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글도 14편까지 올라오고 이야기의 궤도도 슬슬 보이기 시작하니 나름의 '감상'이라는걸
적어볼 마음이 생기는군요.
(몇편 올라오지도 않은 이야기의 감상을 논하는 것은 작품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한것이 이영도씨
였던가요)
전에 5편까지 읽고 잠시 쉬었다가 방금 14편까지 다 읽었습니다. 초기에는 이모티콘 사용으로 꽤나
논란이 많은 소설이었는데 결국 Rechido님이 이모티콘을 지우는 쪽으로 결정이 됐군요.
일단 감상의 시작으로 이모티콘에 관해 이야기를 하자면,
글이 상당히 성숙해진 느낌입니다. 제가 이모티콘이란 것에 그만큼 강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모티콘이 있었던 초기의 글을 읽었던 분들이라면 이후의 이모티콘이 없는 글들을 읽으
면서 상당히 다른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이모티콘의 사용은 새로운 시도라고
할만한 장치였지만 제 생각으론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얻어진것이 더 많아 보입니다.
두번째로 이야기의 주제가 상당히 독특하다는 것이 강하게 느껴지는군요. 14편까지 위기, 음모,
숨겨진 정체, 강력한 적 등등등 판타지의 단골 손님이 하나(주인공만의 특별한 힘)를 제외하면 등장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인상깊습니다. 현재까지는 인물간의 갈등구조도 특별히 보이지 않는군요. Rechido
님이 이 글을 모험소설로 풀어나갈거라곤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마 여러 인물의 성격과 관계가 충돌
하고 거기에서 생기는 사건들, 그리고 주인공의 성장이 주가 되는 느낌입니다. 사실 인간과 인간사이
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소설'의 기본적인 주제입니다만, 최근 판타지에서는 상당이
희박해진 것이 사실이지요. 작가분이 '이 글의 목적은 감동' 이라고 공언하신 것도 그런 맥락이라 생각
됩니다. 더군다나 지금 이야기의 궤도는 정통 학원 드라마. 왕따가 있고, 괴짜 천재가 있고, 반의 아이돌
격인 여학생에, 소심한 모범생 여학생, 정의 구현에 힘쓰는 바른 생활 청년, 열혈 운동 바보에 심지어
카메라맨까지. ...이거 쓰고보니 두려울 정도로 완벽한 라인업이군요. 거기다 일어나는 사건들은 학예회
에 사랑쟁탈전. 학원 소설에서 흔한 소재지만 그만큼 판타지에서 잘 나오지 않는 이야기이지요. 이 인물
들과 사건들이라는 소재만 잘 살려도 흥미로운 소설이 될듯합니다.
세번째로 글을 읽는 동안 상당히 유쾌해집니다. 사실 저의 취향은 상당히 비틀려 어긋나 있다고 생각
하는 고로 (심심하면 파워레인져SPD vs 파워레인져 다이노썬더 같은걸 꺼내서 '12명 동시 변신 &
파이팅 포즈장면' 등을 보면서 배를 잡고 웃는다거나) 다른 분들도 이렇게 느꼈을지 확실한 수 없습니다
만, 아무튼 저는 꽤 유쾌했습니다. 사실, 그 때문에 이 감상을 쓰게됐죠. 솔직히 말하자면 이 소설이
처음부터 유쾌하게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초반에는 설명조로 나가는 관계로 '지루하다' 가 맞는 표현
이었지만, 7화 정도를 기점으로 상당히 유쾌해진 느낌입니다. 5화를 읽은 때와 6화를 읽은 때의 간격
이 크고, 이모티콘이 사라진 것도 있어 다른 요인이 관여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 '독특한 문체' 도
한 몫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다가 웃은 부분을 몇개 발췌하자면
"너 같은 찌질이가 어떻게 그런걸 알고 있는거지?" (찌질이는 비속어 입니다. 어중이떠중이란 표현을
사용하는게 바른 말입니다. 라고 말하는 노현정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저 녀석 왕따야. 넌 아무하고나 친하니까 관심이 없겠지만 우리 반엔 왕따가 두 명이나 있었다."
(이건 제반상황이 웃긴 경우로군요. 특히 정형화된 캐릭터-예를 들면, 전대물의 리더는 열혈바보-를
가지는 인물에게 하는 말로서 좋은 개그라고 할만합니다.)
<엘이 덜덜덜 떨면서 말했다. 나샤라는 학생의 무서운 힘을 방금 느꼈기 때문이었다.>
('덜덜덜'이란 표현을 소설속에서 보는 경우는 드물지요. 저는 게임하다 채팅중에 많이 듣습니다만...
최근엔 ㄷㄷㄷ 라고 줄이는 사람도 보이던데.)
...쓰고보니 살짝 고전 개그 느낌이 납니다만, 본래 3개월 지난 개그는 쓰면 얻어맞지만 10년지난 개그는
쓰면 대박나는 것이 개그의 원칙이지요. 또한 이 개그가 이 소설에서 '이모티콘' 을 쓰지 않는 것이 나아
보이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덜덜덜' '찌질이' 라는 표현을 쓰는 소설에서 이모티콘까지 나오면 소설
의 수준은 1+1 = -3 의 수준으로 떨어져보입니다. 파격과 파격이 만났더니 아무것도 아니더라...라는
흔한 이야기이지요.
마지막으로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지만 강렬한 조연들의 라인업에 의해 제 뇌리에서 존재감이
희박해진 뭐더라뭐더라뭐더라 렘(이름을 까먹어서 다시 소설을 보고 알았다.)이 있습니다. 주인공의
뇌가 만들어낸 환상이라는 설정의 이 인물은 이 소설에 판타지라는 정체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소재
이자 (사실 마법이란 소재가 등장했지만 아직은 크게 비중있게 다가오는 소재는 아니었습니다.) 주인
공의 성장을 이끌어가는 견인차라 할만합니다.
...하지만 역시 저에게 그 존재감은 주인공 옆자리의 시아 정도. 아마 초반에 렘이 대량 등장하는
시기에 느꼈던 지루함이 악재로 작용한듯하군요. 초기에 렘이 이모티콘을 남발한 것은 갈수록 흐려지는
자신의 정체성을 미리 우려한 것이 아닌가 싶기까지 합니다. 사실 렘이란 존재 자체가 약간 어이없고
논리에 맞지 않는 것도 원인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다 주인공이 모르는 것, 풀 수 없는 문제도
척척 풀어내는 먼치킨스러움이 저에게 무의식적인 거부감을 심어줬는지도 모르지요. 이제 렘의 운명
을 결정짓는 것은 렘이 얼마나 엘을 훌륭하게 성장시켜나가느냐 일듯합니다.
최종적으로 마무리를 짓자면, 이 소설에 대한 요약은
'왕따 소년이 환각을 보게 되지만 그에 관계 하지 않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중 우연히 만난 에이븐
이란 정의구현의 화신같은 소년에 이끌려 자기반 친구들이 펼치는 청소년기 특유의 욕망과 솔직함과
발랄함이 넘치는 학원 드라마를 관망하게 된다'
로 축약될듯 합니다. (뭔가 작가분의 의도와 상당히 다를지도 모릅니다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왜곡
견해 입니다.)
현재로써는 흥미로운 신작이자, 현 판타지계에서 보기 힘든 계열의 소설이라는 것이 이 글을 보시는
작가이외 다른 분들에게 드리는 제 감상입니다.
단점을 집어내자면 아직 중요한 부분의 묘사가 부족한 느낌도 다분해서 매끄러운 진행과 서술
(예를 들면 에이븐의 과거 회상장면, 더 구체적으로 성직자 할아버지 체포와 거기에 이어지는 풀려난
무기징역수와의 만남과 오해의 해소)은 더 연습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극적 긴장감을
이끌어 낼수 있을만한 전개입니다만 지금의 수준으로는 크게 두근거리지는 않는군요.
저도 놀랄정도로 글이 길어져버렸기에, 여기에서 감상을 마치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덧. 과연 렘은 에이븐을 제치고 엘의 마음을 차지해 그에게서 잊혀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첫댓글 렘이 현재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건 렘이 맡을 역할은 대체로 폐쇠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죠. 렘은 엘 혼자만 있을 때 제대로 활동을 할거에요. (적어도 공부에 관련된 내용이 나오기 전까진 거의 활동이 없죠.)
음... 하지만 위기, 음모, 숨겨진 정체, 강력한 적 전부 생각해두고 있습니다. -_-/ 다루는 내용이 갑자기 바뀌면 이 소설의 분위기를 싫어하게 되실지도 모르겠네요;; 유쾌한 학원물이라는 한 방향과 판타지라는 또다른 방향을 함께 다루고 싶었기 때문에 조금은 문제가 있을지도...
묘사와 표현력의 부족은 정말 노력해서 고치고 싶은 부분이네요. (훌쩍) 솔직히 에이븐 이야기는 감동이 절대적인 목표였는데 아직 어설프죠. 지적이 너무너무도 가슴에 와닿아요. 노력하겠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나도 감상 재미있게 쓰고싶어라↖(^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