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 26,16-19; 마태 5,43-48 / 사순 제1주간 토요일; 2020.3.7.
오늘 독서와 복음은 각기 다른 강조점이 있다기보다는 같은 주제를 다른 시대의 언어로 다루고 있을 뿐이어서 종합하여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맺은 계약은 우리가 하느님을 섬기고 믿음으로써 그분을 닮고자 노력하겠다는 약속과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 백성으로 삼아 공정함에서 거룩함까지 이끌어주시겠다는 약속, 두 가지라는 사실입니다. 이 약속과 약속으로 맺어진 계약의 구체적인 현실은 파라오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해방과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구원의 방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길을 가야 하는 주체로서는 우리 개별 신앙인들부터 시작해서 전체 교회에 이르기까지 이르고, 그 길의 이정표처럼 추구해야 할 가치로서는 공정함에서 거룩함까지 이르며, 또 출발점과 지향점으로 보자면 파라오로부터 예수님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이 과업을 파스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지내고 있는 이 사순시기는 이 파스카 과업을 위해 신앙인들을 위해 마련한 전례적 배려입니다. 파라오의 억압과 지배에서 벗어나 공정함을 회복하려는 회개와 예수님께로 향하려는 부활의 신앙이라는, 해방과 구원의 좌표가 이 사순시기 전례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우리에게 요청되는 회개를 불가(佛家)에서는 탐진치(貪瞋癡)라는 세 가지 독(三毒)으로 가르칩니다. 지나친 욕심과 분별없이 성냄과 세상 이치를 모르는 어리석음이 중생을 해롭게 하는 독이라는 뜻입니다. 현대판 파라오들도 이 탐진치의 삼독에 빠져서 정치적 독선과 경제적 불평등과 문화적 우상숭배로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게 만들고 있음을 우리가 알게 된다면 우리는 마땅히 악에 대한 개인적인 통찰과 사회역사적인 의식으로 깨어나야 합니다.
거룩함은 신성의 가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당신 나라에로 이끄시는지에 관해서 가르치시느라고 햇빛과 비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고루 내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악인과 불의한 이가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이유는 그들이 저지르는 악과 불의가 선인과 의로운 이들이 하느님께로 나아가야 함을 일깨워주는 발판이 되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인과 의로운 이들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거룩함의 기운을 보고 느끼고 체험해야만 악인들과 불의한 이들도 회개하여 하느님께로 나아갈 가능성이 마련되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닮고자 노력해라. 그러면 이끌어 주겠노라는 계약이 성사되려면 노력함이 선행되어야겠지요^^
공정함에서 거룩함에 이르기까지 파스카 과업의 길을 군말 없이 따르기를 희망합니다.
<선인과 의로운 이들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거룩함의 기운을 보고,,>
너무 힘들어요...
그러나 희망은 잃지 않습니다.
혹시 자매님 자신께 넘 엄격하신건 아닌지, 그런 느낌이 들 때가 몇번 있었답니다. 길피에서요.^^
@여에 그렇죠...
지금은 내의지와 상관없이 벗어나지도 못해요.
형부와의 관계가 제일 문제예요.
위 부분은 하느님을 닮으려는 우리의 지향에 맞추어야 하지만 우리의 능력이나 노력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에 맡겨져 있는 문제입니다. 당사자들의 변화는 그들 자신과 하느님과 미래에 맡기십시오.
@이기우 녜, 감사합니다.
https://youtu.be/2y9A6-cYl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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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이지요? 힘내십시오. 예수님께도 이스카리옷 유다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