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릴 적에는 시골에 살았으므로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가 동네에서 가까웠다.
할아버지 산소는 오무실, 그리고 할머니 산소는 도장골에 있었다. 특히 할머니 산소는 우리 산에 모셨는데
집에서 보면 서쪽 저멀리 산소가 아스라히 보였다. 그래서 항상 할머니가 우리를 돌봐 주시다고 생각했다.
설이나 추석 명절에는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당일날 아버지를 따라 산소를 다녀왔다.
설에는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와선 동네 어른들께 세배를 다녔다.
멀리 계시는 고모나 외가에는 며칠후 인사를 다녔다.
고향을 떠나 마산, 부산으로 이사를 하고 난 이후에는 설,추석 명절에 성묘를 다니다가
처가에서 처남들과 모인다고 그때가 아니면 얼굴 보기 힘들다고 마누라가 강력 주장하는 바람에 성묘를 다음으로 미루고
명절 당일에는 처갓집으로 가는 것으로 돼버렸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말이 있다. 옛날 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때의 이야기다.
예전에는 밋있는 음식이나 과일이 생기면 먼저 조상에게 드렸고 그 다음으로 집안 어른에게 맛보시라고 드렸다.
우리세대는 그런 관습이 몸에 배여 있는데 지금 세대들은 자기자식이나 반려견보다도 부모는 중요도 번호가 훨씬 떨어진다고 한다.
오늘 새벽에 성묘를 간다고 사전 노티스를 했지만 아들 두 놈중 한놈은 친구들 약속이 있고 또 다른 한 놈은 처가집에 가기로 했다면 빠지고 나 혼자서 일찍 출발하였다.
시골에 사는 막내동생과 진성에서 만나 같이 성묘를 갔다.
산소에 갔더니 지난 태풍때 하성가에 선 소나무 가지들이 바람에 꺾여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산소 가장자리에는 멧돼지가 팠는지 구덕이 두 세 군데 보였다. 봉분을 건드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성묘를 갈 때는 집에서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술이나 음식을 가져 갈 필요가 없다.
하지만 빈 손으로 가기 서운해서 소주 한 벙과 유과 한 봉지를 갖고 갔다.
예전에는 술을 부어 놓고 절을 한 다음에는 술을 봉분에 여기저기 나누어서 뿌렸는데 요즘은 멧돼지들이 냄새를 맡고 주둥이로 파 헤치기 때문에 산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다 버려야 한다.
성묘를 마친 다음 재종 여동생 둘을 만나 보고 고속도로가 정체될까봐 미리 나서야 했다.
명절이라고 고속도로 통행료도 면제였다. 진성에서 11시에 나섰는데 집에 도착하니 1시였다.
창원터널 부근에서 3km정도 정체 되었고 부산들어와선 동서고가도로와 광안대교에서 많이 막혔다. 성묘를 갔다오니 짐을 덜은듯이 마음이 조금 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