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_ 신부와 남편, 연인 관계 속에 그려진 하나님의 사랑
성경에 나타난 구속의 역사와 구원의 놀라운 경륜의 근간에는 매우 중요한 사상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실천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여러 다른 모습으로 다른 관계 속에서 계시하십니다. 그러나 모습과 관계는 다를지라도 그 속에 나타난 사랑은 같은 사랑, 하나의 사랑입니다.
성경의 정확한 진리를 알고, 예언 해석을 하고, 성경에 능통한 모든 지식과 지혜를 가졌다 해도, 각 개인이 성경에 근원적으로 흐르고 있는 그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거나 깨닫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그 신비한 구속의 경륜과 비밀은 인간의 마음에 마땅히 불러일으켜야 할 만큼의 숭경과 감탄을 자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피상적인 문자로만 맴돌다 끝나서 우리의 신앙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여러 다른 관계로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조명해 보았습니다. 다른 관계, 다른 모습이지만, 그 속에 나타난 같은 사랑, 하나의 사랑인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깨달을 때 우리의 신앙이 더 뜨겁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 편집실 –
제1부: 신부와 남편, 연인 관계 속에 그려진 하나님의 사랑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렘 3:14).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신부이다. 성경의 여러 곳에 하나님은 우리의 남편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남편도 그냥 남편이 아닌, 아내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든, 어떤 처지에 있는 사람이든지를 막론하고 조건 없이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으로서 등장한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에게, 다른 정부를 찾아 자주 집을 나가는 음란한 여인 고멜과 혼인하여 살게 하시므로, 남편인 하나님을 떠나 불순종하는 아내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심정을 예증하고 체험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 신부인 우리를 보며 매우 기뻐하고 행복해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호 11:4).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 3:17).
1) 아가서 - Song of songs
성경의 책 중에, 신부와 남편,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의 관계로 우리와 하나님의 사이를 표현한 대표적인 책이 아가서이다. 솔로몬이 저자로 알려진 아가서는 “노래들 중의 노래”(song of songs)라는 뜻이 있는데, 솔로몬으로 상징된 하나님과 술람미 여자로 상징된 그분의 백성 사이의 사랑의 관계가 묘사된 노래로서, 유대인의 가장 중요한 절기인 유월절에 낭독되는 두루마리서였다.
아가서는 솔로몬, 술람미 여인, 그리고 예루살렘 딸들 사이에 대화 형식으로 불린 사랑의 노래이다. 아가서를 통해 흐르고 있는 사랑은 그냥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사라지기 쉬운 사랑이 아니라, 많은 시련을 극복하며 이루어가는 온전하고 아름다운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상징하는 이 온전한 사랑이야말로 세상의 어떤 시련도 이길 수 있게 해주고, 어떤 죄악도 승리하게 하는 놀라운 힘을 가진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신부인 우리를 향해 가지신 사랑은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죽음보다 더한 사랑이 아닌가! 또한 아가서는 교회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초대교회에서도 아가서에서 나타난 연인과 남편과 신부의 사랑의 관계를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상징하여 가르쳤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불렀던 침례 요한의 기록과(요 3:29) 그리스도 자신이 신랑임을 친히 밝히신 말씀(마 9:15)을 바탕으로 한 해석이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5장 22-32절에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묘사하고 있으며, 사도 요한도 어린 양의 아내, 신부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계 18:23; 21:2,9; 22:17).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
2) 아가서에 나타난 사랑의 서막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를 한 쌍의 연인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사랑은 눈을 멀게 한다. 솔로몬 왕의 눈에는 피부가 검은 보잘것없는 여인이 엄청나게 아름답게 비친다. 마치 죄로 물든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의 눈처럼 말이다. 그 여인의 외모나 배경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에게 빠지게 된 솔로몬의 사랑은, 우리를 위해 생명을 버리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나타내기에 진정으로 적합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아가서 1장의 기록을 보면(6,7절) 술람미 여인의 정체와 그들이 만나게 된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술람미 여인은 왕의 포도원지기였고, 왕은 양을 돌보는 목자가 되어 서로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이복 오빠들이 포도원지기로 삼았기 때문에 일광 속에서 일해서 햇볕에 그을린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일한 여인이었다. 솔로몬 왕의 사랑을 받은 그녀는 이렇게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표현은 언뜻 비치는 섬광처럼 우리에게 뜻깊은 의미를 던져준다.
* “게달의 장막”과 “솔로몬의 휘장”
아가서 1:5 -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술람미 여인은 예루살렘 여인들과 비교하며 비록 자신이 그들보다 검을지라도 그들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다. 예루살렘의 딸들은 왕궁에서 왕의 시중을 드는 시녀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거친 들에서 양 떼를 돌보는 그녀보다 살결이 더 희고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술람미가 자신을 그들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한 것은 그녀가 솔로몬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 사랑을 독차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게달의 장막” 같이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솔로몬의 휘장”과 같다고 말한다. 게달의 장막이란 유목민들의 거처하던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천막을 말한다.
여기서 “게달의 장막”이란 단어는 우리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세운 성소를 상기시켜 준다. 성소의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상징했다. 성소는 네 개의 덮개로 지붕처럼 덮여 있었는데, 그중 제일 겉에 있는 덮개가 게달의 장막처럼 해달의 가죽으로 만든 검은 가죽 덮개였다. 해달은 물개와 같은 해양 동물로서, 그 말린 가죽은 색깔이 검었다. 성소의 가죽 덮개는 예수님께서 취하신 보잘것없는 인성을 상징한다. 이 바깥 가죽 덮개가 외적인 아름다움을 지니지 않은 것같이, 그리스도도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사 53:2)는 분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초라한 외형 속에 숨어있는 신성의 임재의 영광은 참된 아름다움이었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성소 지붕의 네 개의 덮개 중, 검은 가죽 덮개 속에는 붉은색으로 물들인 수양의 가죽 덮개가 있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과 희생을 상징하는 붉은색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그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을 상징하는 순백의 염소 털 덮개가 있었고, 그 맨 안쪽의 덮개는 왕의 덮개라고도 불리는 아름다운 덮개가 있었다. 그것은 휘장 같은 큰 천으로, 예수님의 순종을 상징하는 청색과 왕권을 상징하는 자색, 그리고 희생을 상징하는 홍색 실로 꼬아 만든 아름다운 휘장 위에 금실로 천사들의 형체가 수놓아 있는 것이었다. 왕실 색깔의 실로 짜인 이 덮개는 빛에 따라 여러 색깔로 빛나는 화려 찬란하고 아름다운 휘장이었다. 마치 솔로몬의 휘장처럼 말이다.
게달의 장막 같은 검은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의 휘장 같다는 말은, 죄가 많고 검은 마음의 소유자들인 우리를 솔로몬의 휘장처럼 찬란하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의로 덮어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치있게 만들어주시는 것을 상징할 수 있다. 우리는 게달의 장막처럼 초라하고 볼품없지만, 주님은 우리를 자신의 신부로 택하여 주시고 마치 솔로몬의 휘장처럼 우리를 덮으시고 존귀하게 해 주셨다.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해 주신 것이다. 술람미 여인은 그 사랑을 믿고 당당하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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