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분열적 자리와 우울적 자리
클라인은 자리 개념을 단계 개념과 구분했다. 프로이트는 구강기, 항문기 등의 단계개념을 사용하여 본능적 충동의 성질, 식욕 및 성욕과 같은 근본적인 신체적 욕구충족의 성질을 설명하였다. 단계들과는 달리, 자리들 사이에는 끊임없는 변동이 있으며, 이것은 자리가 분명한 연속관계는 끊임없는 변동이 있으며, 이것은 자리가 분명한 연속관계를 따라 발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편집-분열적 자리(Paranoid-Schizoid Position)
삶이 시작되면서 생명본능과 죽음본능 사이에 투쟁이 시작된다. 죽음본능은 자아가 해체되고 완전히 멸절될 것 같은 불안을 낳는데 이러한 불안을 초기의 약하고 통합되지 않은 자아가 감당할 수 없다. 이 때 초기 자아는 이러한 불안을 다루기 위해 분열, 투사, 내사와 같은 방어기제를 사용한다. 초기 자아는 죽음본능을 분열시켜서 밖으로 투사한다. 동시에 생명본능도 이상적인 대상을 창조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투사된다. 이렇게 해서 자아는 리비도적인 부분과 파괴적인 부분으로 나누어지고 그런 다음에는 분열된 대상과 관계를 맺게 된다.
클라인은 편집-분열적 자리의 중요한 방어기제로서 투사적 동일시라고 했다. 투사가 자신의 감당하기 힘든 충동을 외부 대상에게 투사함으로 축출하는 것이라면, 투사적 동일시에서는 충동뿐만 아니라 자기의 일부가 대상 안으로 투사된다. 이때 투사된 것이 자기의 일부분이므로 무의식적인 동일시를 통해서 추방된 부분과의 연결이 유지된다. 투사된 정신내용은 단순히 사라진 것이 아니므로 주체는 그 내용과 관계를 유지하고 통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우울적 자리(Depressive Position)
클라인은 유아가 생후 6개월경에 편집적 상태에서 벗어나 우울적 자리라는 새로운 단계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울적 자리 개념은 이후 클라인학파 정신분석 이론에서 중심적인 개념이 되었다. 우울적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편집적 자리에서와는 달리 대상들이 전적으로 좋거나 전적으로 나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는 통합적 인식 능력이 자라면서 좋은 외적 대상과 나쁜 외적 대상이 실제로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유아는 전적으로 좋은 대상과 전적으로 나쁜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대상이 때에 따라서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울적 자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기제는 보상, 양가감정, 감사이다. 양가감정(ambivalence)은 특정한 방어기제라기보다 일반적인 정서적 성숙의 표현이다. 동일한 대상을 사랑하면서도 미워한다는 유아의 의식은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를 촉진시킨다. 양가감정을 포용하는 것은 전체 대상과의 관계에서 사랑이 미움보다 우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과 증오의 통합은 정서적 심화와 정서적 성숙, 자기 인식과 타인에 대한 공감적 지각능력의 심화 그리고 대상들 사이의 좀 더 세밀한 분화를 가져온다. 따라서 편집-분열적 자리에서는 인지적 성숙, 어머니와의 좋은 경험 등과 같은 외적인 요인이 편집-분열적 방어가 해소되도록 촉진시키는 반면, 우울적 자리에서는 내적 요인, 우울적 자리의 기제가 바로 우울적 불안을 해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우울적 자리는 편집-분열적 자리와는 달리 성숙을 이루는데 필요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5월 1일 주일에 ‘시드니성시화 운동본부’ 임원진의 이.취임식이 있었다. 식순에 의하여 설교를 했다. 누가복음 10장의 말씀을 의지하여 ‘누가 좋은 사람인가?’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인간은 관계적 존재입니다. 관계가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관계가 나쁜 사람이 나쁜 사람입니다. 관계에는 3가지가 있습니다. 수직적인 하나님과 관계, 수평적인 이웃과 관계 그리고 내적인 나와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관계 회복은 생명이고 분리는 죽음입니다. 이웃과의 관계의 회복은 행복이고 분리는 불행입니다. 나와의 관계의 회복은 자존감이고 분리는 자존심입니다. 분리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랑입니다.”
말씀을 전하면서 수업시간에 배운 ‘양가감정’에 대해서 설명했다. “지금 제 마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시원섭섭’합니다. 대표회장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 시원하기도 하지만, 오늘 이후로 아무도 저를 회장이라고 불러주지 않을 것을 생각하니 섭섭하기도 합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이진관이 부른 ‘인생은 미완성’이란 노래가 생각났다.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가야 해” 인간은 된 존재가 아니라 되어가는 존재이고, 인생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