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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모친 마리아의 신앙 인격
누가복음 1:26~38
오늘은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천년 전 예루살렘 밑에 위치한 베들레헴 동네에 태어나신 날을 기념하는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은 다윗 왕의 가문에 속한 갈릴리 나사렛의 젊은 목수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아기를 편안히 낳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베들레헴에 있는 한 여관 집 마굿간이었습니다. 베들레헴 한 여관의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강보에 싸여서 말과 소의 먹이통인 구유에 그 몸을 뉘었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약하고 초라한 곳에 자기 몸을 의탁할 만큼 겸손하셨고 검소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만민의 구주시며 만민의 심판장이며 세상 나라의 임금이며 영원한 통치자이시지만 그와 같이 자신을 낮추시고 평안히 구유에서 잠을 자셨고 어머니 마리아의 품에서 쉬셨습니다. 우리 구주의 그러한 모습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항상 겸손하고 어떤 환경에 처해서도 늘 자족하며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제자들이 됩시다.
오늘은 성탄절을 맞아 우리 주님의 모친으로 지명되어 주님의 탄신을 도운 주의 모친 마리아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마리아는 특별한 은총을 입은 여인이니 곧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 생명을 열 달 동안 잉태하여 길렀으며 또한 해산의 고통 끝에 낳았으며 또한 그 어린 구주에게 젖을 먹이며 그 얼굴을 보면서 그의 성장하는 어린 시절을 지켜보는 특별한 은총을 입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을 사랑하며 애틋한 마음으로 기르는 행복을 맛보는 특권을 누리지만 마리아는 그 남편 요셉과 더불어 우리 구주를 그렇게 돌보는 특별한 행복을 맛보았으니 참으로 그 어떤 사람보다 더 큰 특권을 입은 분입니다.
마리아가 이 복된 특권을 누리게 된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뜻에 달려 있었지만, 마리아가 하나님의 지명을 받아 아기 예수님을 섬기는 이 고귀한 일을 맡게 된 배경에는 훌륭한 인품과 신앙이 있었기 때문임도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주님의 육신의 부모인 마리아의 아름다운 신앙과 성품을 함께 살펴보고 본받음으로써, 우리도 주님을 잘 섬김으로써 얻는 심령의 행복과 기쁨과 영광이 더욱 충만해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첫째로, 마리아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의 집에 들어가 다윗의 후손 요셉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릴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는 기이한 말씀을 했습니다. 그녀는 당시 요셉과 정혼을 했지만 결혼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순결한 처녀였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장에게 묻기를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때에 천사는 대답하기를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이 천사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 마리아는 생각을 한 후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 말을 하자 천사는 곧 떠나갔습니다.
가브리엘 천사와 나눈 마리아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마리아가 어떠한 성품을 가진 처녀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처녀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으니,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시며 여자가 남자 없이도 성령으로 얼마든지 아이를 잉태하는 기적을 하나님께서 베풀 수 있음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요즘은 인공 수정이라는 방법으로 남자 없이 여자는 자식을 인위적으로 잉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옛날에는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남자도 모르는 가운데 아이를 잉태할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마리아는 하나님은 능력이 한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그러한 불가능한 일도 그대로 성취될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믿음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은 능하지 못함이 없으며, 그가 하신 모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대로 믿는 믿음의 사람이 됩시다.
둘째로, 마리아는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마리아는 순결한 여인이요 약혼한 요셉과 곧 있을 결혼식을 준비하며 기다리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렇게 예상치 않게 아기를 잉태하게 되면 자기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돌게 되고 자기에 대하여 평판이 나빠지고 자기를 믿고 기다리고 있는 요셉이 오해를 하게 되고 자기의 결혼은 결국 파국을 맞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자기의 미래의 평안과 행복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알았습니다. 자기에 대한 평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자기의 약혼자 요셉이 얼마나 실망할 줄 모르지 않지만, 자기는 남편 될 요셉에게 속한 자이기 이전에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여종이라는 분명한 소속감이 더 컸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여종으로서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에 먼저 순종하는 것이 그 어떤 일보다 우선 순위의 일로 삼았던 것입니다. 당시 마리아 기껏해야 18살 정도의 소녀였을 터인데, 마리아가 이렇게 성숙한 신앙 인격을 가졌기에 우리 구주의 모친이 되는 영광을 얻었던 것입니다. 모친 마리아처럼 우리도 세상의 어떤 평판과 오해가 있더라도 세상적으로는 손해가 될 것이 분명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진다면 그 뜻과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는 순종의 사람이 됩시다.
셋째로, 마리아는 고난 속에서도 불평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이 마리아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온 후에 시간이 흘러 해산할 날이 차가게 되었을 때에 주위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 속에서도 마리아는 조용히 해산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변수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시 그들을 통치하던 로마 제국의 행정 명령이 내려서 출신지에 가서 호적에 기록하라는 명령을 떨어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호적에 이름을 올리려고 고향으로 돌아가므로 마리아도 비록 산달이 꽉 찼지만 요셉과 함께 본적 고향인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까지 내려가야 했습니다. 나사렛과 베들레헴의 거리는 약 150km의 거리입니다. 더욱이 중간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왕래를 방해해서 더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약 200km 넘는 먼 길을 가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배가 부른 상태에서 여행하기가 얼마나 어려웠겠어요?
그런데 그 먼 길을 겨우 다 갔는데 그곳에는 쉴 곳이 없었습니다. 배는 아파 오는데 여관의 방도 꽉 차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로마 제국의 호적 명령에 따라 먼 곳에서 여행와서 여관마다 북적대어 방이 없었습니다. 요셉이 아무리 방을 얻어보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급한 나머지 말이나 소들을 쉬게 하는 마굿간 한쪽을 치워서 가림막을 설치하고 거기서 아기를 낳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가지고 갔던 강보로 아기 예수님을 싸서 눕힐 자리가 없어서 구유에 눕혀 놓는 마리아 얼마나 신세가 딱합니까? 먼 여행을 배가 부른 상태에서 간신히 왔는데 방 하나도 얻지 못하고 마굿간에서 아기를 낳는 처지가 된 마리아의 처지를 생각해보십시오.
천사장 가브리엘이 나타나 전해준 놀라운 소식은 한편 얼마나 크고 놀라워 설레는 약속의 말씀입니까?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메시야가 될 아이가 자기 뱃속에 있다는 귀한 자부심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약속대로 배가 불러가면서 그 해산의 날을 기다릴 때에 오히려 모든 일들이 인간의 처지로 보면 불편하고 힘들고 마음이 우울해질 수 있는 일들이 겹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러한 와중에 불평하거나 원망을 하였다는 모습이 전혀 없습니다. 배가 불러오고 먼 길을 가야하는 행정 명령에도 기꺼이 순종하며 힘들고 지칠 법하고 산통이 다가오는데 여관 집 방한 칸이 주어지지 않아도 남편 요셉이나 주위 사람들이나 하나님을 향하여 일체의 불평이 없습니다. 마리아는 훗날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 일어난 가나의 혼인 잔치 집에 가서도 포도주가 떨어져가는 것을 확인하자 곧장 예수님께 알리고는 종들에게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순종하라고 전하고 주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께 알려드리고는 무엇이든지 소망을 품고 그 상황을 주님께 맡기고 주방으로 돌아가 자기 일만 계속했습니다.
이처럼 마리아는 불평하는 법이 없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나 뜻이나 자기 감정에 어긋난 예상치 않은 일이 발생하면 불평하거나 감정이 상하거나 주변 사람들을 탓하곤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도 성실한 마음으로 그를 신뢰하며 계속하여 기도하지 아니하고 실망하여 기도도 하지 않는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런 모습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아기 예수님을 다른 여인이 아닌 마리아에게 맡겨놓으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어떤 처지와 환경에서도 불평과 원망이 없는 사람이 됩시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항상 소망을 품고 긍정적인 말을 하고 인내하는 자가 됩시다. 그렇게 우리가 마리아처럼 평온하며 잘 인내하며 소망의 말을 하면서 차분히 대응할 때 똑같이 힘든 상황에 처한 우리 자녀들과 우리 주변 사람들도 힘을 얻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세상의 많은 고난 중에도 유연하고 지혜롭게 삶의 역경을 대처해나가는 성숙한 신앙의 사람들이 다 될 줄 믿습니다.
넷째로,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는 복된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가 자기에게 한 말을 마음에 깊이 간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말씀을 기억하면서 처녀가 결혼 전에 아이를 배었다면서 추측성 소문이 무성할 때에도 잠잠히 자기 마음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마리아가 자기 약혼자 요셉이 풍문을 듣고서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혼인의 언약을 깨뜨릴 수도 있는 것을 알면서도 요셉을 불러 자기에게 일어난 일의 전말을 고하지 않고서 묵묵히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이는 마리아는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의지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말씀이 더 믿을 만하다고 여겼기에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그것을 묵상하는 습관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후에도 아기 예수님이 태어난 그 날 밤에 베들레헴 목자들이 한밤중에 여관의 마굿간에 찾아와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발견하고서 기뻐하면서 한밤중에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한 천사가 나타나 했던 말을 전해주는 것을 들었습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이 말씀을 천사가 하시더니 들판의 밤 하늘에 수많은 천군들이 나타나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라고 하더니 천사들이 하늘로 떠나 올라가더라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그 목자들이 달려왔노라고 요셉과 마리아에게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마리아는 어떻게 반응했느냐 하면 누가복음 2:16,17 말씀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마리아는 영적인 이 일들을 그냥 잠깐 놀라워하며 흘려버린 것이 아니라 마음이 깊이 간직하며 되새기면서 생각하곤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월이 흘러가도 엊그제 일어난 일처럼 하나 하나 또렷이 생각하며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상기하곤 했던 것입니다.
후일에 예수님이 자라나 12살이 되어서 예루살렘 명절에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때에 예수님이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걷지 않고 예루살렘 성전에 남아 이틀 동안 당시 율법 교사들과 토론하며 하나님의 일들을 논하고 있었을 때 뒤늦게 예수님을 찾으러 예루살렘 성전에 마리아가 돌아와서 발견했을 때 예수님이 하신 모든 행동과 말씀을 모친 마리아는 그냥 지나치지 아니하고 마음에 두었다고 누가복음 2:51 말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이렇듯 예수님과 관련되어 하나님의 모든 귀한 말씀들을 마음에 늘 간직하였기 때문에 후일에 사도 바울의 협력자 의사 누가가 마침 사도 바울이 가이사랴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시간이 남았을 때에 복음서를 저술할 목적으로 자료를 수집하러 다닐 때에 주님의 모친 마리아를 만나 예수님에 대하여 물었을 때에 마리아가 과거 예수님의 잉태와 탄생 전후의 일들에 대하여 오랫동안 마음에 간직해온 일들을 자세히 누가에게 알려주어서 이렇게 누가복음 안에 기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에게 있어서 귀한 영적 특징은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소중하고 복되게 여기고 이 것을 늘 마음에 간직하면서 묵상하고 그 뜻을 깨달으려고 깊이 생각하는 습관을 가진 점입니다. 우리도 세상에 수많은 일들을 겪기도 하고 듣고 보고 생각하고 계획합니다만, 마리아처럼 우리 주님에 관한 성경에 기록된 말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어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언약들, 성령의 감동 가운데 우리들에게 주어진 약속들, 영적인 신앙 생활을 위하여 성령께서 경건한 서책들이나 설교 영상 등으로 마음에 부딪히게 주신 말씀들을 소중한 보석처럼, 보물처럼 여기고 그것을 간직하는 복된 습관을 가집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물처럼 여겨 그것들을 은행 통장에 쌓여지는 돈의 액수보다 우리의 재산 목록들보다 더 소중한 보물로 여겨 마음에 간직하며 묵상하는 자가 됩시다. 기록된 성경을 읽고 또 읽어서 성경 말씀들이 우리 심령 창고에 가득 가득 쌓이게 하십시오. 그리할 때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
고 하신 말씀대로, 우리의 영혼 뿐 아니라 현실의 삶에도 필요한 것들을 넉넉하게 좋은 것으로 풍성히 더해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는 고난 속에서도 불평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는 복된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주의 모친과 같은 아름다운 인품으로 가꾸어감으로써 주님을 모시고 섬기는 일에 나날이 진보가 있고 영혼의 복과 삶의 복을 받는 복된 성도님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