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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여성시대 만물박사, 국가보훈처블로그, 수원박물관 블로그
1902년 미상 ~ 1921년 4월 21일
이선경 열사는 1902년 지금의 수원시 팔달구인 수원시 산루리에서 당시 수원 갑부의 딸로 태어났다
이선경 열사는 숙명 여학교를 나와 경성여자보통고등학교 지금의 경기여고에 진학해 상당한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지만 1920년 8월 구국민당 활동을 이유로 퇴학당했다
구국민단은 1920년 3.1운동 이후 조직된 항일비밀결사단체로 임순남 최문순 박선태 이득수등과 이선경 열사가 함께 조직한 단체이다
구국민단은 독립국가를 조직할것과 독립운동을 하다 수감된 사람들의 유족을 구조하자는 목표의 단체로 여학생을 중심으로 구성된 흔치않은 단체였다
이선경 열사는 구국민단의 구제부장으로 회원을 모집하고 대한민보등 독립운동 선전 간행물을 배포하였다
이선경 열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기위해 중국 상해로 망명을 시도하던중 일본 경찰들에게 체포된다
이후 구류 상태로 재판을 받게되지만 형이 확정이 되지도 않은 이선경 열사는 재판에 출석을 하지 못할정도로 심한 고문을 받게된다
당시 심문과정에서 이선경열사는 언제부터 조선독립에대한 생각을 가졌냐는 질문에 어른들로부터 어렸을때부터 들었으니 태어났을때부터요 라고 답했으며 그생각이 옮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정의의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만일 석방된다면 이운동을 다시 벌일 생각인가 라는 질문에 그렇소 석방되도 다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겠소 라고 답했다
그리고 8개월을 구류끝에 간신히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나지만 극심한 고문의 여파로 1921년 4월 21일 풀려난지 9일만에 순국한다
당시 이선경 열사의 나이 19세다
이선경 열사는 1921년 순국했으나 90년이 가까운 시간동안 공적이 드러나지않아 포상이 보류되었다가 2011년 수원박물관이 연구의 일환으로 이선경열사의 행적을 추적했고 수원시는 이선경 열사를 독립유공자로 신청하게된다
2012년 순국한지 90년의 시간이 지난 3.1절 드디어 건국훈장을 추서받게된다
이후 사람들에게 수원의 유관순, 경기도의 유관순으로 불리게된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ㅠㅠㅠ 꼭 기억할게요 ㅠㅠㅠ
열아홉..열아홉이라니... 감사합니다 정말... 아....ㅠ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잊지않을게요
기억할게요 이선경 열사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대단하시다..감사합니다 절대 잊지 않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