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의 선봉장 아담 스미스와 좌파의 거두 칼 맑스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아담 스미스는 성공한 인물로서 대학 교수와 집필로 일생을 보냈으며, 죽고 나서는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했다.
그러나 칼 맑스는 영국으로 망명해서 노름꾼으로 말년을 보냈으며, 그의 모든 저작은 엥겔스의 도움을 받았다.
귀족 출신 점잖은 영국 신사이자 휴머니스트였던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으로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저서 <국부의 성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를 썼다.
글래스고대학교에서 도덕철학을 공부했고, 옥스퍼드대학교 베일리얼 칼리지에서 연구를 지속했으며 에든버러에서 공개강좌를 맡았다.
이 저작에서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의 명제가 등장하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손’은 모든 개인이 각자의 이해에 따라 움직이는 경제 체제를 이끄는 힘으로, 경쟁을 표현한 개념이다.
1777년 스코틀랜드의 관세·소금세 위원으로 임명된 뒤 에든버러에서 지내던 중 중병을 앓고 1790년 죽었다.
애덤 스미스는 소득의 많은 부분을 남들이 모르게 자선 사업에 기부했다고 알려져 있다.
죽기 직전 스미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초고들을 거의 모두 없애버렸다.
말년에 스미스는 2가지 중요한 논문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중 하나는 법이론과 역사에 관한 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과학과 예술에 관한 것이었다. 사후에 출판된 〈철학적 주제들에 관한 소론은 바로 그 2번째 논문에 담고자 했던 내용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저술하면서 그 사상체계의 수립에 몰두하고 있던 18세기 중엽의 영국은 중상주의 정책의 한계가 드러나고, 이 제도하에서 성장하여 자립의 힘을 축적한 산업자본가계급이 새로운 생산력의 담당자로 대두하는 역사의 전환기를 맞고 있었다.
영국으로 망명하여 말년에 노름으로 세월을 보냈던, 칼 맑스는 독일 트리어 출신이며 대학에서 법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1843년 예니 폰 베스트팔렌과 결혼했다. 정치성 다분한 저술활동으로 인해 마르크스는 무국적자 신세로 수십년 간 영국 런던에서 처자식과 함께 망명생활을 했다.
런던에서 맑스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합작, 대영박물관 열람실에서 연구하며 주요 저작을 남겼다. 그의 대표작은 1848년 출간된 소책자 《공산당 선언》과 3권짜리 《자본론》이다. 마르크스의 정치사상과 철학사상은 그 이후의 사상사, 경제사, 정치사에 거대한 영향을 남겼으며, 마르크스주의라는 일대 학파를 이루어 그 이름은 보통명사, 형용사화되었다.
맑스의 사회경제정치이론을 집합적으로 마르크스주의라 한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인간 사회가 계급투쟁을 통해 진보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계급투쟁은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와 피지배계급인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투쟁으로써 나타난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를 가르는 기준은 생산수단을 통제하는지 여부다. 생산수단은 부르주아에 의해 통제되며,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주아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임노동자로 부려먹힌다.
소위 사적유물론이라는 비판이론에 의해 마르크스는 과거의 사회경제체제들이 그러했듯 자본주의 체제 역시 내재된 결함에 의해 내부적 긴장이 발생할 것이며 그 긴장에 의해 자멸하고 사회주의 체제라는 새로운 체제로 대체될 것이라 예측했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런 불안정성과 위기취약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계급적대가 발생하고, 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가지게 된다.
의식화된 노동자들은 정치권력을 쟁취하고, 마침내 계급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체로 구성된 공산주의 사회를 이룩할 것이라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골자다.
맑스는 자신의 예측이 현실화 되기를 앉아 기다리지 않고, 노동계급이 혁명적 행동으로써 자본주의를 거꾸러뜨리는 사회경제적 해방을 추구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저술· 출판 작업에 평생 매진했다.
마르크스를 긍정하는 입장에서나 부정하는 입장에서나 모두 마르크스가 인류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 중 하나임을 전제한다.
그의 경제학 저술은 오늘날의 노동 및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이해 대부분의 기초를 놓았다.셀 수 없이 많은 학자, 노동조합, 예술가, 정당이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았고, 맑스의 사상을 각자 재독해, 변형, 변용했다. 일반적으로 맑스는 근대 사회학의 뼈대를 세운 인물 중 하나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