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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에 적벽대전을 보고, 수요일에 워낭소리를 봤다. 두 영화 모두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영화이다. 어떨까?
적벽대전: 아~ 적벽대전이구나. 마음이 편안하다. 오늘 신나게 스펙타클의 진수를 맛 보겠구나. 광고도 엄청 많다. 사람들이 많이 보기는 보는 것 같다. 젊은 커플들이 속속 자리를 잡고 있다. 나도 그 중에 하나지만...
워낭소리: 소년에서 중년까지 말 그대로 '전체관람가'에 맞는 전체관람이다. 은근히 마음이 불편하다. 아직도 고향에 있는 어르신들의 주름진 모습이 떠오를 것 같다. 내가 가만히 앉아서 볼 수 있을까?
적벽대전: 앞부분에 이런저런 얘기들을 주고 받는다. 서양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자르고 붙이고 그랬다. 큰 상관없다. 대충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으니 시간 지나면 알아서 불 지르고 싸우겠지.
워낭소리: 젠장.. 경북이다. 내 고향이다. 말투까지 똑같다. 차라리 전라도 이런 데라도 하면 조금 거리감이 있어 편하게 볼 텐데.. 너무나도 익숙한 뻐꾸기 소리와 풍경이 나온다. 이건 영화가 아니다. 나의 과거다.
적벽대전: 서양 사람들을 위해서 사람들의 이름이 자막으로 알려주기 바쁘다. 나는 속으로 씩 웃는다. 나는 다 알지롱...주유, 제갈량, 조조, 유비, 관우, 장비, 감녕, 손권 등등
워낭소리: 굳이 어르신들의 이름을 넣어준다. 그건 하나의 예의에 불과한 것이다. 소도 이름을 '소'라고 자막을 넣어준다.
적벽대전: 가끔씩 재미난 장면이 있다. 그 장면들이 덩실덩실 마음을 부풀게 해 준다. 도대체 얼마나 스펙타클하게 지르려고 뜸을 들인단 말인가. 기대감은 차차 높아진다.
워낭소리: 할머니의 구수한 입담이 쏟아진다. 도시에 마냥 살던 사람들은 웃는다. 나는 웃을 수 없다. 겉으로는 웃겨 보이는 그 한마디 한마디가 엄청난 고생과 한이 맺혀서 나온 역설적인 웃음이라는 것을 안다. 20살때..방학이다. 늙으신 어머니가 밭을 매며 노래를 부른다. 어머니가 묻는다. 내가 기분이 좋아서 노래를 부르겠나? 아니면 기분이 안 좋아서 노래를 부르겠나? 맞춰봐라.... 답은 잘 알고 있다. 열 아홉에 죽은 이모의 옛 애인의 전화를 한 20년 만에 받았으니까... 어머니의 노래는 눈물과 한을 가슴속에 재우는 자장가리라.
적벽대전: 지략으로 제갈량은 화살을 얻고, 주유는 계략으로 눈엣가시 적 장수들을 죽인다.
워낭소리: 9남매와 할머니의 강요로 분신과도 같은 소를 끌고 우시장에 나선다.
적벽대전: 동남풍이 불어온다. 마음 속에서도 설레임의 바람이 분다.
워낭소리: 소의 걸음이 위태위태해지고, 어르신이 머리가 점점 아파온다. 나는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다.
적벽대전: 드디어 불이 붙었다.
워낭소리: 사람도 고물, 소도 고물, 라디오도 고물.... 할머니의 웃음 말이 가슴에 맺힌다. '히히...다 된기라...이제 다~~~됐어...히히'
적벽대전: 조조군이 화려하고도 무참하게 무너진다. 가슴이 뻥 뚫린다.
워낭소리: 소가 40년 만에 일어서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내 고향도 무너진다. 가슴이 먹먹하다.
적벽대전: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이었다며 조조에게 왔던 곳으로 가라고 말한다. 멋지다.
워낭소리: 할아버지가 소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좋은 곳으로 잘 가거레이' 초라하고 슬프고 덤덤하다.
적벽대전은 너무나 시원했고, 그래서 편안했다.
워낭소리는 ...............그래서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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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는 두편의 영화를 다 안봤습니다만 이 글을 보니 좀 짠 하네요. 농촌생활을 해보지 못한 저라서 위의 도시사람이랑 똑같이 웃겠지만... 글쓴이의 마음을 알듯말듯...
적벽대전2를 어제 봤습니다. 삼국지의 그 장면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럴싸한 영화였어요. 워낭소리는 시골에서 볼 수 없지만 글쓴이의 마음을 짐작할 순 있을 것 같습니다.
워낭소리, 오래됨, 느림,.......숨 죽이며 마음 밑바닥까지 먹먹했던 시간, 오랜만이었지요.
저는 보지는 못했지만 '먹먹했다'는 느낌이 가장 적절할 듯싶습니다.
안동에서 마지막 날 겨우 봤습니다.다큐멘터리 영화로는 드물게 화면과 음향이 깨끗하여 속이 시원했습니다. 일행들과 보고난 후 9명이나 되는 자식 놈들을 욕했습니다. 부모님께 새 라디오 하나도 못 사 드리나, 병원에도 못 모시고 가나. 감독이 반성문 쓰듯이 찍었다는 말이 맞습니다. 관객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불편할 수밖에..
보고 싶어 죽겠어요. 대구라도 가야 할까 봐요.
일부러라도 가서 볼 만한 가치가 있어요.. 안동 프리머스 영화관에서 계속 상영하네요. 관객이 많아서 연장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