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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살배기 딸, 두살배기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추천 도서
이 책은 얼마전에 녹색평론에서 알게 된 책이란다.
녹색평론에서 이 책과 지은이 E.F 슈마허라는 사람을 언급했는데,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E.F 슈마허의 책을 3권 구입했어.
그리고 그의 가장 대표적인 책 <작은 것이 아름답다>란 책을 읽었단다.
원제는 small is beautiful 이란다.
이 책을 조회하다보니, 아빠가 수년 전에 읽은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이라는 책에서도
법정 스님이 이 책을 추천한 것을 알게 되었단다.
기억나지 않는데 말이야.
암튼,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어.
녹색평론에서 알게 되었지만, 이 책이 1970년대에 씌였졌거든.
정확하게는 1973년이야.
그런데, 글의 내용은 오늘날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해.
그는 당시 사회 현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고,
자본주의의 움직임을 보고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 것이야.
수치나 년도까지 딱 들어맞지는 않았지만,
그가 예상했던 문제점들은 오늘날 지구의 골치덩어리들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어.
그가 이미 40년전에 경고를 한 것이지만,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것인지, 아니면 무대뽀인지 그냥 성장지상주의로 세계는 나아갔지.
그에 대한 부작용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지.
1973년 당시 세계의 정황과 경제관련 내용 등으로,
이 책을 제대로 소화하기에는 아빠의 역량이 부족했지만,
아빠가 이해하는 부분들만 가지고도 지은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단다.
녹색평론에서, 그리고 법정 스님이 왜 그의 책을 추천했는지 이해가 갔단다.
아빠도 전체적으로 그의 의견에 동의하고,
그의 따른 불편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거든.
그런데 정책을 꾸려 가는 사람들은 오늘도 성장 성장만 주장하고 있구나.
성장 성장만 주장하다는 지구가 폭발하고 말거야...
1. 이해한 것만 대충...
아빠가 사실 이 책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단다.
아빠의 역량이 부족한 탓이지.
이 책의 제목만 보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 같았는데,
어느정도 관련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 같았어.
좀체로 이해하기 어렵더구나.
그래서, 아빠가 간단히 적은 메모로 아빠의 생각을 대신하고,
책의 내용을 발췌하면서, 다시 곱씹어봐야겠구나.
근대 이후의 세상 사람들은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연을 지배하고 정복할 운명을 타고난 외부 세력으로 여기고 있어.
예전에는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면,
오늘날에는 성장을 위해서라면 자연을 파괴하고 없애도 좋다고 여기는 거야.
지난세기초부터 자본주의가 급격히 퍼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지.
이 책이 쓰인 당시에도 그랬지만, 오늘날도 자본주의의 경제성장율이라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들 해.
각 나라의 지도자를 선출하는 선거들을 보면,
전부 성장율을 얼마도 하겠다고 이야기하지..
경제 성장을 안하겠다고 주장하는 후보가 있을까?
그런데, 이 경제 성정아라는 것이 경제학, 물리학, 화학, 기술 따위의 관점에서 보면
뚜렷한 한계가 없이 무한히 성장할 것처럼 보이지만,
환경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필연적으로 결정적인 장애 요인이 된다고 하는구나.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환경을 파괴해야 하고, 자원이 무한해야 하지만,
전세계의 성장율과 지구가 보유하고 있는 자원을 대비하여 계산하면 답이 안나온다는 거야.
그리고 얼마 안된 미래는 경제 성장의 밑받침이 될 자원, 특히 석유가 고갈될 것이라고 예측했단다.
그가 이야기한 시점보다는 더 먼 현시점에도 아직 석유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이미 피크치를 넘어섰다는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많아.
앞으로는 정말 석유가 없는 시대가 찾아올지도 몰라.
진정 유능한 지도자라면 이런 것을 대비하지만,
아직 경제 성장이라는 근시적인 성적에만 연연하고 있는것 같구나.
이 책에서는 결국 세계를 이끌어갈, 그것도 모든 구성원이 행복하게 이끌어갈 방법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 책의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작은 것을 주장하고 있단다.
조직도 작게 만드는거야.
작은 것은 외부의 큰 변화에도 쉽게 대처할 수 있어.
그 밖에 규모가 큰 것에 대한 단점들을 보충할 수 있다는 내용들이 많이 나와 있는데,
아빠의 기억력과 이해력의 한계로 전달이 쉽지 않구나.
2. 발췌
아래는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발췌한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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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인은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지배하고 정복할 운명을 타고난 외부 세력이라고 여긴다.
근대인은 심지어 자연과 싸운다고 말하는데,
이 싸움에서 승리하더라도 결국에는 자신이 패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최근까지 이 싸움은 인간의 힘이 무한하다는 환상을 가져왔을 정도로
인간에게 유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완전한 승리의 가능성이 드러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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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명제는 바로 경제 성장이라는 게 경제학, 물리학, 화학, 기술 따위의 관점에서 보면
뚜렷한 한계가 없지만 환경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필연적으로 결정적인 장애 요인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로지 부를 추구하는 데서만 삶의 충만함을 찾는 생활태도-간단히 말해서 물질주의-는
이 세계에 적합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주변 환경이 엄격히 유한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제한하는 원리를 내부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환경은 우리에게 몇몇 스트레스가 한도를 넘고 있다고 말하려고 한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그러한 '해결'의 결과로서 열 가지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코모너 교수가 강조하듯이,
이 새로운 문제는 우연한 실패의 산물이라기보다 기술적인 성공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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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지식은 이성보다 경험에 훨씬 더 많이 의존한다는 점에서 작고 보잘것없으며,
바로 그런 이유에서 작은 것 속에 지혜가 깃들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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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는 비경제적인 가치를 경제적 계산 영역에 끼워 넣기 위해 비용/편익 분석법을 사용한다.
이 방법은 그렇지 않았으면 완전히 무시되었을 수도 있는 비용과 편익을 고려하려는 시도이므로,
흔이 선진 기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실상 이것은 고차적인 것을 저차적인 것으로 끌어내리고,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에 가격을 부여하려는 방식이다.
따라서 그것은 상황을 명확히 보여주면서 이성적인 결정을 도출할도록 도와주는 게 결코 아니다.
그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이란 고작 자신이나 타인을 기만하는 일뿐이다.
왜냐하면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측정하려는 시도는 이치에 맞지 않는 일미여,
선입견으로부터 뻔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정교한 방법만을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란
고작 측정할 수 없는 비용과 편익에 적당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적 비합리성이 이 방법의 최대 결점인 것은 아니다.
더욱 나쁜 것은 문명을 파괴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가격을 갖는다는,
즉 돈이 최고의 가치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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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경제학자가 이것을 이해하기는 매우 힘들다.
그는 항시 많이 소비하는 사람은 적게 소비하는 사람보다 행복하다는 전제 아래
연간 소비량으로 '생활 수준'을 측정하는 데 익숙하다.
허나 불교 경제학자에게 이런 접근은 너무도 비합리적인 것이다.
소비는 단순히 인간의 복지에 대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므로,
최소한의 소비로 최대한의 복지를 확보하는 데서 목적을 찾는다.
그러므로 옷을 입은 목적이 어느 정도 쾌적한 온도와 매력적인 외모를 확보하는 데 있다면,
최소한의 노력으로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옷의 마모를 최소화하면서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능한 디자인을 활용하는데 있다.
이러한 노력이 줄어들수록 예술적인 창조를 위한 시간과 힘이 늘어난다.
이를테면 근대 서구에서 주로하는 복잡한 재봉질보다,
천을 자르지 않고 맵시있게 주름잡아 몸에 걸치면 훨씬 더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
천이 빨리 마모되도록 만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추하거나 초라해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너무도 야만스러운 짓이다.
방금 의복에 대해 말한 내용은 그 밖의 모든 필수품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재화를 소유하고 소비하는 일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며,
불교 경제학은 최소한의 수단으로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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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교육의 본질이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가치란 자신의 것이 되지 않는 한,
바꿔 말하면 우리 자신의 정신을 구성하는 부분이 되지 않는 한,
우리의 인생을 이끌 수 없다.
이는 가치나 공식인 교리 이상이고, 언제나 우리의 사고와 감정을 따라다니며,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체험하는 데 이용하는 수단 자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생각할 때, 생각만 하는 게 아닌다.
관념과 함께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신은 백지 상태, 즉 타불라 라사가 아니다.
생각하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이미 생각에 이용되는 온갖 종류의 관념들이 정신에 들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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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우리가 사라가는 데 필요한 관념을 생산할 수 없다.
가장 위대한 과학 사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특별한 연구 목적에는 유용하지만 삶의 태도와 세계 해석에는 결코 적용할 수 없는 작업 가설 뿐이다.
따라서 인간이 소외감을 느끼고 좌절했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덧없고 무의마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교육을 찾는다고 할지라도,
그는 자연과학을 탐구하는 것, 즉 노하우를 습득하는 것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없다.
물론 과학의 연구에 우리에게 자연계나 공학적인 환경에서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말해주지 않으며,
인간의 소외나 마음속 깊은 곳의 절망감을 결코 치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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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은 수백만 년 이상 변화해온 것으로 그 어떠한 장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지구는 150만 종 이상의 동식물들이 서식하면서
토양과 공기의 똑같은 분자를 계속해서 사용하고,
그러면서도 대체로 균형이 잡힌 상태로 공존할 정도로 너무도 복잡한 행성이므로,
목적도 없는 섣부른 지식으로 개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복잡한 메커니즘에 변화가 나타나면 언제나 어느 정도 위험을 동반하게 되므로,
가능한 모든 자료들을 신중히 검토한 후에야 비로소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큰 변화에 앞서, 먼저 작은 것부터 시험삼아 시도해야 한다.
정보가 불완전하다면, 변화는 아주 오랫동안 생명을 뒷받침해왔다는 사실에 대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자연 과정에 가까운 상태로 그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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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기술 발전에 새로운 방향을 제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 방향은 기술을 인간의 실질적인 욕구에 맞게 재편하는 것이며,
이는 또한 인간의 실제 크기에 맞추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작은 존재이므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
거대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자기파괴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한 방향 전환 비용은 얼마나 될까?
생존 비용을 계산하는 것이 정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분명히 말해서, 가치 있는 일에는 언제나 비용이 수반된다.
기술이 인간을 파괴하는 것 대신에 인간에게 봉사하도록 방향을 전환하려면,
무엇보다도 상상력에 힘입어 두려움을 떨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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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원조는 지식 원조, 즉 유용한 지식의 증여이다.
지식의 증요는 물질의 증여보다 훨씬 낫다.
여기에는 수많은 이유가 존재한다.
어떤 것이든 성실한 노력이나 희생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닌 한,
진정으로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물질적 재화를 증여하면 수령인은 노력이나 희생 없이 소유할 수 있으며,
그래서 그것은 좀처럼 '그의 것'이 되지 못하고, 대체로 너무 쉽게 단순한 행운으로 여겨진다.
수령인이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지 않는 한, 그 어떠한 증요도 없다.
증여물을 소유한다는 것은 곧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며,
[이런 증여물은] '좀 먹거나 녹슬어 못쓰게 되지도 않는다.'
물질적인 재화의 증여는 수령인을 의존적인 존재로 만들지만,
지식의 증여는-그것이 올바른 지식이라면- 수령인을 자유로운 존재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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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 작은 것이 아름답다
지은이 : E. F. 슈마허
펴낸곳 : 녹색평론사
페이지 : 384 page
펴낸날 : 2002년 03월 10일
책정가 : 15,000원
읽은날 : 2013.04.04~2013.04.10
글쓴날 : 2013.04.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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