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스케치
- 황산공원 -
지구 온난화로 추석을 하루 앞둔 날에도 여전히 여름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인생 노년에 오지도 않는 쓸쓸한 가을을 기다릴 수 없어 카메라를 챙겨서 집을 나섰다. 전철 한번이면 바로 닿을 수 있는 해운대를 생각했다가 자전거 페달을 황산공원 쪽으로 밟았다. 이 자전거도로는 여러 차례 명품길로 소개된 바 있는 양산천을 따라 호포까지 달리는 5km다. 호포엔 낙동강이 있다. 4대강 사업으로 황무지에서 탄생한 명품 황산공원도 호포 인근이다. 황산이란 명칭은 신라 때부터 내려오던 양산의 옛 지명. 오랜 세월 비닐하우스 재배로 온갖 쓰레기와 인분으로 몸살을 앓던 땅이었다. 이곳에선 강을 따라 25km 남하하면 남해바다를 만나는 낙동강 하구둑이다.
추석을 하루 앞두고 맑지 못한 날씨가 기분마저 우울하게 만들었다. 금정산 고당봉을 덮은 먹구름이 북쪽으로 산맥을 따라 장군봉까지 덮었다. 산은 수목이 우거졌지만 아직 단풍은 물들지 않았다. 산 중턱엔 한국 경제를 부국으로 일으킨 송전철탑이 우뚝 우뚝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조화인지 시간이 갈수록 먹구름 밑에서 하얀 구름이 띠를 형성하며 피어올라 먹구름을 위로 밀어 올렸다. 먹구름 위론 푸른 가을하늘이 열렸다. 해운대를 포기하고 양산천과 낙동강 코스를 택한 덕분에 만난 행운이었다. 코발트빛 하늘을 만나자 마음마저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난 평소에도 구름의 유혹에 이끌려 오륙도나 황령산을 자주 찾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부산은 축복받은 도시란 생각도 든다.
저전거로 달리는 머리 위로 갑자기 헬기 한 대가 나타났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옆 거대한 대학병원에 용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난 가급적 이곳에 헬기가 자주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강 건너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린 이도 헬기로 이 병원에 도착했었다. 세상 살다가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지 않고 대학병원을 찾은 걸 난 그때 처음 봤다. 병원 개원 초였던 때라 옥상에 헬기장을 미처 마련하지 못한 탓에 오전 내내 헬기가 공중을 맴돌면서 얼마나 부산을 떨었는지 모른다. 생태공원 연못에서 대형 가물치를 낚은 베트남 청년은 내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해 주었다.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숙소에 쉬고 있는 동료들을 전화로 부르는 것 같았다.
넓은 연못에 큰고니를 비롯한 철새들이 즐겨 찾는 것도 가물치를 비롯한 먹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연못에 멸종 위기종 2급 야생식물인 가시연꽃이 서너 군데 자리잡았다. 지하철 남양산역 앞 유수지공원을 가득 덮은 가시연꽃이 꽃을 피워 뉴스로 뜰 정도로 사람들 관심이 뜨거웠다. 하지만 가시연꽃 번식력이 워낙 강해 연못을 빈틈없이 덮는 게 문제일 것이다. 철새들은 물속 먹이를 구하기 힘들어 더 이상 이곳을 찾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황산공원엔 70여 가구가 살던 남평마을이 1938년 대홍수로 떠나고 지금은 거목 팽나무 한 그루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월당나루터도 조선시대부터 덕산까지 배로 강을 건너던 역사 속 현장이란 기록이 내걸렸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