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와 루머사이

[달빛아래 숨은꽃]

동화와 루머 사이

얼마 전 출근길에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탤런트 최진실의 자살에 대한 소식을 처음 들었다. 그 소식을 전하던 분이 ‘정말 뭔가 있는거야’.라고 결론을 내리고 나와 헤어졌다. 하루 종일 그 자살 사건으로 인한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연이어 들려오는 루머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써 어떻게 아이들을 두고 갈 수 있었는지 정말이지 충동적인 자살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고 같은 엄마로써 이해조차 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 그녀를 잘 알던 기자의 인터뷰를 읽고 나니 엄마로써의 그 자살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살면서 입에 담기도 어려운 루머를 감당하느니 죽어서 결백을 밝힘으로써 아이들에게 명예로운 엄마가 되겠다는 선택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진실의 자살을 두고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루머를 믿을 것이냐 아니면 죽어서라도 결백함을 증명하고픈 엄마의 모정을 믿을 것이냐...

옛 말에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해진다고 했다. 여기서 이야기란 동화일 것이다. 동화같은 사랑, 동화같은 모정, 동화같은 희생, 동화같은 우정 등등. 동화를 좋아하면 왜 가난해질까?

혹자는 동화를 자꾸 읽으면 동화가 전하고자 하는 가치, 예를 들면 옳고 아름다운, 그리고 선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들이 마침내는 그릇되고 추하고 악한 것을 이긴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결국 그렇지 않은 현실 속에서는 가난해 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현실은 어떠한가? 루머가 현실을 지배하고 영향을 미친다. 증권가의 정보지에 항간의 루머가 실림으로써 주가가 결정되기도 한다.

하나의 사실에는 동화적인 요소와 루머의 요소들이 공존한다. 완전히 동화같은 것도 없고 완전한 뜬소문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접했을 때 내가 뭘 믿을 것인지는 내가 결정하고 또 그것은 나와 타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사실은 춘향이가 엄청난 박색이었다는 루머가 있다. 박색이어서 시집도 못가고 처녀귀신이 되었기에 그것을 불쌍히 여긴 누군가가 춘향이의 혼을 위로해 주려고 정반대인 동화같은 이야기를 지어냈다고 한다. 성춘향과 이도령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믿고 설레는 가슴으로 봄날 그네를 뛸 것인지, 박색이었던, 그래서 처녀귀신이 되었을지도 모를 춘향이에 관한 루머를 믿으며 거울을 들여다 볼 것인지는 사실여부를 떠나서 내가 결정할 일이다.

루머를 믿었을 때의 결과와 동화를 믿었을 때의 결과는 어떻게 다를까? 루머를 믿다보면, 모든 사건에는 차마 밝히지 못할 어두운 이야기가 있거나 작전세력이 있고, 인간의 이런 사악함으로 인해 속아서도 안되고, 텔레비전에는 아무리 청순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와도 그 속은 알 수 없고, 고로 믿을 사람 아무도 없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은 남에게 결코 속지도 않고 남을 믿지도 않고 그래서 부자나 권력자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마음은 가난할 것이다. 동화같은 이야기를 믿다보면 세상은 역시 아직도 살만하며, 숨어서 선행을 하는 은자들이 존재하며, 나도 누군가에게 베풂으로써 동화의 한 부분이 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은 늘 누군가를 믿다가 뒷통수를 맞을 수도 있고, 늘 베풀다가 가난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화를 믿은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볼 것이고, 그래서 가난해도 부자인 역설이 그를 통해 실현될 것이다. 동화와 루머사이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는가는 나에게 달려있고 그것은 나의 살아가는 의지이기도 하며, 그것은 나에게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희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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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디엔가 발표했던 글입니다. 신문 칼럼이었던 것 같은데요.

엊그제 생각지않았던 악재가 터져 방황중입니다.

제 잘못이고 제 욕심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너무 속상해서요..

방황하다가 제 컴퓨터 화일 정리하닥 발견한 글인데 여기 살포시 올려봅니다.

[꿈꾸는언덕]

정말 멋진 칼럼입니다. 힘내세요! 동화속 마법을 믿어보세요!

[凡 草]

영주, 가난해지더라도 꿈을 믿고 동화를 써야겠지

[소반 허명남]

동화를 쓰는 사람은 정말 동화가 어떤 진정성이 있는지 알아야할 것 같은 좋은 글입니다. 동화 쓰는 사람으로 어떤 결말을 내야 좋을지 생각하며 힘을 내세요.

[하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좋은 동화를 쓰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해 봅니다. ^^

[남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밤처럼 방황하는 자에게 등불이 구원하러 온다니, 힘내시기 바랍니다. 그 등불이 동화라면 더 좋을 거구요~

[루시]

저는 어른이 되면 안 아플 줄 알았어요. 마음이 담긴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