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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아니면 메이저리그에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특급으로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나이도 있는 만큼 미국 무대를 경험하고 잘 적응하고 싶다"
임창용은 2012년 3월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에 입단했다.
한국과 일본 야구계는 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임창용의 나이가 어느덧 서른일곱 살이라는 것과 일본에서 받고 있던 연봉의 10분의 1이라는 조건을 군말 없이 수락했기 때문이다.
"나를 일본으로 보내주지 않으면 임의탈퇴도 불사하겠다"
2007년 삼성 라이온즈 선수였던 임창용은 구단을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
그의 꿈은 좀 더 넓은 무대에서 야구를 하는 것이었다. 그만한 실력도 갖추었고, 한국 프로야구서 이미 검증도 받았다.
"연봉에 연연하지 않겠다. 나를 필요로 하는 구단이라면 어디든지 좋다"
임창용은 구단과 기나긴 투쟁을 벌였다.
일개 선수가 대기업 구단을 상대로 투쟁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배짱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루고 싶은 꿈과 강렬한 의지가 있었다.
그에게는 돈이 중요한게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오던 넓은 무대로의 진출이 더 중요했다.
"우리가 졌네.자네처럼 아까운 선수를 잡지못한 우리의 무능력이 안타깝네"
"무능력 때문이 아닙니다. 제가 이 구단을 싫어해서도 아니고요. 제게는 저와 약속했던 신념과 꿈이 있습니다.
일본에 가서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결국 임창용은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했다.
국내에서는 특급대우를 받은 그였지만 일본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그는 외국인 선수중 최저 연봉도 김수했다. 하지만 임창용에게 중요한 것은 큰 무대였지 최고연봉이 아니었다.
'열심히 하면돼. 나를 믿고 나아가자'
임창용은 혼신을 다해 경기에 임했다. 그 결과 불과 몇 년 만에 54억원이라는 최고액 연봉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않고 다시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 물론 이번에도 연봉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고, 그걸 위해서는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 당당하게 대우를 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최고의 자리를 경험한 베테랑이지만 임창용은 또 다시 도전을 택했다.
최고에 자리에서 내려온 경험도, 다시 이겨내고 올라간 경험도 모두 가지고 있는 그는 등번호를 0번으로 선택했다.
0에서부터 다시 출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2014년 삼성 라이온즈는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초로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넥센과의 6차전에서 9회말 라운드에 오른 사람은 바로 임창용.
그는 2사에서 4번타자 박병호를 뜬공으로 처리하며 경기를끝냈다.
"후배들이 정말 잘 싸워줬다. 큰 잔치에 숟가락만 얹은 것 같다"
미안한 기색을 보였지만 그는 코리언시리즈 3경기에 나가 3이닝동안 단 한 개의 안타만 허용했을 뿐,
무4사구, 2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벽하게 뒷문을 걸어잠갔다.
일본 프로야구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면서 6년간 한국을 떠난 후 복귀한 첫 해에 귀중한 우승을 일구어낸 것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살아보니까 인생에서 속도는 큰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언제가 됐든 이루고 싶은 건 이룰 수 있더라고요.
그러려면 인생의 방향을 잘 잡아야 할 것 같아요.
방향만 올바르고 그 길로만 꾸준히 나간다면 느려도 언젠가 원하는 장소까지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 <꿈을 이루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 (이형진 지음, 출판사 황소북스) 에서 발췌했습니다 -
첫댓글 도전과 개척정신이 뛰어난 선수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