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살벌한 연인]은 저예산 영화의 가능성을 최초로 확인시켜준 영화였다. 현대 사회의 가장 대중적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영화라는 매체가 꼭 거대제작비가 투입될 때 수익이 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달콤 살벌한 연인]은 증명해 주었다. 10년전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등장한 [쉬리]는 당시 한국 영화 평균제작비의 2배를 투입했었다. [쉬리]의 제작비는 23억원. 당시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가 12억원 정도였다.
하지만 현재 한국 영화의 평균 제작비는 50억원 내외로 급상승했다. 천만이 넘는 관객을 기록한 영화도 [태극기 휘날리며][실미도][왕의 남자][괴물] 등 4편에 이르지만, 전체적인 수익구조는 나빠지고 있다. [달콤 살벌한 연인]은 한국 영화 평균 제작비의 1/5도 안되는 불과 8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해서 1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저예산 영화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달콤 살벌한 연인]의 성공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주인공 최강희의 역할은 매우 컸다. 최강희는 작품 전체를 끌고 가는 핵심이었다. 겉으로는 참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그녀의 독특한 캐릭터는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 등장하지 않은 새로운 캐릭터였다. 같은 원룸 아파트에 사는 순진한 청년 박용우가 작업을 걸어오면 내숭 100단의 그녀는 순진한 척 이끌려 가는 듯 하면서도 사실은 남자를 자신의 마음대로 조종하는 엄청난 내공의 소유자였다.
최강희의 별명은 많지만 보통 [4차원의 천사]로 불린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졌고 골수 기증 등 선행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강희 본인은 스스로 자신이 4차원의 정신세계를 가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난 전혀 엉뚱하지 않다. 그렇게 착하지도 않다. 연애할 때는 애교도 떨지 못하고 소위 센척 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 말은 조금 다르다. 아직도 최강희는 삐삐를 사용한다. 이제는 간호사 등 긴급 연락을 요하는 극소수의 직종에서만 애용되는 삐삐를 최강희는 애용한다. 핸드폰이 없는 그녀와 연락하려면 매니저들도 삐삐를 쳐야만 한다.
또 최강희는 연예계 최고의 동안으로 손꼽힌다. 그녀의 피부는 맑고 깨끗하며 얼굴도 실제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 나이가 들어도 최강희를 여고생 캐릭터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은 청소년 드라마를 많이 하기도 했지만 실제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그녀의 여고생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1977년생이지만, [내 사랑]에서 대학생 역할을 맡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1995년 미스 레모나로 연예계에 발을 들여 놓은 후 KBS의 [학교] 시리즈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고, 드라마 [단팥빵]을 통해 연기자로 인정받았다.
최강희는 [여고괴담][와니와 준하] 등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스크린에서 인정받은 작품은 [달콤 살벌한 여인]이다. [내 사랑]은 최강희의 독특한 캐릭터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작품이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4차원의 정신세계를 가진 주원이라는 캐릭터가 실제의 최강희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매니저가 시나리오를 가지고 왔을 때 어떤 인물이냐고 물었더니 첫 마디가, [딱 누나에요]였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어 보았더니 내가 생각하는 나와, 주연은 조금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내 사랑]의 주연이를 나와 실제로 비슷하게 생각한다면, 내가 그들에게 그렇게 비쳐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보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내 사랑]은 다중플롯의 영화다. 3년전 크리스마스 시즌에 크게 흥행 성공한 [러브 액추얼리]처럼 여러 가지 사연을 안고 있는 다양한 커플의 사랑 이야기가 동시 진행형으로 펼쳐진다. [러브 액츄얼리] 이후 국내에서도 [새드 무비][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등 비슷한 아류 영화가 제작되었다. [내 사랑]도 그와 비슷한 성격의 영화다. 총 4커플의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연애소설][청춘만화] 등을 만든 이한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인 [내 사랑]에는 지하철에서 만나 사랑을 시작했지만, 결국 지하철 사고로 헤어지게 된 주연(최강희 분)과 세진(감우성 분), 아이까지 있지만 혼자 살고 있는 유능한 카피라이터 정석(류승룡 분)과 그의 직장 동료이면서 그에게 노골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만 늘 무시만 당하는 수정(임정은 분), 복학한 과 선배를 짝사랑하지만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대학생 소현(이연희 분)과 다른 여자를 사랑했지만 소현의 마음을 뒤늦게 알아채는 지우(정일우 분), 헤어진 연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프리허그 운동가 진만(엄태웅 분) 등 4커플의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펼쳐진다.
6년 전 사용하던 핸드폰을 일시정지하고 외국으로 떠났지만 이제는 그 번호를 다른 사람이 사용하고 있어서 옛 연인으로부터의 연락을 받을 수 없는 진만은, 그 핸드폰 번호의 주인인 수정과의 만남을 시도한다. 병렬적으로 구성되는 4커플 중 유일하게 크로스 되는 진만과 수정의 만남을 제외하면, 4커플의 이야기는 서로와 무관하게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된다. 일목요연하게 선형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를 선호하는 대중들에게 이런 이야기 전개 방식은 낯선 것이고 비상업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러브 액추얼리]의 놀라운 성공은 수평적 다중플롯 전개에 대한 대중들의 거부감이 희석되었고 오히려 새로운 이야기 형식을 받아들이는 대중들의 수용의식이 진전되고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러브 액추얼리]가 크리스마스라는 공통점으로 다양한 이야기의 중심점이 형성되다면, 4커플의 다양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 사랑]에서 중심점 역할을 하는 것은 개기일식이다. 3년주기를 갖고 찾아오는 개기월식과는 달리, 달에 의해 태양이 가려지는 개기일식은 일정한 주기가 없다. 태양과 달이 만나는 개기일식은, [내 사랑]에서는 헤어진 혹은 갈등을 빚었던 남녀가 진정한 사랑으로 다시 만나는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내 사랑]에서 내가 맡은 주연이라는 역은, 세진 역의 감우성씨와 데이트한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를 남자 친구로 인정하지 않고 엉뚱한 발언을 하면서 그의 속을 태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주연은 다정하고 속도 깊은 여자다. 내가 촬영하면서 내 속의 주연에게 한 말은 [곱게 미쳤어]였다. 귀엽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쫌 황당하다.]
주연과 세진 커플의 이야기는 주로 지하철을 매개로 전개된다. 최강희는 4차원의 정신세계를 가진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은 엉뚱하고 유쾌하며 발랄하다. 세진의 생일 날 지하철 사고로 사랑을 완성하지 못하고 그의 곁을 떠났지만, 세진은 그녀를 잊지 못해서 지하철 기관사로 취직을 한다. 그리고 그들이 항상 데이트를 했던 그 차량을 운전하며 주연을 추억한다.
[감우성 선배가 너무 좋아서 촬영할 때 [감님]이라고 불렀다. 그는 사람을 참 편하게 해준다. 먼저 말 걸지도 않고 밥 먹자고 하지도 않는다.]
최강희가 실제로 주연과 비슷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녀의 독특한 삶의 방식 때문이다. 같이 연기한 감우성과 호흡이 잘 맞은 이유를 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오히려 불편해 했을 이런 행동들이 그녀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내 사랑] 촬영현장에서 최강희의 또 다른 이름은 최코디다. 그녀는 트렌트세터로서 영화 속 캐릭터를 연구하고 그에 맞는 의상 컨셉에도 직접 참여했다,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그녀는 눈에 띄는 옷과 소품들을 구입해서 주연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직접 연출했다.
그녀가 기르는 고양이처럼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으며 내면의 방을 넓혀 나가려는 최강희는, 대중들의 일시적인 관심을 받는 스타가 아니라 진정한 연기자로 성장하고 있다. 초기의 소녀 이미지에서 벗어나 이제는 엉뚱하면서도 신선한 상상력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창조하고 작품에 생기를 불어 넣고 있다.
하지만 [내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너무 전형적이라는 것이 문제다. 대학 과 선배를 짝사랑하는 소현의 이야기도 그렇다. [내 사랑]은 소녀 취향의 상큼한 사랑 이야기를 무난하게 짜맞추기는 했지만, 그 이야기들은 어디선가 한 번 들은 것 같은 평범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동화처럼 예쁘게 그리려고 하다 보니까 현실적 감각도 부족하다. 다중 플롯의 낯설게 하기가 주는 새로움을 제거하고 상업적 흥미 효과를 유발하는 데 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