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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사건을 바탕으로 한 작품.
제주4.3사건은 1948년 4월 부터 1954년까지 제주도 내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벌어진 민간인 희생사건. 1947년 3월1일 시민들이 미군정통치 반대하며 가두시위를 하던 중 기마경관이 탄 말에 어린이가 밟히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를 무시하고 지나치려 하자 주변 3만여 군중들이 몰려 이들에게 항의 하면서 경찰서로 진입하자 이에 발포.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독서토론에 앞서 제주4.3 사건의 희생자들의 영령들께 애도를 표합니다.
1부는 새
2부는 밤
3부는 불꽃
1부 새
서두에서부터 꿈이 나온다
이 꿈은 실제로 작가가 꾸었던 꿈이라고 했다
제주4.3사건에 대한 은유적인 꿈이었다
우듬치가 잘려나간 수천그루의 나무 그 위로 흩날리는 눈발
그리고 지평선인 줄 알았는데 수평선이었고 바닷물이 밀려들어오고 있다
수천그루 나무 아래 시신들은 바닷물에 마침내 쓸려 나갈 것이고 삽도 없는
경하는 걱정을 하다 잠에서 깬다.
경하는 5.18에 대해 책을 내었고 5.18살인자들이 얼마나 키만 웃자란 소년이었는지 알았고 발포명령을 내리고 건물에서 총탄이 쏟아지지 않나 하는 5.18의 기억들.
이 꿈은 작가로서 도시의 학살에 대한(5.18) 책을 낸지 두 달이 지나서였으니깐 이 꿈은 5.18이 아닌 다른 죽음, 제주 4.3에 대한 꿈이다.
눈만 감으면 수천그루의 통나무들 위로 흩어지던 눈발이 생생하게 떠 오른다
그리고 4년이 지난 현재 경하는 유서를 미리 써둔다 수신인이 없는 유서... 사람이란 생명이 얼마나 약한 것인지...살과 장와 뼈와 목숨들이 얼마나 쉽게 부서지고 끊어져 버릴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단 한 번의 선택으로
그러나 경하는 죽지 않았다 충돌할 줄 알았던 소행성이 미세한 오차로 지구를 비껴 가듯 죽음이 비껴 갔다
인생과 화해하지 않았지만 다시 살아야 했다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아나가면서부터 꾸기 시작했던 악몽, 경하가 5.18을 겪었던 그 순간의 트라우마로 줄곧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갔던 것이 아니었을까 당시의 살인자들이 얼마나 어린지 키만 웃자란 소년이라는 걸(p.22) 이 책이 출간된 뒤에도 악몽은 계속되었다. 우듬지가 잘려 나간 검은나무들 위로 그 벌판으로 눈발이 게속 날린다 그런 꿈을 계속해서 꾼다. 이에 대한 기록영화를 만들자고 인선에게 제안을 하고 4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수 십년 수 백년 동안 멈추지 않고 내려온 것 같은 그 벌판의 눈은 늘 생시처럼 나타난다.
어떤 운명의 육중한 칼이 경하를 향해 겨누는 것 같은 전율은 이 억울한 죽음에 대해 글을 써야만 비로소 악몽에서 벗어날 것 같은 숙명같은 것이라고 여기는 듯하다(P.26)
인선으로부터 당도한 문자
인선은 사진작가이자 다큐영화 제작자이다 엄마가 40에 낳은 인선은 할머니같은 엄마의 손에서 자랐다고 말한다. 인선이 다큐영화를 접고 목공소 일을 해왔다 목공소 일을 하다 손가락 마디 두 개가 잘려나가고 봉합수술을 한 인선
경하에게 부탁을 한다. 제주에 자신이 사는 집에 앵무새를 오늘 안으로 돌봐 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고...인선은 말한다. 경하가 쓴 책에 나오는 사람들 손가락 두 개가 잘린게 이만큼 아픈데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나간 사람들...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경하는 인선의 부탁대로 인선의 제주집으로 향하여 가고 있다
중간중간 회상한다
인선은 고등학교때 가출을 한다 할머니같은 엄마가 싫고 일상이 지긋지긋하게 싫어져서 가출을 한다 그때 사고나서 정신을 잃고 있었는데 하루 만에 발견되었던 인선, 의식이 돌아 온 인선의 머리맡에 엄마가 있다 엄마는 인선이 죽은 줄로만 알았노라고 말을 한다 꿈을 꾸었는데 5살의 인선의 뺨에 내리는 눈이 녹지를 않아서 이 아이가 죽었나보다 생각했다고...
인선의 엄마가 초등학교 졸업반 정도의 나이였을 때 군경들이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였는데 인선의 엄마와 인선의 이모는 심부름을 가서 집에 없었기에 죽음을 모면했다고
나중에 초등학교 운동장에 시체더미가 쌓여 있는데 그곳에 가서 아버지 엄마 여동생을 두 자매가 찾아다녔노라고 눈은 내리고 있었고 시체위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으므로 얼굴위에 쌓인 눈을 손수건으로 쓸어내리면서 가족들을 찾아 다녔노라고 그때 죽은 사람의 얼굴에 내리는 눈은 녹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노라고 (P.84) 눈만 내리면 그날이 생각이 나는 인선엄마
인선은 눈만 내리면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 다녔다는 여자애가 열일곱 살 먹은 언니가 어른인 줄 알고 그 소맷자락 팔에 매달려 걸었다는 열세살 아이가 생각난다고 말한다.(P 87)
경하가 제주에 있는 인선의 집으로 가는 여정들...
물은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고 순환하지 않나 그렇다면 인선이 맞으며 자란 눈송이 인선의 어머니가 보았다던 학교 운동장의 사람들 그리고 쌓인 그 시체들 얼굴위로 내렸던 눈들이 내 손에 묻은 눈과 같은 것이 아니란 법이 없다(P133)
삼만명이었어요
............
대만에서도 삼만명 오키나와에서도 십이만명이 살해되었는데요
............
그 숫자들을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그곳들이
모두 고립된 섬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인선의 집을 찾아가는 여정이 바람과 많은 양의 눈으로 인해 순탄치 않다
급기야는 건천에서 수 미터 아니 수십 미터를 굴러 떨어진 경하...
모르겠다 이것이 죽음 직전에 일어나는 일인지. 내가 경험한 모든 것이 결정이 된다. 아무것도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정교한 형상을 펼친 눈송이들 같은 수백 수천의 순간들이 동시에 반짝인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모든 고통과 기쁨, 사무치는 슬픔과 사랑이 서로에게 섞이지 않은 채 고스란히 동시에 거대한 성운처럼 하나의 덩어리로 빛나고 있다.
(P137)
마침내 인선의 집에 도착한 경하
아마 움직여봐 내가 구하러 왔어
부드러운 것이 손 끝에 닿는다
더 이상 따스하지 않은 것이
죽은 것이.(p149)
새의 죽은 얼굴을 감싸 여민다. 좀처럼 손수건이 벌어지지 않도록 흰 무명실로 감고 재봉 가위로 자른다. 한 뼘 남짓한 너비의 작은 통이지만 새의 몸이 워낙 작아 쏠리고 부딪히지 않게 하려면 더 감쌀 게 필요하다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 상자의 안쪽 사면을 두른다 폭이 좁고 길어도 짧아 목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제대로 막지 못했던 것인데 맞춘 듯 상자의 빈 곳을 메워준다. 그 위로 알루미늄 뚜껑을 덮으며 생각한다 쥐와 벌레가 파먹지 못하게 하려면 밖에서도 상자를 싸야 한다. 욕실 입구에 놓인 대바구니에서 깨끗해 보이는 흰 수건을 꺼내와 상자를 감싼다. 무명실을 길게 끊어 두 번 십자로 묶고 매듭을 짓는다 (P152)
-이 부분은 마치 억울하게 죽은 70년전의 그 주검들을 정성을 다해
장례의식을 치루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인선이 다큐를 찍었던 장면들
1948년 동굴들이 많았다 입구는 작았으나 들어가면 점점 커져 온마을 사람들이 피신해서 있었다 아버지가 유일하게 많이 하신 말은 속섬허다 즉 조용히 해라 말하지 말라...동굴 앞을 오고가는 작전병들에게 들킬까봐 늘 긴장을 하는 것
집으로 가자고 내가 속삭여 말하면 아버지는 낮고 단호하게 대답했어요 그집에 이시면 안돼여 이렇게 추운 데서 어떻게 자느냐고 내가 물으면 아버지는 이해 할 수 없는 말을 했어요 밤낮이 어신 거라이 군사직전이라는 건
어멍이 기다릴 건디...
느꼈어요
어둠이요 어둠이 거의 기억의 전부예요
어디서 어디로 가, 아빠?
내가 멈춰서 물을 때마다 아버지는 차분한 목소리로 방향을 알려줬어요
더 이상 길이 없는 산속으로 접어들면 나에게 등을 내밀어 업히라고 하고 그때부터 당신의 발자국만 쓸어내면서 비탈을 올랐어요 업힌 채로 나는 발자국들이 사라지는 걸 지켜봤어요 마술 같았어요 매순간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사람들처럼 우린 단 한 점의 발자국도 남기지 않으며 걷고 있었어요
경하의 독백
죽으러 왔구나 열에 들떠 나는 생각한다
죽으려고 이곳에 왔어
베어지고 구멍 뚫리려고, 목을 졸리고 불에 타려고 왔다.
불꽃을 쁨으며 무너져 앉을 이 집으로
조각난 거인의 몸처럼 겹겹이 포개져 누운 나무들 곁으로
2부 밤
열이 내려 있었고 두통도 구역질도 사라졌다
신발장 위의 손전등의 스위치를 누르자 불이 들어왔다
순간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넌 죽었잖아- (내 생각-이 새는 새의 넋일까)
아마에게 물을 준다
죽은 다음에도 배고픈게 있어?
검고 둥근 형상이 흔들리며 길어졌다 웅크렸던 몸이 펼쳐지는 거다 무릎이 펴지며 두 발이 땅을 디뎠다. 팔에 파묻혔던 얼굴이 나를 향했다.
경하야...
언제 왔어? 병실에서만큼은 아니지만 창백하고 야윈 얼굴이었다. 눈을 비비는 그녀의 오른손이 상처 없이 깨끗한 것을 나는 보았다.
인선은 언제나처럼 이곳에서 나무 작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고 서울에서 내가 받은 문자와 이 섬에서 겪은 모든 것이 망자의 환상이었을 뿐이라고...(P191)
제목이 뭐야 우리프로젝트 말이야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그녀는 주전자에 생수를 부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제목을 묻지 않았어
나는 대답했다
작별하지 않는다.
주전자와 머그잔 두 개를 양손에 들고 걸어오며 인선이 되뇌었다.
작별하지 않는다.
잔에서 입술을 뗀 인선과 눈이 마주쳤을 때 난 생각했다. 그녀의 뱃속에도 이 차가 퍼지고 있을까. 인선이 혼으로 찾아왔다면 나는 살아 있고 인선이 살아 있다면 내가 혼으로 찾아온 것일텐데 이 뜨거움이 동시에 우리 몸속에 번질 수 있나.(P.199)
2부 3장부터는 제주4.3의 증언자들의 증언록을 읽어 나가는 경하
인선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P232)
꿈이란 건 무서운거야 아니 수치스러운 거야 자신도 모르게 모든 것을 폭로하니까. 이상한 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을 이야기를 고백하고 있다.
밤마다 악몽이 내 생명을 도굴해간 걸 말이야 살아있는 누구도 더 이상 곁에 남지 않은 걸 말이야
아닌데, 인선이 내말을 끊고 들어온다.
아무도 남지 않은게 아니야 너한테 지금.
그녀의 어조가 단호해서 마치 화가 난 것 같았는데, 물기 어린 눈이 돌연히 번쩍이며 내 눈을 꿰뚫는다....내가 있잖아.
처음에 엄마는 빨간 헝겁 더미가 떨어져 있는 줄 알았대 피에 젖은 윗옷 속을 이모가 더듬어 배에 난 총알구멍을 찾아냈대 빳빳하게 피로 뭉쳐진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은 걸 엄마가
떼어 내보니 턱 아래쪽에도 구멍이 있었대....상처를 지혈하고 의식 없는 동생을 두 언니가 교대로 업고 당숙네까지 걸어갔어 통금 때문에 병원에 가지도 의원을 부르지도 못하고 캄캄한 문간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대 동생이 앓는 소리 없이 숨만 쉬고 있는데 바로 곁에 누워서 엄마는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대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그걸 마셔야 동생이 살 거란 생각에. 얼마전 앞니가 빠지고 새 이가 조금 돋은 자리에 꼭 맡게 집게손가락이 들어갔대 그 곳으로 피가 흘려들어가는 게 좋았대 한순간 동생이 아이처럼 손가락을 빨았는데 숨을 못 쉴 만큼 행복했대.
열두 시간 가까이 밤배에 실려 목포항에 도착했는데 다시 밤이 될 때까지 하선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종일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 기진한 상태로 베에서 내렸어요 부슬비가 내려 부교가 몹시 미끄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천명도 넘는 사람들로 선착장이 가득 찼는데 총을 맨 경찰 수백 명이 그 자리에서 우리를 줄 세웠습니다.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18세 이하는 따로 모았어요 분류하는 데만 한참 시간이 걸렸습니다. 여름이었지만 밤비를 계속 맞으니 기침하는 사람, 휘청거리는 사람, 주저앉는 사람 들이 사방에서 나왔어요 호송차 여러 대에 올라타기 시작하는데 줄 뒤쪽에서 젊은 여자가 아니메, 아니메, 하고 울부짖었습니다. 굶주려 그랬는지, 무슨 병을 앓았는지 배에서 숨이 끊어진 젖먹이를 젖은 부두에 놓고 가라고 경찰이 명령한 겁니다. 그렇게 못한다고 여자가 몸부림을 치는데, 경찰 둘이 강보를 빼앗아 바닥에 내려놓고 여자를 앞으로 끌고 가 호송차에 실었어요
이상한 일입니다. 내가 그 말 못할 고문 당한 것보다....억울한 징역 산 것보다 그 여자 목소리가 가끔 생각납니다. 그때 줄 맞춰 걷던 천 명 넘는 사람들이 모두 그 강보를 돌아보던 것도
그런 상황에 어떻게 결혼이 가능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지만 당시 서청들의 무법 행위가 상상을 넘어섰다고 엄마는 말했어 강간과 납치 살인이 흔하게 벌어지니까 적당한 혼처만 있으면 서둘러 결혼시키는 분위기였다고 정숙이에게 눈물짓지 말라고 전하라는 이 추신은, 결혼 전날 언니가 밤새 오빠 걱정을 했다고 엄마가 쓴 편지에 대한 답이었어
다음 달에 전쟁이 터졌고 편지는 더 이상 오지 않았어
이모와 이모부는 서울에 자리를 잡기로 했고 엄마는 제주에 남아서
외증조 할머니를 모시는 걸 택했어 그렇게 헤어지기 전에 두 자매가 함께 대구형무소에 찾아간 게 1954년 5월이야 그곳에 외삼촌은 없었어 4년 전 전주로 이송됐다는 기록만 남아 있었어...이모는 엄마에게 말했대 포기하자고 오빠는 죽었다고 진주로 이감됐다는 날짜를 기일로 하자고
그해 경북 지역에서 죽은 보도연맹 가입자가 대략 만명이야 전국에서는 최소한 십만명이 죽었다고 하잖아
1948년 정부가 세워지며 좌익으로 분류돼 교육 대상이 된 사람들이 가입된 그 조직에 대해 나는 알고 있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정치적인 강연에 청중으로 참석한 것도 가입 사유가 되었다. 정부에서 내려온 할당 인원을 채우느라 이장과 통장이 임의로 적어 올린 사람들 쌀과 비료를 준다는 말에 자발적으로 이름을 올린 사람들도 다수였다 가족 단위로도 가입되어 여자들과 아이들과 노인들이 포함 되었고 1950년 여름 전쟁이 터지자 명단대로 예비검속되어 총살됐다. 전국에 암매장된 숫자를 이십만에서 삼십만 명까지 추정한다고 했다.
그해 여름 대구에서 검속된 보도연맹 가입자들이 대구형무소에 수용됐어
날마다 수백 명씩 트럭에 실려 들어오는 사람들을 더 수용할 공간이 없게 되니까 재소자들부터 골라내 총살했어
경산에 있는 코발트 광산이야 1942년에 폐광돼서 당시엔 비어 있었어
약 삼천오백명이 이곳에서 총살됐어 대구형무소 재소자 대구보도연맹 가입자 경산경찰서 인근 창고에 수용됐던 경북 지역 가입자까지.
갱도가 시체로 가득찬 다음엔 근처 골짜기로 장소를 옮겨서 총살하고
매장했어 ‘강정훈’이라는 이름 옆으로 스탬프 날짜가 7월9일이니까 외삼촌은 골짜기가 아니라 광산에서 총살됐을거야
1960년 여름 처음으로 갱도에 들어간 유족들에 대한 기사
십년동안 갱도에 물이 흐르고 뼈들이 삭아서 흩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온전한 형체를 갖춘 유해는 한 구도 없습니다. 우리는 수숩할 장비도 인력도 없이 무작정 내려 가 본거여서 사진 한 장만 찍고 올라왔습니다. 유족회가 자체적으로 추정한 숫자는 삼천 명이 넘는데 제가 본 제1수평갱도에는 대략 오륙백 구의 유골이 있었습니다. 수직갱도 입구를 콘크리트로 막아 놨는데 그걸 뚫고 내려가 아래쪽 수평갱도를 살펴봐야 당시 상황을 알수 있겠습니다.
강정심귀하
발신인 자리에 대구 주소와 함께
찍힌 청보라빛 직사각형 스탬프 경북 지구 피학살자
유족회장이야 이듬해 5월 군사쿠테타 직후 체포돼서 사형언도를 받았어 총무는 십오년 형이 나왔어
1960년 엄마는 스물다섯살이었어 엄마는 결혼을 원치 않았어 모아둔 돈으로 이집을 샀고 계속 혼자 농사를 지었어 그러다 여름부터 유해를 찾기 시작한거야 이 기사를 읽을 때까지 약 일년 동안.
그 후로는 엄마가 모은 자료가 없어. 삼십사 년 동안.
군부가 물러나고 민간인이 대통령이 될 때까지.(1994년)
1995년 헤드라인 기사에 경산의 시민단체가 코발트 광산 앞에서 최초의 진혼제를 올렸다는 기사
1998년 경북 전역에서 모인 유족들이 광산 앞에서 함동 위령제를 지냈다.
1999년의 스크랩은 대부분 사설들이다. 지금이라도 광산의 유해를 발굴해야 하며 유족들이 연로하니 서둘러야 한다는 내용이다.
2000년의 스크랩은 신문 1면으로 광산 입구에 모인 노인들을 찍은 컬러사진이 실려있다. 40년만에 코발트 광산유족회가 재결성되었다는 기사다
그 뒤로 2001년으로 넘어가자 공중파 방송사와 경산의 시민단체, 유족회 대표들이 함께 탐사 팀을 꾸려 제2수평 갱도로 진입할 거라는 예고 기사들이 보인다. 지면과 연결된 수직갱도 입구에서 탐사팀이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렸다고 기자는 썼다 오십 년 동안 입구를 밀봉했던 콘크리트가 무너지자 갱도를 타고 내려갈 공간도 없이 어마어마한 유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입구가 처형 장소였던 것이다. 거기 세워진 사람들이 총을 맞고 갱도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기자는 썼다. 아래쪽의 제2수평갱도를 시신들이 채운 뒤 그 위로 떨어진 시신들이 제1수평갱도까지 차올라 흩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지상과 맞닿은 수직갱도 입구까지 시신으로 가특찼을 때 군인들이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썼다. 정식으로 유해를 수습한 건 그후 6년이 지나서야 3년동안 400구를 수습하고 2009년에 중단했으니까 지금도 삼천 구 이상이 갱도에 남아 있어
그 3년은 여기뿐 아니라 전국의 학살 터에서 유해가 발굴된 기간이기도 해
수천 개의 정강이 뼈, 수천 개의 해골, 수만개의 늑골 더미 수백 개의 목도장들, 혁대 버클들, 中자가 새겨진 교복 단추들, 길이와 굵기가 다른 은비녀들, 유리알 속에 날개가 들어 있는 것 같은 구슬치기용 구슬들의 사진들이 사백여 페이지에 걸쳐 흩어져 있다.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것인지 물었을 때 인선이 즉시 부인한 이유를 나는 안다. 피에 젖은 옷과 살이 함께 썩어가는 냄새 수십 년 동안 삭은 뼈들의 인광이 지워질 거다. 악몽들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갈 거다. 한계를 초과하는 폭력이 제거될 거다. 사년 전 내가 썼던 책에서 누락되었던 대로에 선 비무장 시민들에게 군인들이 쏘았던 화염방사기처럼 수포들이 끓어오른 얼굴과 몸에 흰페인트가 끼얹어진 채 응급실로 실려온 사람들처럼.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사람이 엄마라고 생각햇어
허깨비
살아서 이미 유령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 삼년 동안 대구 실종 재소자 제주유족회가 정기적으로 그 광산을 방문했다는 걸 나는 몰랐어
엄마가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는 것도
그때 엄마 나이가 일흔둘에서 일흔 넷, 무릎 관절염이 악화되던 때야
유족회장은 유족회에서 가장 열정적인 멤버가 엄마였다고 그랬어
제주에선 아무도 생각 못했던 1960년에 이미 경산에 다녀온 사람이었다고 말했어 진주 이송자 명부 사본을 대구형무소에 요청하자는 의견도 엄마가 낸 거였다고. 승합차를 대절해 다 같이 항의 방문을 하고서야 명부가 나왔다고 회원들이 찾는 가족들의 이름을 엄마가 일일이 찾아내 유해가 묻혀 있을 장소를 추정해 줬다고 했어 시내에서 모이면 집이 멀다며 늘 엄마가 가장 먼저 일어섰다고. 그때마다 두 손으로 회원들의 손을 잡았다고 했어
그 사람이 엄마에 대해 마지막으로 기억한 건 결국 유해 수습이 중단될 거라는 소식을 듣고 다 같이 갱도에 들어간 날이었어 경산 유족회 총무가 손전등을 들고 일행을 안내해 주었다고 천장이 낮고 갱도 바닥에 물줄기 두 개가 흐르고 있어서 모두 헬맷을 쓰고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었다고 그 사람은 말했어. 흙사이로 드러난 뼈들과 삭은 옷자락들이 아직 그대로인 구간을 허리를 굽혀 통과할 때 다들 노인들이니까 넘어지지 않으려고 서로를 붙잡았다고 그때 엄마가 지팡이를 짚지 않은 손으로 그 사람 소매를 잡으면서 가만히 웃었다고 했어 미안허우다 잠깐만 신세지쿠다예.
당시 생존자가 세 명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제 생각엔 한 명이라고 보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반달이 떴는데 구름 한 점 없이 밝은 밤이었답니다. 피투성이 옷을 입은 앳된 청년이 갈아입을 옷을 달라고 이집에서 옷을 얻은 걸 아무한테도 말 안 할떼니 부탁한다고 사정했대요 후환이 무서운 시절이라 두 집은 거절했는데 한 집에서 옷을 내주었답니다. 그 청년은 그걸 받자마자 얼른 마당에서 갈아입고 날래게 달음박질쳐서 사라졌답니다.
그 이야기에 심장이 죄어왔다고 그 사람은 말했어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세웠는데 정신을 차리고 옆을 보니 엄마가 쪼그려 앉아 토하고 있었다고 했어 위액만 게워져 나올 때까지 계속.
대구형무소에 15년 형기를 마치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엄마는 듣고
찾아가 아버질 처음 만났어
고문으로 얻은 수전증이 있었지만 신세지는 집의 귤 농사를 거들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어 보수없이 마을 일을 해주며 천천히 평판을 쌓아갔어 하지만 경찰이 동태를 조사하러 나오는 전과자와 허물 없이 지내려는 사람은 없었어
그 여름 저녁 길목에서 기다리던 엄마가 삼촌,하고 불렀을 때 자신을 그렇게 살갑게 부를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의 입에서 외삼촌의 이름을 듣고서야 아버지 눈이 흔들렸다고 엄마는 말했어
아버지는 서른여섯 엄마는 서른살이었어 아버지는 1950년 봄에 부산으로 이감되었다는 거였어 아버지는 불운하게 형량이 높은 쪽이었는데 그게 오히려 자신을 살게 했다고 부산도 안전하지는 않았다고 아버지는 말했대
아버지는 거기서 외삼촌의 소식을 들었대
함께 학교를 다닌 적은 없지만 딸많은 집의 아들들이라 그랬는지 마음이 맞아 마당가 봉숭아를 돌로 찧어 동생들 손가락에 감아주고 제 손톱도 물들이면서 놀았다고 그 외는 아버지는 엄마에게 더 이상 들려 줄 말이 없었다고 했어 아버지는 주정공장에서 받았던 고문들에 대해서 말했대 이북말을 쓰는 사람이 빨갱이 시키들 씨를 말려 주겠다고 거꾸로 매달고 끝없이 물을 붓고 전기고문을 하였다고 산사람과 내통한 친구들의 이름을 대라고...
엄마는 자책을 했대 그때 내가 무사 오빠신디 머리가 이상하다고 해실카
무사 그런말 밖에 못해실카
3부 불꽃
커다란 광목천 가운데를 가윗날로 가르는 것처럼 엄마는 몸으로 바람을 가르면서 나아가고 있었어 블라우스랑 헐렁한 바지가 부풀대로 부풀어서 그때 내 눈엔 엄마 몸이 거인처럼 커다랗게 보였어
여기쯤 멈춰 서서 엄마는 저 건너를 봤어 기슭 바로 아래까지 차오른 물이 폭포같은 소리를 내면서 흘러갔어 저렇게 가만히 있는게 물구경인가 생각하며 엄마를 따라잡았던 기억이 나. 엄마가 쪼그려 앉길래 나도 옆에 따라 앉았어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섬으로 돌아온 뒤 가끔 그날을 생각했어
급격히 상태가 나빠진 엄마가 밤마다 아이처럼 기어서 문턱을 넘어오면서부터는 더 자주 잠들어 있던 내 입에 손가락을 물리고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엄마는 아이처럼 울었어...엄마는 나를 죽어가는 동생이고라만 생각하지 않았어 언니라고 믿을 때가 더 많았고 어떨 때는 낯선 사람으로 여겼어 자신을 구하러 온 모르는 어른. 무서운 악력으로 내 손목을 붙잡고 엄마는 말했어 구해줍서 해가 저물면 더 깊은 혼란에 빠져 집밖으로 나가고 싶어했어 바깥이 얼마나 춥든, 걸친 옷이 얼마나 얇든 상관하지 않았어 말릴수록 땀벅벅이 되어 몸부림 치는 엄마와 한 몸이 되어서 씨름할 때마다. 근육이 거의 사라진 노인 한 사람의 힘이 어떻게 그렇게 쎌 수 있었을까 씨름 끝에 겨우 이부자리에 누이고 그 옆에 누워 눈을 붙이면 그 사이 정신이 돌아온 엄마는 내가 잠들려는 순간 모든 연결고리를 다시 놓쳐버릴까봐 나를 깨웠어 제발 삼십분만이라도 이어 자게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엄마는 듣지 않았어 도와주라 잠들지 말앙 나 도와주라 인선아.
사실은 죽고 싶었다 한동안은 정말 죽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
엄마의 정신이 극도로 맑아지는 순간들이 섬광처럼 찾아왔어 예리하게 벼린 칼같은 기억들이 엄마를 습격하는 때가. 그럴 때면 엄마는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어 메스에 몸 가운데가 벌어진 사람처럼 피투성이 기억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그 섬광이 지나가는 즉시 더한 혼란이 찾아왔어 나를 끌고 기어가 식탁아래 숨곤 했는데 엄마의 머릿속 지형도는 안방은 어릴 적 살던 한지내 집이고 내 방은 외가, 부엌으로 기어가는 길은 숲이었던 것 같아 식탁아래서 날 껴안고 있던 엄마가 내 이름을 정확히 불러 놀라기도 했어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나를 지키려고 엄마는 턱을 떨었어 머릿속 수천개의 퓨즈들에 일제히 불꽃 튀는 전류가 흘렀다가 하나씩 끊기는 것 같은 과정을 나는 지켜봤어 엄마는 점점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응, 아니라는 대답까지 하지 않게 되었을 때부터는 원하고 청하는 것도 없어졌어 내가 깐 귤을 받아들면 평생 새겨진 습관대로 반으로 갈라 큰 쪽을 나에게 건네며 가만히 웃었어 그럴 때면 심장이 벌어지는 것 같았던 기억이 나. 아이를 낳아 기르면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걸까 생각했던 것도. 그 즈음부터 엄마는 잠을 잤어 호스피스 명동에서 보낸 마지막 한 달은 거의 종일 잠들어 있었어 밀물 때가 지나치게 긴 이상한 바다처럼 모래펄이 완전히 잠긴 뒤 다시는 바다가 빠져나가지 않는 것처럼
이상하지 엄마가 사라지면 마침내 내 삶으로 돌아오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돌아갈 다리가 끊어지고 없었어 더 이상 내방으로 기어오는 엄마가 없는데 잠을 잘 수 없었어 더 이상 죽어서 벗어날 필요가 없는데 계속해서 죽고 싶었어
아버지의 집터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어 울타리 대신 동백이 심겨 있고 마당 가운데 낮은 산담을 쌓은 무덤이 있는 집터는 한 곳 뿐이었으니까
세천리에 대한 자료를 찾기 시작했어 섬에서 수장된 수천명의 시신이 해류를 타고 쓰시마섬으로 떠내려 갔으리라고 추정하는 논문을 읽었어 엄마의 옷장 서랍에서 외삼촌에 관한 자료들을 발견한 건, 다음 차례로 쓰시마섬에 가야 할지 칠십년 전 해안에 밀려왔거나 도중에 가라앉은 유해를 어떻게 찾을 것인지 막막하게 생각하던 즈음이었어
1960년 당시 엄마가 이 집과 대구와 경산을 오가며 몸을 실었을 배편과 버스 기차의 경로를 추측하고 시간을 계산하면서는 내가 서서히 미쳐가고 있다고 느꼈어.
오십년 봉인이 해제된 후 접근 가능해진 미군 기록물들과 당시 언론 보도, 1948년과 1949년에 재판 없이 수감된 제주 수형인 명부와 보도연맹 학살 사이에서 사건들을 복기 했어
악몽에서 깨어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면 그 얼굴에 끈질기게 새겨져 있던 무엇인가가 내 얼굴에서도 배어나오고 있었으니까 믿을 수 없는 건 날마다 햇빛이 돌아온다는 거였어 꿈의 잔상 속에 숲으로 걸어 나가면 잔혹할 만큼 아름다운 빛이 나뭇잎들 사이로 파고들며 수천수만의 빛점을 만들고 있었어 뼈들의 형상이 그 동그라미들 위로 어른거렸어 활주로 아래 구덩이 속에서 무픞을 구부린 키 작은 사람을 그 곁에 누운 모든 사람들이 살과 얼굴을 입는 환영을 그 빛 속에서 봤어 흑백이 아니라 선혈로 얼룩진 옷을 입고 그 구덩이 속에. 방금까지 살아 있었던 부드러운 어깨와 팔과 다리로.
내 인생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더 이상 알 수 없게 되었어 오랫동안 애써야 가까스로 기억할 수 있었어 그때마다 물었어 어디로 뗘 내려가고 있는지 이제 내가 누군지.
그 겨울 삼 만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건 우연의 연속이 아니야 이 섬에 사는 삼십 만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출신 극우 청년단원들이 이 주간의 훈련을 마친 뒤 경찰복과 군복을 입고 섬으로 들어왔고 해안이 봉쇄되었고 언론이 통제되었고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고 오히려 포상되었고 그렇게 죽은 열 살 미만 아이들이 천오백명이었고 그 전례에 피가 마르기 전에 전쟁이 터졌고 이 섬에서 했던 그대로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추려낸 이십만 명이 트럭으로 운반되었고 수용되고 총살돼 암매장되었고 누구도 유해를 수습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어 골짜기와 광산과 활주로 아래에서 구슬 무더기와 구멍 뚫린 조그만 두개골들이 발굴될 때까지 그렇게 수 십 년이 흘렀고 아직도 뼈와 뼈들이 뒤섞인 채 묻혀 있어
그 아이들.
절멸을 위해 죽인 아이들.
그 아이들을 생각하다 집을 나선 밤이었어
테픙이 올 리 없는 10월이었는데 돌풍이 숲을 지나가고 있었어...
........한 발씩 힘껏 땅응 디디고 그 바람을 가르며 걷던 한순간 생각했어
그들이 왔구나.
무섭지 않았어 아니.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행복했어 고통인지 황홀인지 모를 이상한 격정 속에서 그 차가운 바람을 바람의 몸을 입은 사람들을 가르며 걸었어 수 천 개 투명한 바늘이 온몸에 꽂힌 것처럼 그걸 타고 수혈처럼 생명이 흘러들어오는걸 느끼면서 나는 미친 사람처럼 보였거나 실제로 미쳤을 거야 심장이 쪼개질 것같이 격렬하고 기이한 기쁨 속에서 생각했어 너와 하기로 한 일을 이제 시작할 수 있겠다고.
블라우스와 헐렁한 바지가 날개처럼 부풀어 오른 여자의 뒷모습이 내 눈앞에 떠오른건 그때였다 볼펜 촉을 힘껏 누르고 모든 획을 꺾어 쓰는 사람. 포기하자. 이감된 날짜를 기일로 하자. 섬으로 돌아오는 배에 혼자 올라 방금 들은 말을 곱씹는 사람. 마침내 수만 조각의 뼈들 앞에 다다른 사람 머리를 숙이고 굽은 허리를 더 구부리고 어둠속으로 들어가는 사람.
아직 사라지지마
불이 당겨지면 네 손을 잡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눈을 허물고 기어가 네 얼굴에 쌓인 눈을 닦을 거다.
내 손가락을 이로 갈라 피를 주겠다.
하지만 네 손이 잡히지 않는다면 넌 지금 너의 병상에서 눈을 뜬거야
다시 환부에 바늘이 꽃히는 곳에서 피와 전류가 함께 흐르는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