 긴 눈썹이 구부러지며 굴러 군마 앞에 죽었네
백거이 묘 정면.
花鈿委地無人收 땅에 떨 군 꽃비녀 거두는 사람 없고
翠翹金雀玉搔頭 취교, 금작, 옥소두 땅에 흩어졌네
君王掩面救不得 군왕은 얼굴 가린 채 구하지 못하고
回看血淚相和流 차마 돌린 두 눈에 피눈물이 흐르네
黃埃散漫風蕭索 누런 흙먼지 일고 바람 쓸쓸히 부는데
雲棧縈紆登劍閣 구름 걸린 굽은 잔도 검각산을 오르네
峨嵋山下少人行 아미산 아래에는 오가는 이도 드물어
旌旗無光日色薄 천자 깃발 빛을 잃고 햇빛도 희미하네
蜀江水碧蜀山靑 촉강 맑게 흐르고 촉산은 푸르건만
聖主朝朝暮暮情 황제는 아침저녁 양귀비 생각에 잠겨
行宮見月傷心色 행궁에서 보는 달에 마음 절로 상하고
夜雨聞鈴腸斷聲 밤비에 들리는 방울소리는 애간장 끊어지는 소리요
天旋地轉回龍馭 천하 정세 변하여 황제 돌아오는 길에
到此躊躇不能去 마외역에 이르러는 걸음 뗄 수 없었네
백거이 묘에 조성된 정원.
馬嵬坡下泥土中 말 높은 고래아래 진흙더미 속에는
不見玉顔空死處 고운 얼굴 어디 가고 죽은 자리만 남아
君臣相顧盡沾衣 임금 신하 서로 보며 눈물 옷깃 적시네
東望都門信馬歸 동쪽 도성문 향해 말에 길을 맡겨 가니
歸來池苑皆依舊 돌아와 본 황궁의 정원은 변함 없어
太液芙蓉未央柳 태액지의 부용도 미양궁의 버들도
芙蓉如面柳如眉 부용은 양귀비 얼굴 버들은 눈썹
對此如何不淚垂 이들을 대하고 어찌 아니 눈물 드리우리
春風桃李花開日 봄바람에 복숭아며 살구꽃이 만발하고
秋雨梧桐葉落時 가을비에 젖어 오동잎이 떨어져도
西宮南內多秋草 서궁과 남원에 가을 풀 우거지고
落葉滿階紅不掃 낙엽이 섬돌을 덮어도 쓸지 않으니
梨園子弟白發新 이원의 자제들은 백발이 성성하고
椒房阿監靑娥老 양귀비 시중들던 시녀들도 늙었네
夕殿螢飛思悄然 반딧불 나는 저녁 궁궐 더욱 처량하여
孤燈挑盡未成眠 등불 심지 다 타도록 외로이 잠 못 드니
遲遲鍾鼓初長夜 더딘 종과 북소리에 밤이 길다는 것을 알았네
백거이 묘는 비교적 잘 조성이 되어 있었다.
耿耿星河欲曙天 은하수 반짝이며 새벽은 다가오고
鴛鴦瓦冷霜華重 원앙같이 금슬좋은 기와는 차고 서리꽃이 심해지나
翡翠衾寒誰與共 함께 덮을 이 없는 싸늘한 비취금침
悠悠生死別經年 생사를 달리한 지 아득하니 몇 년인가
魂魄不曾來入夢 꿈속에 혼백마저 만나볼 수 없네
臨邛道士鴻都客 임공의 도인이 도성에서 머무는데
能以精誠致魂魄 정성으로 혼백을 불러올 수 있다하니
爲感君王輾轉思 양귀비 그려 잠 못 드는 군왕을 위해
遂敎方士殷勤覓 방사시켜 양귀비 혼백 찾게 하였네
排空馭氣奔如電 허공을 가르고 번개처럼 내달아
升天入地求之遍 하늘 끝에서 땅 속까지 두루 찾아
上窮碧落下黃泉 위로는 벽락 아래로는 황천까지
兩處茫茫皆不見 두 곳 모두 망망할 뿐 찾을 길이 없는데
忽聞海上有仙山 홀연 들리는 소문 "바다 위에 선산 있어
山在虛無縹緲間 그 산은 아득한 허공 먼 곳에 있고,
樓閣玲瓏五雲起 누각은 영롱하고 오색 구름이 일어
其中綽約多仙子 그 곳에 아름다운 선녀들이 사는데,
한참을 시흥에 젖어서 1시간 이상 돌아다녔다. 배도 고프고 가게에 들어가서 컵라면을 하나 사서 민생고도 해결하고....
中有一人字玉眞 그 중 옥진이라 하는 선녀 하나 있으니
雪膚花貌參差是 눈같은 피부와 고운 얼굴 그인 것 같다"하네
金闕西廂叩玉扃 황금 대궐 서쪽 방의 옥문을 두드리고
轉敎小玉報雙成 소옥시켜 쌍성에게 알리도록 말 전하니
楣漢家天子使 한황제의 사자가 왔다는 말 전해 듣고
九華帳里夢魂驚 꿈에 깨어 놀라는 화려한 장막 안의 혼백
攬衣推枕起徘徊 옷을 들고 베개 밀고 일어나 서성이더니
珠箔銀屛迤邐開 길게 이어진 구슬발과 은병풍 열리니
雲髻半偏新睡覺 구름 같은 머리 한쪽으로 드리우고 막 잠에 깬 듯
花冠不整下堂來 머리장식 안 고친 채 당에서 내려오네.
風吹仙袂飄飄擧 바람 부는 대로 소맷자락 나부끼니
猶似霓裳羽衣舞 예상우의무를 추던 그 모습인 듯
玉容寂寞淚欄干 옥 같은 얼굴 수심 젖어 눈물이 난간에 흐르니
梨花一枝春帶雨 활짝 핀 배꽃 한 가지 봄비에 젖은 듯 하구나
含情凝睇謝君王 정어린 눈길 돌려 군왕에게 사뢰니
一別音容兩渺茫 "헤어진 뒤 옥음, 용안 듣고 뵙지 못하여
백거이 까치(?).... 그래서 그런지 까치는 까치인데 색갈이... 백까치!!!!!!!
저녀석을 촬영할려고 무던히 애를썻다..카메리 들이대면 멀리 달아나고 또 나타났다가 달아나고........
昭陽殿里恩愛絶 소양전에서 받던 은총도 끊어지고
蓬萊宮中日月長 봉래궁에서 보낸 세월이 오래건만
回頭下望人寰處 머리 돌려 저 아래 인간세상 보아도
不見長安見塵霧 장안은 보이지 않고 짙은 안개와 먼지 뿐
唯將舊物表深情 장차오래 지닐 물건으로 깊은 정을 표하려니
鈿合金釵寄將去 자개 상자와 금비녀를 가지고 가라하네
釵留一股合一扇 비녀는 반 쪽씩 상자는 한 쪽씩
釵擘黃金合分鈿 황금 비녀 토막내고 자개 상자 나눴으니
但敎心似金鈿堅 두 마음 이처럼 굳고 변치 않는다면
天上人間會相見 천상에든 세상에든 다시 보게 되리라네
臨別殷勤重寄詞 헤어질 즈음 간곡히 다시 하는 말이
詞中有誓兩心知 두 마음 만이 아는 맹세의 말 있었으니
七月七日長生殿 칠월 칠일 장생전에
夜半無人私語時 인적 없는 깊은 밤 속삭이던 말
在天願作比翼鳥 하늘을 나는 새가 되면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 땅에 나무로 나면 연리지가 되자고
天長地久有時盡 천지 영원하다 해도 다할 때가 있겠지만
此恨綿綿無絶期 이 슬픈 사랑의 한 끊일 때가 없으리
백거이 묘 앞에서....
亿江南 강남을 추억하며
(여기서 강남이란 아마도 백거이가 항주 지사시절때 있었던 절강성 항주 지방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어서
한수 읊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白居易 백거이
江南好, 강남이 너무 좋아,
风景旧曾谙。 풍경은 옛부터 일찍이 익숙하다.
日出江花红胜火, 해가 뜨니 강 꽃이 불빛보다 더 붉고
春来江水绿如蓝。 봄이 오니 강물이 쪽빛처럼 푸르구나.
能不亿江南? 강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여행 Tip
1. 도착방법; 인천-정조우(정주)-낙양(고속철; 1시간, 버스 2시간), 낙양역-시내버스 k81(1시간 30분)
인천-북경수도공항-전철(1시간정도)-북경서역(北京西站)-낙양(고속철 4시간),
낙양역-시내버스 k81(1시간 30분)
2. 입장료; 70위엔
3. 소요시간; 3시간정도(서문석굴, 동문석굴, 향산사, 백거이묘, 장개석 별장)
4. 기후; 한국 제주도와 유사
5, 특징; 역사 고도(古都)
***** 다음은 "관우 묘" 로 이어집니다 *****
첫댓글 백거이 묘 그리고 장한가....
잘 읽고나갑니다.
해피 보헤미안님..
수고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자세한 설명글과 사진 덕분에 즐감합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