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여성시대 만물박사, 네이버 캐스트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042037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유관순 열사-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042064 석방되도 다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겠소 -이선경 열사-

1920년 4월 11일 ~ 2007년 4월 18일
지복영 지사는 1920년 4월 11일 아버지 지청천 장군과 어머니 윤용자씨 사이에서 출생했다
지청천 장군은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이후 만주로 망명하면서 1924년 어머니를 따라 중국으로 가게된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이후 임시정부는 여러곳의 피난처를 거쳐 1940년 중경에 정착한다
지복영 지사도 임시정부가족들과 함께 피난을 떠나고 피난을 하면서도 피난 학교를 세워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교사로 활동한다
이렇게 몇년간의 피난살이로 임시정부가 대일항전을 하지못하자 청년들은 1938년 11월 한국광복진선 청년공작대를 조직하게된다
대원은 34명이였으며 이중 여성대원은 지복영 지사를 포함해 11명이였다
이후 임시정부는 1940년 9월 15일 중국 중경에 광복군 총사령관을 설치하고 17일 중경 가릉빈관에서 성립 전례식을 거행한다
이때 지복영 지사를 비롯한 다수의 여성 광복군이 참여하게되었으며 주로 사령부의 비서 사무및 선전 사업분야에서 활동하게된다
지복영 지사가 한국광복군 여성 대원으로서 활동한 계기는 중경에 있을당시의 사건때문이다
일본군 폭격기가 폭격을 해대자 방공호를 왔다 갔다 하면서 몸을 피신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던 어느날 폭격기의 폭격으로 임시정부 청사 근처의 건물이 파괴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게된다
이 일로 지복영 지사는 일주일 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못 자면서 번민을 하게된다
그 후 학사 박사가 되면 뭐하겠느냐 이 전쟁을 하루라도 빨리 끝나도록 하는 것이 제일 급한 일이 아니겠느냐 라고 결론을 내린 후 광복군 참여를 결심하게된다
아버지 지청천 장군에게도 광복군 입대를 묻자 조국 독립하는데 남자 여자 가리겠느냐며 흥쾌히 허락했고 그길로 서안으로 이동한다
지복영 지사는 서안에서 선전조 사업으로 광복을 간행하기위해 매진하게되고 1941년 2월 1일자로 창간호가 간행되었다
지복영 지사는 이 광복 안에서 오관심지와와 함께 여성 입대를 독려했는데 대시대는 왔다 한국 여성 동지들아 활약하자 라는 글을 써 한국 여성들에게 광복군 입대를 종용했다
그리고 광복군은 서안총사령부 설치후 적 후방 공작 사업을 수행하기위해 3개 지대로 편성하였고 이후 1941년 1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편입하며 4개지대로 편성되었다
그중 제3지대장이 김학규장군 대원 6명중 절반이 여성대원이였으며 지복영 지사도 이 3지대에 속하였다
평소 아버지 지청천장군으로부터 대한의 잔다르크가 되라 고 들어왔던 지사는 최전선으로 가기로 결심하고 이번엔 아버지의 허락도 받지않고 자원했다
그러자 주위 광복분 다수가 여성이 적후방으로 가면 위험하다며 말리자 지복영지사는 밤새도록 편지를써 아버지에게 보냈다
이에 지청천 장군은 좋다 잘 생각했다 내가 남의 자식도 보내는데 내 자식이라고 금지해서 못 보내겠느냐 잘 생각했다 라고 답장한다
이때 지복영지사가 속한 제3지대는 산동을 향해 진군하던중 산동정세가 급박해지자 안휘성 부양에 본부를 설치하였고 지복영지사도 아버지의 답장을받고 부양으로 떠난다
이 부양에서 지복영 지사를 비롯한 오광심 오희영 지사들과 함께 남자 광복군 대원들과 똑같은 임무를 받고 활동하게된다
그러나 지복영 지사는 부양에 온지 1년 1개월만에 병이나서 더이상의 활동을 할수 없게되고 중경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몸이 회복된후인 1943년부터 임시정부 외무부로 차출되어 한국인 학병들의 탈출을 권유하는 일을 맡았고 1945년 광복군 총사령부 편대를 재편성했을때 지복영 지사의 직책은 소령이었다
그리고 부양에 설치한 본부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기전까지 4년간 이곳에서 지하공작을 하게된다
광복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지복영 지사의 공훈을 기려 건국 훈장 애국장을 수여하고 이후 2007년 4월 18일 노환으로 영면하게되고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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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글을 쓰고있는 이유는 우리가 흔히 잘하는 독립운동가들은 아무래도 남성분들이고 여성분중에 유명하신 분이라고 해봐야 유관순 열사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알려주고싶어서 쓰고있어요
아직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그중에서도 알려지지못한 알려지지않은 수많은 여성독립운동가들...
우리가 이렇게 한글을쓰고 한국말을하며 내나라에서 살수있는게 모두 호국선열들 덕분임을 다시한번 기억해봐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고마워요...ㅠㅠ 글 하나당 한시간씩 걸렸는데....ㅠㅠ 고맙다고 말해주니까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야ㅠㅠ
고마워여시덕분에많이알고간다!!
여시고마워!!!!! 그리고 지복영 지사님 ㅠㅠㅠ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 ㅠㅠㅠㅠ 잊지않을게요!!!!!!!!!!
멋있으셔...감사합니다ㅠㅠ
내가 기억하는 독립운동가분들은 어릴적부터 위인전으로 뵈었던 분들과 수능 준비로 근현대사 공부하면서 외운 독립운동가님들이었는데 그 후로 감사하다 감사하다하면서도 따로 찾아보고 기억할 노력조차 안했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럽다...특히 공부를 위해 독립운동을 기억했다는 점이 너무 부끄러워.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많은 분들이 후세에 존경받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해선 나부터 더 노력해야 했던 건데. 글쓴 여시 좋은 글 올려줘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