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혹시나 부을까 싶어 저녁을 세 숟가락 덜어 먹었습니다. 세 숟가락 덜어놓고
젓가락으로 조금씩 조금씩 꼭꼭 싶어 먹었죠. 만약, 소화가 안되어 화장실을 가야
한다면 윽~ 생각만으로도 무척 곤란한 상황이 연출될 겁니다.
그렇게 조심스럽지만, 맛있는 저녁을 먹고 단장을 시작했습니다.
콧노래를 부르며, 깨끗히 샤워하고 손발톱을 다듬고 로숀을 바르고…… 흠,그게 다입니다.
20살 선물로 받은 화장품 셋트엔 몹시 여성스러운 냄새가 나는 화장수와 파우더 들이
가지런히 들어있지만, 써본적이 없어 상자뚜껑만 손에 든 채 망설여 집니다.
상자 속에 사은품인 듯 끼워져 있는 살구 빛 글로스만 꺼내고는 뚜껑을 닫습니다.
뭐, 언젠가는 자연스레 화장할 일도 있겠지 생각하며 미련을 거둡니다. 정성스레 어깨가 유일하게 내 모습에서 사치인 듯 꾸밈이 있는 긴 머릴 말리고 차분히 빗어주고 며칠전부터 고심한끝에 준비해 둔 짧은 가디건이 코디된 원피스를 꺼내어 입자 시간이 벌써 6시가 넘어버렸네요.
살구 빛 틴트를 입술에 덧입히고 땅콩빛 바탕에 꽃이 프린트된 원피스와 손뜨개 조끼를 두어 차례 더 돌아보고 매만진 후에야 살금거리며 집을 나섰습니다.
집을 나서자 마자 운좋게 좁은 골목을 지나던 택시를 잡아타고
“역이요” 행선지를 밝히고 편히 올수 있었습니다.
기차에 올랐습니다. 혼자서 어딜 여행해본 적이 없어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두렵기도 했지만, 두차례 수술로 걷게 된 다리가 도와준 덕에 전엔 꿈도 못 꿔볼 여행을 하는 것에 무척 기쁘고 감사하네요. 기차가 출발하고 한산한 기차 안 사람들을 힐끔거리기도 하고 귀에 꽃아둔 이어폰에 귀기울기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이제 이 기차 밖을 나설 때엔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발을 딛게 될테지만, 그게 그다지 두렵지 않은 건 아마도 그곳에서 내가 보게 될 사람 때문일 테죠……
7시에 출발한 기차는 2시간을 가다 서다를 반복한 끝에 내릴 수 있었습니다. 플랫홈을 밟자 피부에 닿는 서늘함과 코로부터 가슴으로 느껴지는 산뜻함이 샤워한듯 개운함을 주었습니다. 간밤 전국이 열대야로 찜통속이라는 스피커속 라디오 뉴스는 전혀 느껴지지 않게 무척 상쾌한 아침이 시작입니다. 기차를 나서자 여기저기 눈에 띄는 머리 짧은 남자들을 보며 맞게 왔구나 실감이 나네요.
줄서 있는 택시중 하날 골라타고 논산 훈련소로 가달라고 했습니다. 기차에서 내려 화장실먼저가 여러 번 매만진 옷 매무새와 얼굴을 손거울을 꺼내들고 다시 보고 살구빛 글로스를 덧발랐습니다. “애인이 군대 가는거여?”
내모습이 재밌다는 듯 웃으며 묻는데, 그냥 가만히 웃었지요.
애인.. 대답하기 아주 곤란한 질문이거든요..
내가 이곳에 가겠다는 말을 하자 지영이는 가면 뭐하겠냐며 펄펄 뛰었고, 정숙이는 무척이나 내가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았습니다.
내 남자친구도 아니고, 잘아는 사이도 아닌데, 가서 뭘 하겠냐고 군대가는 사람 맘 심란하게 만들지 말라는 지영이 말에 내 3년간에 짝사랑이 한없이 작고 소소해보여 순간 마음이 아팠습니다. 뭘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고백이나 기다림의 약속을 다지자는 건 더더욱 아닙니다.
단지……
처음부터 좋았던 사람
이유없이 눈길이 가고 그 목소리에 가슴이 행복하고 내게 즐거움이 되어준 사람
무슨 욕심을 부려보겠다는 거 아니라, 날 봐달라든가 고백 같은 과한 욕심들이 아닌 행복을 준 그 사람얼굴 보겠다는 그거 하나
내 마음따위보다 더 내게 행복이 되어준 소중한사람에게 마음으로 나마 마지막 고백을 해보겠다는 겁니다.
우리 둘을 묶어볼수 있는 큰 테두리는 동창이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상상되어지지 않음이 난 너무도 잘 압니다. 그 사람이 누구에게나 주는 친절이 몸이 불편해보이는 내게
머물렀음을 잘 압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그 사람에게 갑니다.
택시 아저씨께 부탁하고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가족들과 친구들과 무리 지어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저쪽 끝에 가장 큰 무리를 이끌며 친구들에게 둘러쌓여 걸음을 옮기는 그가 보입니다.
그는 오늘 즐겨 입는 하늘색 니트에 단정해 보이는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고 모자를 쓰고 있네요. 눌러쓴 모자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난 굳이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그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연습장 한 켠에 수 백장씩 그려내던 그니까요.
그가 모자를 벗어 옆에 있는 그의 친한 친구에게 눌어 씌워줍니다. 그 무리 중 유일한 여자인 그녀는 울고 있는지 고개를 떨구는 모습을 보니 친절한 그는 가장 필요한 이에게 모자를 주고 갈 것 같습니다. 그는 자기 것을 잘 나눠주거든요. 지금 내 손에 있는 코팅된 네잎 크로바처럼…….
커다란 운동장에 손수건을 쥐거나 애써 눈을 굳히고 입꼬리를 올리는 사람들이 한쪽에 모여 운동장 가운데로 줄 서 자릴 지키는 사람들에게로 보내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운동장 한 켠에 서 있는 굵고 오래된 나무 뒤에 서 그의 짧아진 머릴 바라봅니다.
그도 친구들과 악수를 나누고 포옹을 하고 모자를 쓴 친구에게 긴 인사말을 건네는 모습이 보이네요. 곧 있음 그도 저 운동장 가운데로 나가겠지요.
그를 위해 빗어 내린 머리카락이 볼에 진득이 달라 붙습니다. 입술에 살구 빛을 내던 글로즈도 아마 달싹거리며 깨무는 통에 제 빛을 잃었을 겁니다.
그를 위해 입은 땅콩 빛 하늘거리는 원피스도 내 손안에서 자꾸 주름이지고 이내 내 입술에서 흐느낌이 새어나옵니다.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고 입새로 흐느낌이 거세어집니다.
타는듯한 목아픔과 저리는 가슴에 흐느낌들은 그에게 전해지지 않아요.
그로 인해 울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내게 기쁨 뿐이었으니까. 그치만, 이제 그와 다시 만날 학교도 없고, 우연히 만날 수도 숨어서 지켜볼 수도 없습니다.
매미가 삼켜버린 내 눈물소리에 서러움이 더합니다. 아마 그가 본다면 왜 그러냐며 손수건을 건네줄 텐데……
친절한 그는 내 눈물을 닦아줄 텐데……
그는 2년이란 시간 후 날 기억이나 할까요?
내질러대는 매미소리가 서러워 눈물이 납니다. 그로 인해 처음 흘리는 눈물이 가슴을 녹여내는 듯 고통스럽습니다. 내 속에 내가 모른척하던 내 욕심이 추하게 눈물이 되어 내 가슴을 가시가 되어 긁어 내립니다. 아마도 난, 숨어있어도 내가 넘어졌을 때처럼 먼저 다가와 손 내밀어 주길 바랬었나 봅니다.
그렇게......
그를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내 방안, 녹초가 된 내 몸과 겨우 막아선 눈물에 퉁퉁 부은 벅벅한 눈을 들어 방안을 돌아봅니다. 모든 게 그대로인데 내 가슴만 비어버린 듯 쓸쓸함에 배게 끌어안고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잠들어 있었는지 온몸이 뻐근하고 아프네요. 창문이 어스름한걸 보면 아마도 초저녁이든지 새벽일거란 생각이 듭니다.
논산에서 돌아온 후 집안에서 겨우 움직이는 몇가지 일들을 제외하곤 잠을 자며 지냈습니다. 몸이 않좋다는 이유로 일주일째 학교에도 나가지 않고 만나자는 친구들의 연락도 거절하고 지냈습니다.
깨어있을 땐 오직 그에 생각들로 그의 소식이나 알수 있을까 싶어 과방 홈피나 그의 홈피를 들락거리며 주시하고, 그를 다라 들어간 대학이니 그가 복학할 때까지 휴학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 이러다 스토커가 되는건 아닐까? 그런 생각들로 머리속을 채웠습니다. 무엇보다, 저절로 떠오르는 그의 목소리나 모습들을 그리내며 그리움으로 눈물을 쏟아내렸습니다.
새벽달빛에 오랜만에 방충망까지 다 열어 밖을 내다 보았습니다.
톡!
문을 여는데, 위에서 문 사이에 끼워있는 뭔가 방안으로 떨어져 들어왔습니다.
비닐로 쌓인 그것을 줏어들고 들여다보이는 속에 적힌 글자를 읽었습니다.
[ 최미은 ]
내이름…
보시락 거리며 호기심에 비닐을 뜯고 안에 종이를 열어보고…… 그만, 눈물이 터져나왔습니다. 며칠간 흘린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속엔
[ 미은아. 너에게 뭔가를 약속할 순 없어. 너에겐 긴시간일지 모르니까
그렇지만, 2년 2개월후엔 네게 고백하고 싶다. 너의 완벽한 반쪽이 되고 싶다고!!
………………………………………………………………………………권 영찬 ]
그가 보낸 쪽지 뒤에는 내가 그린 그의 모습보다 솜씨 좋은 내가 활짝 웃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난 이제 기다림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움 이 마음 아픈 것은 그 그리움이 내몫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이 행복한 것은 기다림 끝에 내 사랑이 서있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을 사랑으로 두고 행복할수 잇을 만치 내가 순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써봤습니다. 내 안에 그 순수함이 어딘가에 숨어있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