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의 ‘동무생각’에 얽힌 이야기
글|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표
1.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 언덕과 같은 내 마음에 백합 같은 내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2.더운 백사장에 밀려드는 저녁 조수 위에 흰 새 뛸 적에
나는 멀리 산천 바라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저녁 조수와 같은 내 맘에 흰 새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떠돌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3.서리 바람 부는 낙엽동산 속 꽃의 연당에서 금새 뛸 적에
나는 깊이 물 속 굽어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꽃진 연당과 같은 내 맘에 금새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뛰놀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4.소리없이 오는 눈발 사이로 밤의 장안에서 가등 빛날 때
나는 높이 성궁 쳐다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밤의 장안과 같은 내 맘에 가등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빛날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위의 노래가사는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 1903~1982)이 작사하고 박태준이 작곡한‘동무생각’이다. 박태준(朴泰俊,1900~1986)이 계성학교 다닐 적(1911~1915) 좋아했던 여학생과의 내용을 담은 노래가 바로‘동무생각’이다. 얼굴이 예쁜미인이었던 그 여학생을 생각했던 박태준은 후에 자신의 사돈이 될 이은상 시인에게 이야기하여 탄생된 것이다. 한편 이여학생은 용모가 뛰어나 인기가 있었으며, 결혼 후 일본에서 생활하다가 귀국하여 다시 법조인과 결혼하였으나 안타깝게경주에서 대구로 오는 고속도로에서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하고 말았다고 한다.
‘동무생각’은 1922년에 작곡되었다. 1921년 평양 숭실대학을 졸업한(제12회) 직후부터 박태준은 마산 창신학교에 1923년까지 근무하였다. 이때 국어교사 이은상과 교류했으며, 이로 인해 이은상과는 사돈관계까지 발전하였다. 곧 이은상의 고종4촌 여동생 김봉열과의 결혼이 이뤄졌던 것이다. 참고로 창신학교는 이은상의 모교이며, 노산의 선친이 설립한 학교이다. 박태준은 마산 창신학교에서 영어와 음악을 가르치며 이은상과의 교류로 친하게 지냄은 물론이거니와 친구관계 이상으로 발전하였다. 창신학교 재직시(1922년) 이은상이 박태준의 심정을 헤아려 작사해 준‘동무생각’(사우)과‘미풍’‘님과 함께’‘소나기’를 비롯하여‘창신중고교 교가’를 작곡한 바 있다.
박태준은 이은상과 창신학교에 함께 근무하면서 각별한 교분을 맺고 밤낮 어울려 다녔다. 노마산에서 구마산으로 가는 길목에는 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두 사람은 문학과 음악, 인생에 대해 밤이슬에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주고받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노산은 고종사촌 여동생을 소개하며 두 사람이 결혼할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그때 이미 여자쪽은 이화여전에서 영문학 강의를 맡고 있는 청년과 약혼 중에 있었다. 그러나 노산의 권고가 하도 간절하고집요하여 저쪽과는 그만두고 박태준과 결혼하게 되었다는데, 그 사람이 바로 박태준의 부인 김봉열 여사이다. 한편 박태준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만나보지도 못한 처녀를 마음에 그리며 곡을 작곡했는데, 그 곡이 바로‘사우’(思友) 곧‘동무생각’이다.
박태준은 1911년 계성학교에 입학해서 1915년까지 다녀 제5회 졸업생이 된다. 이 기간에 영원히 자신의 마음에 담아둔 여학생을 보게 된 것이다. 1절 가사중에‘청라언덕’은 푸른 담쟁이덩굴(靑蘿)을 말하는데, 당시 박태준이 다닌 계성학교 본건물, 곧 1908년에 완공된 아담스관(Adams Hall)과 1913년에 완공된 맥퍼슨관(McPherson Hall)에는 담쟁이덩굴이 휘감고 있었다. 푸른 담쟁이라 한 것으로 보아 분명 봄인 것 같고, 또한 이들 건물이 언덕위에 위치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이 일대 전체를 동산(東山또한 銅山)*이라고 불렀다. 백합(百合)은 자신의 마음속을 비춰주고 자리 잡고 있는 여학생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당시 박태준이 학교를 다닐 때 서양음악에 관심이 깊었기 때문에‘교향악’을 표현하도록 했던 것으로 보인다. ‘흰 나리꽃향내 맡으며’에서 흰 나리꽃이 곧 백합이므로, 곧 좋아한 여학생을 나타내는 것이다. 백태준은 어릴 적부터 제일교회에 다니면서 찬송가를 비롯한 서양음악에 관심이 깊었다. 더욱 동요 및 가곡 작곡에 관심이 깊었기 때문에 노래를 많이 불렀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마음’은 모교에서 자신의 마음과‘백합 같은 내 동무야’에서 여학교에 다니는 마음에 두고 있는 동무, 곧 좋아하는 여학생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는, 마음에 두고 있는 여학생과의 관계가 이뤄진다면, 나의 아픈 마음이 치유된다는 뜻일 것이다.
한편‘동무’로 표현한 것으로 보아서 같은 학년이었는지 모르며, 또한 지금의 고등학생 시절(1914~1915년)일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계성학교 인근에 같은 재단인 신명여학교가 있었다. 이들 학교는 미국 북장로교를 바탕으로 하는 제일교회와같은 재단인 남녀학교이다. 원래 이 곡의 제목은‘사우’(思友)였으나‘동무생각’으로 불리다가, 1950년 이후‘동무’가 이데올로기에 의해 북한에서 사용하는 용어이므로, 남한에서는 사용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이 곡의 제목을 한자(漢字)로 표현한 것이‘사우(思友)’인데, 곧‘벗을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현재 북한에서는 ‘사우’가 아닌‘동무생각’으로 불려지고 있다.
* 당시는 발음이 같아 동산(東山)을 동산(銅山)으로 적기도 하였다. 조선말기 동산은 공동묘지로 사용되어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구린내 나는 산, 곧 구린 산이 되고, 구린은 구리로 동(銅)이라는 한자(漢字)의 훈(訓)과 같다. 동산(銅山)은 곧 똥산이었고, 이후 똥산은 순화되어 동산(東山)이라고 불렀음.
첫댓글 좋은 자료 고맙습니다.
그리운 노래 한 번 불러봅니다.
가사 넘 좋아요.
노래 부르고 있노라니 가슴 뭉클해지는데...
스크랩해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