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건전한 무신론자로 남아있고자 하는 젊은이는 자기의 독서생활에 매우 주의를 기울여야하는 법이다. 어디에나 덫-허버트의 말처럼 “펼쳐진 성경, 수백만 가지 놀라운 일, 정교한 그물과 책략”-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마다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C. S. 루이스, 「예기치 못한 기쁨」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만남이 이루어지기까지에 대해 하고픈 이야기가 있을 것입니다. 만남의 순간이 대단히 극적이어서 영화같은 이야기를 들려줄 만한 사람도, 만남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뚜렷하게 말하기 곤란한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 모양이 어떻든 모두에게 그 만남은 아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리라 생각합니다.
아일랜드에서 출생하여 오랫동안 영국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며 중세 및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쳤던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는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꼽히는 기독교 변증가이기도 합니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청소년기에 신앙을 버리고 청년기를 누구보다도 강한 무신론자로 지냈던 루이스는 1929년에 유신론자가 되고, 1931년 드디어 크리스천이 되었고, 그 후 치밀하고 논리적인 정신과 명료하고 문학적인 문체로 뛰어난 저작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예기치 못한 기쁨(Surprised by Joy)」은 그가 1955년에 출간한 회심기(回心記)로서 자신이 하나님을 전인적으로 받아들여 어린 시절부터 끝없이 추구해왔던 “기쁨”의 실체를 확인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과감하고 명확히, 그리고 무척 흥미롭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 책은 루이스가 스스로에 대해 기록하는 형식을 띄고 있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루이스에게 하셨던 일을 루이스가 기록한 책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그런 의미에서 일반적인 자서전과는 아주 다릅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나면 ‘C. S. 루이스’라는 한 인간이 본향을 발견할 때까지 한 순간도 눈과 손을 떼지 않으셨던 하나님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그가 기독교 신앙을 버리던 때조차도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고 계셨으니까요! 어린 시절부터 상상력과 사고력이 뛰어났고, 손재주 없는 책벌레였으며 낭만적 성향이 강한 동시에 염세적이었던 루이스는 (우리 모두가 그러하둣) 자신에게 가장 적절한 프로그램을 따라 하나님께 끌려 나갑니다.
특별히 명석한 두뇌를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루이스와 평범한 우리들을 평행선 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루이스의 회심기를 읽다보면 곳곳에서 그와 비슷한, 때로는 같은 모순이나 고민에 갇혀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래, 맞아! 하나님, 이런 건 좀 봐 주시면 안 되나요?” 하는 억지를 부려보고 싶은 마음을 잠시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런 억지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인지 금새 지적하곤 합니다. 처음에는 약간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루이스의 미덕이어서 책을 읽어갈수록 루이스를 신뢰하고 한 마음으로 절정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각 시점에서 루이스의 인격이 온전함과는 거리가 먼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순간 가장 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가운데 점점 강하신 하나님의 주권에 스스로 굴복해갑니다. 하나님은 결국 루이스가 가장 집착하고 의지했던 상상력과 사고력을 통해 그의 항복을 받아내십니다.
이 책을 소개하면서 제가 어떻게 이 책을 만나게 되었는지, 또 하필 그 때 이 책을 만나게 된 의미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얼마 전 미국 여행을 떠나기 직전, 여행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꼭 사야할 책이 있어 서점에 들렀었습니다. 그 때 제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책은 사려던 책이 아니라 출간된 지 갓 이틀이 지나 신간으로 쌓여있던 「예기치 못한 기쁨」이었습니다. 사실, 이제야 고백하지만, C. S. 루이스는 제가 최근 가장 좋아하는 작가입니다(제게 있어 C. S. 루이스는 루이스에게 있어 G. 맥도널드 같은 작가, 즉 특별히 선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의 책이 새로 나올 때마다 반가이 잽싸게 사고 있는 중이지요. 기대치 않았던 루이스의 신간을 발견한 저는(그야말로 “예기치 못한 기쁨”이었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여행 중에 읽을 책으로 기꺼이 이 책을 골랐고, 루이스의 책을 읽을 때면 항상 그랬듯이 「예기치 못한 기쁨」은 이번 여행 중에 성경 묵상 본문, 저의 생활 속 사건들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제게 유익한 교훈을 주었으며, 하나님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두려워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또 여행 중 공동체 속에서 교제할 수 없었던 제게 100년을 앞서 산 C. S. 루이스라는 한 크리스천과 공동체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또 하나의 “예기치 못한 기쁨”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매 주일 묵상 나눔 시간을 가지면서 한 주 동안 나의 삶 뿐 아니라 다른 교우들의 삶 속에서, 우리 공동체 안에서 일하셨던 하나님을 경험하고 배워갑니다. 그 시간의 의미와 혜택을 알고 계시는 분이라면 C. S. 루이스의 「예기치 못한 기쁨」을 통해 “나는 내 것이라”고 우기며 고집부리고 안간힘 쓰는 우리 각자를 이제껏, 그리고 지금도 겸손히 설득하시며 만나주시는 하늘의 아버지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는 기쁨을 누려보시는 것은 어떠실지요? 미문(美文)의 향취는 덤으로 얻으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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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못한 기쁨」, C. S.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 홍성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