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 <금강경>의 핵심(核心)은 공(空)’
집착을 깨뜨리면 진정한 행복이 열린다.
<금강경(金剛經)>에서 가장 중요(重要)한 것은 공(空) 반야(般若)의 체득(體得=몸소 체험하여 알게 됨)입니다.
그리고 반야(般若)를 말할 때는 공(空)이 항상(恒常) 따르는데, 반야(般若)의 본성(本性)자리가 바로 공성(空性)으로 대표되기 때문입니다.
이 <금강경>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 바로 공(空) 사상(思想)입니다.
우리는 교리(敎理)적으로 <금강경>의 대의(大義)를 두 구절로 줄여서 '파이집 [破二執) 현삼공(現三空)'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두가지 집착(執着)인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을 깨뜨려서 세 가지 공을 드러낸다는 뜻인데, 삼공(三空)에는 아공(我空)과 법공(法空) 그리고 구공(俱=함께구.空=빌공)이있습니다.
금강경에서는 파이집 [破二執] 현삼공(現三空) 나[주관(主觀)]와 남[객관(客觀)]이라고 하는 두가지 집착(執着)을 깨뜨려서 세가지 공을 나타낸다는 말입니다.
두가지 집착은 아집(我執)과 법집(法集)을 말합니다. 나에 집착하는 것은 아집(我執)이고 나 외에 다른 것에 집착(執着)하는 것은 법집(法執)이라 합니다.
나도 나 외의 다른 것인 법(法)도 고정불변(固定不變)하는 실체(實體)는 존재(存在)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할 줄 알고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시간나면 잠자리에 들 줄 아는 것. 금강경의 잘못 알고 있는 나(我) 잘못 알고 있는 세상(世上)에 대한 집착을 깨뜨릴 때 삶의 온갖 장애들도 다 깨지고 진정으로 행복(幸福)한 삶 영원한 기쁨의 삶이 열리는 것입니다}.
아공(我空)|아공은 '내가 공하여 없다는 것을 확실히 보았다'는 뜻입니다.
나(我)'라는 것은 오온이 인연 따라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참으로 '나'라고 할 만한 실체(實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오온(五蘊)이 뭐죠? 색· 수· 상. 행・식(色.受.想.行.識)이죠?
색(色)은 물질적(物質的) 현상(現狀)이고 수·상·행.식은 정신(精神)작용이니까 결국 오온(五蘊)은 세상(世上)을 구성(構成)하는 모든 요소(要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오온(五蘊)은 모두 영원토록 불변(不變)하는 자기만의 고유(固有)한 개체(個體)성이 없지요. 오온(五蘊)은 자성(自性)이 없으며 항상(恒常) 인연(因緣)에 의해 생(生)하고 인연(因緣)에 의하여 멸(滅)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시 공한 것입니다. 즉 나라고 하는 것도 연생연멸(緣生緣滅)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공하다는 말입니다.
법공(法空) 법공(法空)은 아공(我空)에 대응(對應)하는 말입니다. 불교(佛敎)사전(辭典)에는 법(法)무아(無我)라고 표현(表現)했어요. 모든 것은 연기(緣起)에 의해 일어나는 것으로 실체(實體)가 없다는 뜻이죠.
법(法)이라는 것은 우리가 내면적으로 사고(思考)하고 생각하는 모든 정신(精神) 작용(作用)과 밖으로 부딪히는 모든 경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세상(世上)의 모든 현상(現狀) 또는 현상계(現象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법 역시 이것이 법이라고 할 자성(性)이 없고 연생연멸(緣生緣滅) 하기 때문에 공(工)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涅槃)에 드시고 500년이 지나면서 교리(敎理)와 계율(戒律)의 해석(解釋)을 달리하는 20개의 부파(剖破)가 생겼습니다.
이를 부파불교(部派佛敎)시대라고 하는데 이때 학자들은 이 '법'에 대해서 결론적(結論的)으로 뭔가가 있다고 여겨 '유(有)'를 세우게 됩니다. 그들도 색.수·상·행.식 오온(五蘊)이 다 연생연멸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부처님이 설하신 연기법(緣起法)이라든지 그러한 법(法)의 이치(理致)는 영원(永遠)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대승경전(大乘經典)에 와서 부처님은 "그 법도 존재(存在)한다고 할수 없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는 그 진리(眞理)는 무유정법(無有定法)이다."라고 했습니다.
정한 법이 없다는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제행무상[諸行無常=우주의 모든 사물은 늘 돌고 변하여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아니 함.)하다, 제법(諸法)이 무아(無我=자기의 존재를 잊는 일. 사심이 없음)다, 열반적정(涅槃寂靜=마음이 고요하고 마음이 편안한 경지)이다 라고 하는 것들도 사실은 뗏목이기 때문에 강을 건너면 그것도 버려야 될 것이라며 법에 대한 집착을 철저하게 끊어주는 것입니다.
법(法)의 가장 근본(根本) 핵심(核心)은 공(空)입니다. 그런데 <금강경>에는 이 공(空)이라는 말이 안 나옵니다. 공이라는 말 대신 무상(無相)이라
는 표현이 나옴니다.
무상 (無相)
① 모든 사물은 공(空)이어서 일정한 형태나 양상이 없음.
② 차별과 대립을 초월하여 무한하고 절대적인 상태.
③ 모든 집착을 떠나 초연한 지경.↔유상(有相).}
★구공(俱空) 구공은 아공, 법공을 다 초월하여 공 했다는 생
•각마저 없어져서 흔적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수보리(須菩提)존자(尊者)가 이 구공(俱空)의 경지를 가장 잘 체득하였다고 해서 해공제일(解空第一)로 불립니다. 그러면 구공이 되면 허망하고 허무하고 아무 것도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구공이 되면 비로소 마음의 본성자리에 계합한 것이고 그 때 반드시 반야가 드러난다는 겁니다.
그럼 반야가 드러나면 어떻게 되는가? 반야는 반드시 원력(願力)을 동반(同伴)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법장비구(法藏比丘)의 사십팔원(四十八願), 여래(如來) 십대발원 그리고 보현보살(普賢菩薩) 십대원(十大願)이 대표적(代表的)인 보살(菩薩)의 원력(願力=부처님께 빌어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마음의 힘.)입니다.. 대승보살들은 전부 다 원력(願力)을 가집니다.
그 원력을 성취하지 않은 보살은 없습니다. 원력은 한마디로 보살(菩薩)의 근본정신인 이타행(利他行)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비달마(阿毗達磨)에서 소승(小乘)의 목적(目的)은 아라한(阿羅漢)인데 아라한(阿羅漢)은 홀로 열반(涅槃)에 들어가는 것을 최상(最上)의 공부(工夫) 목적(目的)으로 삼습니다. 대신 다른 사람에게 이타행(利他行)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처님도 질타(叱咤=큰소리로 꾸짖음)를 하셨던 겁니다. 이에 반해, 설령 자신은 성불하지 못할지라도 고통 받고 있는 일체 중생 모두를 먼저 성불의 길로 인도하겠다고 원을 세우는 것이 바로 보살(菩薩)의 정신(精神)입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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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도심속 안태산 아래 작은 암자 보현사 회주 無比堂度現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