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발견된 3호 고분의 실체
2003년 전주~함양 간 고속도로 건설로 시작된 완주 상운리 유적의 발굴조사는 원삼국시대부터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30여 기의 고분과 163기의 매장시설, 다수의 철기 유물이 발견되면서 전북 지역 마한문화의 핵심 유적으로 당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최근 지역 고대문화권의 정체성에 관심이 커지면서 완주 상운리 일대가 재조명되고 2022년 완주 상운리 원상운 고분군의 첫 번째 발굴조사가 시작되었다.
원상운 고분군은 현재 보존・정비되어 있는 상운리 유적과 동일한 구릉의 남서쪽에 자리한 8기의 고분을 말하는데 발굴조사는 원상운 고분군의 중심부에 위치하는 3호 고분이 대상이다. 3호 고분은 흙으로 쌓은 낮은 분구를 갖추고 가장자리에 도랑 형태의 주구(周溝)1)를 두른 분구묘(墳丘墓)2)에 해당한다. 잔존한 분구의 규모는 긴 방향이 14m, 짧은 방향이 12m, 높이가 80cm 정도로 동일한 시기의 고분과 비교하면 제법 큰 규모이다. 분구의 정중앙에는 길이가 3.5m나 되는 거대한 크기의 목관이 자리한다.
시신을 안치하고 남은 자리에는 공헌물이 가득 채워졌겠지만 지금은 아쉽게도 목관 위에 놓은 항아리만 남아 당시 장례풍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중 하나는 몸체 양쪽에 구멍 뚫린 손잡이가 달린 양이부호(兩耳附壺)3)로 뚜껑과 함께 출토되었는데 마한문화의 특색을 보여주는 토기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당시 유행하던 추가장(追加葬)풍습이 관찰된다. 고분 중심부에 목관묘를 안치(安置)한 후 분구의 가장자리나 주구 안에 목관과 옹관(甕棺)을 추가로 매장했다. 견고하게 잘 만들어진 고분과 거대한 목관, 부장품은 3호 고분이 4세기 무렵 상운리 일대의 유력자 무덤이었음을 알려준다. 일원에 자리한 비슷한 규모의 고분들 또한 상운리 일대에서 위세 높았던 세력의 묘역이 이곳에 조성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1) 주구(周溝): 고분 주위에 두른 도랑 형태의 시설
2) 분구묘(墳丘墓): 봉분을 먼저 만들고 매장시설을 나중에 만드는 무덤으로 가장자리에 주구를 두른 특징이 있다.
3) 양이부호(兩耳附壺): 양쪽에 둥근 고리 모양의 귀가 달려 있는 항아리
철기 생산력을 바탕으로 성장한 상운리 세력
원상운 고분군에서 드러난 상운리 세력의 위상은 앞서 상운리 유적에서 출토된 다수의 철기유물을 통해 5세기까지 이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만경강 일대는 기원전 2세기 무렵 고조선 준왕(準王)이 남천(南遷)한 곳으로 추정되며 완주 갈동 유적, 신풍 유적 등에서 연(燕)나라계 철기가 발견되어 중국 선진문물이 일찍부터 유입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이후 몇 백 년이 흘러 만경강 상류 지역인 상운리 일대에 철기 생산기술을 바탕으로 성장한 세력의 존재가 드러난다. 상운리 유적의 분구묘에는 집게와 망치 등 철기 제작도구인 단야구(鍛冶具)가 무려 20세트나 부장(副葬)되어 있었다. 과거 상운리 일대는 높은 기술을 요하는 철기 생산력을 세력과 정체성 유지의 기반으로 삼고 마한 문화의 핵심 지역으로 성장해 나갔다. 앞으로 상운리 일대의 지속적인 발굴조사와 학술연구를 통해 전북 지역 고대사회의 성격이 점차 뚜렷해지길 기대 해 본다.
글, 사진. 이지영(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문화재청, 문화재사랑. 2022-10월 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