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 말기의 환자가 있었다.
그는 평생 술을 즐겼고 밥은 굶어도 술은 마셨다
주변에 친구들도 많았고 사람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살았다. 그러다보니
가족들에게는 서운한 점이 없지 않았다.
친구의 부탁이라면 능력이 닿는 선에서
흔쾌히 응했고 그때마다 그들과 술을 마셨다.
당연히 가족들에게는 소홀할 수 밖에 없었다.
한 마디로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그런 삶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지못해 받은 건강검진에서 그는 간암 판정을 받았다.
그러자 가족들은 물론 그의 친구들도
걱정과 함께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억지로라도 술을 끊을 수 밖에 없었다.
가족들은 그를 살리기 위해 항암치료와
함께 좋다는 민간요법을 모두 동원했다.
굼뱅이는 물론 개소주, 버섯, 약초, 식이요법
다양한 방법으로 그를 살리고자 했다.
가족들의 정성 덕분인가. 몇 개월이 지나고
병원에서 다시 검진을 받으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
종양이 많이 줄어들고 간도 많이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는 물론 가족들도 뛸듯이 기뻐했고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암(종양)도
가족들의 정성에 두 손을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친구들을 만나서 자신의 경험을
무용담처럼 들려줬다.
친구들도 기뻐했다.
다 죽은 것 같은 얼굴에 황달이 사라지고
혈색이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어느 한 친구가 술을 권했다. 그러자 그는 극구 사양했다.
가족들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했고 또 자신 때문에 그동안 마음 고생, 몸 고생한 가족들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술을 권한 친구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주변의 친구들도 이제는 다 나았으니 한잔 정도는 괜찮을 거라며 함께 권하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이 권하자 그는 더 이상 사양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항암치료를 하느라 그토록
좋아하던 술을 마시지 못한 여운이 가슴 한 켠에 남아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한잔 정도야 괜찮겠지. 당장 죽을 일도 아니고..'
그리고 마지 못해 한잔 들이켰다.
그러자 주위의 친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쳤다.
그는 받아든 술잔을 권했던 친구에게 건네주고
답례의 술을 따랐다.
그러자 또다른 친구가 그에게 술을 권했다.
다시 극구 사양했지만 친구는 멈추지 않았다.
다시 주변의 권유로 한잔의 술을 더 마셨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가 시작되었다.
어느 새 한잔의 술이 만취상태로까지 가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는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그 자리에서 몸을 일으킬 수 없었으며 한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잠시의 방심이 가족의 정성으로 어렵사리
늘려놓았던 천수(天壽)를 앞당기게 하고 말았던 것이다.
주변의 권유도 그의 죽음에 한 몫 거들었지만
결국 자기 자신이 자신의 수명을 앞당겼던 것이다.
아무리 가족들이 노력을 해도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결국 자신의 수명은 자신이 결정 짓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변명을 하고
또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때문에'를 많이 쓴다.
그러나 기실 '때문에'는 일생에서 그리 많지 않다.
탓은 사람을 약하게 만들어 병들게 하고
정신이 피폐해진다. '때문에'는 합리화의
언어적인 도구일 뿐 결코
자신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세상의 이치는 '왜?'만 있을 뿐이다.
결과에는 '원인'이 있을 뿐 '때문에'는 없다.
자신의 생명은 특별한 경우나 사고를 제외하고는
자신이 움켜쥐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