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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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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주몽 - 소서노는 프라다를 벗었다.
등나무 추천 0 조회 77 07.03.15 05:54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국민 절반의 눈과 귀를 붙잡아 두었던 드라마 '주몽'이 스페셜 방송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역사 자료의 박족(薄足)함과 고증의 어려움으로 인해 드라마는 많은 극적 허구와 환타지에 의지해야 했지만,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을 재조명하고, 또 고구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고취시킨 면에서 드라마 '주몽'은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것 같다. 특히 고구려 시조 '추모(계루부 고氏)'의 아내이자 백제 시조 '온조(부여氏)'의 어머니인 여장부 '소서노'를 역사의 한 인물로 끄집어 낸 점은 드마라 '주몽'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가 보여준 소서노의 행적은 물론 대부분 역사적 추측, 가설, 허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고구려와 백제라는 우리 역사상 가장 강대했던 두 나라의 건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부정할 수 없는 역사'만으로도 소서노라는 실제 인물의 위대함은 충분히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 '주몽'을 제작한 MBC는 사극 속 '여성'이라는 이름을 통해 여성성을 '사회적 담론' 안으로 이끌어 내는데 꾸준한 역할을 해왔다. 멀리는 드라마 '장희빈' 속의 희빈 장氏가 그러하고, 가까이는 드라마 '허준' 속의 예진아씨, '다모'' 속의 채옥, '대장금' 속의 대장금 등이 그러하다. 장희빈에서 시작하여 소서노로 마무리 되는 MBC 사극 속의 여성상은 20여년 간 변화한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인식'을 고스란히 반영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MBC 드라마 속의 '여성'의 진화는 다른 방송국의 드라마들이 보여준 '소극적 여성상'과는 큰 차이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소서노는 이전 사극 속의 여인들과는 달리 여성으로서의 독립적이고 비중있는 지위를 차지하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희빈은 남성 중심의 권력 사회에서 영악함을 무기로 살아남으려는 여성을 그리고 있는데, 결국 남성 중심 사회의 공적이 된 장희빈의 죽음은 정숙한 여성을 바라는 당시의 시대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후에 등장하는 예진아씨는 섬세함과 헌신이라는 여성의 장점을 통해 허준이라는 남성의 인생 행보를 곁드는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여성상으로서의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데는 실패한다. 채옥은 '물리력'이라는 남성의 독점적인 영역에 도전하여 그 능력을 발휘하지만 결국 '사랑'과 '신분'이라는 올가미에 갖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장금에 이르러 여성은 드디어 드라마 속 주인공을 차지하는데, 시련을 극복하고 '남성'의 외조를 받으며 성취를 이루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는 수준까지 다다른다. 그러나 대장금도 결국 남성 중심 사회의 장애를 뛰어넘지 못하고 성취의 중단을 맛보아야 하는 모습으로 마무리 되었다는 점이 한계였다.

 

  그런데 이제 소서노는 '남성 중심 사회의 한계'가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으로 권력을 양보하는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다.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으로 권력이라는 '비단옷'을 벗어버린 것이다. 드라마 속 그 누구도 '소서노'가 여자이기 때문에 왕이 될 수 없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건국에 필요한 재정적, 지리적, 인적 자원을 제공한 소서노의 역할은 물리적, 리더적 자원을 제공한 주몽의 역할적 비중에 전혀 뒤쳐짐이 없다고 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주몽에게 왕위를 양보한 소서노의 선택에 주변인들은 불만을 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드라마 '주몽'을 잇는 사극으로 '온조'가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을 선택한 MBC의 결정은 그런 면에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더 이상 양보를 강요받거나 선택받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자리'까지 스스로 당당하게 올라서는 여성상은 이제 우리 사회가 수긍해야 할 마지막 결론이기 때문이다. 

 

 

      

  유신 헌법과 독재의 탄압이 계속되던 1977년 무렵 이제 막 대학으로의 일반적인 진입을 성취한 여성들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남성들의 투쟁에 합류하며 여성운동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1987학번 임수경은 1989년 문익환 목사와 함께 방북함으로서 여성이 남성 못지 않은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1997년 출간되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려는 여성'을 비판한 이문열의 소설 '선택'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당당한 목소리에 두려움을 품은 남성들의 불편함을 등에 업고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이제 2007년, 우리는 어쩌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마주해야 할지도 모르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산업화의 진전과 완성을 통해 지난 30여년 간 여성들의 지위는 눈에 띄게 고취되었고, 소위 잘나가는 여성들에게 남자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상황까지 다다랐다. 남성 중심의 호주제도 폐지법안이 국회 통과를 눈 앞에 두고 있고 이제 아버지의 성(姓)이 자녀에게 강요되는 일도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또 제도가 이러한 변화상을 보여주고 반영하는 것만으로 진정한 변화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남성 중심의  서열 구조(하이에라키, Hierachy)와 근본 구조(Foundation Basis)가 바뀌기 위해 가장 중요한 열쇠가 '남성들의 마음' 속에서 아직도 꺼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열쇠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 한 남녀평등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가 될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편견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적어도 '남녀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가장 진보적인 환경에 놓인 대학을 다녔다. 우리나라 최초의 남녀공학 여성 총학생회장을 배출하였고 여성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남녀공학 대학이기도 하였다. 내가 다닌 대학에서 '진보적'이라는 것은 여성이기 때문에 대우받는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여성이기 때문에 조금 배려를 받을 수는 있지만 남성들이 희생당한다는 의미도 아니었다. 내가 대학에서 목도하고 경험한 '진보'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 반목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각자 알맞은 역할을 수행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여전히 '소수로서 차별받는' 사회적 의미의 여성에게 남자들이 조금 더 배려할 수 있다는 공동체적 합의가 진보였다. 단과대 모꼬지에 갔다가 술에 취해 여자 숙소로 들어가 잠이 들어버린 남학우에게 쏟아진 비난도 '그 놈의 술이 웬수'라는 것이었고, 실수를 한 당사자는 분명하게 사과를 해야했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짐승'이라느니 '여자들이 괜한 피해의식에 언성을 높인다'는 저급한 논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대학에서 배운 평등이란 것은 서로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우리 대학 남자들은 이웃한 '여학교' 학생들과는 잘 사귀지 않았다. 우리 나라 여성 운동과 페미니즘의 본산이라는 학교였지만, 이상하게도 여성에 대해 진보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 우리 대학 남학생들은 그 여학교 학생들을 불편해 하였다. 이웃한 학교이니 서로 쉽게 '눈이 맞을 것이다'라는 일반의 선입견과 달리 우리학교 남학생들은 이웃 여학교 학생들과 미팅도 잘 하지 않았다. 두 학교 출신 간의 연애나 결혼 비율이 매우 낮은 것은 통계적으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내 경험으로 비추어 보면, 남자들의 비중이 월등히 높던 타 학교 학생들과 달리 우리 학교 남학생들은 학내의 많은 여성들에 견주어 그 여학교 학생들을 비교하려는 경향이 강했던 것 같다. (특정 학교를 비방하거나 추켜세우려는 의도가 절대 아님을 밝힙니다.) 그리고 그 여학교 학생들의 사고와 취향에 대해 조금은 불편해 하였다.

 

  누나들이 많은 개인적인 환경과 세대, 또 내가 다닌 대학의 환경 탓인지 몰라도 나는 남녀평등의 문제에 있어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견해를 품고 살아왔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입하면서, 나의 이러한 낙관적인 시각은 많은 도전을 받게 되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도 우리가 소위 폄하하는 '된장녀'라든지 '골통 페미스트' 유형의 여성을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여성들의 문제점을 '여성성'이 아니라 '인간성'으로 이해했었다. 그런데 오히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우리 사회가 남녀 평등의 문제에 있어 진보와 퇴보를 동시에 겪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회에 진출한 이후, 연애에 있어서는 평등한 모습을 보이던 많은 여성들이 결국 기존의 사회적 조건을 찾아 결혼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진보를 자처하던 많은 여성들이 기존의 남성 구조에 편입되어 남성 기득 구조의 낡은 악습과 처세술을 배워가는 모습에서 실망을 느끼기도 한다. 새롭게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을 개척하지 못하고 여전히 남성에게 종속된 삶에 만족하려는 여성들에게서도 실망을 느낀다. 남녀 동등한 여성(如性)이 아니라 우월한 여성(女性)을 설파하고 남성을 적으로 간주하며 화합을 거부하는 일부 여성들에게서도 나는 많은 한계를 목격한다. 우리 나라의 사교육 열풍과 부동산 투기 광풍, 과소비 풍조, 성(性)의 상품화, 종교기관의 기업화 등의 사회적 문제에 있어서는 여성들이 남성보다도 더 많은 책임이 있다는 점에 나는 동의한다.

 

  나는 남자들이 잘 했다는 것이 아니다. 남성 중심의 사회를 옹호하고 싶지도 않다. 남성들은 지난 수 천 년간 여성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잘못을 하였으며, 불합리한 특권을 누렸으며, 여성을 지배하고 통제하려고 하였다. 여성의 부조리는 남성들의 잘못으로 이루어진 사회 부조리와 부패상에 비하면 새발의 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성들의 자각과 변화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제 많은 남자들이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듯, 여성들도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곳간 속에 썪고 있는 '평등함과 조화'라는 곡식을 꺼내려면 남성들이 마음 속에 감춰둔 그 곳간의 열쇠를 끄집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지혜를 여성들이 인물 '소서노'에게서 끄집어 낼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우리 옆 대학의 여성들이 우리 대학의 '여성상'과의 대조로 인해 인기가 없었던 것처럼, '소서노'라는 인물을 통해 그릇된 여성상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반성이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권에 진입해 있는 상당수의 저급한 여성 정치인의 모습은 남성과 똑같이 '나쁜 물이 들어가는' 행태로 인해 여성의 사회 진출에 많은 우려를 던져준다. 남녀평등을 외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는 여성들의 모습에서 남자들은 '남녀평등'이라는 구호에 대해 배신감과 모멸감을 느낀다. 실상이 정확히 파헤쳐지지 않은 사건에서 단순히 남성이 성범죄의 가해자일 가능성 만으로 성급히 판단하고 행동한 모 대학 여총 간부의 모습은 엇나가도 너무 엇나간 우리나라 '여성주의(페미니즘)'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수영장 생리 기간 할인' 같은 아주 기초적이고 합리적인 이의제기마저도 남성들의 비아냥과 비난을 받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마저 벌어지고 있다. 발렌타인 데이가 '여자가 남자에게 무엇을 주는 날'이 아니라 '남자가 여자에게 무엇을 주는 날'이었다면 화이트 데이 같은 것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친구의 말에서 나는 남자 집단의 거대한 절망과 냉소를 읽었다. 사실 겉으로는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막상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여성 대통령'을 받아들일 수 없어 다른 란에 도장을 찍어버리는 남성들도 상당수일 것이라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문제와 현상들이 제도나 서류상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남성들 마음 속의 문제'임을 우리는 직시하게 된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법과 시스템 상으로는 별 문제가 없지만 우리의 정신과 생활 속에서는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렇다면, 이제 드라마 속 소서노의 어떤 모습이 나로 하여큼 이처럼 그녀에게 열광케 하는지 들여다보자.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상단을 이끌고 대륙을 누비는 소서노는 남성들도 당해낼 수 없는 배짱과 모험심을 보여준다. 유약하고 색을 밝히는 어린 주몽을 비웃어 주고 꾸짖는다. 그러다가 주몽이 차츰 지혜와 기상을 키워가자 자신의 편견이 잘못이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주몽을 사모하게 된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연정을 배신하지 않았고 권력을 지키기 위한 정략적이고 강요된 혼인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자신의 사랑이 죽어버린 현실에도 절망하거나 주저앉지 않고 자신의 상단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린 두 아들의 편모 역할을 위해 골방으로 은둔하는 퇴행을 선택하지도 않는다. 자신에게 왕위를 획책하는 주변 사람들의 부추김에 대해서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한다. 덧없는 권력을 위한 피바람보다는 미래를 위한 화해와 결별을 모색한다. 자신의 잘못된 생각과 어리석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보인다. 자신의 개인적 이익보다는 백성과 나라를 위할 줄 알며, 타협할 줄 알고 양보할 줄 안다. 자신의 아이들이 주어진 권력의 단맛에 빠지기 보다는 새롭게 개척될 미래를 통해 성장하고 완성되길 바라는 훌륭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인다. 한 사람과의 사랑과 황후자리가 결코 작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大)를 위해 그 소중한 것을 포기하는 진정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소서노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고 해도 영웅이 되기에는 결코 부족함이 없다는 말이다.

 

  바로 이 점에서 '여성' 영웅 소서노의 모습이 드러난다. 남성들의 단점이나 추악함과 타협하지 않는 모습이 그렇다. 그렇지만 여성으로서의 장점을 포기하지 않고 발전시킨 모습이 그렇다. 남성의 장점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고 배우려는 모습이 또 그러하다. 남자나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기백과 사랑, 배려를 잃지 않는 모습 역시 그렇다. 고구려 건국 무렵 '비단'은 너무나 귀한 물품이었다. 왕족이나 높은 귀족이 아니면 꿈도 꿀 수 없는 '명품'이었다. 하지만 소서노는 기꺼이 그 비단옷을 벗어 버렸다. 그것은 자존심을 버린 것이 아니라 집착을 버린 것이다. 작가 지망생의 명품 잡지사 비서 생활을 그린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많은 여성들의 관심을 얻었었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그 영화를 통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왜 작가는 하필 '악마'가 프라다를 입는다고 했을까? 아마도 잡지사 편집장의 모습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남성들과 똑같이 권모술수에 능하고 차갑게 배신할 수 있어야 여성이 성공할 수 있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악마'로 풍자하고 싶었을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명품'을 통하여 사회적 성취와 부의 축적을 과시하려고 한다는 점은 만국공통인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꼭 나쁜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여성들에게 주어진 생물학적 특성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품(권력, 부, 지위)을 얻기 위해서 남자도 여자도 악마가 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소서노까지는 아니어도 좀 더 따뜻하고 인간적이며 정직한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 좀 더 많아지길 바란다. 잔인하게 죽어가는 동물을 생각한다면, 또 노예로 팔려가는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모피나 다이아몬드는 걸치지 않는 양식 정도는 갖춘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남성들도 이젠 변화를 대세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 스스로도 이러한 변화를 악용하고 부당한 이득을 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선택' 속의 사대부 며느리처럼 일생을 희생하는 여성도, 남자는 필요없다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겠다는 여성도 진정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여성상은 아니다. 프라다를 입기 위해 악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대의와 진보를 위해 비단옷을 벗어 버릴 수 있는 소서노가 우리 사회에 많아질 수록 우리 '남자'들 마음 속에 숨겨진 열쇠도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진정으로 남녀가 평등하게 화합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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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3.15 07:50

    첫댓글 잘읽었습니다...아들 녀석이 열심히 보던 주몽이라 저도 봤습니다...여장부소서노였네요... 명품을 모르고 삽니다... ^^*...

  • 07.03.15 08:28

    소서노는 못 되더라도 딸들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충분히 알고 정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여성이 되길 바래봅니다...........좋은 날 되세요 ()

  • 07.03.15 20:47

    저가 딸들과 나누는 평등이란 소재와 맥을 같이하는 부분이 있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여성 대통령이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개구리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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