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담교우를 모셔오라] (1) 총론
한국교회 냉담 증가 만성질환, 단계별 맞춤 치료 필요
앞으로 남고 뒤로는 밑지는 장사를 하는 격입니다.
외관상 한국교회 신자 수는 꾸준히 증가했으나 신앙생활을 쉬고 있는, '무늬만 신자'인 냉담교우도 급격히 늘었습니다. 현재 천주교 신자 100명 가운데 27명이 냉담 상태입니다. 각 본당마다 신자들 냉담 문제를 고민하며 이런저런 노력을 해보지만 그 숫자는 계속 늘어만 갑니다.
혹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낙담합니다. "한국교회의 뒷문이 열려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교회가 '속빈 강정'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팽배합니다. 냉담교우 문제는 어제오늘의 과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평화신문은 앞으로 6개월간 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소장 차동엽 신부)와 함께 한국교회의 대표적 고질병인 냉담교우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특별 기획을 시작합니다. 미래사목연구소 '냉담교우 모시기 5단계 방안'을 기초로 하는 이번 기획은 문제를 펼쳐서 원인을 찾고 그에 따른 맞춤형 대안을 제시해 나가겠습니다. 본당 차원의 냉담교우 모시기 성공사례도 소개하겠습니다. '잃은 양 찾기'를 위해 고민하는 사목자와 신자들의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신자 수 약 7000명의 ㅎ본당. 총 신자 수 대비 냉담ㆍ행불신자 비율이 41.2%(2872명)에 이른다. 주일미사에 정기적으로 나오는 신자도 23.9%(1670명) 수준에 불과하다. 교중미사를 제외하곤 성당에 빈 좌석이 많이 남는다.
최근에는 고민이 하나 늘었다. 해마다 새 신자 선교에 힘쓰고 있지만 세례자 수가 갈수록 줄고 있다. 비단 ㅎ본당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고민이다.
냉담교우는 누구인가
'냉담'(冷淡)의 사전적 풀이는 '무슨 일에 마음을 두지 않음. 무관심함'이다. 한국교회에서 '냉담교우'를 말할 때는 신앙에 대해 더 이상 마음에 두지 않고 무관심한 상태나 신앙의 정신이나 열정을 잃어버린 신자를 말한다. 한국교회는 최근 3년 이내에 판공성사를 받지 않은 신자를 냉담교우로 분류하고 있다.
본당 관할구역에 더 이상 거주하지 않지만 교적을 옮겨가지 않고 방치해 둔 거주 미상자(행불신자)도 적지 않다. 새로운 거주지 관할 본당에서 교적을 새로 만들어 신앙생활을 계속하는 경우도 일부 있으나 대부분 거주 미상자는 냉담 상태일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에 비록 판공성사나 고해성사를 보지 않을지라도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갖고 교회 가르침을 존중하며 주일미사에도 지속적으로 참례하는 신자도 있다. 이들 모두를 냉담교우로 규정하는 데 다소 이견이 있으나 이들의 신앙생활에도 문제점은 있다고 본다.
급증하는 냉담교우 비율
겉으로 드러난 한국교회 현황을 날씨로 비유하면 '맑음'이다.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09」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신자 수는 512만92명으로, 총인구 대비 총신자 비율(복음화율)이 처음으로 10%대에 진입했다. 40년 전인 1970년만 해도 신자 비율이 2.4%에 불과한 소수종교였던 한국 천주교는 국내 주요 종교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가톨릭에 대한 일반인들 시선 역시 여전히 따뜻하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맑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성장률은 점점 둔화되는 반면 교회를 멀리하는 냉담교우 비율은 늘어만 간다. 주일미사 참례율 역시 떨어지고 있다.
2009년 말 현재 주소확인자 80만5902명(15.7%)와 거주 미상자 60만7949명(11.9%)를 합해 전체 냉담교우 수는 141만3851명으로 27.6%에 이른다. 주일미사 참례자 수는 평균 131만여 명으로 전체 신자의 25.6%를 차지하고 있다.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신자 수 그 이상으로 냉담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통계자료에 따르면 1961년 냉담교우 비율은 4.4%, 1971년에는 11.8%였다. 그랬던 것이 1985년 22.5%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고, 1997년 28%, 2000년 33.4%, 2002년 36.0%, 2004년 36.0%, 2006년에는 36.7%에 이르렀다.
이후 냉담교우 증가 추세가 다소 호전되기는 했으나 2007년 29.4%, 2008년 29.6%로 여전히 20% 중후반대에 머물고 있다. 더욱이 냉담교우 비율이 약간 낮아진 것은 신자통계를 전산처리 하는 과정(이중교적 정리 등)에서 비롯된 것이지 실제 냉담교우가 줄어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반면 연 5~7%씩 상승하던 신자 증가율은 1990년대 중반 3%대로 내려앉더니 2002년부터 계속 2%대에 머물러 있다. 2009년에도 전년도 대비 2.3%밖에 상승하지 않았다.
미래는 더 어둡다.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는 교세통계(1970~2006년)와 통계청 자료(인구부문, 추정자료 포함)를 토대로 냉담교우 비율이 △2012년 40% △2015년 41.2% △2020년 42.8%로 증가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2020년에는 절반 가까운 신자가 냉담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에서 볼 수 있듯이 냉담교우 문제는 한국교회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다.
교회를 왜 멀리하는가
#사례1= 회사를 퇴직하고 음식점을 운영하는 최 프란치스코(48)씨는 "성당에 갈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고 말한다. 휴일도 없이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한두 번 주일미사에 빠지다보니 자연히 성당과 멀어졌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다시 성당에 나가겠다고 다짐했지만, 지금 당장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사례2= 김 엘리사벳(43)씨는 집 근처 성당 앞을 지나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왔지만 남편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 교무금과 건축헌금 납부를 미루다 보니 심적 부담 때문에 냉담교우가 됐다. 가끔 주일미사에 참례하지만 영성체도 하지 못하고 성당에 나오는 것이 죄스럽기만 하다.
#사례3= 한 요셉(58)씨는 얼마 전 냉담을 풀고 본당 활동에 열심이다. 하지만 신앙을 다시 회복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엄격하고 권위적인 주임신부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냉담하는 동안 하느님께 죄책감이 들었다"는 한씨는 "새로 부임한 주임신부님이 냉담교우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받고서야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례4= 5년 전 세례를 받은 강 미카엘씨(36)가 냉담교우가 된 이유는 고해성사다. 한두 번 판공성사를 미루다 보니 서류상 냉담교우로 처리됐다. 예비신자 교리 때 '고해성사는 하느님과의 화해이자 용서의 성사'라고 배웠지만 사제에게 내 잘못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고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주일미사는 빠지지 않고 신심서적도 읽으면서 나름대로 가톨릭 신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산다.
이처럼 냉담교우들이 신앙을 멀리하게 된 사연과 상황은 제각기 다르다.
한국교회에서 '냉담교우'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신자 증가율 감소와 함께 급격한 냉담률 증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교회 안에서 계속 나왔지만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 이는 그동안 냉담교우 문제가 심각하다는 진단만 있었지 구체적이고 근본적 차원의 해결 방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본당에서 냉담교우를 회두시키려 하지만 정작 어디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 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어느 본당에서 어떤 방법(프로그램)을 적용했더니 좋은 성과가 나왔더라"는 소문을 들으면 그것을 곧바로 도입한다. 이 접근법은 성과를 가져올 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기대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할 때가 많다.
미래사목연구소 소장 차동엽 신부는 "일선 본당에서 끊임없이 냉담교우 모시기를 강조하고 있음에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대상과 원인에 따른 체계적 접근법과 자신감 훈련이 부족했던 탓"이라고 지적했다. 주먹구구식 선교에서 탈피해 긍정적 언어와 밝은 표정 등 인격적 준비와 선교의지를 갖추는 준비 단계부터 시작해 대상자 확인 및 기도→사랑의 편지 전달→방문→마음 열기→모시기까지 냉담교우를 다시 데려오는 과정을 단계별로 나눠 훈련하는 것이 냉담교우 선교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또 냉담교우들마다 나름대로 '냉담 이유'가 있어 이들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 더욱이 냉담하는 이유가 대부분 한 가지가 아닌 복합적 원인을 갖고 있어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렵다. 이제 냉담교우 모시기에도 개인과 본당 차원의 맞춤형 대안이 필요하다.
2010.7.4 평화신문
- 굿뉴스 주호식 신부님 글에서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