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사고의 중요성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시73:16-17)
- 영적인 갈등 앞에서 ... 비탈길을 굴러 떨어지는 것...
시편 기자는 어떻게 , “하나님은 언제나 이스라엘에게 선하시도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
그는 여전히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16).
여전히 난제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일이 “하나님의 성소에 나아갈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17).
구약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여기서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자 모든 것이 그에게 분명해졌다는 것이다.
영적 사고와 이성적 사고
교훈은, 그리스도인은 절대적으로 영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고통거리는, 자기의 난제를 순전히 자기 생각이나 자기 이해의 차원에서 접근한 데서 비록되었다.
그것은 악인들이 잘되는 것과,
경건한 의인들이 고난과 재앙을 당하는 것,
이 두 가지 문제를 가져왔다.
영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만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 차이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합리적인 사고와
영적인 사고
그 둘의 차이는 이성적 사고는 땅의 차원에서만 생각하는 것이고,
영적 사고는 합리적이면서 더 높은 수준에서도 생각한다는 것이다.
영적 사고는 단순히 몇 가지 사실만을 취하지 않으며, 모든 사실들을 다 감안한다.
1) 그리스도의 삶 속에는 단순하게 합리적으로만 생각하는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시편 기자는 경건하고 헌신적인 사람이었지만,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단순히 이성적인 생각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가 영적이어야지 삶의 일부분만이 영적이어서는 안 된다.
바울이 고전 2장에서 “왜 사람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적에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는가?”
그들은 단지 합리적인 이성의 수준에서만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시골뜨기 목수 이상으로 보지 못했다.
그런 그가 연약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그 사실들이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으라 하는가?”
“그 일들은 불가능하다. 이적 같은 것은 없다.
밤에 우리 주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생이시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 아니면 당신이 행하는 이 표적을 할 수 없사옵나이다. 그 해답이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그 말씀은 사실상 이러한 내용이다.
“너는 너의 육신적인 이해력으로 영적인 일들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다. 비록 네가 이스라엘의 선생이지만, 너는 거듭나야 한다.
만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다면 어린아이같이 되어야 한다.
더 이상 자연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을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영적인 사고방식의 본질을 인식하여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어 영적인 차원의 삶을 시작했지만 특별한 문제에 대하여는 여전히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일이 공정하지 않은 것 같다고 불만을 내타내는 즉시, 여러분은 하나님을 여러분의 이해의 수준으로 깍아내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영적인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인생의 전 과정이 전부 영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그 모든 일의 모든 국면,
모든 단계 모든 이해관계,
모든 과정을 영적으로 숙고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인의 모든 난제들과 문제들은 전부 다 영적인 것이다. 이것은 우리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이해하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이 시편 기자의 문제였다
“내 생각이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사55:8) 그것이 궁극적인 답변이다.
하나님의 방식과 우리의 방식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크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면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내가 이일을 영적으로 대면하고 있는가?
이것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임을 상기하고 있는가?”
우리의 삶은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영적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제로 삼아야 하는
첫째 원리는, 우리가 항상 영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2) 영적 사고를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17)
시편 기자는 난관에 봉착했을 때 생각을 자신에게 고착시켜 두고 있었다. 그는 성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사고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고통거리들에 사로잡히고 만다.
특히 역경을 겪고 있을 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공정하지 못하며 우리를 아주 거칠게 다룬다고 느끼게 된다.
비참해지고 슬퍼지며 그저 자기 연민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계속 돌기만 하는 것이다.
그러한 악한 굴레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① 하나님의 집에 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집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하나님의 집을 계획하고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다.
그 점을 인식하는 것 차체가 우리를 더욱 건전한 상태로 이끌어 준다.
그런 다음 하나님의 집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하나님의 집은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가를 생각해 본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그 신앙을 계속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기기에 와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어떤 사람이 우리가 당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우리의 난제를 즉시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한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할 것이 없나니”(고전10:13).
우리는 혼자만 이런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 일을 바른 시각으로 보도록 도와준다.
교회사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빛낸 위대한 성도들 중에는 우리의 작은 난제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만드는 고난과 환난을 경험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영적인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우리의 난제는 바른 위치에 놓이게 된다.
하나님의 집, 주의 성소는 우리에게 이 모든 교훈을 가르친다.
하나님의 집에 나오기를 게을리하는 이들은 비성경적일 뿐이 아니라 어리석은 자들이다.
목회 경험상, 하나님의 집에 정규적으로 참석하는 일에 적게 순종하는 자들이 난제들과 당혹한 문제들로 말미암아 가장 큰 고통을 당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 와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나도록 정하여 놓으셨다. 주님께서 부흥을 통하여 그 하나님의 집에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은총을 베푸실 것인데. 할 수 있는 한 자주 하나님의 성소에 나아가라.
② 성경이 우리를 영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시편 기자의 시대에는 성경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가정에서든 교회에서든 상관없이 성경을 바라보라. 그리하면 측량할 수 없는 방식으로 즉각 영적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성경의 위대한 가르침과 교리들을 읽으라.
그러면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목적을 떠올리게 되고, 여러분의 생각들이 어리석었음을 깨닫고 부끄러워할 것이다. 성경은 경건한 이들의 고난의 문제에 대하여 분명한 가르침을 가지고 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3:12).
우리가 성경을 많이 읽을수록 이성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영적인 차원에서 사물들을 보는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③ 기도와 묵상이다.
하나님의 성소에서 행해지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에 대하여 묵상할 때,
우리는 이성적인 낮은 수준의 사고에서 벗어나 다시 영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왜 기도하는 문제를 가장 먼저 다루지 않는가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문제가 무엇인지 따지지 않고 그저 “기도합시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얼마나 입심 좋고도 피상적인 거짓된 충고인가?
우리는 진실로 기도하기 전에 먼저 영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조지 뮬러는 목사들에게 강의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매일 아침에 가장 먼저 기도를 했지만, 그것이 최선의 방식이 아님을 깨달았다. 참으로 영적으로 기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성령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 자신을 먼저 준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하기 전에 성경을 읽거나 경건 서적을 읽어야 한다.
그리하여 나 자신과 나의 영을 바르게 하는 일이 하나님께 진실로 기도하기 전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절망감 속에서 울부짖는 것에 불과한데도 기도하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시간을 허비한다.
우리의 전체적인 사고와 자세가 잘못되어 있다면, 기도하느라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기도를 시작할 수가 없다.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생각이 옳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 하나님의 면전을 바르게 할 수 없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영적으로 준비되어야 하며,
우리의 사고가 곧고 참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께 기도하며 교제하는 단계들을 따르는 것이 온전하다.
그러한 단계들을 통하여 우리의 심령이 깨끗해지고 온전히 씻어졌을 때에, 다른 모든 생각들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요, 잘못된 것임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돌리게 되며, 우리 심령이 평안해진다.
“고난 속에서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하나님과 대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