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때는 양반과 상놈이 선악의 구별이었다.
밥을 막을 때는 투정을 부리지 않고 암말 하지 않고 밥만 부지런히 퍼 먹고 숟가락을 제일 먼저 놓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두 손을 높이 들고 '이또 만세'를 외쳤다. '이또 만세'는 일본말이고 우리말로는 '일등 만세'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들으면 양반이고 그렇치 않으면 상놈이 된다고 했다. 옛날 양반과 상놈이 없어진지도 꽤나 오래되었지만
우리의 관습 속에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제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추석에 뭐 할거냐고?
추석에는 제사 지내야 하고 저녁 때는 처가집에 인사하러 가봐야 한다고 했더니 그는 산에나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전화를 한 듯 했다. 그는 지난 여름에 사촌동생이 별세를 했는데 그 동안 사촌동생이 고향에서 조부모 산소 벌초를 해 왔는데
사촌동생이 죽고 나면 벌초할 사람도 없고 해서 업자에게 부탁해서 화장해서 가루를 산에 뿌리고 말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상놈이라고 자처 했다.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것은 겸손이다. 몰라서 행하지 않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래도 부모님 기제사는 지낸다면서 추석이나 설 명절에는 지방도 쓰지 않고 음식만 간단히 장만해서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명절제사에는 낮에 지내기 때문에 촛불도 켜지 않는다. 그리고 축문도 읽지 않는다.
그러나 제사를 지내려면 강신이 필요하고 지방이 필요하다. 지방 대신에 사진이 있으면 사진을 올려 놓기도 한다.
그는 딸아이만 둘인데 다 시집을 갔기 때문에 앞으로 제사를 지낼 사람도 없다. 남자 동생이 있긴 하지만 그쪽에도 사내 자식이 없다보니 대가 끊긴 셈이다. 하지만 제사를 지낼 것 같으면 지방을 써 붙이라고 했다.
우리집에도 아들 손자가 있지만 제사가 언제까지 이어질런지 알 수가 없다.
얼마 전 지인이 보낸 카톡에 부모가 자식에게 그 동안 키워주고 공부시켜 준 비용을 청구한 소송이 있다고 했다.
애써 유학까지 보냈더니 대기업에 취직한 이후 부모를 찾아 오지도 않을 뿐아니라 자기 집에도 오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죽어도 내 앞에 얼씬거리는 것조차 보기 싫다(?)고 하면서 부모자식간의 인연을 끊자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
아무리 개인주의가 발달했다 하더라도 인륜을 거스르면 천벌을 받게 된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