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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피버스 >> 피겔 바자왔숑
아름답고 강한 심장을 가진 여자
빙판 위의 김연아는 가장 빼어난 발레리나이자 스스로와 부단히 싸워온 여전사였다.
11번의 세계 신기록수립, <타임>지의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 올림픽 챔피언, 그리고 국민적인 영웅.
하지만 직접 만나본 김연아는 자신이 쓴 소개글이 더욱 잘 어울리는 여자다.
‘피겨 세계 챔피언이지만 자유와 평범을 꿈꾸며 단순하고 쿨한 O형에
안 먹는 거 빼곤 다 잘 먹는 꿈 많고 소탈한 피겨 스케이터.’
김연아는 아리랑도,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도,
록산느의 탱고도, 007 메들리도 멈춘 무대에서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에디터/ 장미아, 윤혜정 Photographed by Choi Yongbin
김연아가 스케이트화 대신 하이힐을 신었다. 강한 조명에 눈이 부셨던지 눈을 감고 섰다.
경기가 시작되고 음악이 나오기 직전, 포즈를 잡고 숨을 고르던 그녀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언젠가 그녀는 그 순간이 오히려 키스 앤 크라이 존에서 심사위원들의 점수를 기다리던 시간보다도 훨씬 긴장되고,
두렵고, 외로운 시간이라고 말한 적 있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인다.
<하퍼스 바자>와의 커버 촬영이 여러 명의 김연아를 불러냈기 때문이다.
포니테일 헤어스타일을 하고 엄지공주처럼 거대한 의자에 앉았을 때에는 ‘종달새의 비상’을 배경으로
갓 날아 오르기 시작한 사랑스러운 종달새를 표현해내던 모습이 떠올랐고,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두 손을 앞으로 모으는 포즈에서는 ‘록산느의 탱고’에 맞춰 춤추던 열정적인 여자가 겹쳐졌으며,
카메라를 응시하는 클로즈업 컷에서는 빨간 의상을 입고 ‘세헤라자데’에 맞춰 보는 이를 압도하던 무희가 연상됐다.
순간순간, 김연아는 ‘박쥐의 서곡’에서 처음 무도회에 나가게 된 사랑스러운 소녀의 들뜬 몸짓과 본드걸의 당당한 관능,
그리고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가 내뿜는 오묘한 뉘앙스를 손끝으로 해석해냈다.
그녀가 허리를 꼿꼿이 세울때에는 허리를 뒤로 꺾은 채 부드럽게 이동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작인 이나 바우어가 생각났다.
문득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점프로 약간 휘어진 그녀의 가녀린 발목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지금 김연아는 누구보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 F 장조에 맞춰 춤추던 그녀 자신을 가장 많이 닮았다.
당시 외국 스포츠 방송의 한 해설자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19세인 김연아가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 15살 소녀였습니다.
재능을 가졌지만 부끄러움을 굉장히 많이 타고 스케이트를 별로 재미있어 하지 않아 보인 소녀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녀가 지난 4년 동안 자긍심을 갖고 밝고 긍정적으로 스케이트를 즐길 수 있는 여성으로 성장했습니다.
그 성장의 기록을 그려낸 것이 이 4분 10초짜리 프로그램입니다.”
이날 난 수년 동안 ‘7분 드라마’(쇼트 프로그램 2분 50초, 프리 프로그램 4분 10초를 합친)에서
궁극의 스케이팅을 선보이며 전 세계인들을 감동시킨 김연아가 그 시간을 견디며
더욱 아름다워진 모습과 성숙해진 내면, 그 자신을 온전히 표출해 보이는 또 하나의 무대를 보는 것 같았다.
그건, 김연아라는 피겨 선수와 동시대를 산다는 것만큼이나 행운이었다.
며칠 후 우리는 다시 만났다. 말간 얼굴에 긴 머리를 늘어뜨린 그녀가 들어설 때,
화이트 셔츠에 블랙 스키니 진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김연아는 늦었다고 미안해했지만, 분명 그녀는 아침부터 꽤 부지런히 움직였을 거다.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평창동계올림픽의 홍보대사로서 회의에 참석한 후 ‘올댓스포츠’사무실로 달려온 걸 보면,
알려진 대로 김연아는 은퇴하지 않았지만 이번시즌은 쉬고 있는 상황. 그럼에도 여전히 매우 바쁘게 지내는 듯했다.
“얼마 전 미국에 갔을 땐 다음 시즌을 뛸지 안 뛸지 결정하지 않은 상태였어요.
그냥 얼마간 시간을 가진 것 같아요. 훈련 이외의 스케줄이 많았어요.
지적 장애인들을 위한 스페셜올림픽 글로벌 홍보대사 겸 2013년 평창스페셜올림픽 홍보 동영상을 촬영하고
바로 하버드대에서 자선아이스쇼를 하고 돌아왔죠.
아, 유스올림픽 기자 회견 때문에 스위스 로잔에 다녀왔구요.”
연습할 때와 마찬가지로 개인 시간을 갖지 못하는 거 아니냐는 말에
그녀가 특유의 장난기 어린 낙천적인 웃음으로 답했다. “제겐 기회죠. 푹 쉴 수 있는.”
그중 평창동계올림픽에 관한 일은 지금의 김연아에게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피겨의 불모지에서 우뚝 선 그녀는 존재 자체로 평창올림픽의 슬로건이 ‘뉴 호라이즌’,
즉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는 의지와 정신을 대변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더반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난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던 그녀의 마지막 말에 소름이 쫙 돋았다.
“올림픽에 참가했던 선수로서 모든 IOC 위원분들에게 직접적으로 감사의 말을 전할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이 말을 하도록 허락해 주세요.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 제 꿈을 이루고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줄 기회를 마련해주신
친애하는 IOC 위원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평창올림픽 유치위원회의 프레젠테이션 책임자인 테렌스 번스의 말처럼,
그녀의 프레젠테이션으로 평창은 적어도 10개의 표를 더 얻었을 거다.
각종 언론에서는 이 희대의 사건을 ‘김연아 인생의 제 2막의 시작’이라며 대서특필했다.
이 일로 김연아는 스포츠 스타를 넘어 스포츠 외교관으로서의 역할까지 부여받았다.
하지만 어려운 건 어려운 거다.
“그런 자리에 가면 제가 제일 어리거든요.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어른들이 계시는 어려운 자리죠.
회의 때에는 무든 얘기인지 알아듣기조차 힘들지만 그래도 자리는 늘 지키고 있어요.
하지만 스페셜올림픽이나 유스올림픽은 제가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이고
유니세프 일은 평소 관심이 많았던 일이라 새롭긴 해도 어렵진 않아요.
아, 매번 영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에는 스트레스를 받지만요.”
김연아는 어깨를 살짝 들었다 내리며 도무지 모르겠다는 귀여운 표정을 지었다.
밴쿠버올림픽과 토리노 세계선수권대회가 끝난 직후부터 지금까지도 김연아는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거대한 관심을 받고 있다.
스위스의 피겨 국가대표 선수이자 선배인 스테판 랑비엘은 이렇게 말했다.
“세계 챔피언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큰 기대를 하게 되죠. 정말 힘듭니다.
하지만 인생은 금메달 따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경쟁이 끝나면 또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어요.”
수천만 명의 시어머니를 둔 김연아의 사정을 아는지, 김연아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진로를 정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말이었다.
난 그녀가 필생의 경쟁을 끝낸 후 또 다른 삶이 도래했다는 걸 언제 가장 먼저, 강하게 느꼈는지 궁금했다.
“학교에 갈 때죠. 학교에 있는 제 모습이 아직도 스스로 적응이 안 될 때가 많아요.
아, 오늘 1교시에서는 이걸 배우는구나..., 한국에서의 다른 활동은 어쨌든 선수의 신분으로 하는 거지만,
학교를 다닌다는 것, 학생이 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니까요. 비록 아직 많이 가진 못했지만.(웃음)”
걱정했던 것보다 학교 생활이 좀 수월하고 신나는 모양인지, 그녀가 반 옥타브 정도 올라간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수업을 좀 듣고 나서 레포트를 쓰니까 훨씬 수월하더라고요.
학점이요? 잘 받겠다는 욕심은 없고요, 그저 가능한 한 수업을 많이 듣고 싶어요.”
국내 최초로 피겨스케이팅을 테마로 한 예능 프로그램 <키스 앤 크라이>가 방송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세간에서는 이것이 그녀의 새로운 행보에 대한 단서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떨었다.
감연아는 이 프로그램에서 직접 사회도 보고, 연예인들의 피겨스케이팅 실력을 평가하는 역할을 맡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름을 간판처럼 내걸었던 사실은 한편 그녀가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 짐작하게 해다.
“처음엔 반대했어요. 지금에야 잠깐 관심을 받는 거지,
우리나라에서 피겨는 축구나 야구와는 다른 비인기 종목이잖아요.
게다가 전혀 스케이트를 접해보지 못한 분들이 그 짧은 기간 안에 뭔가를 보여주기에는 무리이지 않나, 싶었어요.”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또 하나는... 내가 방송에 나가면 무조건 욕을 먹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싫어하는 말이 바로 ‘연예인 같다’라는 말이거든요.” 하지만 결국 어려운 결정 끝에 그녀는 방송을 감행했다.
“솔직히 제가 거기서 한 게 별로 없어요. 가끔 와서 심사하고 몇 마디 한 게 전부에요.
제 이름이 걸린 프로그램이긴 했지만 선수들이 한 게 더 많아요.”
방송에서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터로 분한 연예인들의 일취월장하는 실력에,
부상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눈물을 훔치곤 했다.
“김병만 씨도 그렇고, 크리스탈도 그렇고, 너무너무 발전해서 저도 감동했어요.
본인 스케줄 할 거 다 하고, 새벽에 연습을 했을 텐데...,
그들이 아니었으면 아마도 김연아가 나선 프로그램이든 아니든 잘 안 됐을 거에요.”
이 프로그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후 피겨 싱글 경기에만 주력했던 우리나라에서도
아이스댄싱 팀을 선발할 예정이라는 뉴스가 떴다.
김연아는 요즘도 거의 매일 스케이트를 탄다.
“몸을 푸는 정도이지만 그래도 거르지 않으려고 해요.
가끔은 목표 없이 운동을 하다 보니 무기력해질 때도 많아요.
쉬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내년에는 공연도 있으니까요.
특히 피겨는 감을 잊어버리면 다시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요.
체력도 다시 끌어올려야 하고. 오랜만에 스케이트를 신으면 내 발이, 내 스케이트가 아닌 것처럼 어색해요.”
김연아의 얼굴이 유독 편안해 보인 건, 예년 같으면 지금 한창 진행 중인
그랑프리 피겨 대회에 가 있었을 그녀가 내 앞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스트레스가 아예 없진 않지만... 경기에 대해서만큼은 자유롭죠.
주니어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 스트레스를 계속 받아왔어요.
시즌 중에는 시합 때문에, 시즌 후에는 다음 시즌 때문에.
일 년 3백65일 뭘 해도 머릿속에서 항상 그게 있다는 거 자체가 힘들었어요.”
마침 우리가 만난 날은 수능 시험날이었다. 5만 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기분 중 하나가 바로 수험생의 마음이다.
“고3의 상태가 10년 동안 계속 지속된다고 생각하면 좀 비슷한가요?”
일평생 몸이라곤 쓰지 않은 사람이라 운동선수의 스트레스를 헤아릴 수 없다며
농담 같은 질문을 던지자 김연아는 깔깔거리고 손뼉까지 치면서 동의했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에 후배들이 요청한 질문이 있었다.
“정신적인 자기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요.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사람 같아 보이거든요.”
아마 그건 김연아의 별명이 '대인배 김슨생'이라는 걸 모르거나, 잊고 한 질문일 거다.”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것 같아요. 운동하기에 딱 좋은 성격이랄까. 굉장히 쿨하고,
단순하고, 잘 잊어버려요. 뭔가를 관리해서가 아니고요.“
경기 전 자꾸만 스케이트화 끈을 다시 묶는다는 게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징조였을 뿐,
어쨌든 그렇게 타고나지 못한 대다수의 범인들에게는 맥 빠지는 대답이다.
”만약 제가 경기에서 잘 못해서 결과가 안 좋았다고 쳐요. 하지만 전 못했던 잘했든 끝났다는 게 너무 행복해요.
그래서 기분이 좋은데, 오히려 남들이 ‘괜찮아, 못할 때도 있지’ 그래요. 난 괜찮은데, 왜들 그러지?(웃음)“
올림픽 챔피언이 된 직후의 세계선수권 경기든, ‘오마주 투 코리아’로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을 알렸든,
김연아가 항상 1등인 건 아니었으니까 ”
분위기가 정말 별로인 거에요. 하지만 경기를 준비하면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끝났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올해 시상식에서도 울음이 터진 거고.
그런데 다들 내 눈치를 보더군요. 속상했죠. 운동선수에게는 1등이 아니면 모두 꼴찌인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원래 전 앞만 보고 가는 스타일이에요. 다른 동료 선수들 보면, 시합 못하고 오면 기죽어 있는 소심한 아이들도 있거든요.“
김연아를 다시 보게 된 건 밴쿠버올림픽을 앞두고 이런 얘기를 했을 때다.
“하늘이 내려준 사람이 금메달을 딸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날의 주인공이 되지 않더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녀의 어머니가 경기 장면을 차마 지켜보지 못할 때, 그녀가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고는 빙판에 섰다.
“어렸을 때부터 나가노, 솔트레이크시티, 토리노, 세 개의 올림픽을 봤는데, 모두 예상을 빗나간 결과가 나왔어요.
아 올림픽은 정말 하늘이 선택한 선수만이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거구나, 싶었어요. 만약 금메달을 못 따더라도 난 아니었구나,
그냥 인정하자고 마음먹었죠. 내가 한 일은 나의 스케이트를 타는 것뿐이었어요.” 그녀는 여는 때만큼이나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올림픽이 선수 생활에 그렇게 중요한 의미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올림픽은 4년에 한 번이잖아요. 그 나머지 대회가 얼마나 많은데...
물론 지금 생각하면 아, 금메달 따지 않았으면 안 됐겠구나, 싶지만요.(웃음)”
고모가 갖다 준 종잇장처럼 얇은 빨간 스케이트화를 신고 좋아했던 시절,
마룻바닥에서 ‘동계올림픽’ 놀이를 할 때마다 미셸 콴이 되어 갈고 닦은 동작과 표정 연기를 했다는 꼬마 김연아는
이제 미셸 콴을 잇는 피겨 퀸이 됐다.
그녀는 세상 사람들에게 ‘운동선수 김연아’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김연아는 사람이다... (웃음) 솔직히 절 대단하게 보시는 게 아직도 적응이 안 돼요.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아직 전 어리고 운동밖에 잘 하는 게 없어요. 이 세상에 얼마나 운동선수가 많으며,
그중에서도 잘 하는 사람이 또 얼마나 많아요. 그래도 세상이 몰라주는 사람들이 더 많잖아요.
그냥 운동선수니까 운동 열심히 했을 뿐인데... 날 치켜세우는 게 여전히 낯설어요.
친구들에게 종종 힘들다고 얘기해도 이런 답이 돌아와요. ‘너답지 않게 왜 그래? 너 김연아잖아.’
세상에, 김연아가 뭔데?(웃음) 어이없죠.
날 잘 모르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지인들 모두 이렇게 생각한다는 게 가끔은 싫어요.”
허세가 없고 담백하고 솔직하며 소탈한 스물두 살의 이 아가씨가 더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세상의 관심을 고마운 행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김연아가 <슈퍼스타 k>의 슈퍼스타, 버스커 버스커의 ‘정류장’이라는 노래에 꽂혀 있다고 할 때,
고민 많은 청춘답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김연아는 “내가 쌓은 경력이 무너지지 않도록 겸손하게 사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일군 시간들을 돌아보면 그녀는 어떤 생각이 들까?
“선수로서 스스로 대견해요. 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 했고 올림픽 챔피언 했으니까, 이보다 더 잘할 수 있나?(웃음)
만족스러운 선수 생활을 했구나 싶어요.”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흠칫 엉덩이를 뒤로 빼고는 손사래를 쳤다.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들었다는 시간들.
김연아는 그 시간에 대해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다.
그 시간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그저 짐작만 하는 우리가 김연아의 경기를 볼 때마다
그 숭고한 몸짓에 눈물이 핑 도는 건, 단순히 그녀가 1등이어서도, 최고여서도,
한국 출신의 세계 최고의 피겨스케이터라서도 아니다.
그녀야말로 빙판 위에서 활주하는 여성의 몸이 얼마나 예술품처럼 아름다운지
피겨의 미학을 제대로 알려준 장본인이자,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 끝에 얻어내는 찰나의 환희인지 몸소 깨닫게 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김연아의 지난 경기들을 다시 찾아보면서 새삼 알게된 건
국적을 불문한 모든 해설가들이 기술력, 표현력은 말할 것도 없고 특유의 담담하고 침착한 태도에 놀라며
‘대단한 여자’라고 찬사를 보냈다는 거다.
난 그들의 고양된 목소리를 들으면서 김연아가 채우는 게 아니라 비우는 법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의 시간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가지 갖고 싶은 건 ‘자유’이고 단 하루만이라도 아무도 자신을 몰라보는 곳에 있고 싶다던 그녀는
학창 시절의 추억, 친구들과의 수다, 소소한 즐거움,
그리고 고통을 피해갈 수 있는 기회들을 내려놓은 채 오직 꿈을 매진했고,
라이벌을 뛰어넘기 위해 현란한 고난이도 테크닉에 매달리고픈 욕망과 욕심을 내려놓고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완성도 있는 기술과 표현력을 높이는 데 충실했다.
그리고 치열한 경쟁심을 내려놓는 대신 피겨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법을 배우며 스스로에게 집중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김연아의 좌우명 같은 거다.
옛날 페르시아의 왕이 슬플 때 좌절하지 않고, 기쁠 때 오만해지지 않기 위해 반지에 새겨 넣은 이 문구를,
그녀는 어린 나이에 이미 제 심장에 새겼다.
“올림픽 끝난 직후 많은 사람들은 다음 목표가 뭐냐고 물었어요.
하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아요. 제게는 다음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지금으로서는 학교 잘 다니고, 제 생활 잘하고, 주어진 새로운 일들을 잘 하다 보면 어디론가 가 있겠지 싶어요.
그래서 다음 목표까지는 날 좀 그냥 놓아두려고요.”
앞으로 김연아가 어떤 일을 하든,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든
비우는 것의 의미를 아는 성숙한 여자로서의 선택이자 결정일 거라는 믿음이 든다.
그것이 우리가 ‘김연아의 인생 제 2막’을 조바심 내지 않고, 즐겁게 기다릴 수 있는 이유다.
내 수첩에 적어둔, “완벽함이란 더 이상 추가할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걷어낼 것이 없는 상태다”라는 생텍쥐페리의 잠언은 알고 보니 완벽하게 김연아를 위한 것이었다.
바자 인터뷰 타이핑한거래!최부식인가 그 조선일보 기사 보니깐 참 질문이 어이가 없어서...
개념 인터뷰 갖고 왔어.
첫댓글 연아 바지 인터뷰래서 바지입고했다는거야 뭐야 했네...병신같은 내눈........
언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비자인터뷴줄..
언니도ㅋㅋㅋㅋㅋ왤케 야밤에 웃음 터지게 하는거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힘들었나봐.....................
삭제된 댓글 입니다.
난 연아랑 공통점 20대 여자라는 거 ㅋㅋㅋㅋ연느 ㅠㅠㅠㅠㅠㅠ
조선일보따위에서 한 인터뷰보다 훨씬 정갈하고 따뜻하다 진짜. 연느님 사랑해요ㅠㅠㅠㅠㅠ 하고싶은대로 하세요 뭘 하든 좋아할거야ㅠㅠㅠㅠㅠ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0년동안 고3 생활 ㅋㅋㅋㅋㅋㅋ생각만 해도 끔찍해;;;;
스크랩해갈게!~~
어? 비자인터뷰 아니었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 눈 ㅠㅠㅠㅠㅠㅠㅠㅠ 연느 짱
비자 인터뷰도 있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바자란 이름이 생소하긴 함 ㅋㅋㅋㅋㅋ
연아야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연느 ㅜㅜㅜㅜ 진짜 수고했음여
비자인터뷰인줄알았닭 여튼 연느 ㅜㅜㅜ
개념인터뷰다... 연아야 수고많았고 네덕분에 아름다운 프로그램, 아름다운 공연을 볼 수 있어서 너무 고마웠어 ㅠ 이제 그 혹독한 시간들도 끝났겠다 정말 재밌는 삶 살았으면 좋겠다!!! 항상 응원할게!
진짜 연느님.......... 최고야..........지금까지도 최고였고 앞으로도 최고임...... 라이브로 경기를 볼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함. 그냥 지금은 이 사람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음. 적어도 내가 힘들때 몇번이고 돌려보면서 소름돋고 뿌듯해했으니까........
난 잡지 샀당!!! 찍은 사진은 없고 이 모자랑 의자 두개 샀음 아 카리스마 짜장임ㅠㅠㅠㅠ
삭제된 댓글 입니다.
나도 첨에 조선일보 인터뷰 볼 때 영 질문하는게 이상해서 바자 인터뷰 올라오자마자 퍼왔음...팬들 부담스러워하긴 개뿔이 똑같은 내용을 희한하게 써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