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실린 선한 사람들
2020.3.5. 조선일보창간100주년
포격당한 연평도 주민에게 찜질방 내준 부부
제자들 수학여행비 모으려 597㎞ 걸은 교사
안산 중학생들에게 교복 지원한 장례식장 대표…
또 다른 선행을 낳는 '선한 영향력'으로 작용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집을 떠나야 했던 주민 수백명에게 숙소를 제공한 찜질방 주인 부부부터 수학여행비가 모자라는 제자들을 위해 국토를 종단한 시골분교 교사까지. 지난 100년간 조선일보는 이웃을 위해 말없이 희생하고 봉사했던 '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여러 차례 발굴해 세상에 알렸다. 이들의 이야기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크고 작은 다른 선행(善行)을 낳는 '선한 영향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국가 대신 피란민 품었던 찜질방 부부
"힘들었지만, 후회는 안 합니다." 2010년 11월을 회상하는 박운규(65)·서기숙(60)씨 부부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북한의 포격으로 쑥대밭이 된 연평도에서 빠져나온 주민 700여 명에게 부부는 자신들이 운영하던 인천의 찜질방 '인스파월드'를 1개월간 숙소로 제공했다〈본지 2010년 11월 29일 자 A10면〉.
십 수년 정성껏 키워온 사업장을 '피난처'로 내놓은 대가는 혹독했다. 한 달 남짓한 기간 찜질방 회원이 1500명에서 500여 명으로 줄고 시설도 망가졌다. 결국 2014년 초 폐업했고, 부부는 동시에 신용 불량자가 됐다.
박씨 부부는 "그래도 좌절하지 않았다"며 "조선일보 보도를 보고 우리 사연을 알게 된 주위 이웃들이 응원과 격려 메시지를 수없이 보내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가의 일을 개인이 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다' 등 편지가 쏟아졌다.
선행을 하려다 '사장님'에서 '계약직 근로자'가 됐지만, 부부의 선행은 계속되고 있었다. 한 달 1만~5만원씩 국내 저소득층 어린이 성금으로 보낸다. 부부는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남을 도울 기회는 공평하잖아요"라고 했다.
◇소화기로 부활한 '초인종 의인'
2016년 9월 9일 새벽. 불길이 타오르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원룸 건물에 20대 청년이 뛰어들었다. 이 건물 거주자였던 청년은 불이 나자 밖으로 먼저 피했다가 잠든 이웃들 걱정에 불길 속으로 되돌아갔고, 집마다 초인종을 누르며 대피 신호를 보내다가 건물 안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초인종 소리를 들은 주민 16명이 목숨을 건졌다. '초인종 의인(義人)' 고(故) 안치범씨다〈본지 2016년 9월 21일 자 A1면〉.
안씨가 숨진 다음 날 사회적 기업 쉐어앤케어는 그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안치범 소화기'를 제작하기 위해 모금을 시작했다. 16일 만에 1000만원이 모였고, 여기에 마포구청이 돈을 보태 '안치범 소화기' 1500개가 1인 가구 청년들에게 전달됐다. 작년에는 초인종을 누르는 안씨 손이 그려진 '야광 소화기'도 등장했다. 화상(火傷) 환자 지원 재단과 소셜벤처 회사가 기획·제작했고, 판매 수익금 전액을 화상 환자 치료에 쓰기로 했다.
◇세월호 학생 장례식장 사장님의 선물
"교복 입을 아이들에게 수의를 입히며 많이 울었죠." 경기도 안산의 안산제일장례식장 박일도(65) 대표는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숨진 학생 50명의 장례를 치렀다. 그 후에도 세상을 떠난 아이들이 눈에 밟혔던 박 대표는 이듬해부터 매년 안산시내 가난한 중학교 신입생 100여 명에게 '생애 첫 교복'을 선물했다〈본지 2016년 12월 21일 자 A12면〉. 작년엔 교복 대신 불우 여학생 생리대 구매 비용으로 1억여원을 기부했다.
박 대표의 행동은 업계에 선행(善行) 바람을 불러왔다. 부산전문장례식장, 군산은파장례문화원 등이 박 대표를 이어 지역 학생 돕기에 동참, 쌀과 생필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박씨는 2016년 한국장례협회장을 맡았다. 그 자리에서 세월호 참사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경험을 토대로, 정부에 '지역별 국가 재난 대비 지정 장례식장' 설치를 건의했다. 올해까지 설치된 재난 대비 장례식장은 전국 195곳이다.
◇과일 장수 출신 노부부의 400억 기부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사는 김영석(93)·양영애(85)씨 부부는 지난 2018년 10월, 평생 어렵게 모은 4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고려대에 기부했다〈본지 2018년 10월 26일 자 A1면〉.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이 부부는 평생 식모살이, 리어카 장사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렇게 번 돈으로 건물을 사 모았고, 그걸 사회에 되돌려줬다. 양씨는 "못 배우고 없는 사람도 사회를 위해 기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재산 기부 약정을 하러 고려대에 가던 날 부부의 점심 상차림은 김치, 콩나물 무침, 고추장아찌 등 반찬 세 가지였다. 고려대를 비롯한 전국 학생들이 본지 보도를 접하고 부부에게 감사 편지를 보냈다. 편지 수십 통엔 '열심히 공부하고 성장하겠습니다' '어려움에 좌절하지 않을게요' 같은 내용이 담겼다. 양씨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심어준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제자들 꿈 위해 땡볕에 597㎞를 걷다
2005년 한여름, 경북 포항 기계중 상옥분교 체육 교사 최인호(당시 50)씨가 제자들 수학여행 교통비를 모으려고 부산에서 강원 고성까지 597㎞를 보름간 걸어갔다〈본지 2005년 7월 21일 자 A9면〉. 작열하는 태양에 다리는 화상을 입었다. 그해 초 산골 분교 전교생 13명은 회의를 거쳐 낙조(落照) 감상과 갯벌·녹차밭 구경 등을 '희망 수학여행 일정'으로 정했다. 하지만 버스 대절료 '120만원' 등 여행 경비는 시골 학생 13명이 나눠서 부담하기엔 너무 컸다. 최 교사는 자신의 트레킹 동호회 인터넷 카페에 아이들의 꿈을 이뤄달라는 글을 올려 자신의 발걸음 10㎞당 1만원씩 모금하는 십시일반(十匙一飯)을 택했다. 사연이 본지를 통해 전해지자 전국에서 격려 전화와 계좌 번호 문의 전화가 300통 이상 쏟아졌다.
선행은 더 큰 선행으로 이어졌다. 2015년 네팔 대지진이 나자 최씨 인터넷 카페 회원들은 '2005년 그때'를 떠올리며 1000만원을 모금했다. 이듬해엔 3000만원을 모아 네팔 포카라 지역 빈민촌에 학생 기숙사를 지어줬다. 박씨는 "15년 전 내 작은 발걸음이 조선일보 덕에 큰 관심을 받으면서, 사람들에게 선행의 기쁨을 알린 것 같아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그래픽] 본지에 보도된 선한 사람들
기고자 : 안영 기자 이기우 기자 황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