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와 태너, 〈예수와 대화하는 니고데모〉, Study for Nicodemus Visiting Jesus, 1899
밤이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약간 구부정하게 등을 보이고 앉은 사람은 바리새인 니고데모다. 옥상 난간의 예수께서는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달빛을 후광 삼아 앉아 계신다. 오사와 태너(Henry Ossawa Tanner, 1859-1937)는 밤에 예수를 찾아온 이를 왜 그렸을까.
오사와 태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태어나기 3년 전 오사와토미(Osawatomie)에서 노예제 반대 운동이 있었고, 아버지 터커 태너는 그 뜻을 표현하기 위해 아들 이름 속에 담았다. 오사와 태너가 일곱 살 때 노예 해방 선언이 있었지만, 흑인들은 항상 밤이었다. 오사와 태너는 캄캄한 밤 같은 일상 속에서 예수를 만났던 흑인들의 신앙을 표현하고 싶었다.
옛날 유대인들은 예법을 따라 정결해진다고 믿었다. 니고데모도 정결례를 중요하게 여기는 바리새인이다(요 2:6). 가상한 노력이나 종교적 의례를 통해 사람이 깨끗해질 수 없다. 그래서다. 종교인들이 정결례를 위해 준비한 물항아리를 예수께서 포도주로 채워버렸다(요 2:8).
물 항아리에 포도주가 담기게 된 사건이 소문났을까. 아니면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것일까. 니고데모가 찾아왔다. 다른 유대인들이나 바리새파 사람들이 오해할까 싶어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께서는 다시 태어나는 방법을 말씀하신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 3:3). 예수께서 잔치 자리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사건은 마술이 아니라, 사람이 어떤 수준으로 변화해야 되는지 가르쳐 주시려는 체험 학습이었겠다.
모월 모시에 육체로 태어난 사람은 다시 성령으로 태어나야 한다. 이는 육체로 태어나는 것과 달라서,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모른다(요 3:8). 성령으로 태어나는 일은 순간이 아니라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몸을 가르며 태어난 순간을 생일로 기억하지만, 성령의 바람을 가르며 다시 태어난 과정을 기념하지는 않는다. 성령으로 태어나는 건 과정이어서 날마다 생일이다. 포도주가 익어가 듯, 날마다 익어가는 게 성령으로 태어나는 과정이다.
밤에 예수를 만나러 간 니고데모는 오사와 태너의 자화상이요, 당시 미국 흑인들의 초상이겠다. 오사와 태너는 니고데모가 예수를 만났던 밤을 파랗게 칠했다. 오사와 태너가 일곱 살에 들었던 노예 해방 선언은 선언되는 순간에 완성되지 않았기에 여전히 밤이요, 해방은 날마다 완성해 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파랗다. 니고데모로 분한 오사와 태너와 억압받는 이들이 ‘파란 밤’에 예수를 만난다. 칠흑같이 까만 세상 옥상 난간에 걸터앉은 예수께서 꼿꼿하게 빛을 비추니 밤이 파랗다. 밤은 파랗다.
첫댓글 예수께서 꼿꼿하게 빛을 비추시니 우리의 모든 밤도 파랗습니다♡
작가의 마음이 느껴져서 뭉클해지네요~
항상 밤이었고, 캄캄한 밤 같은 일상 속에서 예수를 만났던 흑인들의 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