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세존께서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13-8 현재와 미래세의 모든 중생을 간곡히 그대에게 부촉하노니
그대는 큰 신통과 방편으로써 그들을 악도에서 구출하라.
13-9 그때 지장보살이 무릎 꿇고 합장하며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13-10 세존이시여,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미래세에 선남자 선여인이 불법에 대해 한 생각의 공경심만 내어도 제가 백천 방편으로 이 사람을 제도하여 생사 가운데에 속히 해탈을 얻게 하겠습니다. 하물며 모든 착한 일을 듣고 생각 생각에 닦아 나아가는 자는 자연히 위없는 최상의 도에서 길이 물러나지 않게 하겠습니다.
13-11 이 말씀을 하실 때 법회에 참석하였던 허공장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13-12 세존이시여, 제가 도리천에 이르러 여래께서 지장보살의 불가사의한 위신력을 찬탄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미래세에 선남자 선녀인과 모든 하늘과 용이 이 경전과 지장보살의 명호를 듣거나 형상에 예배하면 몇 가지의 복과 이익을 얻는지요.
세존이시여, 현재와 미래의 모든 중생을 위하여 간략히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길라잡이 - 지장경에서는 법왕자로서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세음보살 등 많은 보살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위로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구제하는 이가 보살이라 했는데 13품에서 다시 허공장보살 등장하여 지장보살의 불가사의한 위신력을 묻는 내용으로 엮어지고 있습니다.
* 허공장보살
석존이 입멸한 뒤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몸을 6도에 냐타내어 천상에서 지옥까지 일체중생을 교화하는 가이없는 열린 마음(무변심-無變心)의 보살이 지장보살이라면 허공장보살은 그 지혜와 자비가 광대무변하여 마치 허공과 같은 보살입니다.
허공장보살이 부처님께
“경전과 지장보살의 명호를 듣거나 형상에 예배하면 몇 가지의 복과 이익을 얻는지요.”
라고 물으니 28종의 이익과 7종의 이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허공장보살을 통한 부처님의 마지막 증언이며, 이처럼 지장보살의 무량한 이익 공덕을 어떻게 찬양하며 믿으며, 이를 널리 세간으로 돌리느냐 하는 것이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대일경에 보면
“허공은 파괴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뛰어나므로 이를 어길 이도 없다 그것을 그대로 자유자재로 취하여 어떠한 궁핍도 받지 않음을 뜻한다.”
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지장보살과 허공장보살은 불교의 사상체계상으로 현실세계를 구원하는 현세불의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지장신앙이 사후의 세계, 지옥 중생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현세이익을 위주로 하는 미래지향적 신앙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지장의 믿음으로 들게 하며 그 신앙의 세계가 허공처럼 광활하다는 믿음을 내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지장경을 설하는 마지막 13품에서 허공장보살은 거듭하여 지장보살의 이익 공덕을 확인하고 강조하는 신중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13-12에서
현재와 미래의 모든 중생을 위하여
라고 다시 강조하는 설법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장보살이 베푸는 이익 공덕은 바로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이 대지와 같은 것이기에 ‘지장’ 이란 이름으로 불리우며
허공장보살이 그러하듯이 지장보살은 복덕과 지혜의 두 가지 보배를 간직하고 있어서 고통 받는 중생을 보면 지혜로써 구제해 줍니다.
지장보살의 한 손에는 여의보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의보주는 마음대로 여의하게 보배를 냄으로 ‘여의주’ 이고 이른바 마니(摩尼) 구슬을 가지고 있기에 중생들의 본성 깊숙한 곳에 내재해 있는 선을 끊임없이 찾아내는 역할을 하며 자기보배를 스스로 찾아내게끔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미래와 현재의 중생을 위해 힘쓰는 이른바 지장보살의 선교방편(善巧方便)입니다.
선교방편이란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알맞은 수단을 활용해 바른 길로 이끈는 것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이며, 선교방편의 완성은 곧 방편바라밀을 행하는 것으로 바라밀(paramita)은 완성이라는 뜻이므로, 방편바라밀은 선교방편의 궁극을 말합니다. 방편바라밀은 십바라밀 중의 하나로 십바라밀은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의 육바라밀과 방편·원(願)·력(力)·지(智)의 네 바라밀을 합한 것이며, 방편바라밀은 십바라밀의 7번째이다. 이것은 선교방편이란 자비와 지혜의 총화인 육바라밀을 토대로 행해지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 법안 스님의 ’삼승과 선교 방편‘ 법문(2004. 8. 10)
반야 교설까지를 부처님께서는 ‘삼승의 가르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설하신 것이 법화경의 내용입니다. 여섯 가지 법문 중에서 처음 업설은 대개 승에는 두지 않습니다. 불교에서는 육육법과 오온사제설을 성문승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그것을 간추리면 오온사제설 만을 성문승으로 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연각승은 12연기를 가르치고, 그 다음에 보살의 육바라밀을 보살승, 이와 같은 것을 삼승교설(三乘敎說)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전부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밖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오온사제설에서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를 괴로움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괴로움은 집기(集起)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염오(染汚)의 세계를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야바라밀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도 반야를 통해서 피안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분별의 세계를 여의고 저 피안(彼岸). 청정무구(淸淨無垢) 한 진여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삼승은 전부가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법화경에서는 그러한 세 가지 법문은 결국 하나의 휴식처를 준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설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이 서울에서 광주로 오면서, 여산 휴게소에서 쉬었습니다. 긴 여행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피곤해집니다.
따라서 적당한 장소에 휴게소를 만들어서 쉬어야 합니다.
또 아까도 우리들이 아함경을 읽어가다가 힘드니까 조금 쉬었다 하자고 해서 쉬어 가지고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휴게소를 만들어 두지 않으면 갈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자기는 아무리 욕심껏 가려고 해도 갈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부처님께서 휴게소를 적당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삼승의 가르침, 삼승에서 말하는 피안이나 열반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하나의 휴게소에 불과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산휴게소를 거쳐 지금 바로 이 광륵사에 와 있는데. 삼승을 거쳐 이제 마지막으로 가야 될 곳이 어떠한 곳인가를 설하고 있는 것이 법화경입니다.
이러한 법화(法華)의 도리는 대단히 미묘합니다. 법화경에 보면 제이방편품(第二方便品)이 있습니다.
210페이지를 펴 보십시오. 이것이 법화경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방편품입니다.
왜 그렇게 말하느냐 하면, 지금까지 부처님은 삼승의 가르침을 통해서 부처님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해 왔습니다. 아함경을 설할 때도
‘너희들이 오온사제설만 잘하면 깨달음을 이루게 된다.'
라고 했습니다.
아함경을 여러분들이 공부해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거예요.
심지어는
‘이 삼수[三受; 苦, 樂, 不苦不樂]만 잘 관찰해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온사제설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초전법륜경에 보면 오온사제설에
‘삼전십이행상(三傳十二行相)이 있을 때, 나에게는 깨달음이 일어났느니라.‘
라고 설해져 있습니다.
12연기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칠불(七佛)은 모두가 12연기를 역순(逆順)으로 관찰해서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또 반야바라밀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반야경에서는 한결같이
‘반야바라밀다를 통해서만이 부처님이 되는 것이다‘
라고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조금 전에 읽었던 반야심경에서도
‘삼세제불(三世諸佛)은 모두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다시없는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이루었다‘
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삼승의 가르침 하나하나가 전부 깨달음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은
‘이제 내가 너희들에게, 정말로 진실한 말로 하겠는데 그것은 하나의 방편이었느니라.‘
이렇게 고백하고 계신 것이 바로 이 법화경 방편품입니다.
결국 방편품은 ‘지금까지 이야기 해왔던 것은 하나의 방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버리는 것이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휴게소를 적당히 만들어 놓고 너희들을 끌어왔다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이러한 방편을 베풀지 아니했더라면 아무도 이 법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마 더욱 먼 여행길이라면 아무도 가지 못할 것입니다. 적당히 휴식을 취해 주지 않으면 운전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방편의 중요성을 대단히 찬탄하고 계신 것입니다. 자기가 설한 방편의 미묘함은 정말로 놀랍다고 스스로 찬탄을 하고 있습니다. 방편의 수승함을 찬탄하면서 동시에
‘지금까지 말했던 것은 하나의 방편이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ㆍ
최선생님~날씨가 쌀쌀합니다.
건강하세요 정말잘돼!!
아미타불
선생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오늘은 선생님 귀한 말씀과 큰스님 젊은 날의 모습을 뵙네요 덕분입니다 오늘 우리 밀양은 비가 내립니다 짙어가는 가을 선생님 항상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아미타불 ()()()
늘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
좋은 법문 감사합니다.
나모 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