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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맹학교 수학교사 안승준. ©안승준
안승준 선생은 현재 한빛학교에서 수학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시각장애 학생들이 가장 배우기 힘들고 가르치기도 힘든 과목인 수학을 안 선생은 마법처럼 쉽게 풀어낸다. 그렇다고 그가 전형적인 꼰대 스타일은 결코 아니다.
그는 7인조 음악밴드에서 보컬도 맡고 있고, 밀알복지재단에서 유쾌한 썰을 표방하며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 알tv <썰준>에서 척수장애인 이원준 씨와 함께 능청스러운 입담으로 장애인 문제를 유쾌하게 풀어내어 인기를 끌고 있다.
유튜브 썰준. ©안승준
그리고 인터넷 신문 <더인디고>의 고정 칼럼 코너인 ‘안승준의 다름일기’에서는 장애인의 차별문제를 예리하게 집어내고 있다.
사람들이 가장 큰 고민이 뭐냐고 물으면 ‘여자 친구가 없어 서럽다.’고 털어놓았었는데 올봄 그 문제도 해결되었다. 장애인단체에서 근무하는 피앙세를 만나 지난 5월에 드디어 결혼을 하였다.
수학 일타교사 안승준
대학 입학 장학금 전달식에서. ©안승준
안 교사는 세계수학올림피아드에서 1등을 할 정도로 수학을 잘해 수학 천재라는 말을 들었다. 그가 시력을 잃은 건 13세 때였다.
뇌수종으로 수술을 받던 중 시신경이 손상되어 마취에서 깨어나 눈을 떴을 때 암흑이었다. 의사는 곧 시력이 돌아올 것이라 하였고, 가족들도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지만 1년이 지나도 사라진 빛은 돌아오지 않았다.
명백한 의료사고였지만 항의 한번 하지 못하고 중학교에 입학할 준비를 했는데 예전처럼 눈을 보는 친구들과는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맹학교로 진학하여 점자로 공부를 시작했는데, 점자 읽는 속도가 느리다 보니 텍스트가 많이 없는 수학이 더욱 좋아졌다. 시력을 잃기 전에도 암산으로 수학 공부를 했었기 때문에 큰 지장이 없었다. 두 자리(수) 곱하기를 연습하다 보면 네 자리 곱셈도 금방 해냈다. 남들이 어렵다고 하는 미적분이 제일 쉬웠다. 그는 맹학교에서 보기 드문 수학 천재로 유명했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수학을 포기하지 않고 단국대학교 수학교육과에 입학하였다. 수학교사가 꿈이라기보다 그래도 교직 자격은 있어야 직업을 갖겠기에 선택한 것이었다.
“맹학교에 교생실습을 가게 되었어요. 한 며칠 지났을 때 아이들이 찾아와 ‘선생님 수업을 들으니까 수학이 너무 재밌어요!’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얘기를 계속 듣다 보니까 제가 잘 가르쳐서가 아니고, 시각장애인만의 수학방식을 전에 아이들은 교육받은 적이 없었던 것이었어요. 스스로 안 보이니까 수학을 못한다고 생각했다가 같은 처지인 제가 와서 ‘이렇게 하면 우리 나름대로 더 쉽게 풀지 않을까?’라며 노하우를 알려 주니까 아이들도 ‘시각장애인들만 하는 방법이 있구나!’라는 것을 그때 깨달은 거죠. 엄청난 수학자가 되는 것도 좋지만 날 정말 필요로 하는 곳에 가는 것이 의미 있겠다 싶어서 특수교육대학원에 진학해 특수교육을 전공했지요.”
졸업 후 2005년 서울맹학교에서 교편을 잡아 벌써 교직생활 18년째이다. 그동안 교사로서 많은 일을 하였다.
필산이 어려운 시각장애 학생들을 위해 2005년부터 주산 암산법과 주판 필산법을 고안하여 교실 수업에 적용해서 수학과목 학업성취도를 높여 나갔다.
드디어 한 학생을 2018년 시각장애인 최초로 경희대학교 세무회계학과에 입학시켰다.
그래프와 도형의 인지가 어려운 시각장애 학생들을 위해 비장애 학생들의 교구를 응용한 촉지각 교구를 개발하고, 2015년 시각장애 특수학교 최초로 3D프린터를 도입하여 수업 현장에 활용하였다.
수학능력시험 응시 때 암산에 부담을 느끼는 시각장애 학생들을 위해 2005년부터 교육과정평가원에 필산도구 도입을 꾸준히 건의한 결과 2019년부터 스크린리더가 탑재된 컴퓨터 및 점자 정보 단말기를 2교시 수학영역 시간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였다.
EBS교육방송 영상강의의 판서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은 시각장애 학생들의 학습권 향상을 위해 화면해설 영상을 추가로 제작한 후 검수함으로써 작은 오타나 오역으로도 큰 혼란을 느낄 수 있는 수학 과목의 올바른 교육권 보장에 앞장섰고, 낭독 표준이 존재하지 않는 수학 기호 및 수식의 음성 소통 과정에서 발생되는 혼란과 오류를 없애기 위해 2019년 국립장애인도서관 ‘수식 읽기, 말하기 방법 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등 시각장애 수학 학습에 큰 변화를 이끌어 냈다.
안승준의 도전은 무죄
영국 대영박물관 견학 중. ©안승준
그는 한국장애인재활협회에서 주최하는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가다’ 1기생으로 영국에 갔다. 2005년 당시에는 장애인의 해외 연수의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날의 경험을 글의 소재로 사용하곤 하였다.
2007년에 온라인 뉴스채널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기고한 <비너스를 느끼다>라는 칼럼은 순식간에 200만 조회수를 기록, 5천 건이 넘는 댓글도 달렸다.
“영국 대영박물관을 견학할 당시 보안관이 제게 했던 말이 기억에 남아요. ‘수천 년 된 문화재를 향한 영국인들의 자존심도 한 시각장애인이 문화재를 감상할 권리보다 앞서지는 못한다.’ 고 했지요. 그리고 그리스관에 있는 비너스상과 모든 전시물을 손으로 감상할 기회를 주었어요.”
그 후부터 안 교사는 주기적으로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글을 기고하는 한편, SNS를 통해 장애인으로서의 경험을 얘기하며 적극적인 소통에 나섰다.
춘천 명진학교에 근무할 때인 2008년 KBS-TV <퀴즈 대한민국>에 출연해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문제를 풀면서 재치있는 입담으로 시청자와 방청객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비록 한 문제 차이로 결승 진출이 좌절되기는 했지만 도전하는 모습이 장애인과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안승준 교사는 ‘나의 방송 출연으로 내 제자들이 힘을 얻는다면 그것만으로 행복하다. 장애에 굴하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을 꼭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며 출연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방송 출연을 결심했을 때 ‘제자들이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할 수 있냐고 말해 마음이 아팠다며, 아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더욱 열심히 준비했다.’고 고백했다.
2009년 한빛맹학교로 부임해 왔을 때 서울에서는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생존권 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안마는 시각장애인 고유직종이었는데 직업의 자유를 앞세워 마사지업이 활기를 띠었다. 교사이기 전에 시각장애인 당사자였기에 그 투쟁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그 당시는 시각장애인의 뜻을 전하기 위해 국회에 들어갈 수도 없었고, 전국적인 조직을 모아 시위를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시각장애인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일일찻집 형식의 ‘암전 1일카페’를 열기로 하였다.
전국시각장애인청년연합 기획위원장이던 안 교사가 내놓은 아이디어였다. 카페 안은 불빛이 없는 암전인데 카페에서 주문을 받고 커피 등 차를 서빙하는 점원이 시각장애인이다. 암전 카페에 들어선 순간 손님들은 시각장애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회원들이 비용을 갹출하여 마련한 행사였지만 반응이 너무 좋았다. MBC에서 취재하여 뉴스에 나갈 정도였다. 이 프로그램은 나중에 ‘어둠 속의 대화’로 운영되어 화제가 되었다.
2014년,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 강연자로 출연하여 큰 관심을 모았고, 시각장애인밴드 ‘플라마’의 보컬로서 장애인의 다름을 올바르게 인식하게 하는 노래를 만들어 공연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작사한 곡은 30곡이 넘지만 발표된 노래는 15곡 정도이다. 그리고 방송 고정 출연 등 다방면으로 도전을 쉬지 않는 그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예능 TV프로그램에도꼭 나가고 싶다고 했다. 왜냐하면 장애가 농담의 소재가 되는 세상이 되어야 장애·비장애 사이의 보이지 않는 막이 거둬지기 때문이다.
이제 한 가정의 가장으로
2017년 전국직장인밴드 대회에서 은상 수상. ©안승준
주위 사람들은 안승준이 결혼을 빨리 할 줄 알았다고 말한다. 교사라는 직업도 안정적이고, 말을 재미있게 해서 분위기 메이커이며 외모도 훤칠해 매력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흔이 되도록 혼자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였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인연을 만들어 주었다. 안승준은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사업에 종종 참여하였지만 국제팀과는 연결이 없었는데 2021년, 국제팀에서 연락이 왔다.
캄보디아 현지에 가서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못하여 특수교육 강의 동영상을 제작하는 사업을 실시하게 되었는데 바로 안승준이 강의를 맡았다. 이 동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담당자와 2주 동안 거의 매일 만났다.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2주 안에 형성되었다.
두 사람은 함께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장애에 대해 얘기할 필요가 없었다. 안승준은 81년생이며 여동생이 있고, 부인은 82년생이고 언니와 남동생이 있는 지극히 평범한 두 가정이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그들은 상견례도 할 수 없었지만 결혼식을 진행하였다.
2023년 5월 27일,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주었다. 신부 측 부모가 나타나지 않을 것을 대비하고 결혼식을 준비하였다.
그런데 두 분이 참석해 주셨다. 장모님은 신랑 손을 꼭 잡고 아무 말없이 흐느끼셨고, 장인어른은 신랑 손을 잡고 역시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가 나즈막히 ‘잘 살아라.’라고 축하해 주었다. 그들의 결혼식은 해피 엔딩이었다.
안승준은 그날 이후 두 분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고 자랑하였다. 두 사람은 성당에 다니기 때문에 2세는 하느님이 내려 주시면 고맙게 받겠다고 하였다.
그의 소망대로 어렵게 맺어진 부부의 앞날은 언제나 해피 엔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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