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잘 따져 보고 곰곰이 생각하고 오늘 복음은 ‘약은 집사의 비유’다. 두 가지 일이 떠오른다. 하나는 사업가인 한 교우가 이 복음을 읽고 내게 전화해서 따지듯이 물었던 일이다. 하느님이 어떻게 이렇게 비윤리적인 사람을 칭찬하실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오래전에 개봉한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자기 이익을 위해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가 유대인들을 고용해서 그들이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가지 않게 해서 많은 유대인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다. 주인공이 자기에게 남은 돈을 보고 이 돈이면 누구도, 누구도 구할 수 있었다고 자책하며 크게 우는 장면이다.
예수님은 그 집사를 칭찬한 게 아니라 그가 일터에서 쫓겨나게 되자 살기 위해 한 영리한 행동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루카 16,8).” 집주인은 그 집사가 위조한 문서만 볼 테니 실제로 현물이 얼마나 들고났는지 모를 거다. 그 집사는 자신이 더 이상 다룰 수 없어 필요 없는 주인 재산을 이용해서 자신이 살길을 찾았다. 이처럼 빛의 자녀들인 우리도 그 강을 건널 때 하나도 가져갈 수 없는 것들을 잘 이용해서 강 건너에서 살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위조된 빚문서의 혜택을 본 이들이 쫓겨난 그 집사에게 은밀히 고마워하고 도와줬을 거처럼 하늘나라 시민들이 나를 기쁘게 받아주게 해야 하지 않을까.
탑을 세울 때 공사비가 충분한지 따져 보는 거처럼(루카 14,28) 내가 최종적으로 잘 되는 게 어떤 것인지 앉아서 잘 따져 보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만 명의 군사로 이만 명의 상대 군대를 이길 수 없을 거 같으면 싸우기보다 협상해서 자신과 군사들이 살길을 찾는 거처럼(루카 14,31-32), 내가 살기 위해서 포기해야 할 게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혹시 내 배가 부른 걸 최고의 가치라고 여기는 건 아닌지, 하느님 앞에서 혐오스러운 것을 인생의 영광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닌지 잘 따져 보고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필리 3,19).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루카 16,15).”
우리가 악해서가 아니라 약해서 그런 거다. 정말이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같다. 돈을 받으면 쓸데도 없는데 그냥 좋다. 수십 년 동안 수도 생활을 하고, 매일 복음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해도 여전히 돈이 좋고 사람들에게 칭찬받기를 은근히 바란다. 이 몸은 어쩔 수 없는 속물이다. 세속 논리에 따라가지 않게 늘 깨어 조심한다. 잉여 재산을 쌓아 둘 창고 지을 계획을 짜고 그러면 쉬고 먹고 즐기게 될 줄 아는 그 어리석은 부자처럼 되지 말아야 한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6,21)’”
죽음은 어디선가 날아오는 독침처럼 그렇게 찾아오곤 한다. 도사가 아니니 내 날 수를 알지 못하고, 먼저 왔다고 먼저 가는 거 아니고, 착하다고 오래 살고 악하다고 금방 죽는 거 아니다. 그날과 그 시간은 하느님만 아신다. 나는 생명의 관리자이고,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자녀인 참 그리스도인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로마 8,19). 여기 것들은 거기서 하나도 필요 없거니와 가져갈 수도 없다. 천 년도 하느님에게는 지난 어제 같다고 했으니, 거기서 지낼 걸 생각하면 여기서 지낸 백년은 아무것도 아니다. 무엇이 내게 유리한지 잘 따져 보고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 찬 바람이 불고 거리에 낙엽이 뒹굴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든지 바로 떠날 수 있게 준비하라는 말씀으로 알아듣습니다. 여기서 영원히 있을 거처럼 일하는 건 마음이 하늘을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언제나 저와 함께해주십시오. 그러면 두려울 것도 걱정도 없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일상 중 잠시 멈추고 이콘 속 어머니와 눈을 마주치며 어머니가 계신 영원한 세상을 그리워하게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